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무모하다. 교파 구분이 모호해지고, 교회 내 교리 공부는 물론 교회 소그룹이 성경 공부 모임 대신 교제 중심 모임으로 변질되어 가는 흐름이 강한 현실에서 <신학 공부, 나는 이렇게 해 왔다>(생명의말씀사)라는 책 제목은 그 자체만으로도 사람들을 거북하게 할 수 있다.

600쪽이 넘는 엄청난 분량에 두 권 중 첫 번째 책이라니… 도가 지나쳐도 너무 지나친 것 같고, 출판사 입장에서는 망하려고 작정한 도전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도 들었다. 하지만 저자가 누구인지 알고, 앞부분을 어느 정도 읽기 시작한다면, 이 책이 교리에 대해 갖기 쉬운 선입감인 지루함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600쪽이 넘는 책임에도, 조금 과장하면 마치 소설책을 읽는 기분으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지식 차원에 머무르는 것은 신학이 아니다

▲ <신학 공부, 나는 이렇게 해 왔다 1> / 김남준 지음 / 생명의말씀사 펴냄 / 640쪽 / 4만 5,000원

그러한 연유 중 하나는 저자의 책이 신학 공부에 대한 필요성을 일방적으로, 또는 학술적으로 강조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신앙 간증집 또는 신앙고백서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저자가 책 전반에서 지적하듯 신학하는 동기는 하나님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넘어, 그분을 만나고 경외하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신학이 세상 학문과 완전히 다른 특수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좀 다르게 말하면, 신학은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아 가고, 지식의 차원을 넘어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그러기에 신학자의 탐구와 그 저서들은 신앙과 나누어질 수 없다. 일종의 신앙고백이 되어야 하고, 그분에 대한 예배와 경외가 담겨야 한다. 그래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을 단지 학문적으로만 분석하고 논한다면 그것은 불경한 일일 수밖에 없고, 하나님의 거룩과 임재 앞에서 죄인 된 인간으로서 자기 상태를 돌아보지 못하는 것이다. 만일 어떤 신학자가 신학 서적을 써 내려 가면서 이러한 마음을 담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 신앙이 냉랭하다는 뜻이다. 심하게는 아직 예수 그리스도와 무관해서 오는 문제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저자의 <신학 공부, 나는 이렇게 해 왔다>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이며 신앙고백이고 간증이다. 이러한 신학 이해는 왜 목회자가 신학자가 되어야 하며, 저자 자신이 꾸준히 신학 공부를 강조하는지에 대한 해답이 되기도 한다.

만일 어떤 목회자가 설교와 목회를 하면서, 삼위일체 하나님이 누구시며 어떤 분인지를 말할 수 없고 자신의 고백으로 서술하지 못한다면 그 설교 깊이는 자명할 수밖에 없다. 이는 설교가 교리적 서술과 논박으로 가득 차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목회자 자신이 만난 하나님에 대한 고백이 담겨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울러 이 만남이 주관과 감정, 개인의 상대성에 국한된 것을 넘어서 그분에 대한 올바른 이해로 나아가야 함을 의미한다.

그런 면에서 지금 우리 주변에서 접하는 신학 서적, 심지어 일반 신앙 서적 중 적지 않은 책이 심하게 말해서 불경적이며 무례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하나님을 학문적으로만 논하고 자신이 만난 협소한 하나님 이미지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전부인 것처럼 말한다. 이것이 프로크루스테스가 지나가는 나그네를 붙잡아 그의 철 침대에 맞추어 자르거나 늘리는 악한 일과 진배없다고 하면 너무 지나친 말일까.

물론 이러한 오류를 범하는 이들이 고의적으로 그러한 행동을 하지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며 찬양한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고, 자기 지식에 머무르려는 것은 모순이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 사고와 지식에 갇히시는 분이 아니기에 이러한 어리석은 시도 자체가 무의미하긴 하다.

결국 신학에 대한 이해는 목회자나 영적 리더, 또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성도가 하나님을 탐구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된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서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은, 애인을 사랑한다면서 그저 일주일에 데이트 1시간 하는 것에 만족하는 남자보다도 못한 것이다. 그러기에 목회자와 신학자는 따로 구분할 수 없다.

하나님과 깊은 만남이 있어야

사실상 이러한 구분을 이야기하는 것은 신학을 단순히 지적인 차원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목회자는 신학 탐구에 대한 열정으로 하나님을 알아 가는 노력에 힘쓰고, 또 그 앎과 만남으로 더욱 뜨겁게 목회해 나가는 사람이다.

이 만남은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고,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며, 살아 계셔서 직접적으로 역사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 자신에 대한 돌아봄이 일어난다. 밝은 빛 아래서 우리의 더러움이 잘 드러나듯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습을 반추하고 회개하며, 그분이 아니고서는 우리에게 소망이 없음을 깨닫고 그 사실을 증거하며, 그로 인해 성도들이 십자가만을 붙들어야 함을 깨닫게 된다.

설교자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뜨거우며 그 사랑을 증거한다. 그러기에 신학하는 설교자는 이지적인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하나님을 만나는 감격이 있고 그분을 알아 가는 기쁨이 있기에 설교나 목회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자 전도하고 성도를 깊이 돌보면서 헌신하게 된다.

저자가 여러 곳에서 이야기하는 '조국 교회'라는 말에는 불꽃이 사그러진 한국교회를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있다. 사실 저자 외에도 한국교회의 일그러짐을 전하고 비판하는 이들의 주장과 책은 많다. 날선 비판과 심판은 있어도 이들 중 적지 않은 이의 논조에서 한국교회가 진정 회복하길 갈망하는 마음이나 책임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이들의 신학함이 상당함에도 그 속에 하나님에 대한 경외보다는 학문적 차원에만 머물고, 하나님의 행하심보다는 자신들의 노력과 사고로 그 일을 이루려는 마음이 앞서 나가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망가지고 일그러졌어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그들을 한 공동체로 품고 고쳐 나가기보다 심판하고 정죄하는 데 머문다. 그것은 그들 속에 하나님과 깊은 만남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판하는 이들만이 아니라 설교자들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감각적인 설교와 임팩트 강한 메시지는 잘 전해도 그 속에 깊이가 담기지 않거나, 성경에 대한 깊은 고찰과 묵상이 없는 이들이 적지 않다. 비판 이전에 하나님과 깊이 만나는 것이 그들에게 필요하다.

삶의 맥락을 고려한 실제적인 책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학적 연구를 하는 연구자들은 그저 성경과 보수적인 신학 서적에만 국한하여 신학을 연구하기 쉽다. 정통과 복음 수호라는 이름으로, 다른 것을 보지 않고 폄하한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 신학을 경색하게 하거나 메마르게 할 수 있다.

저자는 복음주의적 시각을 놓지 않으면서도 그 울타리에 갇히지 않고 세계 신학사에서 다양한 영역에 있는 사상과 교리 발달을 고찰한다. 성경과 정통 신학자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다양한 신학 서적과 신학자들에게도 배어 있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배우거나 비판하여 우리 지식을 더 풍요롭게 하기 위함이다. 저자는 이러한 신학적 광폭 행보는 일반 철학과 일반 서적까지 뻗어 간다.

비록 이들이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해도 하나님 주권하에 있기에 이들이 갖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파편적인 지식에서 실마리를 얻게 된다. 이들 속에 있는 하나님을 떠난 이들의 방황과 실수, 죄들을 발견하고 반성하게 된다. 이들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것은 결국 이들을 향한 복음을 전하는 통로 역할을 하기 위함이다.

이것은 상당한 중요성을 지닌다. 종종 목회자나 성도들 중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미명하에 세상과 세상에 대한 이해와는 담을 쌓고 살거나 적대시하는 이들이 있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 저자가 많은 훌륭한 책을 쓰는 탁월한 점이 있지만 세상과 그 학문에는 상당히 거리를 두고 사는 분이 아닐까 하는 선입견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우려와 선입견 속에서 책을 읽다가 후반으로 달려가면서, 저자가 현대 철학과 최근 베스트셀러까지 다루는 모습을 발견하고, 그의 독서와 연구 영역을 보며 그를 더욱 존경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저자는 세상에 대한 이해나 싸움이 학문적 차원을 넘어 실생활 차원에 적용하는 데도 본을 보인다. 본인 자신이 바로 신학과 목회의 길을 걸은 것이 아니라 일정 기간 직장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도가 직장과 사회에서 겪는 고충을 이해하고 공감대를 가지고 성도들을 설득한다.

종종 직장 생활이나 사회를 거치지 않은 목회자가 하는 설교가 힘이 있어도 감화가 적은 것을 보게 된다. 이는 그들 자신이 세상에서 싸움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간극에서 오는 것일 수 있다. 사회를 어느 정도 경험한 이후에 목회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또 부교역자로서 참담하다 싶을 정도로 어려운 시기도 거쳤기에 신앙이 머리나 가슴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시험과 말씀을 삶에 실제적으로 적용하고 씨름한 경험을 보인다. 이것은 원론적인 차원을 넘어 성도에게 설득력 있게 말씀을 전달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후배 목회자·신학생들에게 보내는 목회 서신

마지막으로, 이 책은 선배 목회자로서 후배 목회자와 신학생이 조국 교회를 부흥시키고 교회를 건강하게 목회하는 목회자로 서기를 바라는 안타까운 마음을 담은 목회 서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저자는 책 전반에서 자기 목회 경험과 신학 공부의 이해를 전달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목회자로서 성품과 자질을 도전하면서 애끓는 마음을 전한다.

저자가 반복하여 말하는 조국 교회라는 표현처럼 조국 교회 목회자와 신학생들이 이 책을 많이 읽었으면 싶다. 또한 영적 리더 역할을 하고 있고, 그것을 동경하는 성도들이라면 모두 이 책에서 도전받기를 바란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이 책을 소설책처럼 재미있게 읽었다. 나에게 감동과 도전, 부끄러움을 안겨 준 책이기도 하다. <신학 공부, 나는 이렇게 해 왔다>의 후속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 가>가 기대되는 이유다.

문양호 /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함께만들어가는교회 담임목사.

*이 글은 <크리스찬북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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