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좁은 골목을 젊은이들이 꽉 채웠다. 철거 위기에 놓인 옥바라지 골목 구본장여관을 지키기 위해서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철거 위기에 놓인 옥바라지 골목 구본장여관 앞에 신학생들이 모였다. 5월 11일, '옥바라지 골목을 지키기 위한 현장 기도회'가 열렸다. 감리교신학대학교, 장로회신학대학교, 한신대학교 등에서 모인 신학생 50여 명이 좁은 골목을 채웠다.

신학생들이 슬레이트 파편과 퀴퀴한 분진이 나도는 골목길에 모인 건, 서울시에 항의하고 이곳을 지켜 내기 위해서였다. 서울시는 5월 11일까지 '자진 퇴거'하지 않으면 건물을 강제 철거하겠다고 했다.

서울 종로구 무악동 옥바라지 골목은 서대문형무소 건너편에 있다. 독립문역 3번 출구 뒤로 여관들이 옹기종기 몰려 있다. 일제시대부터 1987년까지 운영돼 온 서대문형무소를 따라 이 골목도 독립운동, 민주화 운동의 역사와 애환을 간직하고 있다.

불의에 맞서다 투옥된 이들을 위해, 가족들은 감옥 건너편인 이곳에서 묵으며 '옥바라지'를 했다. 김구 선생 어머니도 여관 청소를 하며 아들에게 매일 사식을 넣어 줬다고 전해진다. 유관순, 여운형 같은 독립운동가와 재판 18시간 만에 전격 처형된 인혁당 사건 피해자들도 서대문형무소에 있었다. 옥바라지 골목은 이들의 가족으로 붐볐다.

역사적 보존 가치가 있는 공간이지만 롯데캐슬(195세대)이 들어온다는 계획에, 이 지역 이름은 '무악2구역'으로 바뀌었다. 대부분의 건물이 부숴지고 철거됐다. 이곳과 함께하겠다며, 나가지 않겠다며, 여관의 역사 가치를 인정하고 보존해 달라고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하소연해도 상황이 나아지진 않았다. 1년여를 끌어온 끝에 이제 '강제집행'만 남겨 두고 있다. 100년 역사를 지닌 골목 마지막 건물이 헐릴 위기에 놓인 것이다.

▲ 구본장여관 주인 이길자 씨는 교회 집사다. 기도와 설교 시간 내내 큰 소리로 '아멘'을 외친 그는, 꿋꿋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끝까지 싸워 집을 지켜낼 것이라며 신앙인들이 응원해 달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이날 학생들은 이곳이 또 다른 구룡마을, 강정마을, 밀양이 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대표 기도를 맡은 감신대 최건희 학생은 "소사 3구역, 녹번동, 상도동, 돈의문 재개발구역, 그리고 옥바라지 골목을 위해 기도한다"며 "여기는 형무소 안 수많던 독립투사, 민주 투사들이 외롭지 않도록 가족이 옥바라지한 곳이다. 이제 그 공간에서 삶을 영위하던 분들이 쫓겨나지 않도록 힘을 달라"고 했다.

설교를 맡은 이관택 목사(고난함께)는 옥바라지 골목을 생각하면 감방 속에서도 기도와 노래를 멈추지 않은 바울과 실라가 떠오른다고 했다.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은 바울과 실라에게 그랬던 것처럼, 어둡고 을씨년스러운 구본장여관 앞에 모여 기도하고 노래하고 대화하고 손잡은 신학생과 옥바라지 골목 주민들에게도 하나님의 역사가 임재하기를 기도했다.

구본장 여관 사장인 이길자 씨는 "싸움이 길어지며 지쳐 있는 상태였는데 신앙인들이 모여 주셔서 감격의 눈물까지 나온다"며 "옥바라지를 위해 끝까지 투쟁할 것이고 하나님이 이곳에 역사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기도회에는 '하늘소년' 김영준 씨와, 한신대 '김이슬기', 노동당 당원 '공기' 씨가 함께해 힘을 북돋았다. 신학생들은 이들과 함께 노래하고 기도했다. 성만찬 후 찬송가 '뜻 없이 무릎 꿇는'을 합창한 신학생들은 옥바라지 골목을 위해 기도한 후 집으로 흩어졌다.

기도회가 끝난 후 당장 11일 새벽부터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철거 용역에 대비해, 구본장여관은 이중 삼중으로 문을 걸어 잠궜다. 감리교신학대학교 동아리 '예수더하기' 학생들도 여관방으로 들어갔다. 학생들은 이번 주 월요일부터 구본장여관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한 사람보다는 두 사람이, 두 사람보다는 세 사람이 현장에 있어야 더 큰 힘이 되기 때문이다.

좁은 골목길은 5월 12일 저녁 8시에도 역사 공간을 지키려는 신학생들로 꽉 들어찰 예정이다. 장로회신학대학교 동아리 '은혜와 정의'가 주관하는 떼제 기도회가 구본장여관 골목에서 열린다.

▲ 이날 기도회는 감신대 학생들이 주축이 돼 열렸다. 5월 12일에는 장신대 '은혜와 정의'가 주관하는 떼제 기도회가 열릴 예정이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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