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에 대한 민주적 이해 방법

많은 사람들은 갈등을 싫어한다. 그래서 '갈등 극복'을 앞세우며 갈등 없는 사회를 지향한다. 실제로 나에게 이렇게 반론하는 사람도 있었다. 

"정당에 참여하고 결사체를 만드는 일은 갈등을 불러들이기 쉽다고 생각한다. 갈등을 없애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고 부추길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꺼려진다. 특정 입장이나 견해를 갖는 게 사회를 더 분열시킬 수도 있다고 보는데, 그렇지 않은가?"

안타깝지만, 인간의 정치에서 싸움과 갈등은 없앨 수 없다. 다만 줄이고 절약할 수는 있다. 갈등을 줄이고 절약하기 위한 접근이 민주주의라고 할 수도 있다. 갈등이 없다면 민주주의는 존재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 누구나 힘들어 하는 이 갈등의 문제를 좀 더 살펴보기로 하자.

현실주의 정치철학의 냉정한 관점에서 보면, 정치란 인간이 가진 싸움의 본능을 처리한다. 사회가 내전이나 무정부 상태로의 퇴락을 막는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를 '갈등을 둘러싼 갈등의 체계'라고 정의한다. 그것의 민주적 성격을 '갈등과 통합의 변증법'으로 이해하는 것은 분명 설득력이 있다. 

오늘날 세계적 비극의 진원지가 되고 있는 시리아를 생각해 보자. 정치의 기능이 멈췄을 때, 그 결과는 내전이었다. 20만 명 안팎의 사람들이 사망 또는 실종된 것으로 막연히 추정되는데, 사실 제대로 된 통계조차 작성될 수 없다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인지 모른다. 실업률이 60%가 넘는다는데, 60%의 실업률이란 경제 역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 외엔 아무 의미가 없는 수치라 할 수 있다. 

수백만의 난민 행렬 역시 정치체제로 시리아의 해체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종교나 부족 내지 인종 갈등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정확치 않다. 그런 갈등은 다른 나라도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갈등을 다룰 구속력 있는 절차나 과정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다.

다시 말해 정치의 기능과 역할이 작동하느냐 아니냐의 문제에 있다. 정치가 사라지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가 된다는 토마스 홉스의 지적은, 시대와 지역을 가로질러 적용될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사에서 공적 선택을 둘러싼 갈등은 제거될 수 없다. 모두가 동일한 의견을 갖도록 하거나 모두를 이타적 존재로 바꿀 수도 없다. 보수와 진보가 추구하는 가치는 서로 다를 수밖에 없으며, 그들 사이의 불완전한 상호 이해는 인간의 정치가 갖는 고질적인 요소다. 

그러나 그러한 불일치와 불완전한 이해는 그것에 맞추어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할 조건이지 좋은 사회로의 길을 방해하는, 단지 극복돼야 할 장애물이 아니다. 갈등을 없앨 수는 없으나 줄일 수는 있다. 해결이 불가능해 보이는 갈등조차도 다루기에 따라서는 조정 가능한 공통의 의제로 만들 수 있다. 차이를 없앨 수는 없어도 서로에게 구속력을 갖는 정당한 절차와 과정에 합의할 수는 있다. 이게 민주주의고, 그래서 민주주의다.

많은 사람이 자신과 견해를 달리하는 상대 파당을 '우파 꼴통'이니 '좌파 꼴통'이니 하면서 대화 불능자로 규정하곤 한다. 때로 그것은 의견을 달리하는 동료 시민에게 자기주장의 설득력을 받아들이도록 노력하는 데 있어 게으르거나 불성실하다는 것을 의미할 때가 많다.

이른바 1)'숙의 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를 발전시키고자 했던 여러 정치철학자들이 강조하듯, 갈등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민주정치 역시 일정한 규범성을 필요로 한다. 우선 반대편의 입장을 규정하는 데 있어 거부감을 최소화하는 주장을 개진하는 것이 정치적 싸움의 일차적 규범이 돼야 한다. 자신이 반대하는 견해를 가진 상대 파당과 내가 속한 파당이 이해하고 있는 것 사이에 의미 있는 수렴 지점이 있는지를 찾으려는 노력도 중요하다. 논의를 해도 문제가 남게 되고 그것이 오해의 산물로 볼 수 없는 차이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면, 그때는 반대편과 조정을 추구해야 한다. 나의 완전한 승리와 상대의 완전한 절멸은 민주정치가 추구하는 규범이 될 수 없다.

1)숙의 민주주의: 참여의 양을 확대하는 접근에서 참여의 질을 높이려는 접근으로의 전환을 강조하는 이론이다. 시민의 의견과 선호를 사전에 주어지는 고정된 것으로 본다. 그것을 단순히 집약하는 것으로 공적 결정을 도출하는 것이 아니라, 숙의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시민의 의견과 선호가 변화될 수 있다고 전제한다. 혹은 선출된 대표에게 공적 결정을 전적으로 위임하는 것이 아니라, 결정 과정에 시민은 물론 관련 이해 당사자와 전문가들의 참여와 토론을 개방하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독립된 민주주의의 유형 내지 모델이라기보다는 참여와 공적 결정의 내용을 심화하기 위한 이론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숙의적 참여가 평등한 참여를 확장하기보다는 교육 자산을 많이 가진 엘리트들에 편향적이라는 비판도 많다. 숙의 민주주의를 직접민주주의 의 한 유형으로 보는 오해도 있는데, 숙의 민주주의 주창자들 대부분은 그런 생각 자체를 '넌센스'라고 말한다.  

박상훈

2015년부터 정치발전소 학교장을 맡고 있다. 서울대학교 경영대를 졸업한 후 고려대학교에서 정치학 석·박사를 학위를 받았다. 2000년부터 2007년까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로, 2007년부터 2014년까지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로 활동했다. 저서로는 <정당의 발견>, <정치의 발견>, <어떤 민주주의인가> 등이 있다.

박상훈의 기독인을 위한 정치

제1부 기독인에게도 정치에 대한 소명은 있다

1. 기독교와 정치학의 대화

2. 불완전한 인간의 정치

3. 인간의 자유의지와 민주적 자치

4. 민주정치를 위한 참여의 열정

5. 누가 정치를 이끌어야 할까

6. 신은 민주적 과업을 좋아하신다

7. 민주주의자는 정치주의자다

제2부 우리에게 정치란 무엇이고 또 무엇일 수 있을까

8. 인간은 왜 정치적 동물인가

9. '진정성의 정치'가 중요하지 않을까

10. 철학적 인간 vs. 정치적 인간

11. 정치의 핵심으로서의 통치론

12. 정치적이되 아름다워야 한다

제3부 민주주의자가 갖춰야 할 정치적 이성

13. 소명으로서의 정치

14. 민주주의와 결사의 자유

15. 정당 친화적인 시민 문화가 필요한 이유

16. 갈등에 대한 민주적 이해 방법

17. 사회 갈등과 정당정치

18. 노동의 존엄성에 기초를 둔 공동체

19. 시민적 삶의 민주적 기초

20. 끝없는 여정의 민주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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