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는 많다. 하지만 그 자신이 언론인 기자, 국민이 궁금한 걸 대신 질문해 주는 기자는 별로 없다.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기자가 곧 언론이다"라는 말이 있다. 국회의원 한 명이 입법기관이고 검사 한 명이 수사기관이듯, 기자 한 명도 독립된 언론기관이라는 의미다. 언론사에서 기자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해 주는 표현이다.

하지만 현실의 기자들은 그렇게 멋져 보이지 않는다. 날카로운 시각으로 질문을 던지는 기자 모습은 보기 어렵다. 쏟아지는 업무를 기계적으로 처리하는 기자들만 남았다. 팩트 확인은 하지 않고 우라까이(남이 쓴 기사를 조금 바꿔서 쓰는 관행)로 기사를 쓴다. 이슈다 싶으면 우르르 몰려들고, 금세 우르르 빠진다. 몰려들고 빠져나갈 때 취재 윤리 따위는 없다.

기사인지 장난인지 모를 글을 하루에도 수십 개씩 뱉어 내는 척박한 언론 환경에서, 작지만 가치 있는 보도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말 그대로 기자가 곧 언론, '1인 미디어'다. '길바닥 저널리스트'(길바닥) 박훈규 기자(44)도 그중 한 명이다.

▲ 길바닥 박훈규 기자를 만났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길바닥이라는 이름이 말해 주듯, 그는 현장에서 다른 언론이 보도하지 않는 내용을 잡아낸다. 누구보다 빠르게 SNS로 소식을 전하고, 나중에는 영상으로 기록을 남긴다. 길바닥이라는 이름으로 현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건 이제 3년 정도지만, 그가 올리는 영상과 사진은 SNS에서 수백 수천 회 공유되며 퍼져 나간다.

그가 있는 현장에서는 그의 SNS가 통신사보다 빠르다. 다른 언론들이 그가 올린 내용을 보고 기사를 쓰는 경우도 흔하다. 지난주 단원고가 세월호 희생자 학생을 제적한 사실을 증명해 주는 공문도 길바닥이 가장 빨리 소식을 전했다. 이런 예는 수두룩하다.

5월 19일 길바닥 박훈규 기자를 만났다. 어떻게 1인 미디어를 하게 되었는지, 그에게 '현장'이란 무엇인지 물었다. 경력은 길지 않지만 많은 현장 경험 때문인지, 그에게서 노련한 기자 냄새가 났다. 인터뷰는 서울 합정동 국민TV 카페에서 진행했다.

회사원에서 독립 저널리스트로

- 어떻게 1인 미디어를 하게 됐나.

전에는 그냥 일반 회사에서 사무직으로 일했다. 언론과 별 상관없는 삶을 살았다. 대한민국에 무슨 언론이 있는지도 몰랐다. 2008년 소고기 파동 때 광화문광장에 나가서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트위터에 올렸다. 무슨 사명감으로 올린 것도 아니고 그냥 '나 여기 왔다', '여기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정도였다. 그런데 내가 올린 사진과 글이 많이 리트윗되고 사람들이 좋아하더라.

다음 날 아침 일어나서 신문이나 인터넷 뉴스를 보니 내가 어제 본 거와 다른 내용이 나왔다. 이게 왜 이럴까. 그때부터 '언론에 문제가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그때는 '1인 미디어' 이런 생각은 없었다. 그냥 무슨 일이 있으면 현장에 나가고, 거기서 벌어지는 일들을 SNS에 올리는 수준이었다.

현장에 있는 게 재미있었다. 3년 전부터 전업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맞다 싶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카메라를 샀다. 현장을 다니면서 열심히 찍었다. 더 잘하고 싶어서 현장에 있는 다른 기자들에게 카메라나 편집 등을 배우고, 자비로 장비를 업그레이드했다. 한 달 동안 쉬지 않고 매일 일한 적도 있었다. 너무 재밌어서.

▲ 지난 2월 야당의 필리버스터를 비난하는 새누리당 의원들을 취재하는 박훈규 기자(가운데).

- 보통 기자가 되고 싶으면 언론사에 들어가지 않나.

늦은 나이에 시작하기도 했고, 중간에 한 인터넷 신문사에서 일했는데 나와 맞지 않았다. 아무래도 회사에 소속돼 있으면 회사에서 요구하는 게 있다.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도 그렇고 기사의 양도 문제였다. 그걸 맞추다 보니 나도 어느샌가 다른 기사 보고 대충 쓰고 있더라. 그런 게 싫었다. 현장에서 만나는 기자들 보면 다들 비슷해 보였다. 1년 정도 일하다 나왔다.

어디에 소속돼 있으면 내가 하고 싶은 취재를 스스로 하고, 그런 과정에서 나오는 창의력이 발휘가 안 되는 것 같았다. 혼자 하니 불편한 점도 있지만, 누구 눈치 안 보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니까 좋다.

- 언론사에 소속돼 있지 않으면 경제적인 부분도 그렇고 취재도 힘들지 않나.

경제적인 면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동안 간간이 특강을 나가거나 독립 PD들이 필요한 영상을 찍어 주고 거기서 나오는 수입으로 살았다. 얼마 전부터 후원을 받기 시작했다. 지금은 얼마 안 되지만, 내가 계속 현장에 나가는 한 앞으로 더 나아질 일만 남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국에서 일 자체에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런 생각하면 불안하지 않다.

한국에서는 프리랜서 기자, 독립 저널리스트에 대한 인식이 별로 없다. 중요한 인물을 취재할 때 "당신 어디서 왔어?"라는 말을 듣는다. 독립 저널리스트라고 하면 무시하는 게 다반사다. 정치인이나 사회적 직급이 있는 사람들은 인터뷰 따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엠부시(ambush – 공식적으로 인터뷰하기 어려운 사람의 말을 듣기 위해 그가 다니는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돌발적으로 질문하는 방법)를 많이 한다.

독립 저널리스트라고 사람들이 무시할 때 초반에는 좀 위축되기도 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어쨌든 '길바닥'은 나의 브랜드다. 이왕 만든 거 더 집요하고 날카롭게 해서 좀 더 잘 만들고 싶다.

진짜 얘기는 기자회견장 밖에 있다

- 이름을 '길바닥'이라고 지은 이유가 있나.

다들 그걸 궁금해하는데 별로 특별한 뜻은 없다. 이름은 지어야겠고 생각나는 건 없고, 그래서 '어차피 내가 하는 일이 길바닥에서 하는 건데' 하면서 그냥 지은 거다. (웃음) 그래도 현장에 있겠다는 나름의 각오이기는 했다. 그렇지 못한 기성 언론사들에 대한 저항 의식이기도 하고.

- 취재를 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있다면.

페이스북 계정 소개가 "SNS로 가장 빠르게 소식을 전하는 길바닥 저널리스트입니다"이다. 현장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는 게 가장 좋다고 본다. 요즘에는 포털보다 SNS에서 정보 공유가 훨씬 빠르다. 나는 취재 현장에 가면 먼저 내가 여기 왔다고 사진을 올린다. 그 다음 이어지는 상황을 사진으로 찍어서 SNS에 올린다.

나중에는 찍어 온 영상을 편집해 기록물로 올리는데, 사실 편집을 잘 하지도 못하고 편집에 그다지 많은 시간을 쏟지 않는다. 투박하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게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인 미디어다 보니 현장에 가서도 좀 다르게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똑같은 이슈를 똑같이 다루면 큰 언론사와 상대가 되지 않는다. 사건의 이면을 보려고 하고, 현장에서 소외된 곳, 소외된 사람을 찾으려고 한다. 그렇게 취재해서 좋은 결과물이 나온 적이 많고, 기성 언론사와의 차별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기성 언론사들은 이슈가 되는 것만 딱 찍고 가는 경우가 많다. 지난 17일 김앤장 앞에서 옥시 피해자들과 환경 단체들이 기자회견을 할 때도 그랬다. 정부청사 앞에서 한 영국인이 옥시 피해자들을 위해 1인 시위를 하고 있었다. 이색적인 장면이었는데 아무도 취재를 안 하더라. 그래서 내가 그분 인터뷰를 했다.

2일 옥시레킷벤키저코리아가 기자회견을 할 때, 피해자들이 항의한 후 기자회견장 밖으로 나갔다. 기성 언론들은 아타 사프달 대표가 사과하는 모습과 피해자들이 항의하는 모습만 찍었다. 나는 기자회견장 밖으로 나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기자회견장 안보다 이런 곳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진짜라고 생각한다.

- 지난주 단원고에서 보니 유가족들의 요구를 무시하는 교장에게 직접 질문도 던지고 하더라. 기자들 아무도 질문하지 않을 때였는데.

1인 미디어라 따로 인터뷰가 어려우니 최대한 취재 현장에서 많은 이야기를 들으려 한다. 그때는 정말 내가 궁금해서 질문했다. 학교의 장이라는 사람이 나가서 해명할 사안이 아닌지, 그럴 마음은 없는지, 왜 자꾸 전명선 위원장과 <연합뉴스> 기자만 찾는지. 사실 그렇게 영상을 찍으면서 질문하는 경우는 별로 없는데 내가 너무 궁금해서 물어봤다.

▲ 박훈규 기자는 기자들이 현장에서 좀 더 날카로운 질문을 해 주기를 바랐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나는 아무리 직급이 높은 사람이라도 계속 질문하려고 노력한다. 김무성 의원이 당 대표 시절, "기자들이 김무성 입만 바라보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나는 김무성 의원을 따라다니며 계속 질문했다. 질문할 내용이 잘 생각 안 나면 하다못해 "지금 기분이 어떠세요"라고 질문했다. 큰 사명감이 없다고 해도 기자는 어느 정도 공익에 봉사하는 일이다. 국민을 대신해 질문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기성 언론사 기자들도 질문을 더 많이 했으면 좋겠다. 나는 때로 쉽게 말해 '수준 떨어지는' 질문을 하기도 한다. 한 발짝 떨어져서 보면, 기자들이 궁금해하는 것과 일반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것 사이에 간극이 큰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철저히 독자 입장에서 질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끝까지 간다

- 그동안 나간 현장 중에 기억에 남는 곳이 있다면.

세월호 현장에 많이 나갔는데, 세월호 참사는 아직 현재 진행 중이라 회고할 시점이 아니라고 본다.

지난 1월 UN 소속 '평화적 집회 및 결사의 자유 특별보고관' 마이나 키아이(Maina Kiai)의 연설이 기억에 남는다. 그때 찍으면서 듣고 있는데 정말 버릴 말이 하나도 없었다. 다른 언론사 중에 연설 영상을 풀로 올리는 곳이 없더라. 그래서 나는 통으로 올렸다. 지금 이 영상은 페이스북에서 100만 회 이상 재생됐다.

작년 10월 박근혜 대통령이 전국 여성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이화여대에 온 적 있다. 이때 학생들이 규탄 시위를 했고 곳곳에서 경찰과 충돌이 있었다. 이 영상도 유튜브에서 현재 조회 수가 37만이 넘었다. 6개월이 넘은 콘텐츠인데도 꾸준히 영상이 공유되고 있다.

옥시는 사실 몇 년 전부터 따라다닌 이슈였다. 그러다 세월호 참사가 터져 한동안 취재를 미뤄 두었다가 요즘 다시 취재하고 있다. 피해자들이 안타깝고 옥시와 정부가 잘못한 건 맞다. 그런데 내가 궁금한 건, 왜 지금 옥시가 수면 위로 부상했느냐는 것이다. 사실 이건 수년 전에 이미 수사 기록이 다 나와 있었다. 검찰 의도가 궁금한데, 나는 검찰을 취재할 수도 없고 다른 언론사도 취재를 안 하니 답답하다.

- 세월호 취재를 많이 했다. 미수습자 가족에 대한 영상도 많은데.

세월호 참사가 터졌을 때는 정말 멘붕이었다. 지금도 어떻게 정리가 안 된다. 세월호가 침몰하고 진도로 내려갔는데, 그때 그 분위기에서는 정말 취재가 쉽지 않았다. 가족들에게 다가가는 것도 어려웠고…. 가족들과 대화문이 열린 건 국회 농성 시작했을 때였다. 그때부터 세월호 가족들의 거의 모든 농성을 같이했다. 같이 천막 펴고 하면서.

미수습자 가족은 정말… 그 마음이 어떻겠나. 너무 안돼서 한 번씩 찾아간다. 기자들은 대부분 행사 있을 때 그것만 딱 찍고 간다. 물론 영향력 있는 언론사에서 그 정도 방송만 내 보내 줘도 좋은 일이다. 하지만 단순한 보도보다 중요한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거다. 무조건 그 현장에 오래, 그 사람들 곁에 있어야 한다. 진짜 얘기는 거기서 나온다.

세월호는 정말 어떻게든 끝이 나야 한다. 그때까지, 끝까지 같이 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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