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글쓰기에 관심이 많아졌다. 항상 어떻게 하면 글을 좀 잘 써 볼까 생각한다. 그래서 글쓰기 책을 여러 권 읽기도 한다. 글쓰기 책을 보다가 제목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젠, 책쓰기다>(라온북)라는 책 저자도 역시 제목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좋은 글 제목의 요건을 "당장 읽고 싶을 만큼 매혹적인가?"라고 정의한 사람도 있다.

나는 주로 칼럼을 쓴다. 칼럼은 제한된 분량으로 글을 쓰는 것이다. 나는 보통 1,700자 전후 분량의 칼럼을 쓴다. 칼럼을 쓸 때도 '제목을 어떻게 달아야 하나?' 고민한다. 책을 구하기 위해 서점을 가거나, 온라인에서 책을 찾을 때도 제목을 먼저 본다. 눈에 들어오거나 호기심을 자극하는 제목의 책에 먼저 눈과 손이 간다. 그 후에 목차를 보고 여러 가지 훑어본 다음 책을 구입한다.

그런 책 가운데 하나가 <사람 같지 않은 사람들>(더드림)이었다. 우선 호기심을 자극했다. 사람인데 사람 같지 않은 사람이라니? 궁금했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기에 사람 같지 않다고 하는 것인가? 읽어 보니, 4세기 때 살았던 사막 교부들, 또는 사막 교부들처럼 하나님을 위해 스스로 부와 명예를 버린 사람들에 관한 책이었다.

사실 나도 그들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었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좀 더 잘 믿어 볼까?', '어떻게 하면 좀 더 잘 하나님을 만나 볼까?' 하는 마음에 스스로 사막으로 들어간 사람들이다. 그들의 삶은 정말 사람 같지 않을 만큼 기이했다.

그들은 금식을 자주 하며, 사람들과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고, 혼자 침묵하면서 성경 읽기와 간단한 노동으로 수년, 또는 수십 년을 살다 갔다. 자료를 보면, 당시 기독교인들은 오늘 우리가 이스라엘로 성지순례 가듯이 그들이 주로 움막을 짓고 거하는 사막이나 광야에 방문했다. 영적 깨달음을 얻기 위해 그들을 찾아가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 이들 중 안토니우스는 '수도원의 아버지'라 불리기도 한다. 안토니우스와 더불어 곧잘 이름이 거론되는 사막 교부는 이집트인 마카리우스다. 지금도 이집트에는 이들의 이름을 딴 수도원이 있다. 안토니우스 수도원, 마카리우스 수도원이다. 마카리우스(300~390)의 유명한 일화가 기록에 남아 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우리들에게 정보를 제공해 준다. 아래는 한 일화로, 그가 마귀와 대화한 내용이다.

어느 날, 마카리우스가 종려나무 잎을 잔뜩 들고 사막에 있는 움막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마귀가 낫을 들고 길가에 서 있다가 그를 만났다. 마귀는 마카리우스를 쫓아가 낫으로 찍으려 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마귀가 말했다.

"마카리우스여! 그대로부터 나오는 그 맹렬함이 나를 너무 괴롭게 한다. 나는 도무지 그대를 이길 수가 없다. 그대가 무엇을 하든지 나도 할 수 있다. 그대가 금식을 하면 나 역시 아무것도 먹지 않고, 그대가 밤을 새워 기도하면 나도 잠을 자지 않는다. 하지만 그대는 나를 압도하는 한 가지 특성을 갖고 있다."

이에 마카리우스가 물었다.

"그것이 무엇인가?"

마귀가 대답했다.

"그대의 겸손이다. 내가 그대를 이기지 못하는 까닭은 바로 그것 때문이다."

위 글은 사막 교부들 금언집에 나오는 이야기다. <깨달음>(규장)에서 인용했다. 이 일화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비록 그들은 사람 같지 않은 행색으로 살아가지만 우리가 감히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비범함을 갖고 있었다. 마귀가 두 손을 들 정도로 영적인 깊이를 갖고 있었고, 영적으로 성숙했다.

반면 우리는 어떤가. 사람 같게 살아가는 그들에게 있는 것이 우리들에게 있는가? 마귀가 인정할 만한 겸손이 있다면 최고가 아닌가. 아래는 어거스틴이 누군가와 주고받은 문답이다.

"그리스도인의 첫째 덕목이 무엇인가? 겸손이다. 둘째는 그렇다면 무엇인가? 역시 겸손이다. 셋째는 무엇인가? 겸손이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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