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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하다 지겨우면 랩했다
[인터뷰] 무대를 장악하는 지존 악동 '허클베리피'
  • 최유리 (cker333@newsnjoy.or.kr)
  • 승인 2016.04.30 19:10

[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노란 머리의 사내가 무대에 오른다. 마이크 없이. 무대 위로 비트가 흐른다. 스웨그 넘치게 손을 위아래로 흔들자, 관객들이 비트에 맞춰 떼창을 한다. 4분 가까이 되는 노래를 관객들의 소리로만 채운다. 빠르게 내뱉는 파트도 수월하게 한 목소리로 따라 한다.

그의 이름은 '허클베리피'. '힙'한 래퍼다. 방송으로만 힙합을 접한 이에게는 생소한 이름이지만, 그는 프리스타일 랩 분야의 대부다. 10년 넘게 눈만 뜨면 랩을 뱉었다. 그 덕에 그의 랩은 시간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버튼을 누르면 물건을 내는 자판기처럼, 마이크를 잡으면 라임 플로우 탄탄한 랩이 쉴 틈 없이 쏟아져 나온다. 많은 래퍼와 한 무대에 서도, 그만의 독특한 목소리는 그를 돋보이게 한다.

무대 위에서는 악동이다. 한 번 물면 놓지 않는 힙합계의 '백상아리'다. 마이크를 잡으면 눈빛이 달라진다. 노래를 부르다 혀를 날름 내민다. 가운데 손가락을 올린다. 머리 위에 물을 붓는다. 손짓 하나로 관객을 조련한다. 'THE KID'에서 "여전히 올라가면 절제가 잘 안 돼"라고 랩하는 것이 이해될 정도다.

그러나 무대 아래에서 허클베리피는 고집 센 투사다. 쇼미더머니 출연 제의도 거절했다. 음원 스트리밍 손익 구조에 문제의식을 느껴 앨범 '골드'를 내며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았다. 투표 독려 콘서트를 무료로 열기도 했다.

4월 26일, 홍대에서 허클베리피를 만났다. 인터뷰는 빅퍼즐아카데미 남오성 대표가 진행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대화 전문이다.

   
▲ 허클베리피는 무대 위에서 빛이 난다. 자기만의 목소리와 플로우로 관객들과 하나가 된다. (사진 제공 하이라이트레코즈)

- 자기소개 부탁한다.

'허클베리피'라는 이름으로 랩하는 뮤지션이다. 솔로로도 활동하고 프로듀서 소울피시와 팀 피노다인으로 활동하는 음악인이다. 이름은 '허클베리핀의 모험'에 나오는 주인공 이름에서 따왔다. 기존 아이들과 달리, 하고 싶은 대로 사는 허클베리핀의 캐릭터를 좋아해 허클베리피라고 짓게 됐다.

- 힙합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중학교 1학년 쯤 가장 친한 친구가 랩, 힙합 음악을 많이 들었다. 그 친구랑 같이 힙합을 듣다가, 너무 좋아서 가사 외워 해 보았다. 그러다 내 것을 해 보고 싶은 욕심이 생겨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거 같다.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가리온이 나와 프리스타일 랩을 했는데,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집에서 해 보니까 재밌고 곧잘 했다. 가사 쓰는 것도 재밌어서 돈 있으면 무조건 테이프랑 CD부터 사 모았다. 메타 형처럼 프리스타일 랩을 잘하고 싶었다.

- 프리스타일 랩으로 유명세를 탔다.

성격상 재미없으면 절대로 안 한다. 재밌는 건 밤을 새더라도 제일 잘해야 속이 시원하다. 지금도 그렇다. 한 가지에 꽂히면 그것만 굉장히 오래하는 타입이다. 중학교 때 하던 축구 게임을 지금도 하고 있다. 프리스타일도 재밌는데 승부욕까지 붙으니까 '일상'이 되었다. 밥먹는 시간, 자는 시간 제외하고는 계속했던 거 같다. 길 갈 때나 버스 탈 때, 아침에 눈 뜨면 그냥 하는 정도로 습관이 몸에 배었다. 사물을 보면 라임이 막 떠오르던 시기였다. 미친 사람처럼 계속 랩만 하고 있었다.

'Page 64'라는 노래에서도 이걸 10년 했다는 가사를 적었다. 마이크 스웨거라는 영상으로 뜨기 전까지 10년 넘게 프리스타일만 했으니까 아예 재능이 없지 않은 이상 못할 수가 없다. 랩하다 지겨우면 랩했다. 에너지와 시간, 열정을 랩에만 쏟았다. 모든 래퍼가 그렇겠지만 진짜 다른 사람보다 랩을 잘하고 싶었다. 그게 목표였다.

- 언제부터 힙합을 업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나.

30대 넘어서 업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다. 20대에는 순전히 재밌고 즐거워서 했다. 그렇게 랩만 하다 보니까 레슨도 하고, 공연도 하고. 그 횟수가 많아지니 자연스레 직업을 이야기할 때 뮤지션이라고 말하게 됐다.

뭔가를 계획해서 하는 타입이 아니다. 그냥 하루 재밌게 살면 그 다음날 영향을 받아서 또 살고 그런 식이다. 어떤 사람이 너 그렇게 살면 30대에 100% 망할 거라고 말했다. 그 편견을 깨는 게 목표 중 하나다. 그런 마음을 'THE KID'에 담았다.

   
▲ 그에게 '랩'을 할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은 즐거움이었다. 프리스타일 랩을 보여 주는 '마이크스웨거'에 출연하기 전 10년 동안 매일 눈뜨면 랩을 했다. 길을 가면서, 버스를 타면서 잠자는 시간과 밥 먹는 시간 외엔 온통 랩에만 열중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 피노다인에서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다.

랩은 직접 가사를 쓰고 감정을 싣기 때문에 울림과 파급력이 크다. 자기 생각을 전달하기에 이만큼 좋은 도구가 없다고 생각한다. 다른 장르에 비해 다양한 이야기도 할 수 있다. 사회적 메시지를 담는 데 발라드보다 힙합이 유리하다.

그런데 막상 힙합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경향이 많다. 그래서 피노다인을 시작했다. 스웨그 넘치는 랩 말고 다른 이야기를 해 보자 한 거다. 팬들이 분명한 주제를 잡고 음악을 만드는 피노다인을 좋아한다. 이런 부분이 강박처럼 다가온다. 소소한 이야기 말고 새로운 주제를 계속 잡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 어려울 때가 있다.

- 피처링 많이 했다. 씬에서 작업 안 해 본 사람이 없겠다.

노래 처음 들었을 때 '내가 잘 날아다닐 수 있겠다' 싶은 곡을 한다. 멋있게 보일 수 있고 잘 묻어 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노래를 한다. 최근에는 작두와 할 때 가장 좋았다. 쓸 때부터 잘 되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사도 좋았고, 녹음할 때 느낌이나 합도 좋았다.

아마 내 랩이 스킬 풀 하니까 그런 부분을 좋아해 줘서 피처링을 요청하는 것 같다. 올해는 전처럼 많이 하지 않고 있다. 지금 스킬 풀 한 랩에 질린 상태다. 랩이 제일 재밌고 잘할 자신이 있지만 이제는 피하고 싶은 마음이다. 랩을 기술적으로 하는 건 이미 증명이 끝났고 다음 단계로 어떻게 랩을 할 건지 고민이 많다. 해 왔던 것 대신 조금 더 새로운 걸 시도하고 싶다.

- 방송이나 미디어에는 거의 안 나오는 이유가 있나 

그 이야기를 하자면, 쇼미더머니 이야기를 먼저 꺼내야 할 거 같다. 그간 "Fuck TV", "Fuck Radio", "TV와 라디오는 악당들의 편"이라는 가사를 썼다. 모든 프로그램을 배타적으로 보는 건 아니다. EBS '스페이스 공감'처럼 아티스트가 멋있게 자신을 보여 줄 수 있는 프로그램에는 전혀 거부감이 없다. 앨범을 내면 항상 하고 싶은 프로다. 래퍼가 추구하는 바를 훼손하지 않고 방송하는 건 좋은 일이다.

다만 쇼미더머니를 보는 관점은 좀 다르다. 거기에 나간 래퍼들을 욕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들이 목표를 이루고 잘 됐으면 좋겠다. 거기에 나간다고 힙합이 아닌 것도 아니다. 나도 인간이기 때문에 아는 래퍼가 나가서 잘 되는 걸 보면 나도 나가 볼까 하는 마음이 든다. 나가지 않는 게 스스로 바보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돈 벌어서 주변 사람 행복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내 음악 들으면 좋은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주변에서도 나가라고 말한다.

그런데 나는, 다른 모습으로 살고 싶다. 모든 래퍼가 다 나가니까 재미가 없는 프로그램이 '쇼미더머니', '언프리티 랩스타', '힙합의 민족'인데, 그걸로 멋있게 되기는 어려울 거 같다. 이제 쇼미더머니는 황금알 낳는 거위가 됐다. 혹시라도 우리 이후에 랩하는 사람들이 쇼미더머니에 출연하는 걸 당연한 것으로 생각할까 겁이 난다.

내가 처음 힙합을 좋아했을 때, 비주류, 소수의 느낌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어렸을 때 힙합 음악을 들으면 나도 덩달아 멋있어지는 것 같았다. 전부 다 나가는 쇼미더머니 외에도 다른 길이 있다는 걸 알려 주고 싶다. 내 포부 중 하나가 그거다.

랩하는 사람들이 진로를 생각할 때, 기존 판 말고 다른 이야기를 하는 쪽도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다. 지금까지 잘해 왔다고 생각한다. 당장 떼돈 벌지 않아도 내가 할 수 있는 노선을 최대한 견지하면서 멋있게 랩하고 싶다. 그게 낭만적인 것 같다.

   
▲ 그는 방송에 잘 나오지 않는다. 프리스타일 랩의 대부지만, TV로만 힙합을 접하는 대중은 그를 잘 모른다. 그에게 왜 방송에 나오지 않느냐 물었다. 그는 "나도 사람인데 왜 나가고 싶지 않겠나. 근데 거기서 멋있게 음악하기 어려울 거 같다. 방송 출연 없이도 잘 되는 길을 만들고 싶다"고 답했다. (사진 제공 하이라이트레코즈)

-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기도 했다. 음악 시장에 하고 싶은 말이 있었나.

사람들이 오해했던 것 중 하나가 "너도 스트리밍 들으면서 왜 네 앨범으로 반대하냐"였다. 내 얘기는 스트리밍 듣지 말자가 아니었다. 이제 시대 흐름이 바뀌어서 스트리밍으로 듣는 걸 막을 수 없다. 다만 음악을 만드는 창작자가 더 많은 이윤을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너무 당연하게 음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가 더 많이 가져가는 게 이해가 안 됐다.

캠페인 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당시 비프리가 먼저 했고 거기에 영향을 받아 시작했다. 근데 우리가 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걸 느꼈다. 캠페인 한 번으로 바꾸려고 한 건 아니지만, 회의감과 한계를 느꼈다.

- 루피와 함께 투표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무료 공연을 진행했다. 개런티가 없었을 텐데.

루피가 공연을 기획했다. 동갑내기고 오래 봤고, 지금도 자주 보는 친구다. 투표 독려 취지를 이야기하며 같이 하자고 제안했다. 정치색과 별도로 어릴 때부터 투표율에 관심이 많았다. (실제로 그는 힙합 플레이야 페스티벌 공연에서 투표하자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래서 참여했다.

투표 독려 공연은 전에도 해 본 적이 있다. '분신1' 공연 때가 대선 기간이었다. 투표율 60% 넘으면 절반 가격인 만 원에 공연하겠다고 했다. 당시 단독 공연을 만 원에 한다는 거 자체가 파격적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뽑혔고 투표율이 62%가 됐다. 회사는 수익을 생각할 수밖에 없으니까 반대했다. 지금이라면 못 했을 텐데, 당시 뭔가에 미쳤는지 그렇게 했고 반응이 좋았다.

- 분신 공연에 대한 평이 좋다.

초창기 공연부터 'DJ 짱가' 형과 함께한다. 현재 회사 실장으로 일하고 있지만 힙합계에서는 유명한 DJ이다. 옛날 가리온 시절부터 백업 DJ로 활동했다. 보통 DJ랑 이렇게 합 맞춰서 하는 공연이 별로 없다. 형은 다양한 많은 사람들과 함께한 노하우가 있고 나는 아이디어가 많아 합이 좋다. 다양한 시도를 하니 사람들이 좋아한다.

영상 보면 알지만, 어떤 노래는 중간에 갑자기 비트를 멈추는 부분이 있다. 이게 사소해 보이지만 찰나의 순간, 사람 피를 끓게 한다. 짱가 형이 이런 캐치를 참 잘한다. 공연에서 한 번 시도해 보고, 사람들 반응을 보면서 몇 차례 수정한다. 이렇게 공연을 준비하면 사람들 호응이 좋을 수밖에 없다. 몇 년 했으니까 잘할 수밖에 없다. '분신 4'까지 했는데, 오래 지속되고 커지게 될 수 있던 게, '입소문' 때문인 거 같다.

   
▲ 언제나 즐겁게 랩을 하던 그였다. 하지만 30대에 들어 슬럼프가 찾아왔다. 랩과 음악을 만드는 게, 공연을 기획하는 게 하나의 일처럼 느껴졌다. (사진 제공 하이라이트레코즈)

- 슬럼프는 없었나.

최근에 있었다. 30대 돼서. 앞에도 얘기했듯이 이 활동을 재미로만 했다. 근데 갑자기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 해야 하는 일로 다가왔다. 또 대한민국에서 남자로 살아가면 으레 충족해야 하는 것들, 결혼이나 금전 문제가 현실로 다가왔다. 이제는 많이 나아졌는데, 그때는 그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작년 일이다.

항상 1년에 1~2개씩 앨범을 발표했는데, 작년에 '에베레스트' 외 활동을 안 했던 것도 그 이유다. 나이만 먹은 거 같다. 단독 공연 '분신'도 덩치가 커지면서, 아티스트에게는 진짜 축복받은 일인데도, 부가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게 많았다. 공연장 규모도 고려해야 하고, 공연을 위해 다른 콘텐츠 개발이나 다음 공연에서 해야 하는 노래를 만들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도 그런 식으로 노래를 만들어 본 적이 없다. 그냥 내가 즐겁고 영감 받아 만들었다. 이런 생각을 한다는 거 자체가 이제 내가 어른이 됐구나, 그런 나이가 됐구나 싶었다.

- 10년 뒤에는 뭐할 거 같나.

'골드' 앨범에서 "죽을 때까지 랩할 거, 이건 약속 아니고 운명 같은 거"라고 했다. 10년 후에도 랩할 거 같다. 다른 직업에 종사해도 가장 즐겁게 하는 게 랩이었으니까. 그런 면에서 메타 형은 대단하다. 지금까지 유지하면서 하는 게 대단하다.

이제 33살밖에 안 됐다. 랩하면서 가장 즐거웠을 때랑 지금 상태를 비교해 보면, 사실 떨어진 게 사실이다. 예전에는 내 랩에 한계 수명이 있고 언젠가는 그만둘 날이 올 거라는 생각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때 나는 끝까지 유지할 거라 했다.

근데 그게 불가능하다고 깨달았고, 작년에 슬럼프를 겪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박상혁이라는 사람이 허클베리피로 살아온 지난 세월이 너무 즐겁고 행복했고, 앞으로 몇 년 더 유지될지 모르지만 그동안 진짜 멋있고 재밌게 살면 된다. 내가 다른 걸 한다고 해서 무의미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정립된 상태다.

- 허클베리피에게 힙합은 뭐냐.

예전에는 어떤 사명감이 있어 뭐라고 많이 이야기했다. 근데 지금은 답이 잘 안 나온다. 힙합 단어 자체에 커다란 의미가 있다기보다, 어렸을 때 내가 생각하는 즐거움을 디테일하게 정리해 준 도구다.

힙합이 멋있던 이유는 가장 솔직한 멋이 있기 때문이다. 이센스가 항상 이 말을 했다. 가장 솔직한 사람들의 멋이 힙합이라고. 이 말에 감명을 많이 받았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면 남들에게도 떳떳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게 힙합이라고 생각했다. 랩할 때 태도를 유지하게 하는 힘이었다.

지금은 잘 모르겠다. 한국에서 힙합이 얼마나 유의미한지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힙합 코어를 이야기할 자격이 있는지도 솔직히 모르겠다. 그냥 정의나 태도가 아니라 삶으로 다른 노선을 걷고 싶다. 그래서 오히려 힙합이 뭐냐고 물으면 답이 잘 안 나온다.

   
▲ 모태 신앙인 허클베리피. 아버지는 목사다. 30년 넘게 주일이면 교회에 가는 그에게 예수는 부인할 수 없는 존재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 신앙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아버지가 목사로 서원했다고 하던데. 

지금도 잔병치레가 많은 편인데, 엄마 뱃속에서부터 안 좋았다. 애를 낳으면 산모가 위험하니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엄마는 무조건 낳아야겠다고 생각하셨다. 아버지는 아기가 태어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니까 하나님이 주시면 하나님의 자녀로 키우겠다고 서원하셨다. 아버지 입장에서는 음악을 하겠다고 말하기 전까지는 당연히 목사를 한다고. 그런 이야기를 어렸을 때부터 들었으니, 나도 초등학교 장래 희망 쓸 때 당연히 '목사'라고 썼다.

내가 랩하고 싶다고 말씀드리니 충격은 있으셨지만 크게 내색하시진 않았다. 반대 기간이 길진 않았다. 아버지는 지금도 항상 그 이야기를 하신다. 음악 달란트를 주신 것도 하나님이니까 뜻이 있을 거다. 그걸 염두해 두고 음악하라고 하신다. 음악할 때 항상 신앙 이야기를 담지는 않아도 기본적으로 포커스가 다른 사람 이야기, 다음 세대에 들려주는 이야기에 맞춰져 있다. 아버지도 그런 메시지를 담은 음악을 들려드리면 좋아하신다.

- 목사 아들이다. 모태 신앙이기도 한데, 한국교회 어떻게 보나. 

솔직히 이야기하면, 목사 아들이고 매주 교회에 나가지만 좋아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분명 내 안에 신앙 자체는 있지만 항상 뭐든지 커지면 문제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이건 단순히 교회뿐 아니라 사람들이 하는 모든 것에 해당하는 일이다. 그래서 대형 교회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유는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잘 아실 것 같다. 사람 많아지면 문제가 생긴다. 다른 것보다 순수하고 투명하게 움직여야 하는 곳인데 그렇게 되지 않은 경우를 많이 봤다. 그래서 그런 불신이 생기는 것 같다.

- 스스로 독실하다고 생각하는가.

계획해서 살지 않는데 예전부터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인복 있다고 늘 얘기해 왔다. 근데 20살 넘어서부터는 절대 내 뜻으로 된 게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다. 나처럼 막 사는데 여기까지 굴러온 거 보면 '내 뜻이 아니다'라는 생각이다. 의지 뒤에 커다란 존재가 있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군대에서도 항상 랩하고 싶을 때 랩할 수 있었고, 밴드 만들어서 자작곡을 쓰고, 이걸로 3박 4일 휴가를 나오기도 했다. 그때 많은 체험을 했다. 기도만 했다. 내가 한 거 없이 잘 된 거라고 생각한다. 군대 생활도 아무런 애로 사항 없이 전역했고. 그런 부분은 독실한 것 같다.

- 허클베리피에게 예수는 어떤 의미인가.

예수는 나에게 너무 당연한 존재다. 모태 신앙이기에 너무 당연했다. 좋은 일이 있을 때, 불행한 일이 있을 때 항상 기도한다. 아버지가 늘 신앙은 해석이라고 말하신다. 어떤 일이 생기면 신앙으로 해석하고 감사함을 느껴야 한다고 말한다. 나에게는 그게 당연한 일이다.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을 좋아한다. 좌우명 같은 말씀이다. 노래 가사에도 나온다. 삶에서 안 좋은 일이 있고 사건들이나, 힘든 시간이 있어도 결국 돌아왔을 때 좋은 결과로 도출된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지금까지는 그렇게 살아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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