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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지향하는 사람조차 편 가르기 익숙해"
'평화와 화해의 순례' 중 만난 떼제공동체 신한열 수사 인터뷰
  • 정인곤 (inkon81@naver.com)
  • 승인 2016.05.26 13:41

남과 북으로 분단된 지 70년이 넘었다. 그동안 많은 사람이 분단의 비극을 해결하고자 부단히 애써 왔다. 특히 기독교인 중에는 평화와 통일을 위해 힘써 온 사람이 많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갈등의 골은 깊어져 가고 서로를 향해 무관심해지는 것 같다.

신한열 수사(떼제공동체)와 개신교·천주교 청년들이 주축이 되어, '평화와 화해의 순례'라는 이름으로 2013년 봄부터 순례를 하고 있다. 올해에도 청년 70여 명이 모여 순례를 하고 있다.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 길에서 신한열 수사를 만났다.

- 서울에서 한 시간 거리도 채 안 되는 곳에 철책선이 있다는 게 새삼스럽게 다가옵니다. 분단된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아파하기보다는 둔감해지는 것 같습니다.

남북 분단은 이미 많은 사람에게 내면화되어 어쩌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집니다. 큰 갈등과 긴장만 없다면 잊고 사는 것이 편안한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위기가 생길 때면 호들갑 떨고 얘기하다가, 곧 다시 잊어버립니다. 남북한 사이에 평화를 이루기 위해 개인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무기력함도 작용하겠지요. 여러 매체에서 세계 곳곳의 상황을 거의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오늘날, 조국의 반쪽인 북한 동포들 삶에 대해 우리가 너무 모르고 있는 것도 참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런데 조금만 살펴보면 남북한 사이를 가르는 철책선뿐 아니라, 우리 마음 속에 자리한 '편 가름'의 사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또한 분단의 산물이겠지요. 곳곳에서 '내 편/네 편' 나누고 서로 믿지 못하고 쉽게 대립하고 경계하는 모습을 봅니다. 평화를 지향하는 많은 사람에게서도 이런 태도를 볼 수 있습니다.

외국에서 '한국인'이라고 하면 첫번째 질문이 "North or South?"(남한이냐 북한이냐?)입니다. 저는 가끔 "동한"(East Korea)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나서 한국은 하나라고 하지요. 남한을 북한보다 낫다고 여기는 대부분 외국인들 말에 으쓱하거나 만족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 문제를 우리가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오히려 부끄러워해야지요.

떼제에서 우리는 남북 분단으로 수많은 사람이 당하는 고통에 주목합니다. 한반도를 위한 기도와 더불어서, 평화와 화해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일을 할 수 있다면 기꺼이 하려고 합니다. 18년 전부터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인 지원을 계속하고 있고 가끔씩 제가 북한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 평화와 화해의 순례단이 십자가를 앞세우고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 길을 걷고 있다. (사진 제공 기독청년아카데미)

- 개신교 청년들과 천주교 청년들이 함께 행사를 준비해 가는 것도 특이하고, 도보 순례라는 점도 남다릅니다. 평화와 화해의 순례는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세계 곳곳에서 가지는 떼제의 모든 모임은 '신뢰의 순례'라고 불립니다. 대개 가톨릭과 개신교 여러 교파의 신자들, 다른 언어와 문화의 사람들이 함께하고 각각의 언어와 전통을 존중하고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진행되거든요. 한국에서는 1980년대 초에 이미 우리 수사들이 개신교와 가톨릭 청년들과 함께 서울 빈민 지역인 용산과 난지도, 전남 광주와 목포 등에서 이런 순례를 했고 일본과 홍콩 젊은이들이 와서 동참했습니다. 물론 큰 규모는 아니었습니다.

한국인 수사인 제가 프랑스에 살면서 최근 몇 년 동안 매년 한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으로서 뭔가 해야 할 필요성을 늘 느끼고 있었지요. 2013년 떼제공동체가 개최한 동아시아 젊은이 모임을 앞두고 9월에 개신교 가톨릭 청년들이 함께 파주 접경지대를 걸었어요. 금요일 저녁에 서울 시내에서 모여서 서로 나눔하고 십자가 주위에서 기도하고 1박을 한 다음, 토요일 아침 함께 임진각으로 갔지요.

그 뒤로 이번까지 네 번을 걸었군요. 할 때마다 외국인들을 포함해서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참석해서 풍성한 나눔이 되었습니다. 해를 거듭하면서 또 예수살이공동체, 아름다운마을공동체, 가톨릭대학생연합회, IVF, EYCK 등 여러 단체가 함께해 왔습니다.

비슷한 성격의 평화 순례조차 교회별로, 교파별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더군요. 우리는 처음부터 개신교, 가톨릭이 함께하고 외국인들도 참석할 수 있게 했습니다. 함께 걷는 것 그 자체가 화해와 일치를 표현하기를 바랐던 것이지요. 함께 걸을 때 우리는 모두가 동반자, 도반이 되는 것이지요. 사실 교회, 교파, 전통은 다르지만 모두 예수님을 사랑하고 따르려는 제자들이잖아요? 제자들이 하나되기를 바랐던 예수님의 기도(요 17:21)를 생각해 보세요. 모두 한 방향으로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함께 기도할 때 일치는 이미 이루어진 것입니다.

조용한 묵상 기도 가운데 참가자들은 깊은 일치를 체험합니다. 순례를 마치고 돌아가는 일상은 각각 다르지만 더 넓은 시야를 지니게 됩니다. 다른 교회, 다른 지방, 다른 나라에서도 같은 마음으로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순례 참가자들에게 교회의 일치나 한반도 평화는 이론이 아니라 순례 과정에서 만난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입니다. 성직자나 신학자, 정치인,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자 시민인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평화와 화해를 향해 함께 디딘 발걸음, 그리고 일상에서 계속 살아가겠다는 다짐입니다.

   
▲ 평화와 화해의 순례 마지막 순서로, 서로가 용서를 구하고 용서하면서 신뢰와 일치를 다짐하고 있다. (사진 제공 기독청년아카데미)

- 떼제공동체 정신과 이번 평화와 화해의 순례의 성격이 비슷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떼제공동체가 해 오고 있는 평화와 화해의 실천을 소개해 주세요.

떼제공동체는 세계의 평화와 갈라진 그리스도인의 일치를 소명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에 시작되었습니다. 창설자 로제 수사는 당시 독일 점령지를 피해 도망 나온 난민들, 특히 유대인들을 숨겨 주었습니다. 전쟁이 끝나자 떼제 근처에 자리한 독일군 포로수용소를 방문하고 주일에는 특별 허가를 받아 독일군 포로들을 떼제에 맞이했습니다. 난민들을 맞이하는 것은 오늘날까지 이어져서 베트남, 보스니아, 르완다, 이라크, 남수단,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난민들이 떼제 마을에 와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우리 형제들은 전쟁과 가난으로 신음하는 아프리카와 남북미 여러 지역에서 화해의 징표로서 가난한 이들 가운데 살아왔고, 방글라데시나 세네갈에서는 이슬람 신자들과 우정을 나누며 수십 년째 살고 있습니다. 1980년부터는 한국에서 살면서 이 나라 평화와 통일을 위해 꾸준히 기도하고 있고, 작년부터는 쿠바에서 작은 공동체를 시작했습니다.

프랑스 떼제에서 열리는 국제 청년 모임과 세계 각지에서 저희가 '신뢰의 순례'라는 이름으로 진행하는 국제 모임에는 늘 다양한 문화와 교파 배경의 젊은이들이 함께 참여합니다. 이를 통해 많은 사람이 자연스럽게 교회의 보편성을 발견하게 되고, 나라와 문화와 교회 사이에 이해의 다리를 놓으면서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기를 다짐합니다.

- 떼제공동체도 청년들에게 주목하고 있고, 이번 평화와 화해의 순례도 청년들 중심으로 진행되었는데요. 한국 사회, 한국교회에서의 평화, 화해, 신뢰를 위해 청년들이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은 어떤 것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떼제공동체는 가난한 이들과 젊은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했습니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 어디에서든, 떼제의 모든 모임과 순례는 젊은이들이 우리 형제들과 함께 준비하고 진행합니다. 분열과 대립과 불신이 만연한 이곳에서 젊은이들은 고정관념과 편견을 넘어설 수 있습니다. 분단과 전쟁으로 인한 지난 세대의 해묵은 갈등과 치유되지 않은 상처, 그 유산을 물려받지 않겠다는 각오와 다짐이 필요합니다. 다른 지역, 다른 나라, 다른 이념, 다른 종교, 모든 형태의 소수자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 더욱 그렇습니다.

어느 누구도 색안경을 끼고 보지 않는 것, 쉽게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태도를 거부하는 것…. 이런 마음가짐은 어떤 행동보다 더 중요합니다. 그렇게 마음이 깨끗해질 때 우리는 하느님/하나님을 볼 수가 있고(마 5:8) 하나님의 진정한 자녀가 되고자 할 때, 지역과 교회와 나라 사이에 이해와 친선의 다리를 놓고 평화를 이루는 행복한 사람(마 5:9)이 될 수 있습니다. 한국 청년들은 우리 사회와 교회에서 눈에 보이는 경계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때로는 자기도 모르게 내면화된 수많은 경계선을 넘어서려는 노력이 필요하겠습니다.

   
▲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 길 도보 순례 중 초평도가 보이는 곳에서 찍은 단체 사진. (사진 제공 기독청년아카데미)

- 평화와 화해의 순례는 앞으로 이어지나요? 이후 계획에 관해 말씀해 주세요.

당연히 계속되어야지요. 우선, 각자의 일상을 방금 말한 마음 자세로 살아가는 것이 평화와 화해의 순례입니다. 한 걸음 나아가서 순례 때 만났던 벗들이 속한 단체나 공동체, 교회를 한 번 찾아가보는 것, 또 정기적인 '떼제 - 평화를 위한 기도회'(매월 첫 화요일 충정로 맑은샘교회, 셋째 주 목요일 강남구청역 중심교회)에 참석해 다른 교회와 전통에 있는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기도하는 것도 좋습니다.

내년에는 제주도에서 평화와 화해의 순례를 할 수 있을지 알아보고 있습니다. 이루어지면 타이완과 일본, 중국 등 이웃 나라 청년들도 함께할 것입니다. 이에 앞서 이번 여름에 홍콩에서 열리는 떼제의 동아시아 모임(8월 10~14일)도 평화와 화해의 순례의 일환입니다. 길게 보면, 이 평화와 화해의 순례는 남북한 청년들이 함께 휴전선 비무장지대를 가로질러 걸을 수 있을 때까지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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