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유신 정권, 군사독재 때도 없던 일이다. 사상 유례없는 교단 총회장에 대한 경찰의 출석요구가 목사들을 길거리로 불러냈다.

4월 7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 광장에 목회자 200여 명이 모였다.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교단 소속 목회자들과 신학생, 타 교단 목사들이었다. 흰 가운을 입고 보라색 스톨을 두른 목회자들은 평소 관광객으로 붐비는 대한문 앞을 채웠다.

이들은 경찰과 박근혜 정부에 항의하기 위해 자리를 마련했다. 기장 총회는 지난 3월 21일 고난주간 동안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시국 기도회'를 열었다. 이때 경찰이 십자가를 앞세워 행진하는 무리를 가로막았고 길 한복판에서 성찬을 집례해야 했다. 성찬식을 준비하는 과정에도 경찰과 몸싸움이 있었다. 후에 경찰은 도로교통법과 집시법을 위반했다며 경찰에 출석하라는 요구서를 최부옥 총회장에게 보냈다.

▲ 4월 7일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가 시국 기도회를 열었다. 대한문 앞에서 진행된 기도회에는 소속 교단 목사, 신학생, 타 교단 목사들까지 200여 명이 참가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대한문 앞에 자리 잡은 목사들은 시국 기도회로 행사를 시작했다. '경찰의 종교 탄압 저지와 종교의 자유(헌법 제20조) 수호'를 위한 기도회였다. 총회 이종화 부서기가 "정치권력으로 인해 민주 세력과 종교가 탄압받고 있다. 현 정권이 잘못을 회개하고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정부로 다시금 거듭날 수 있도록 인도해 달라"고 기도했다.

권오륜 부총회장이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그는 권력자들이 교회를 한 줌밖에 안 된다고 우습게 보며 위협과 폭행을 일삼고 있다고 했다. 권 부총회장은 "이럴 때일수록 교회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신 예수님 말씀을 기억해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추어야 한다"고 했다.

▲ 예배 시작 전 참가자들은 순서지와 함께 나무 십자가를 받았다. 목사들은 기도회가 끝난 후 경찰청으로 행진하는 동안 십자가를 손에 들고 구호를 외쳤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교회와사회위원회 김경호 위원장은 왜 길에서 시국 기도회를 열 수밖에 없는지 설명했다. 그는 총회장 출석요구는 기장 총회를 핍박하는 중대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경찰이 총회를 겨냥한 것도 이미 심각한 일인데, 지난 목요일 광화문광장에서 있었던 신원 미상인의 목사 폭행 사건은 '표적 테러'라고 했다. 김 목사는 "이후에도 비슷한 일이 계속된다면 순교의 각오로 종교를 탄압하는 정권과 맞서 싸우겠다"고 외쳤다.

배태진 총무는 지극히 평화로웠던 집회를 막은 것은 경찰인데 적반하장으로 총회장 출석을 요구하고 있다고 소리 높였다. 그는 교단을 상징하는 대표자를 소환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초유의 일이고 현 정부는 상식이 없는 정권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세계교회협의회·아시아기독교협의회 등 국제단체에도 이를 알려 연대해 나가겠다고 했다.

▲ 기도회를 마친 후 참가자들은 서대문 경찰청으로 향했다. 맨 앞 십자가를 선두로 때로는 조용히 때로는 찬양하며 길을 걸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기도회를 마친 목사들은 십자가를 내세우고 서대문 경찰청까지 1킬로미터를 행진했다. 경찰과의 충돌은 없었다. 오히려 경찰은 일차로를 내어 주며 목사들이 안전하게 행진할 수 있도록 도왔다. 행진 선두에는 성경·촛불·십자가가 자리 잡았다. 참여자들은 다섯 명씩 줄 지어 찬송을 부르다 "종교 탄압 중단하라, 집회 자유 보장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걸었다.

경찰청까지 행진한 것은 항의 서한을 전달하기 위해서다. 강신명 경찰청장에게 서한을 전달하려 했으나 경찰은 강 청장이 자리에 없다며 목사들이 들어갈 수 없도록 막았다. 참가자들은 경찰청 정문에 주저앉아 잠깐 동안 구호를 외쳤다. 한때 경찰 병력이 나와 목사들을 막아서고 경찰들 손에 들린 무전기에서 나오는 말들이 빨라져 긴장감이 고조됐다.

▲ 경찰청 정문에 도착한 목사들이 십자가를 들고 '종교 탄압 중단하라'며 구호를 외쳤다. 항의 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경찰청으로 들어가려는 목사들과 막아서는 경찰이 대치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경찰은 민원 안내실에서 항의 서한을 접수하겠다고 했으나 총회 임원진 및 목사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들은 반드시 정문을 통과해 항의 서한을 전달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결국 삼십여 분의 기다림 끝에 경찰청 고위 관계자가 항의 서한을 받았다. 참가자들은 마지막 찬송을 부르고 최부옥 총회장의 축도로 해산했다.

▲ 한국기독교장로회 교회와사회위원회 김경호 위원장(가운데)과 총회 임원진이 항의 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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