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 3일 저녁, '쉼이 있는 교육-학원 휴일 휴무제 법제화를 위한 범국민 캠페인 출범식'이 열렸다. (사진 제공 쉼이있는교육시민포럼)

부모는 아이들이 매일 한 시간 이상 놀았다고 생각한다. 자녀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2014년 <경향신문>이 초등학교 2학년 아이와 그 부모를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매일 1시간 이상 놀았다'는 문항에 부모 68.6%가 '그렇다'고 답한 반면, 자녀들 중에서는 20.6%만 똑같이 답했다. '하루도 1시간 이상 놀지 못했다'는 문항에 '그렇다'고 답한 자녀들은 23.1%, 부모는 1.2%였다.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 걸까?

한국갤럽조사연구소는 2013년 한국 고등학생 평균 수면 시간이 5시간 27분이라고 발표했다. 미국 청소년 평균 수면 시간은 8시간 47분이고, 우리와 사정이 비슷한 일본도 7시간 42분이다.

한국 학생들의 평균 학습 시간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2009년 발표한 자료를 보면 OECD 국가 청소년(15세~24세) 평균 학습 시간은 34시간이었으나, 한국 고등학생 평균 학습 시간은 70시간을 넘었다. 그런데도 학업 성취도는 학습 시간이 한국의 절반에 미치지 못하는 핀란드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러한 통계는 곧바로 삶의 질과 연결된다. 한국 아동의 학업 스트레스는 세계 1위, 삶의 만족도는 OECD 국가 중 꼴찌다. 청소년 사망 원인 중 1위가 자살이라는 암울한 현실은 이미 우리 사회 깊숙이 들어와 있다.

문제는 분명하다. 그러나 해결책은 요원하다. 어른들의 욕망과 돈벌이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차근차근 풀어 나가야 한다. 문제는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쉼 없는 교육에 제동을 거는 사람들이 있다. 학교 선생님, 학부모, 교육 시민단체가 뭉쳤다. '좋은교사운동',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등이 함께 결성한 쉼이있는교육시민포럼은 5월 3일(화) 오후 6시 서울 마포구 서교동 창비에듀 지하 2층 50주년기념홀에서 '쉼이 있는 교육-학원 휴일 휴무제 법제화를 위한 범국민 캠페인 출범식'을 개최했다.

출범식 행사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윤지희 공동대표의 사회로 진행됐다. 초등학생들의 공연으로 시작해서 축사, 운동 추진 계획 발표, 무언극 퍼포먼스, 성명 발표로 이어졌다. 윤지희 대표는 "쉼 있는 교육은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권리인데 이렇게 큰 소리를 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아이들이 잃어버린 권리를 되찾을 수 있도록 열심히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말했다.

참석자 대표로 축사를 맡은 손봉호 교수(고신대 석좌교수)는 "우리 학생들이 지식을 얻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경쟁에 이기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다. 경쟁 때문에 정상적인 공부를 할 수 없고 교육 시스템이 약자를 배려하지 않기 때문에 국가가 나설 필요가 있다. 학원 관계자들도 하루 쉬는 것을 원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조희연 교육감(서울시 교육청)은 영상으로 보낸 축사 메시지에서 "학생들이 겪는 입시 지옥은 인권 문제로 인식하고 해결해야 한다. 서울시 교육청도 다양한 방식으로 돕겠다"고 말했다. 조국 교수(서울대)도 영상을 통해 "한국의 교육 경쟁은 아동 학대 수준"이라며 "학생들과 시민들의 행복추구권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이 운동이 성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 출범식은 윤지희 대표의 사회로 진행됐다. 참석자 대표로 손봉호 교수가 축사를 했다. (사진 제공 쉼이있는교육시민포럼)

문제는 국회?

이어 좋은교사운동 김진우 공동대표가 캠페인 취지와 운동 계획을 발표했다. 김진우 대표는 "한국의 평균 노동시간보다 두 배 가까운 시간을 학생들이 책상 앞에서 보내고 있다"며, 학부모 95%가 학원 휴일 휴무제에 찬성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진우 대표는 학부모가 압도적으로 지지해도 학원업계의 압력 때문에 국회가 학원 휴일 휴무제가 통과되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진우 대표는 여론 형성을 주도하면서, 20대 국회에 자주 찾아가 국회의원들을 설득하겠다고 말했다.

쉼이 있는 교육 사례 발표를 맡은 이유남 학교장(명신초등학교)은 자신이 겪은 경험담을 나누며 아이들에게 쉼이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했다. 이 학교장은 두 자녀를 기숙 학원에 보냈을 만큼 사교육을 맹신하는 엄마였다. 학업성적을 위해 쉼을 완전히 포기했다.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게 자녀들이 행복하기 위한 최선의 길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런데 아들이 고3이 되어서야 그 믿음에 균열이 왔다. 항상 최상위 성적을 유지하던 아들이 수능을 수개월 앞두고 학업 포기 선언을 한 것이다. 딸마저 오빠의 뒤를 이었다. 부모로서 큰 충격에 빠졌다. 자녀들도 마찬가지였다. 학업을 포기한 두 자녀는 게임 중독에 빠지고 심한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겪었다. 삶의 모든 가치가 송두리째 흔들렸다.

이유남 학교장은 엄마인 자신이 자녀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고백했다. 그는 후배 부모들에게 같은 실수를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우리 아이들이 왜 자살하는지 아세요? 자신들을 벼랑 끝에 세운 엄마와 우리 사회에 복수하기 위해서래요. 더 늦기 전에 쉼이 있는 교육을 실현해야 합니다."

이유남 학교장의 발표가 끝나고, 마임이스트 조인정 씨가 쉼 없는 교육의 현실을 보여 주는 마임 공연을 했다. 쉼 없이 공부만 하다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 친구 자녀의 실화를 바탕으로 연출된 연극이었다. 아이와 작별하는 장면에서 공연을 관람하던 참석자들은 함께 눈물을 흘렸다.

▲ 마임이스트 조인정 씨의 공연도 있었다. 행사는 8시까지 진행됐다. (사진 제공 쉼이있는교육시민포럼)

연극이 끝나자 윤지희 대표는 청소년에게 쉼 없는 삶을 강요하는 어른들이 보여 주는 이기적인 욕망을 이렇게 표현했다.

"어른들에게 밤 10시, 12시까지 일하는 법을 만들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어른들이 가만히 있겠어요? 폭동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그런데 어른들이 너무 잔인한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는 10시, 12시까지 공부하라고 합니다."

'학원 휴무 법제화'를 위한 서명운동은 쉼이있는교육 홈페이지에서 참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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