이 글에는 영화 '계춘 할망'에 대한 자세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원치 않는 분은 뒤로 가기를 눌러 주시기 바랍니다. - 편집자 주

1.

여러분이 제주도의 이모저모를 담은 그림을 전시하는 곳으로 초대받았다고 생각해보자. 제주도 일상을 그린 것이지만, 단순히 풍경화로 볼 수 없을 정도로 그림 속 인물들에 대한 붓 터치가 정겹고, 그림에서 우러나오는 느낌이 남다르다.

그림들 중 확연히 눈에 띄어 걸음을 멈추게 하는 것은 활짝 웃는 할머니 초상화다. 잘 그렸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누군가를 바라보며 웃는 할머니 모습은 보는 이의 마음을 푸르게 물들게 한다. 애초에 초상화를 그릴 목적으로 취한 포즈는 아니었을 거란 추측을 해 본다. 화가의 마음에서 용솟는 그리움을 그림으로 옮겨 놓은 것만 같다.

궁금해진다. 그림 속 할머니는 대체 누구일까? 그림을 그린 이혜지 화가와 어떤 관계일까?

그림을 보다가 갑자기 이혜지 화백이 누군지 궁금해진다. 그녀는 어려서 아버지 손에 이끌려 고아원에 맡겨졌다. 청소년 시절 그곳을 나온 후에는 친구들과 어울려 도적질을 일삼는가 하면, 성매매 여성을 가장하여 청소년 성범죄를 유발한 뒤 남성을 협박해 돈을 뜯어내기까지 한다. 그러다 예기치 않은 사고 때문에 경찰에 붙잡힌다. 미래를 위한 희망을 조금도 기대할 수 없어 보이는 비행 청소년이다.

어둠 속에 갇혀 지낸 아이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었고, 세상에서 아름다움을 전혀 경험했을 것 같아 보이지 않음에도 아름다움과 빛을 그리게 되었다. 비행 청소년에서 훌륭한 화가로 성장한 것이다. 소설이나 영화에서가 아니면, 세상에 살면서 이런 변화가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그렇기 때문에 묻지 않을 수 없다. 무엇이 그녀의 변화를 가능하게 했을까?

▲ 영화 '계춘 할망'. 12년 만에 만난 손녀와 할머니의 이야기를 스크린에 담았다.

'계춘 할망'은 이혜지 화백 그림에 얽힌 이야기를 회상하는 영화다. 물론 가상 설정이다. 영화는 그림을 곧잘 그리는 이혜지라 불리는 아이를 따라간다. 어린 혜지는 계춘 할망과 산다. 일찍 아빠를 여읜 후에 엄마는 제주도를 떠났기 때문이다. 혜지는 할머니의 기쁨이고 전부다.

그런데 어느 날 서울에 갔다가 할머니는 시장에서 혜지를 놓치고 만다. 정신을 잃은 듯 찾아 헤맸지만, 결국 찾질 못한 채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할머니는 혜지 찾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계속해서 실종신고를 내는가 하면, 토속신앙에 매달려 빌고 또 빌면서 혜지가 어디에 있든 건강하게 살아 있어 죽기 전에 만날 수 있기만을 바란다.

어느새 세월은 12년이 지나고, 비행 청소년으로 등장하는 혜지(김고은)는 우유팩에 그려진 유아 실종 신고에 나온 어린 이혜지 사진을 본다. 그리고 경찰서로 찾아온 할머니와 만나 제주도로 돌아간다. 상당 부분을 건너뛰었어도 그녀를 혜지라 생각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혜지에겐 뛰어난 그림 솜씨가 있고, 어린 시절 할머니를 그리기 위해 아껴 두었던 금색 크레파스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주도로 돌아온 혜지는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하다.

12년이란 세월의 간격 때문이었을까? 비록 세월과 함께 어린 시절 기억이 지워졌다 해도 그토록 할머니를 따랐던 아이의 변한 태도에서 할머니는 이상한 점을 느낀다. 그러나 그동안 힘들게 살아온 까닭이라고 여긴다. 혜지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들려도 계춘 할망은 아랑곳하지 않고 혜지에게 온 마음과 정성을 쏟는다.

혜지의 그림 실력을 알아본 미술 선생님은 혜지를 서울에서 열리는 사생 대회 출전을 권유하는데, 혜지는 할머니가 집을 판 계약금을 가지고 사라진다. 서울에서 위장 성매매 사건과 관련해 경찰에 붙잡힌 혜지는 자신을 찾아온 할머니에게 자기 이름은 남은주이며 진짜 혜지는 어려서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말한다.

혜지와 계춘 할망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남은주가 이혜지로 살게 된 배경이 너무 간단하게 처리되었다. 이것은 이야기 전개에서 참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너무 길게 보여 주는 것이 영화 전체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겠지만, 너무 짧았던 것도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이는 분명 감독이 주목하고 싶은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곧 영화는, 남은주와 이혜지의 관계가 아니라 계춘 할망과 그녀 눈에 비친 이혜지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러니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집중해서 보아야 할 부분은 이것이다. 비행 청소년 남은주가 이혜지로 바뀐 데는 무엇이 있었을까?

▲ 작중 할머니 '계춘'(윤여정 분)은 제주도 상군 해녀다.

2.

인간은 변한다. 나이에 따라 변하고, 환경과 상황에 따라 변한다. 누굴 만나느냐에 따라서도 변한다. 비록 변온동물은 아니라도 주변 환경과 분위기에 따라 적응해 나가면서 조금씩 변한다. 유기체에게 당연히 일어나는 변화지만, 때로는 생물학적인 변화가 아니라 인격과 성품의 변화 때문에 기대와 신뢰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 인생의 지혜를 가진 원로들에게 흔히 듣는 말은 인간이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특히 선한 모습으로 변하는 일에는 전혀 진척이 없든가, 매우 더디다. 홍정길 목사는, 은퇴 후 한 모임의 강연에서 목회하는 동안 깨달은 점을 이야기했는데, 그것은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가르치고, 설교하고 제자 교육으로 사람이 변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정작 변해야 할 기질과 성품과 인격에선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는 것이다. 도대체 목회를 왜 해야만 하는지, 깊은 회의를 불러일으키는 말이다.

한편, 인간이 변하고 또 변하지 않는다는 말은 마치 모순처럼 들린다. 그러나 사람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변하긴 쉬워도 좋은 방향으로 변하긴 쉽지 않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좋겠다. 암벽을 타고 올라갔다가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가는 그림을 생각해도 좋다. 좋게 변하기는 암벽을 등반하는 것 같아도, 나쁘게 변하기는 미끄럼틀을 타는 것 같다. 종교는 그 중간에 위치한다. 인간의 좋지 않은 변화를 막고, 오히려 선한 변화를 돕는 역할을 하는 게 종교라는 말이다.

종교가 이 일에서 제 역할을 못 하면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없고, 사람들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 유명무실한 종교로 전락한다. 평생 목회에서 깨달은 것이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라면, 단언컨대, 그것은 사람이 사람을 변화시키려 했기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기독교에서 변화의 주체는 결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목회는 성령 하나님이 당신의 결실을 내실 수 있도록 인간 편에서 애쓰고 수고하는 일일 뿐이다. 성령의 역사가 개인에게 결실하도록 하는 일은 사람이 강제로 할 수 없는 일이며, 오직 나를 통해 하나님이 나타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분께 순종할 때만 가능해진다.

오늘날 기독교가 비난받는 이유는 사람들에게 선한 변화를 위한 힘을 공급하기보다는 오히려 나쁜 변화를 일으키는 계기를 제공할 뿐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역사가 자신에게 일어나도록 순종하기보다 오히려 자기 계획과 뜻이 성취되는 삶을 위해 살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은 다만 도구이며 장식에 불과할 뿐이다.

▲ 할망 계춘은 손녀 '혜지'에게 무한한 사랑과 신뢰를 보낸다. 그 사랑과 신뢰가 혜지로 가장한 은주를 변화시킨다. 

3.

'계춘 할망'은 인간을 선하게 변화시키는 힘이 어디서 비롯하는지 잘 보여 주는 영화다. 다시 말해, 비행 청소년 남은주를 이혜지로 변화시켜 준 힘은 (미술 선생님 역할이 결코 작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계춘 할망이 준 사랑과 신뢰였다. 언제나 혜지 편이 되어 주겠다는 계춘 할망 이야기는 그녀가 혜지가 아님을 확인했을 때와 겹친다.

할망이 말하는 '내 편'은 나를 위한 사람에게 주는 신뢰가 아니라 무조건적인 사랑에서 비롯하는 신뢰의 표현이다. 이런 신뢰를 한 몸에 받은 혜지는, 비록 궁지에 몰려 할머니 돈을 훔치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변화된 삶을 사는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이것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이미지는 사생 대회에서 혜지가 그린 그림이다.

바다 속에서 두 아이 손을 잡고 빛을 향해 비상하는 할머니 모습은 계춘 할망이 혜지에게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비록 어린 혜지가 죽는 것을 막을 순 없었어도, 이혜지 화백에게 계춘 할망은 깊은 바다에 빠져 있는 자신을 구해 낸 존재였다.

혜지가 깊은 고민에 빠져 바닷가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을 때, 계춘 할망이 곁으로 다가와 했던 말은 영화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세상살이가 힘들고 지쳐도 온전한 내 편 하나만 있으면 살아지는 게 인생이라… 내가 네 편 해 줄 테니 너는 네 원대로 살라."

결코 오독할 수 없고, 또 오독해서는 안 되는 할머니의 이 말은 세상 그 무엇보다 더 포근하여 혜지를 새로운 세상, 빛의 세계로 비상할 수 있도록 용기를 준 말이었다. 이 말 때문에 그림 속 할머니는 비록 전시장 한 부분을 차지할 뿐이지만, 세상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보여 주기에 혜지에겐 가장 크게 느껴졌을 것이다.

▲ 할머니가 혜지의 '편'을 선택함으로 혜지는 밝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할머니가 말하는 '내 편'과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은 겹쳐진다. 하나님은 우리가 의인이기 때문에 함께하신다거 말씀하신 게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 가운데 있음에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약속하셨다. 이 약속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무한 신뢰를 보여 주신다.

혜지가 아님을 알고 있어도 계춘 할망이 '내 편'이라 말한 것에서, 기독교인은 예수 그리스도로 우리를 죄인이 아닌 의인으로 여겨 주시는 하나님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 사랑을 느낄 수 있기 위해선, 그래서 그것을 우리 삶에서 선한 변화의 원동력으로 삼을 수 있기 위해선, 비록 죄인이라도 또 하나님을 도무지 느낄 수 없는 상황이라 해도, 나와 함께 계시겠다는 하나님과 그분의 약속을 부정하지 말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하나님의 약속은 이 세상에서 숨어 역사하시는 하나님나라를 경험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계춘 할망'은 오늘날 그리스도의 형상으로서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그리스도의 편지와 향기로 살 수 있는지, 한 방향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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