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세라트에 오고 나서 나의 10년 후 여행 코스를 변경했다. 완공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감상하고 가우디가 태어난 레우스로 갔다가 이곳 몬세라트와 만레사를 여행하는 것이다. 그날의 이그나씨오가 칼을 내려놓았던 것처럼 나도 무언가를 내려놓았으면 한다. 나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시는 모든 것을…." (170쪽)

''이라는 이름의 여행, 그리고 '여행'이라는 이름의 삶

우리네 인생은 종종 여행길에 비유되곤 한다.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들도 이 세상에서의 삶이 생의 목적, 존재의 이유 등을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여긴다. 하물며 이생 이후에 돌아갈 곳이 정해져 있는 나그네, 크리스천에게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삶이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고 주관하시는 한세상 잘 여행하다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삶을 돌아보는 좋은 계기가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이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는 측면에서도 그렇고, 새로운 것을 보고 듣고 느끼는 여정에서 자기 내면의 생경한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측면에서도 그렇다.

그래서 크리스천에게 여행은 영적인 걸음이다. 요한3서 1장 2절의 내용 중 "잘됨", "잘되고"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유오도오(εὐοδόω)'인데, 이는 '좋은 여행을 하다'로도 해석할 수 있다. 유오도오의 의미는 유일한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동행, 즉 그리스도와 함께 이 세상을 여행하는 성도의 삶과도 일맥상통한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3 1:2)

여행가 박영진이 전하는 생생한 스페인 이야기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세계 70여 개국을 일주한 후로 떠나고 정착하기를 반복하는 여행자의 삶을 살며 <세계를 모르면 도전하지 마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나라 브라질>, <스마일 남아공> 등의 여행 에세이를 집필해 온 박영진 작가가 이번에는 스페인의 매력에 푹 빠졌다. 현재 가족들과 함께 스페인 마드리드에 정착해 1년 넘게 살고 있는 저자는 신간 <스페인, 마음에 닿다>를 통해 낯선 여행자와 익숙한 생활자 그 중간 어디쯤에서 바라보는 스페인의 진한 매력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이 책은 여행지의 풍경에 감탄하는 평범한 여행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베리아 반도를 둘러싼 중세 가톨릭 왕국과 이슬람 왕국의 세력 싸움뿐 아니라, 그 훨씬 이전의 원주민과 로마 제국 이야기까지 스페인 땅의 역사·문화적 흐름을 꿰뚫는 설명이 더해졌다. 또한 20대의 젊은 헤밍웨이가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쓰기 시작한 빰쁠로나의 이루냐 카페, 내전의 아픔과 피카소의 슬픔이 깊게 베인 게르니까, 로미오와 줄리엣에 버금가는 애절한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 디에고와 이사벨이 잠들어 있는 떼루엘, 쇼팽과 그의 연인 상드가 머물렀던 마요르까의 허름한 수도원 등 스페인 곳곳에 숨어 있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섬세하게 담겨 있다. 이렇게 얽혀진 역사적 사실과 이야기는 독자들이 그 여행지의 아름다움에 더욱 깊이 몰입하게 한다.

삶의 소중함과 감사를 발견하는 과정

저자는 스페인 여행 최고의 순간으로 연못에 비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야경을 가만히 바라보던 때를 꼽았다. 위대한 건축가 가우디가 아니라 죽는 날까지 자신의 삶을 신께 의지했던 겸손하고 신실한 가우디를 마음 깊이 존경하게 됐다고 한다. 여행의 가치는 바로 이런 데 있다. 분주한 발걸음으로 명소를 모두 돌아보는 관광이 아니라, 어느 한순간에라도 가만히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숙여 자신의 발끝을 바라보는 일. 그 시선이 발끝을 타고 깊숙한 내면으로 흘러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평범한 감사와 경건의 체험. <스페인, 마음에 닿다> 속에는 낯선 도시에서 까만 땅을 밟고 파란 하늘을 우러르는 모든 여행자의 마음에 이런 체험이 있기를 바라는 저자의 응원이 담겨 있다.

"예정에 없던 순례길이다. 편한 등산화도 없고 순례길의 필수품인 우산과 지팡이도 없다. 이렇게 떠나도 되는 걸까? 어느새 나는 순례길을 걷고 있다. 순례길에 있는 노란색 화살표만을 의지한 채 지도도 없이 마냥 길을 걸었다. 얼마나 많은 순례자가 이 길을 걸었을까. 한 걸음 한 걸음이 감동으로 다가오고, 이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가 넘친다." (2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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