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책 한 권이 화제가 됐다. 교계 저명한 목사의 '가정사'가 딸에 의해 폭로됐다. '집 밖'에서는 보수 신학의 거목이라 칭송받았지만, '집 안'에서는 아내를 학대하는 남편이었고 자녀들에게 온정 없는 아버지였다. 책이 출판되자 목사의 제자를 자청하는 이들이 책 내용을 걸고 넘어졌다. 그럴 리 없다는 것이었다. 딸은 딸대로 이런 현상 자체가 한국교회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목사의 '집 안' 사정에 밝은 가족 구성원과 '집 밖' 사역에 밝은 교회 구성원들 시각이 서로 엇갈렸다.

10년 동안 목회자 '집 안' 문제를 다룬 김세준 교수(현대드라마치료연구소)를 인터뷰했다. 사모 상담, 목회자 자녀 상담, 치유 프로그램을 숱하게 진행해 온 이 분야 전문가다. 김 교수가 전하는 내담자들의 상황은 심각했다. 우울증, 트라우마, 인격성 성격장애, 자살 충동 등 목회자 가정은 정서적 질환에 관한 한 '종합 병동'이었다. 목회자 가정의 정서적 문제, 그 원인은 무엇이고, 해소 방안은 무엇인지, 이것이 왜 '한국교회'의 문제로 지적되는지 등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김 교수 말에 따르면, 목회자 가정의 정서적 문제의 뿌리에는 '경직성'이 있다. 교리적 틀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목회자 가정에서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하나님의 종'인 목회자 가정의 구성원들은 그 누구보다 모범적으로 교리와 신앙 수칙을 따라야 한다. 하나의 강령이 자리 잡은 집안 분위기는 가족들의 숨통을 쥐고 정서를 억누른다.

누구나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기 힘든 개개인의 문제 앞에 설 때가 있다. 부모에게 깊이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 앞에서 내적 갈등을 겪는다. 이때 교리적 틀로 강제하면 억압이 생긴다. 김 교수는 삶이 묻어 나온 고백적 설교와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합니다. 그 말씀을 따르고 싶습니다. 그런데 저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갈등을 겪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아픔이 있습니다. 이것이 나의 곤고함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지만 목회자 가정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목회자 가족 구성원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되도록이면 자기 문제를 억누르고 숨겨야 한다. 그러나 계속 숨길 수는 없다. 가족들이 겪는 심리적·정서적 문제는 어떻게든 집 안에서 드러날 수밖에 없다. 그 문제는 고스란히 목회자 가정에 남고 쌓인다.

▲ 김세준 교수는 "목회자 가정의 정서적 문제의 뿌리에 '경직성'이 있다"고 했다. ⓒ목회멘토링사역원 김재광

기도로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

'마음의 병'이 드러났을 때, 대부분의 처방은 '기도'다. 교회든 목회자 가정이든, 정서적인 문제를 '기도'로 해결하려 한다. 정신의학적 도움은 어림도 없다. '은혜'를 찾고 '하나님과의 만남'에 의존한다.

김세준 교수는 "영어를 못하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기도를 열심히 한다고 저절로 영어를 잘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왜 교회에서는 정서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영적인 처방만 내리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이건 상식의 문제인데, 교회가 이 부분에서 너무 뒤처져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담자 한 명의 사례를 언급했다. 목회자 자녀로 목사 아버지에게 상처를 받은 이 내담자는 교회에서 '하나님 아버지'란 말만 나오면 모임 장소를 뛰쳐나왔다. 이 때문에 심각한 고민이 생겨, 교회 선배와 어른들에게 찾아가 상담을 청했다. 하지만 되돌아온 대답은 모두 "기도하겠다", "은혜를 구하자"라는 말뿐이었다. 그러다 외국에 유학을 갔다. 똑같은 문제를 놓고 고민을 털어놓자, 그곳 교회 사람들은 하나같이 '상담'을 받아 볼 것을 권했다.

또 한 내담자의 사례를 들었다. 자살 충동을 느끼는 학생을 상담하던 중, 그 학생 어머니와 통화를 하게 됐는데, 돌아온 대답은 "선생님, 저는 기도하는 사람입니다"였다. 김 교수는 "한국교회에 아직도 정서적인 문제를 영적으로 해석하고 풀이하려는 비상식이 만연해 있다. 기독교인들은 미리부터 '기도하면 된다', '하나님 은혜를 사모하자'는 오리엔테이션을 받는다. 그래서인지 정신의학적 도움에는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고 했다.

▲ "정서적인 문제를 영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비상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목회멘토링사역원 김재광

신학교 교육과정에 인간 이해에 관한 기본 과목이 없다는 점도 지적했다. 김세준 교수는 "심리학이 무분별하게 교회로 침투하는 것에 대해서는 경계하지만, 인간 이해에 대해 기본적인 상식도 없는 목회자가 가정은 물론 교회에 얼마나 큰 문제를 불러일으키는지는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심리학을 옹호하지만 심리학이 필터링 없이 교회에 들어오는 것은 반대다. 농익지 않은 상태에서 상담적, 심리학적 언어가 사용되는 것은 위험하다. 자칫 누군가를 말로 해부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신앙적 신학적 필터링이 필요한데, 이것은 숙제로 남아 있고 함께 풀어 가야 한다. 다만 돌봄의 차원에서, 사랑으로써 교회 안의 사람들을 도우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그게 뒷받침이 안 되면, 교회 안의 고통받는 사람들을 발견할 수 없다. 가정은 두말할 것도 없다.

사실 인격성 성격장애가 가장 많은 집단이 교회지 않은가. 도움이 필요하니까, 힘드니까 교회로 오는 거 아니겠는가. 목회자가 의술이 없다 할지라도 성도들의 안녕을 위해 그들에게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는 알고 있어야 하고, 누구에게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를 가이드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몰라도 된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것이 문제다.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한 사람 한 사람의 필요를 다 돌볼 수 있느냐고 묻는 분들이 있다. 나는 이렇게 반문한다. 그런 기본적인 돌봄조차 받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왜 교회에 다녀야 하는가? 대부분의 교회가 성도들의 얼굴 표정을 관심 있게 보지 않는다. 목회자들은 자기 자녀 얼굴이 어제와 오늘 어떻게 다른지 살피지 않는다. 그 관심에서부터 돌봄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행동을 통해 자기를 들여다 보고, 관계를 재구성하고, 자기 스스로에게 새로운 역할을 부여한다." 사진은 작년 '1회 목회자 가족 수련회' 액션 메소드 프로그램 모습. (목회멘토링사역원 자료 사진)

몸의 훈련과 경험적 교육

교리적 틀을 강제하는 분위기 속에서 '경직성'이 강화되고, 유연하지 못한 태도로 미해결 과제들을 숨기고 억압하다 보니 이것이 정서적인 문제로 옮겨붙는다. 이 부담은 다시 목회자 가정에게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목회자 가정의 정서적 문제가 심화되는 이유다.

김 교수가 몸담고 있는 현대드라마치료연구소는 '액션 매소드'라는 기법을 통해 심리적이고 정서적인 문제를 몸의 반응으로 치유하려고 한다. 이것은 놀이를 통한 접근법이기도 하다. 행동을 통해 자기를 들여다 보고, 관계를 재구성하고, 자기 스스로에게 새로운 역할을 부여한다.

수영을 배우려면 물에 몸을 던져야 한다. 이론 학습만 해서는 수영을 제대로 배울 수 없다. 김세준 교수는 정서적인 문제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경직성은 몸에 배는 것이지, 이해나 사고를 통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때문에 정서적인 문제는 인지 교육으로 다뤄야 할 게 아니라 몸의 훈련, 경험적 교육을 통해 풀어 나갈 수 있다고 했다.

'액션 매소드'와 같은 치료 기법은, 살면서 심각하게 각인된 정신적 충격이나 갈등을 해소하는 목적으로 활용된다. 김 교수는 이를 두고 '큰 똥을 싼다'고 표현했다. 쉽고 당연한 논리다. 심리적인 스트레스와 갈등 관계를 내보낼 만큼 내보내고,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또 다른 스트레스를 맞아야지, 내보내는 것 없이 받기만 하면 큰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치료 기법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이후 지속적인 몸의 훈련과 경험적 교육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먹는 것, 편한 장소, 즐거운 관계, 정서적인 안정이 조건으로 따라붙는다. 정서적 건강을 도모하고 유지시킬 수 있는 관계적 생활적 토양 위에서 자기를 정직하게 들여다 보고 관계를 유연하게 맺어 가는 훈련이 필요하다.

김세준 교수는 마지막으로 교회와 목회자 가정에 '위로의 언어'가 회복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따뜻한 환대와 몸으로 부대끼는 위로의 언어, 살갑고 다정하게 서로의 안부를 묻고 정서적인 돌봄을 지속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농경/산업 사회에서는 틀에 맞춘 사고와 정서로도 어느 정도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현대는 다양한 가능성과 기회들에 노출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전문적인 지식보다 더 중요한 것이 유연한 태도다. 그런데 교회와 목회자 가정은 유연성을 키우는 데 적절한 토양을 제공해 주지 못하고 있다. 김 교수는 전면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요구된다고 했다.

▲ 김세준 교수와 현대드라마치료연구소 간사들이 '제2회 목회자 가족 수련회' 3박 4일 전체 프로그램 진행을 맡는다. ⓒ목회멘토링사역원 김재광

목회자 가족 수련회

목회멘토링사역원은 8월 8일(월)부터 11일(목)까지 충주 한마음연수원에서 3박 4일 일정으로 '제2회 목회자 가족 수련회'를 엽니다. 김세준 교수님과 현대드라마치료연구소 간사님들이 3박 4일 전체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이때 부모와 자녀들이 각각 '액션 메소드' 프로그램을 통해 각자의 관계적 정서적인 문제를 깊이 들여다봅니다. 이밖에도 부모 자녀 간 이해를 돕는 순서, 김세준 교수의 목회자 배우자를 위한 특별 순서, 가족 단위 1일 여행 등이 진행됩니다. 목회멘토링사역원은 목회자 가정이 건강해야 목회도 교회도 점점 더 건강해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제2회 목회자 가족 수련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가족 수련회 관련 세부 내용은 아래 링크한 공지에서 더 자세히 안내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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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회멘토링사역원이 주관하는 '제2회 목회자 가족 수련회'가 8월 8일부터 11일까지 청주 한마음연수원에서 열린다. 사진은 작년 1회 수련회 모습. (목회멘토링사역원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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