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한국교회에서 '섹스'는 금기어에 속한다. 가끔 목사·교인들의 성추행·성폭력이 기사화되긴 하지만 '섹스'라는 단어는 입에 올리지 않는다. 청년들도 마찬가지다. 교회도 성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2016년을 살아가는 교회 청년에게 강조되는 건, 여전히 '혼전 순결'이다.

얼마 전 <뉴스앤조이> 기사 제목에 '오르가슴'이라는 단어가 나갔다. <이기적 섹스>(동녘)의 저자 은하선 씨 인터뷰였다. 기사가 나간 후 댓글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대부분 은하선 씨를 욕하거나 기자와 <뉴스앤조이>를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솔직하다. 이제는 이야기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는 의견은 소수였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교회에서도, '성(性)'은 금기다. 꼭꼭 숨기고, 쉬쉬하는 분위기다. 교회 청년들은 수련회 때 "야동(야한 동영상) 본 것, 자위한 죄를 회개한다"고 울부짖는다. 교회에서 성을 말하는 거의 유일한 시간이다.

그동안 꾸준히 연애·성에 대해 이야기해 온 사람이 있다. 김지윤 소장(좋은연애연구소)은 대학생 선교 단체 IVF에서 오랫동안 간사로 활동했다. <달콤 살벌한 연애 상담소>(포이에마)라는 책을 펴내고 TV 토크쇼 등에도 출연했다. 400여 교회를 돌며 청년과 목회자에게 성과 관련한 주제로 이야기를 해 왔다. 교회 안의 성에 대해, 그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했다.

4월 14일, 서울 신사동 한 카페에서 김 소장을 만났다. 기사에 달릴 댓글이 걱정되긴 하지만, 성에 대해 이야기할 곳 없는 청년들이 안쓰러워 인터뷰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교회가 성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지 않았다며, 이렇게 가다가는 교회와 사회의 괴리가 더 커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김지윤 소장과 대화한 내용을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 서울의 한 카페에서 김지윤 소장을 만났다. 김 소장은 미리 준비한 질문에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400여 교회를 다니며 청년들과 소통한 김 소장이 풀어낼 이야기가 궁금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 김 소장에게 질문하는 교회 청년들이 많은지 궁금하다. 주로 어떤 내용을 문의해 오는가.

보통 이메일로 문의한다. 교회 안에 있는 청년과 일반인이 보내는 내용 사이에 큰 차이는 없다. 수위에서 차이도 거의 없다. 그 친구들이 고민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에 문의하는 것이다. 다를 것이라는 생각 자체가 교회와 사회에 대한 편견을 보여 준다. 일반인들은 자유롭게 별 도덕적 기준 없이 성적 쾌락을 추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목회자도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개인마다 경우가 다르다. 개인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에서 하는 강의안과 일반인 대상 강의안이 내용 차가 없다. 똑같다. 교회에서 할 때는 내가 가진 신앙을 배경으로 조금 더 풀어서 얘기해 주는 정도다. 일반 친구들에게 얘기할 때는 하나님·예수님·성령님이라는 단어를 안 쓸 뿐 내용은 같다. 처음에는 조금 다르게 접근했는데, 강의를 계속하면서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고민도 같고, 얘기해 줄 사람이 없는 것도 같다.

- 양쪽의 또 다른 공통점이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

사회나 교회나 조언해 주는 내용은 다르지만 쉽게 이야기할 수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얘기할 곳이 없어 끙끙 앓기만 하는 것이 안쓰럽다. 사회 친구들은 쉽게 조언해 주는 경향이 있는 반면 교회에서는 "주님께 죄를 지은 것"이라고 말한다.

누군가 당신에게 "계획에 없었는데 나 어젯밤 그와 혹은 그녀와 밤을 보냈어. 너무 혼란스러워. 감정이 복잡해"라고 얘기한다면 무슨 대답을 해 줄 수 있을까. "누구나 다 느끼는 감정이야. 관계가 너무 늦은 것 아니냐. 우린 벌써 했다"라고 하거나 "회개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 외에 필요한 이야기는 따로 있다.

어떻게 해서 그 과정까지 가게 됐는지, 지금 어떤 느낌이 드는지, 두려운 건 무엇인지…. 이런 현상 자체를 아무 재단 없이 그냥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경우, 고립된다. 물어볼 수 있는 곳이 별로 없다.

남자들이 더 불쌍하다. 물어볼 곳이 없으니 인터넷에 물어본다. 거기서 대답하는 분들이 성적 지식이 훌륭하다든가 하지 않다. 그러다 보니 남자들이 남녀 사이 관계적인 성을 배울 기회는 별로 없고 야동 보면서 기술·시각적인 것에만 익숙해진다.

한번은 남자 대학생들만 모아 이야기 나누는 기회가 있었다. 자율 강연이었는데 신청해서 오는 친구들이 더 신기했다. 아줌마 여자 강사가 하는 성교육이 뭐가 궁금하기에 100명이나 왔을까. 이야기 나눌수록 얘들이 물어볼 곳이 없다는 게 너무 안쓰러웠다.

청년들 고민 들어주지 못 하는 교회

- 교회에서는 말할 기회가 더 없을 텐데.

교회는 더하다. 교회 안에서는 말을 꺼낼 수도 없다. 교회에서 성은 곧 죄악이었다. 교회에서 말 꺼내는 것 자체가 어렵다. 내적 치유할 때나 성에 대한 과거사를 이야기하지, 자연스럽게 심리·인문학적으로 듣는 경우는 거의 없다.

교회에서 성은 아름다운 것, 좋은 것, 잘 누려야 하는 것이라고 얘기한 후 질문을 받으면 "성이 아름답다고 하는 게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성은 음란하고 우리가 조심해야 하는 쾌락이 아닌가요"라고 한다. 그런데 솔직히 오르가슴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거다.

집에서는 교육 부재, 교회에서는 억압·단죄·정죄한다. 그러다 사회에 나오면 엄청난 변화와 자유가 쏟아진다. 교회 다니던 친구들은 자유롭거나, 완전 폐쇄적인 관계를 추구하거나, 양극을 달린다. 중간 지점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그에 대한 대비책도 없다.

▲ 김 소장은 한국의 청년, 특히 교회 안의 청년들의 성 고민을 들어 줄 곳이 없다고 했다. 가까운 사람에게 터놓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현실적으로 다니는 교회 목사에게 고민을 상담할 수도 없다고 했다. (세바시 동영상 갈무리)

- 교회는 '혼전 순결'이라는 단어만 강조한다.

'혼전 순결'만 강조하니까 사회와 괴리감이 엄청나다. 솔직히 내가 여성이라 그런지 이 단어도 불편하고 억압적이라고 느낀다. 혼전 순결이라고 할 때 무엇이 순결의 기준이 될 것인가 모호하다. 이 단어를 놓고 신학교 교수들과 이야기하면 전혀 수용하지 않는다. 젊은 남자 교수들은 일리 있는 말이라고 하지만, 대부분은 우리가 범접할 수 없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성역으로 받아들인다.

혼전 순결이라는 말은 아주 오래된 말이다. 진짜 해야 할 이야기가 이 단어로 다 덮여 있다. 더 진솔한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는 능력도 없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목사님들이 많은 것도 현실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데 어려우니 나를 불러서 대신 이야기해 주기 원하고, 청년들과 대화의 물꼬를 트려고 하는 젊은 목사들이 많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그 입장에서 고민을 풀어내려고 하는 목회자도 분명 있다.

- 그럼에도 교회에서는 우리 삶과 밀접한 '성'을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맞다. 교회에서는 성이라는 개념을 완전한 타자처럼 삶과 분리해서 이야기한다. 말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문제로 인식한다.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이 느끼는, 언급해 주기 원하는 부분인데 전혀 건드리지 않는다.

나는 아이를 키우는 40대 워킹 맘이다. 기독교 배경을 갖고 있으나 정작 교계에서는 기독교적인 느낌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중간 지대에 있는 셈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주님의 길을 떠났다고 비판받기도 한다.

가끔 강의를 하러 간 교회에서 강의하기 전에 설교 들을 때가 있는데, 우리 삶과 너무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는 경우를 봐 왔다. 설교를 들어도 내 삶과 매칭이 안 된다. 반대인 경우도 물론 있다. 교회가 젊은이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비기독교인과 소개팅한 후에 눈치를 봤다는 청년도 많다. 교회에서 왜 눈치를 주는 걸까. 그 청년 앞날을 챙겨 주지도 않을 건데.

- 청년들에게 성을 언급하지 않지만, '결혼하면 만사 오케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초혼 연령은 점점 높아지고 혼자 살겠다고 결심하는 사람도 늘어간다. 앞으로도 교회가 이전과 같이 '혼전 순결'만 외칠 수 있을까.

독신으로 사는 여부를 떠나, 일반적으로 성욕을 느끼는 시점부터 관계적으로 성을 안전하게 풀 수 있을 때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이건 획일화하는 것보다 경우마다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 10년 동안 사귄 애인과 경제적인 문제로 결혼을 못 하고 있는 연인이 있다. 젊은 친구들이 10년을 사귀는 중에 잤다고 얘기한다. 그러면 나는 먼저 꼭 안아 줄 것 같다.

반면 20대 친구가 "나는 만나는 남자마다 잔다. 난 너무 자유롭다"고 얘기하면 앉혀 놓고 이야기를 할 거다. 사람마다 섹스를 정의하는 신념, 상황, 태도가 다 다르다. 그 순간을 경험한 자아의 건강함도 다르다. 누군가와 잤다, 안 잤다고만 가지고 관계를 정의하기 힘들다. 그건 내 딜레마이기도 하다.

현재까지 내 생각은 애인이랑 "자도 돼"라고 단언하며 그에 따르는 여러 가지 딜레마를 빼고 얘기하자는 건 아니다. 좀 더 다양한 관점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무 자르듯이 획일화하면 이야기하기 어렵다.

결혼했지만 부당한 부부 관계도 있다. 결혼이라는 관계가 시작됐고 관계 안에서 많은 문제 제기가 있어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결혼했기 때문에 그 안에서 일어나는 문제는 '문제'라고 치부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미혼이든 비혼이든 여러 가지 경우를 고려해야 한다. 결혼 제도 밖에 있지만 정서적인 친밀감은 부부의 수준을 넘어선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서로에 대한 책임감이 일반 부부를 넘어선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 사람들이 건강한 성생활을 한다면 "20대 애들은 일단 사귀면 다 잔다"는 단순한 관점과 같다고 보기 어렵지 않을까.

사실 교회에서도 이 정도까지는 얘기한다. 그렇다 해도 청년들은 혼란스러워한다. 그래서 이후에 목사와 청년들이 토론 및 논의를 이어 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 김지윤 소장은 그동안 기독교 안에서 청년들의 '성'을 말하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너무 기독교인들끼리만 논의해 온 것 같다고 했다. 조금 더 큰 그림을 그리려면 비기독교인 전문가들의 다양한 관점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김지윤)

다양한 전문가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교회 됐으면

- 교회에서 '혼전 순결'을 강조하다가도 사귀던 청년들이 임신하면 바로 결혼시키는 경우가 많다. 원치 않는 임신이지만 '책임진다'는 명목하에 결혼하는 청년들도 있다. 이 부분도 사회와 의견 차가 있다.

사실 낙태는 조심스러운 부분 중 하나다. 낙태를 여성의 권리로 보는 관점을 포함해 고려할 것이 다양하다고 본다. "임신했기 때문에 결혼해야 한다"면 미리 생각해 볼 부분이 많다. 요즘 자주 보도되는 아동 학대 문제만 봐도 그렇다. 준비되지 않은 부모만큼 위험한 것이 없다.

누군가 정서·현실적인 자원이 전혀 없는데 도덕적인 당위성만으로 결혼했다. 결혼한 후 그 아이가 가정에서 진정한 권리를 하나도 누리지 못하고 성장한다. 도덕적 당위성을 주장했던 사람들이 그 아이나 부부의 삶을 책임져 주는 것은 아니지 않나. 누구도 쉽게 단정적으로 이야기하거나, "너 이렇게 해야만 해"라고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상담을 청해 오는 경우를 보면, 대부분 임신했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안다. 원치 않는 임신 후 좋게 풀리면 결혼까지 가겠지만, 대부분 해프닝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단순하게 딱 도덕적인 의무감만 강조하기에는 위에도 언급했지만 고려해야 할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제발 교회가 이런 딜레마에 빠진 젊은 연인들을 단죄하거나 정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교회에서 낙태에 대한 생각을 모으는 작업을 하면 좋겠다. 목회자 관점에서 "무조건 안 돼"라고 할 수 있다.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넌 대답만 하면 돼) 느낌이다. 답은 이미 '낙태=죄'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지적인 문제 제기는 불가능하다.

똑같은 답으로 간다 하더라도 설득 과정이나 대화가 없다. 타당성 있는 답이라 하더라도 설득과 대화 과정이 없다면 많은 기독교인이 가진 지적 의문에 대해 전혀 공감이 없는 거다. '답정너'에 순종하지 않으면 당신은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아닌 세속적이고 세상에 물들었다고 단정한다. 그렇게 가면 어떤 대화도 논의도 불가능하다.

낙태 문제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이렇다. 다양한 관점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초대해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 전통적인 목회자, 진보·보수 관점, 여성학자, 정신과 의사, 낙태를 반대하는 의견을 가진 의사가 필요하다. 여러 사람들의 지식을 모으는 게 중요하다.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을 함께 초청해야 한다. 매번 기독교인만 모이는 포럼에서는 특별한 답이 나올 수 없다. 이미 정해져 있는 답을 공식적으로 공표할 뿐 의미가 별로 없다. 일반적인 사회 지식에 대해 들어야 한다. 임상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배울 것은 배우고, 그것과 우리 신앙을 어떻게 조율하고 발맞추어 갈지 고민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계속 교회 안에서만 아등바등한다고 답이 나올까.

합의가 돼서 어떤 결론에 도출되지 않더라도 중간중간 참가자가 궁금한 질문을 던질 수도 있지 않을까. 궁금한 질문을 던지고 답하는 과정에서 파생될 수 있는 또 다른 질문들이 있을 수 있다. 교회가 나아가야 할 길 등을 물어보고 대답하고, 싸우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면 좋겠다. 학문적인 지식, 사회 통찰이 교회 안에 들어오지 않으면 교회는 10, 20년 안에 살아남을 수 없지 않을까.

▲ 김지윤 소장은 기독교인이라면 붙잡고 고민을 상담할 수 있는 친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독교인이라면 '누구의 이웃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도 깊게 생각해 봐야 한다고 했다. (사진 제공 김지윤)

기독교인이라면, 고민을 털어놓고 싶어 하는 친구가 되자

- 대중문화에서 묘사되는 연인들의 현실과 교회 안 청년들이 느끼는 현실은 많이 다르다. 믿지 않는 친구가 "나 요즘 사귀는 애랑 잤다"고 고백해 온다면 기독인 청년은 어떤 답을 해 줄 수 있을까.

만약 내 친구가 남자 친구랑 열심히 잘 자는 애다. 친구를 사랑한다면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까. 청소년부 선생님인데 고3 여자애가 남자 친구랑 잤다고 고백해 온다면 기독교인으로서 해 줄 수 있는 말이 "너 그건 죄"가 먼저일까.

나 같으면 산부인과를 데려가겠다. 상처는 없는지, 감염되지는 않았는지 안전에 대해 최대한 신경을 쓰겠다. 그 후에 다른 이야기를 하겠다. '그건 죄'라고 정죄하기 전에 말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친구가 남자 친구와의 잠자리 이야기를 한다면, 일상적으로 궁금하게 생각할 수 있는 것들부터 시작해 다양하게 대화할 수 있을 것 같다. 콘돔은 어느 메이커를 쓰는지 물어보기도 하고, 콘돔 선물도 해 주겠다.

경직되기 전에 그렇게 얘기해 주겠다. 그래야 그 친구가 무슨 일이 생겼을 때 기독교인 친구에게 자기 문제를 얘기하고 싶지 않을까. "내 친구가 곤란한 일을 겪고 있을 때, 나에게 얘기하고 싶어서 올 수 있을까" 질문을 해 봐야 한다. 기독교인이라면 '얘기하고 싶은 대상'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내 성생활을 이야기하면 내 죄가 늘어날 것 같은 말을 해 주는 사람 말고, 계속 고민을 털어놓고 싶은 사람 말이다.

- 교회에서 동성애 혐오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연애 상담을 하면서 만난 동성애자는 없나.

20년 전, 친구가 동성애자였다. 지금과 비교하면 동성애에 대한 지식이 더 적을 때였지만 혐오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이성애자들이 연애하면서 겪는 고민을 똑같이 겪고 있었다. "내 전화를 안 받는데 왜 안 받을까", "어제 싸웠는데 먼저 전화해야 할까", "곧 헤어질 것 같은데 어떡하지" 등등 그냥 일반 연인이 사귀면서 경험하는 것과 같았다.

교회에서는 '동성애=항문 섹스=에이즈'로만 이야기한다. '동성애가 죄냐 아니냐'보다 중요한 우리의 가치는 '우리는 누구의 이웃이 될 수 있는가'라고 생각한다. 동성애는 무조건 항문 섹스니까 위험하다는 걸 이야기하기 전에, '기독교인은 누구의 이웃이 될 수 있는가'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게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해 봐야 하는 문제다.

교회의 성 소수자 혐오를 보면, 집단적인 공포감에 시달리는 것 같다. 사실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가정 문제는 이성애자들이 일으키는 것이다. 에이즈는 동성애로만 퍼지는 것이 아니다. 이성애자들의 무분별한 섹스를 통해 퍼지기도 한다. 항문 섹스 이후 발생하는 문제도 개인이 감수하고 감당해야 할 부분이다. 개인이 감수해야 할 고통인데, 사소하고 개인적인 남의 일까지 참견하며 이야기한다.

동성애를 혐오하는 사람들에게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를 구분할 수 있냐고 물어보면 대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소아 성애와 동성애, 수간은 전혀 다른 문제인데 이걸 하나로 연결해서 말한다. 이 분야 전문가의 이야기를 듣고, 이 세 개가 어떻게 다른지 이야기를 들어 보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교회는 혐오감만 조장한다. 그런 교회 현실이 폐쇄적이라는 걸 말하고 싶다.

교회가 정말 동성애자를 잡고 싶으면 교회 안에서 모텔 드나들면서 불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교인들부터 잡아들여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사람들한테는 뭐라고 지적하지 못하면서 동성애자들에게만 뭐라고 하는 건 너무 나쁘다. 사회적으로 소수고, 설 자리 없는 사람들을 짐승만도 못 한 사람으로 묘사해 버리면 기독교인은 누구의 이웃이 될 수 있을까.

교회가 동성애자의 이웃이 돼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은 적대감 없이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슬픈 자들과 함께 울고 기쁜 자들과 함께 웃는 것이 기독교인이지 않나. 현재 기독교는 설득, 대화, 공감 다 빠진 모습이다. 기독교인이 남의 이야기 들어주는 사람, 속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 좋은연애연구소가 하고 있는 일, 앞으로 하고 싶은 일 등을 소개해 달라.

교회에서 성희롱 예방, 양성평등 교육을 한다. 상담하다 보면 교회 안에서 원치 않는 스킨십으로 피해를 본 경우가 상당히 많다. 가해자는 대부분 남자 리더다. 그게 목회자든 목장 리더든 권위가 있는 사람이다. 위로한다며 안아 주고 밤에 불러내서 드라이브 시켜 주고, 기도하다 너에게 위로하라는 마음을 주셨다며 밤 12시에 전화해서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노래를 불러 준다.

이걸 거꾸로 여자가 그랬다고 생각해 보라. 교회에서 여성 리더가 젊은 남자 청년에게 똑같이 했다고 가정하면 이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일인지 알 수 있다. 하지만 현재 교회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 내에서도 성희롱 예방 교육, 제대로 된 스킨십 교육이 꼭 필요하다.

청소년 성교육도 하고 싶다. 다양한 전문가가 팀을 이뤄 콩트를 하면서 아이들과 순간순간 대화를 나누는 방식은 꼭 도입해 보고 싶다. 일방적인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여러 관점을 설명하면, 그걸 들은 청소년들이 스스로 사고하고 논의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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