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거 위기에 놓인 만덕 마을, 주민들이 상황실로 쓰는 건물 앞에 활동가들이 앉아 있다. 부산 최대 재개발 지구라는 이 곳에 많은 종교인들과 활동가들이 다녀 갔지만, 개발을 막지는 못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주민들에게는 구만덕, 부동산업계에서는 만덕 5지구라고 불리는 부산시 북구 만덕동에 들어섰다. 뒤로는 금정산이, 앞으로는 멀리 낙동강 하구가 내려다보이는 산세 좋던 마을은 폭격당한 히로시마처럼 변했다. 죄다 부서지고 헐리고, 놀이터 놀이기구 몇 개와 유리창 깨진 집 한두 채만 남아 있었다. 폭격 흔적을 없애려고 포클레인과 덤프트럭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전부 다 온 사람들이 육이오 때 피란 와 가지고 몬 올라가고 이 자리에 자리 잡아 판자를 지이가 살다가, 그래 인제 거기서 이주를 시킬라카이 판자촌 없앨라꼬 여다가 집을 짓거든. 지인 게 박정희가 첫 먼저 여기서 한 기야."

마을 주민들이 설명하는 구만덕은 1970년대 도시 정비 사업 일환으로 영도와 초량 등지에 흩어져 살던 판자촌 피란민들을 이리로 옮겨다 집을 지어 주면서 형성됐다. 국유지에 넓게 도로를 내고 집을 지어 줬다. 도시계획을 깔끔하게 잘했다는 이유로 당시 부산시장은 서울시장으로 승진해 올라가기도 했다.

한적한 마을은 2001년 재개발 공고가 나면서 아수라장이 됐다. 부산에서 제일 큰 규모의 재개발이었다. 2007년 대한주택공사가 토지 보상 계획을 공고했다. 그런데 주택공사와 토지공사가 LH로 합병되는 과정에서 재개발이 지지부진해지면서 실제 보상은 2011년에 이루어졌다. 주민들에게 책정된 금액은 2007년 당시 금액이었다. 이미 주변 시세는 폭등한 뒤였다.

  ▲ 마을은 폭격을 맞은 듯 헐렸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살 집 달라는 건데…

2011년 7월 6일, '생불'이라는 아이디로 한 네티즌이 인터넷에 올린 글이다. 5월 27일 점심 만덕마을을 찾아 주민들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이 내용과 달라진 건 없었다.

"사람이 살고 있다. 주거 생존권 보장하라!", "LH 이놈들아 어디로 가란 말이냐!", "여기 사람이 있다!", "돈보다 사람" 등의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마을 곳곳에서 나부끼고 있었다. 수십 년 자기 집처럼 지내던 사람들이, 보상금 받고 나오니 전세나 월세 전락할 위기에 놓였다. LH공사가 원주민들에게 제공하는 아파트 단지도 웃돈이 없으면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다.

마을 주민들이 LH공사에 "사람이 살 수는 있게 해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항의했지만, 돌아온 답은 "토지보상법에 따라 적법한 절차를 거쳤다"는 것이었다.

"즈그들도 법을 바꿔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래 얘기를 하드라고요. 웃기죠. 누구를 위한 법인지 모르겠어요. 누구도 위하는 게 아니잖아요."

마을 주민 정애란 씨는 답답함을 토로해 봤지만, 에너지만 낭비했다. 비록 국유지에 살아왔지만 오랜 기간 집주인으로 점유하며 살아온 권리를 법과 LH는 인정해 주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전쟁 때 피란 온 사람들이 우여곡절 끝에 정착한 마을. 70~80살이 된 노인들은 저항할 힘이 별로 남아 있지 않았다. 마지못해 하나둘씩 마을을 떠났고 1,600세대 중 이제 단 4세대만 남았다. 마을에는 '비상대책위원회'가 구성됐지만, 이들은 만덕주민공동체와는 결이 다르다. 분양가 인하를 요구하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건 얼굴 맞대고 살아온 사람들이 갈라지는 것이다.

"집들이 이래 보면 골목을 마주 보게 돼 있어요. 마주 보는 집들 간격이 가까워요. 유대 관계도 좋았고요. 43년 전에 모여 놓으니까 연세도 있고 다른 동네보다 끈끈했어요.

LH는 동네 집만 가져간 게 아니고 유대 관계도 가져가 버렸어요. 지금은 주민들끼리 원수가 되어 버렸죠.(웃음) 밑(비상대책위)에는 우리를 별세계로 봐요. 없는 사람들이 돈 받으려고 저 짓 한다고 해요. 우리가 투쟁에 미친 사람이라고 보고 있어요. 그게 좀 안됐제. 안타깝고 좀 그렇습니다."

기도로, 예술로 함께하는 사람

구만덕 상황실에는 목회자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돌아가며 현장을 지키고 있다. 그동안 희년함께, 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예수살기 소속 목회자, 교인들도 이곳에 모여 주민들 이야기를 듣고 함께 싸웠다. 풀꽃강물교회라는 모임으로 한동안 이곳에서 예배를 드리기도 했다.

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요즘은 김경태 목사(부산교회협 총무)와 김홍술 목사(애빈교회), 이재안 전도사(부산 동구쪽방상담소) 등이 주야로 마을 상황실에 모여 있다. 언제 어떻게 급변할지 모르는 상황에 대비해서다. 김경태 목사와 김홍술 목사는 설거지도 하고 잡일도 도맡아 하면서 마을 주민처럼 상주하다시피 하고 있었다. 철탑이 철거되기 전 두 사람은 '야간 사수조'를 구성해 찬 이슬 맞으며 마을을 지켰다.

김홍술 목사와 함께 나서 LH에 대화를 요구하고, 지역구 국회의원 전재수 당선자(더불어민주당) 만남도 주선하는 등 노력하는 중이라고 했다.

적지 않은 시간을 마을 주민들과 함께한 김경태 목사는 주민들과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듯했다. 김 목사의 말이다.

"마을 주민들은 LH가 다시는 이런 구시대적인 재개발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주민들 마음에 상처 준 것 사과하기를 바라는데, 그것마저 쉽지 않네요."

마을 주민들은 현장을 지키는 목회자들과 활동가들이 고맙다면서도, 한 사람이 아쉬운 상황이라고 했다.

"한 명이라도 더 있으면 힘이 나지요. 마음을 나눌수록 힘을 얻을 수 있죠. 안 하는 거 억지로 데리고 오지는 몬하고, 억지로 오지도 몬하니 할 수 없는 기고…"

대화 도중 강정훈 작가라는 한 예술가가 찾아왔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만덕마을 소식을 접하고, 주민들에게 어떻게 힘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작은 전시회를 열었다. 강 작가는 "자본 논리로 모든 걸 재단하고 일상을 빼앗가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만덕 주민들의 절규와 입주를 바라는 사람들의 댓글이 교차했다. "원주민 걸 노려야겠네요"라는 댓글을 인용해 만든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 강정훈 작가는 자본 논리에 삶의 터전을 빼앗긴 사람들에게 작은 힘이 되고 싶다며 전시회를 열었다. 만덕 지구를 형상화한 후, 주민 집에서 나온 유리창을 올려놓고 촛불을 켰다. 시간이 지날수록 촛불은 하나씩 사라졌고, 이내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다. (사진 제공 강정훈)
   
▲ 강정훈 작가가 '5자 회담'이라고 명명한 이 작품에는 깃발과 의자는 4개뿐이다. LH공사, 부산시, 법원, 시공사 자리는 있지만 정작 주민 자리는 없다. 강정훈 작가는 2차 대전 후 전리품을 나눠 먹듯 국제 정세를 논의한 '포츠담 회담'에서 착안했다고 말했다. 한국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에, 우리나라는 없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원하는 대로 되겠죠…"

점심 시간, 마을 주민 이순남 씨가 옥상에서 기른 상추와 깻잎을 따 왔다. 주민들은 한데 모여 밥을 먹었다. 누군가 "언제 헐릴지 모르는 낡은 집 옥상 화단에서 새 생명이 난다"고 말했다.

상추가 새로 돋아날 날도, 마을 주민들이 쌈을 나눠 먹을 날도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LH가 예고한 단지 착공일은 5월 31일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냐는 어리석은 질문에 주민들은 덤덤하게 말했다.

"LH가 원하는 대로 되겠죠. 남은 집들도 다 밀어버릴 거예요. 물대포, 용역, 경찰 동원해서 깔끔하게 밀어 버릴 거예요. 밀 것 같아요."

▲ 사진을 찍겠다고 하니 마을 주민들 중 일부는 쑥쓰럽다며 끝내 촬영에 응하지 않았다. 힘 내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며 김경태 목사(맨 왼쪽)와 김홍술 목사(맨 오른쪽) 사이로 두 주민이 초록색 조끼를 입고 섰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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