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강동석 기자] "신약성경의 대부분이 논쟁적이다." 존 그레셤 메이첸(John Gresham Machen)의 말이다. <기독교와 자유주의>로 당대 근본주의신학을 변호했던 메이첸조차 성경을 논쟁적인 책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독교 변증으로 이 문제를 풀어 가려 했다.

신약성경이 논쟁적이라는 메이첸의 말을 발판 삼아, 다음 질문을 던져 보려 한다. "첫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예배했는가?" 어처구니없는 질문일까. 이 질문은 세계적인 신약학자 제임스 던(James D. G. Dunn)이 던진 문제 제기이자, 그의 책 제목이기도 하다. 던은 "나는 일부러 제목을 이렇게 잡았다. 이 문제 자체가 논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16쪽)고 말한다. 첫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예배했다고 규정하기에는 긴장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논쟁의 여지가 있는 요소를 배제하거나 무시할 수 없다. 신약성경에는 예수 자신이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이를 예배할 수 있다는 생각을 꾸짖으시는 기사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중략) 다른 곳을 보면, 예수는 오직 하나님만 갖고 있는 유일무이한 타자성(他者性, otherness)을 옹호하는 모습을 보여 주신다." (17쪽)

▲ <첫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예배했는가?> / 제임스 던 지음 / 박규태 옮김 / 좋은씨앗 펴냄 / 312쪽 / 1만 6,000원 ⓒ뉴스앤조이 강동석

첫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예배하지 않았다?

제임스 던은 이런 논쟁적인 질문에 기초해 초대교회 당시 예배 상황과 예수에 대한 인식을 살펴본다. 성경이 이야기하는 예수의 본모습을 정확하게 탐구하려는 것이다. 이 탐구는 삼위일체에 대한 이해를 심화한다. 제임스 던은 "따라서 우리가 던졌던 핵심 질문('첫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예배했는가?')에는 실제로 '아니요'라고 답할 수 있으며, 아마도 그렇게 대답해야 할 것이다"(290~291쪽)라고 결론짓는다.

그러나 첫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예배하지 않았다는 대답 뒤에는 '하지만'이라는 접속사가 붙는다. 던은 이 '하지만'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보수적인 관점을 취하는 이 분야 대표적인 학자 래리 허타도(Larry Hurtado)와 리처드 보컴(Richard Bauckham)의 논지를 끌어온다. 이 두 석학은 실제로 초대교회에서 예수를 섬기는 의식을 거행했고, 이것이 예배의 중요한 축을 감당했다는 내용을 담은 책을 잇달아 내놓았다. 던은 두 학자의 핵심 주장을 논박하며 이야기를 이어 간다.

허타도는 "기독교가 처음 발생하고 몇 년 사이에, 성경이 말하는 한 하나님만 섬기는 가운데서도 예배를 통한 예수 섬김이 이루어졌다(이 예수 섬김은 초기 기독교 안에서 뒤늦게 이루어진 발전이 아니라는)"(19쪽)고 지적했고, 보컴은 "예수가 팔레스타인 유대 기독교 시초부터 이스라엘의 한 하나님이 지닌 독특한 정체(identity)를 공유하는 혹은 그 정체에 포함된 이로서 어느 정도 예배를 받았다"(19쪽)고 주장했다.

하지만 던은 이들의 주장이 예수 섬김의 전체 모습이라고 하기에는 명확하지 않은 지점이 있다고 말한다. 예수 섬김이 허타도와 보컴이 제시한 모습보다 훨씬 더 복잡한 양상을 띠었다는 것이다. 제임스 던은 '예수를 예배했다'는 주장에 긴장을 가져오는 다른 성경 본문이나 상황적 맥락까지 살펴야 한다고 제안한다.

신약성경에 예수를 하나님이라고 명시하는 구절이 있는 게 사실이다. 던도 이를 가볍게 다루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이 첫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떻게 해석되고,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졌는지는 그 문맥과 전체 그림을 보면서 공정하고 명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예수를 예배했다, 예배하지 않았다 정도로 끝날 것 같으면 애초에 이런 문제를 제기할 필요도 없다.

던은 크게 다섯 가지를 살핀다. △오직 하나님께 '예배'했는가, 그 예배는 무엇인가 △이스라엘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를 어떻게 받아들였고, 예수와 초대교회는 이를 어떻게 인식했는가 △예수는 유일신론자였나 △초대교회는 하나님이 예수를 오른편에 앉히셨다 확신했는데, 이는 어떤 의미인가.

▲ 샤를 앙드레 반 루(Charles André Van Loo)의 '아기 예수 탄생'(Nativité, 18세기 作)

"예수가 초기 기독교 예배의 중심이었음은 의심할 수 없다"

먼저 던은 '예배'라는 단어와 관련 단어 용례를 살피면서 이 문제에 접근한다. 성경에 예수를 직접적으로 예배한다는 구절은 얼마나 등장할까. 결과는 흥미롭다. "예수가 예배(경배)를 받았다(proskynein)고 언급한 횟수는 놀라울 만큼 희소하다."(34쪽) 그는 "이 말이 예수가 마땅히 받으셔야 할 공경을 적절하게 표현해 주는 말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미심쩍은 혹은 주저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35쪽)고 말한다.

"예배라는 언어는 거의 다 오로지 하나님께만 사용하며, 간간이 예수께 사용했다. 그러나 더 흔한 용법은 그리스도가 행하신 일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하거나, 그리스도를 통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다." (53쪽)

첫 그리스도인들이 실제 예배(기도, 찬송, 전례 등)를 어떻게 행했는지, 관련 기록을 도 예수를 예배했다고 명료하게 이야기하기 힘들다. 고대에는 희생 제물을 바치는 것이 예배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는데, "희생 제사를 받음이 '신성을 판단하는 궁극의 기준'이라면, 예수는 신이라 불릴 자격이 없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115쪽)라고까지 말한다. 물론 여기에 예수가 '하나님이 희생 제물을 받으시는 데 아주 깊이 관여하신 분'이라는 단서 조항을 붙여야 한다.

"전례라는 맥락(상황)에서는 예수의 이름을 늘 불렀고, 축도에서는 예수와 아버지(하나님)를 연계했으며, 특별히 개인에게 위기가 닥쳤을 때는 예수에게 도움을 간구하기도 했지만, 보통은 예수에게 예배 자체를 올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180쪽)

다만 이로써 던은 예배를 이해하고 인식하는 데 있어서 한발 더 나아간 지점을 제시한다. "예수가 초기 기독교 예배의 중심이었음은 의심할 수 없다"(117쪽)는 사실이다. 단호한 어조로 하나님과 예수 사이에 명확한 구분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깨닫게 한다. 이와 같은 논증 과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예배 태도를 돌아보게 한다.

"예수는 초창기 그리스도인들이 확신을 품고 기도 드릴 수 있는 이유였고, 이 그리스도인들이 부르는 찬송의 주제였다. 그들이 부른 것은 바로 예수의 이름이었다. 그들은 자신에게 위기가 닥치면 예수께 간구했다. 그들이 부르는 하나님 찬미에는 당연히 그리스도 찬미가 들어 있었다. 예수 자신이 신성한 공간이었고, 바로 이 공간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여전히 이 땅 위에 존재하는 그의 몸('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만났다. (하략)" (117~118쪽)

던은 논의 과정에서 드러나는 긴장점들이 오히려 예배에 담겨진 풍성한 의미를 찾는 쪽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첫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예배했는가?"에서부터 이어지는 질문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좀 더 명료하게 만들고, 예수가 예배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의미를 입체적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 미하이 문카치(Mihaly Munkacsy) '빌라도 앞의 예수 그리스도'(le Christ devant Pilate, 19세기 作)

간명하지 않은 삼위일체

무수한 예시와 복잡한 논증 끝에 내놓는 그의 대답들은 쉽게 반박하기 힘들다. 던의 논지 전개는 한 사건을 탐문 수사하는 과정을 보는 듯하다. 책 분량은 300쪽가량이지만, 이 주제를 다루기에 짧은 분량인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던은 지혜기독론이나 영기독론 등 본격적인 기독론을 검토하는 것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은 이 분야의 좋은 개괄서이자 입문서로도 쓰일 수 있겠다. 제임스 던이 만만찮은 학자임에는 틀림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던의 주장이 완벽하다거나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신중하게 전체 문서를 검토하기 때문에 지나치게 유보적인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또 제임스 던은 '예수 예배'를 다루면서, 보컴과 허타도가 쉽게 간과하는 본문과 자료들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그 자신도 예수 예배가 그나마 뚜렷하게 나타나는 요한계시록은 간략하게 짚고 넘어간다.

"어쩌면 요한계시록이 제시하는 이미지는 사실적 형이상학이라기보다 초현실적 형이상학이라고 묘사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묵시 해석을 지배하는 해석학 규칙-'묵시를 문자대로 해석하는 것은 묵시를 잘못 해석하는 것이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254~255쪽)

이 책의 핵심 질문 "첫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예배했는가?"에 대한 '아니요'라는 답변만 떼내어 악의적으로 편집한다면,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신으로 보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는 그렇다.

던은 삼위일체에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하나'라는 단일성 문제도 간명하게 정리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성경도 간명하지 않다. 사실 우리네 현실이 그렇다. 우리는 복잡한 현실의 자리를 이 책을 다리 삼아 맞닥뜨리게 된다.

"단일 실체라도 (질서 있고 조화를 이룬 우주처럼) 너무 크고 복잡하여 그 단일성을 충실히 파악하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서로 다른 측면들이며, 이 측면들이 결합하여 하나가 되기는 쉽지 않다(기초물리학에서는 아직 어느 누구도 통일장 이론-unified field theory-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그러나 사람이 정립한 개념이 부적절하다하여 그런 부적절함이 실체의 단일성을 부인하는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 (286쪽)

▲ 요한 하인리히 숀펠트(Johann-Heinrich Schönfeld) '천사들과 성자들과 함께 있는 삼위일체'(La Sainte Trinité avec des anges et des saints, 17세기 作)

첫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어떻게 보았는가?

이 책에서 주구장창 다루는 질문, "첫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예배했는가?"는 미끼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이 질문이 갖는 의미는 분명하다. 이 질문에 손쉽게 '예'라고 답한다면 "예수가 하나님을 대신하고, 창조주이신 한 분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해 버리며, 하나님만 받으셔야 할 예배를 집어삼켜"(284쪽) 버리는 결과로 이어진다.

삼위일체 하나님에게 드려지는 예배는 단순히 삼위를 똑같은 방식으로 인식하고 경배하는 것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그래서 던은 예수가 "이스라엘의 한 하나님을 지닌 독특한 정체(identity)를 공유하는 혹은 그 정체에 포함된 이"(19쪽)라는 보컴의 주장이 불분명하다고 지적한다. 예수와 성부 하나님은 명확히 구분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던은 '동등'(equation)이라는 단어로 표현하는 게 더 낫지 않겠냐고 제안한다.

"예수가 하나님이실지라도, 그가 야훼가 아니요, 아버지가 아니요, 창조의 근원이 아니요, 마지막에는 (홀로) 만유 안에 만유가 되실 하나님께 복종할 이라면, '동등'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동등'이라는 말을 쓰면, 신약성경이 제시하는 다른 강조점들을 (중략) 더 풍성히 이해할 수 있다." (278쪽)

첫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어떻게 보았는지, 던의 결론으로 글을 맺는다.

"이 결과들이 풍기는 주된 인상은 첫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하나님이 몸소 인간에게 손을 내미셨음을 온몸으로 보여 주신 분으로 이해했다는 것이다. 이 예수는 진정 인간에게 다가오신 하나님이었고, 주(主)로서 하나님이 지닌 한 분 주라는 지위를 풍성히 공유하신 분이었다. (중략) 첫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는 하나님의 임재를 집약하신 분이요 체현하신 분이었다." (280~2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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