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6합창단이 김동수 씨가 입원한 병원을 찾았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자식을 잃어 아픈 사람들이, 사람을 더 구하지 못해 아픈 사람을 찾아 위로를 전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시민으로 구성된 416합창단이 4월 25일, 제주S-병원에 입원 중인 '파란 바지의 의인' 김동수 씨를 위해 음악회를 열었다. 서로 다른 아픔이지만 '아픈 사람끼리' 공감하는 게 있었다.

김동수 씨는 세월호 참사 당시 기울어 가는 배에서 자기 몸에 소방 호스를 감아 20명 정도를 구해 냈다. 그러나 아비규환을 겪으며 트라우마가 남았고, 정부와 사람들의 무관심은 병을 더 키웠다. 지난 4월 18일 세월호 생존자에 무관심한 정부를 규탄하며 제주도청 1층에서 자기 손을 흉기로 그었다. 그가 자기 몸을 상하게 한 건 벌써 세 번째다.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낮은마음교회 오준규 목사와 강영희 집사(리멤버0416), 광화문 봉사자 조미선 집사와 하명동 씨가 20일 제주로 달려와 김동수 씨를 병문안했다. 그 자리에서, 외롭고 힘들어하는 김 씨를 위해 무엇이라도 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마침 세월호 유가족들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결국 416합창단 차원에서 위로 공연을 하게 되었다.

25일 아침, 창현이 부모님, 시찬이 부모님, 차웅이 엄마, 예진이 엄마, 영만이 엄마와 봉사자들은 꼭두새벽 일어나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공연 시간보다 두 시간 더 일찍 도착해 노래를 연습하고 김동수 씨를 위해 현수막을 준비했다. 응원의 메시지를 남겼다. 유가족들은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썼다. 같이 이겨 내자고, 끝까지 살자고.

▲ 가족들과 시민은 김동수 씨를 위한 현수막을 만들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내가 더 못 구해서 미안하지"

음악회 시작 시간이 다가왔다. 창현 아빠와 예진·영만·시찬 엄마가 직접 김동수 씨를 데리러 갔다. 트라우마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김 씨의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없어 유가족들은 조심스러워했다. 하지만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자 긴장감은 금세 사라졌다. 창현 아빠 이남석 씨와 김동수 씨의 짧은 대화에 병실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눈물을 흘렸다.

- 동수야, 우리가 위로해 주러 왔어. 힘내야지. 몸 생각, 애들 생각 해야지.
- 여기까지 와 줘서 감사하네. 나는 뭐 해 준 것도 없는데. 내가 더 못 구해서 미안하지. 그때 다 구조할 거라는 해경 말을 믿고 그냥 나온 내 잘못이지….
- 동수보다 (아이들을) 더 많이 구한 사람이 어디 있어….

김동수 씨는 양팔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총 서른두 바늘을 꿰맸다. 환자복을 입고 링거를 맞고 있는 김 씨의 모습이 더욱 초췌해 보였다. 유가족들은 김 씨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 창현 아빠가 김동수 씨의 손을 잡고 일으켰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음악회가 시작됐다. 416합창단과 봉사자들, 제주에서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까지 50여 명이 모였다. 길가는밴드 장현호 씨와 광화문 금요 기도회를 시작한 이학산 목사가 각각 준비한 노래를 했다.

김동수 씨와 아내 김형숙 씨도 노래를 준비했다. 큰딸 예람 씨가 피아노로 거들었다. 김 씨가 부른 노래는 CCM '힘을 내세요'와 가수 서유석의 '홀로 아리랑'이었다. 유가족 엄마들부터 눈물을 뚝뚝 흘렸다.

▲ 김동수 씨는 아내와 함께 '힘을 내세요'를 불렀다. 가족들은 따라 부르며 울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416합창단은 동요 '오빠 생각', 이지상의 '사랑합니다', 일본 곡을 번안한 '인간의 노래', 꽃다지의 '손을 잡아야 해'를 불렀다. 416합창단은 눈물을 흘리며, 닦으며 노래했다. 사람들은 유가족의 노래에 위로를 받으면서도 죄송함을 느꼈다. 위로받아 마땅한 사람에게 위로를 받기 때문이다. 두 번째 노래를 마친 후 창현 엄마 최순화 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김동수 씨가 왜 아픈가요. 아시죠? 그렇습니다. 물에 빠진 우리 아이들을 구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계산 없이 물에 빠져 있는 사람들 구해 준 이유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아픕니다.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일 했으면 자부심 가지고 긍지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데, 왜 이렇게 아파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김동수 씨 아프지 마세요. 빨리 일어서 주세요. 예람이 예나가 당신의 딸이지만, 당신이 구해 준 아이들, 그 아이들도 당신의 자녀들이잖아요. 이제 그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습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그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어떻게 아픔을 딛고 살아가는지 보셔야 하잖아요. 같이 지켜봐요. 우리 아이들 잘 이겨 낼 겁니다. 그 아이들도 아픈 아이들인데, 당신이 구해 준 그 고마움 덕분에 잘 이겨 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아픈 사람끼리 서로 위로하면서 힘내자고, 같이 으쌰으쌰 하면서 잘 이겨 냈으면 좋겠습니다."

공연을 마친 후 유가족과 김동수 씨 가족이 앞으로 나와 케이크에 초를 불었다. 유가족들은 김 씨 가족에게 직접 만든 팔찌와 응원의 메시지를 쓴 현수막, 편지를 선물했다.

▲ 최순화 씨가 말할 때 김동수 씨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방치되는 사람들

세월호 참사의 또 한 가지 비극은,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 방치되고 있다는 것이다. 유가족도, 미수습자 가족도, 생존자도 그렇다. 각각 조금씩 다른 정신적 충격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이게 언제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세월호 참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하는 이유다.

'세월호 의인'으로 추앙받던 것도 한 순간. 지난 2년간 김동수 씨는 자신이 받은 피해를 보상해 달라고 외쳤다. 그 피해를 스스로 입증하며 살았다. 당연히 정부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인데, 김 씨가 직접 나서지 않으면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았다. 몸이 맘대로 움직이지 않고, 밤마다 악몽에 시달려 식은땀으로 침구를 적시고, 이유를 알 수 없이 몸이 아픈데도, 병원에서는 약만 더 얹어 줄 뿐이었다. 생계를 이어 가기도 힘든데 정부는 치료비마저 제대로 지원하지 않았다.

호소에 호소를 거듭해, 3개월 전부터 김동수 씨는 지역 주변을 정리하고 쓰레기 불법 투기를 감시하는 야간 공공근로를 하고 있다. 하지만 김 씨는 손에 힘이 안 들어가 집게도 사용하지 못해 손으로 쓰레기를 일일이 골라낸다. 겉보기엔 멀쩡하지만 자기 맘대로 움직이지 않는 손을, 김 씨는 저주하고 있다. 밤에 김 씨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이 안심이 안 돼 아내 김형숙 씨가 늘 동행한다. 그러고 나서 손에 쥐는 건 몇 십만 원. 정상적인 생활이 아니다.

김형숙 씨가 음악회 중간에 한 말을 들어 보면 김동수 씨와 그 가족이 지금 얼마나 힘든 상태인지 짐작할 수 있다. 2016년 대한민국은, 피해를 당한 사람이 받은 피해가 얼마나 심각한지 몸으로 입증해야 하는 나라다.

▲ 김형숙 씨가 남편 김동수 씨를 측은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그럼에도 오늘 이곳을 찾아 주신 많은 분들, 특히 416합창단에게 무어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요. 사실 유가족 분들이 많이 힘든 시기인 줄 알면서도, 고통받는 남편의 아픔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제 모습이 참 어이가 없기도 합니다. 차마 이해를 구하기조차 염치가 없습니다. 감사한 마음 이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음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시간, 별이 되고 꽃이 되고 나비가 되고 천사가 된 아이들도 우리와 함께 손잡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 선 김에, 정부와 기관에 한 가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어찌 됐든 지금 남편은 악몽과 고통으로 힘들어하고 있고, 무엇보다 치유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제 저 혼자, 제 딸들, 몇몇 지인의 힘으로는 남편을 치유하고 돌보기에 힘이 들고 버겁다는 것입니다. 부디 정부와 관계 기관이 나서서, 좋은 치료 기관을 선정해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남편도 스스로 입원을 하기에는 너무 억울하다고 합니다.

제발 이 나라가, 아직은 좋은 일 한 사람이 살 만한 세상이라는 것을 보여 주십시오. 이러면 누가 남이 어려운 일에 처했을 때 손을 내밀겠습니까. 사실 남편이 구조하는 순간에 무엇을 계산하고 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제발 예전의 남편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아내와 딸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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