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클랜드 가나안공동체(CCM) 예배 후 광고 시간 장면. 첫 예배에 성인 60명, 어린이와 학생 10명. 총 70명이 참석했다.

교회 밖 세상에서는 깔깔대며 아주 즐겁고 재미있게 잘 놀다가도, 이상하게 교회에만 오면 갑자기 거룩해지는 교인들이 있다. 어깨가 굳어지고, 표정이 경건해지고, 그리고 행동이 무거워진다. 무슨 이유인지는 정확히 잘 모르겠다.

재미있었던 교회

중학생 시절 처음 친구의 손에 이끌려 출석한 교회는 동네 길거리 상가 3층에 있던 한 작은 교회였다. 당시 그 교회는 성인은 물론 어린 아이와 고양이까지 모두 합쳐도 60명이 채 안 됐다. 그러니 중·고등부라고 해 봐야 아무리 털어도 겨우 8~9명이었다.

그런데 지금 다시 생각해도, 그 교회는 정말 재미있었다. 신학교 교수였던 목사님이 설교를 얼마나 알기 쉽게 잘 하시던지, 그 어린 마음에도 하나님 말씀이 가슴 속에 쏙쏙 들어왔다. 그러니 예배가 즐거웠다. 게다가 찬양도 은혜롭고, 뒤늦게 합류한 성가대도 재미있었다. 지휘자 집사님이 재치가 있으셔서 제법 긴 연습 시간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게다가 예배 후에는 여러 사람이 난로가에 둘러 앉아 사담을 많이 나눴는데, 그 시간 또한 꿀맛이었다. 서로 나누는 소소한 대화 속에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쑥맥이었던 내가 늦게나마 철이 드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후일 전공을 선택하고 직업을 선택하는 일에 있어서도 교회 친구들과 나눈 대화가 큰 역할을 했다. 진로를 2번이나 바꾸었으니까 말이다.   

나는 그 첫 교회를 근 15년간 행복하게 다녔다. 교회의 다른 친구들도 비슷했다. 매 주일이 기다려지고 교회가 생활의 활력소였다. 교회를 빼고는 성장기가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서 당시는 세상의 모든 교회들이 모두 다 그렇게 즐겁고 재미있는 것으로 알았다.

우리가 지고 있다는 증거

그런데 그런 아름다운 환상이 깨진 것은 직장 때문에 지방에 있는 다른 교회들을 알게 된 후부터다. 물론 처음 출석하여 낯설어서 그런 면도 크겠지만, 그럼에도 좋은 교회와 그렇지 못 한 교회는 벌써 첫날부터 다르다.

건강한 교회는 처음부터 분위기가 편하고 따뜻하고 부드럽다. 심지어 광고 시간까지도 훈훈하고 재미있다. 게다가 예배가 끝난 후 교인들 표정을 보면 대부분 싱글벙글이다. 그리고 사방에서 다가와 먼저 손을 내민다. 마치 모처럼 고향 방문이라도 온 느낌이 든다.

반면에 어떤 교회들은 예배당에 들어가 자리에 앉아도 옆으로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설교는 성경적인데도 왠지 딱딱하고 권위적이다. 또는 설교자 혼자 뜨겁다. 아니면 예배가 무겁고 지루하다. 예배 후에는 대부분의 교인들이 불과 몇 마디를 나눌 틈도 없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도 아니면 친한 사람들끼리만 몇이 몰려다닌다.

사실 교회처럼 끈끈한 공동체는 드물다. 성인이 되면 부모나 친형제도 매주 보기 힘든 경우가 많다. 하지만 교우들은 매주 만날 수 있으니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가.

교회가 재미없으면 그건 지는 거다. 사탄이 제일 좋아하는 교회 중에 하나가 '재미없는 교회'다. 주일이 부담되고, 예배가 의무적이 되고, 성가대 연습이 지루하고, 헌금이 아깝고, 그리고 교회 봉사도 귀찮아지게 된다면, 그건 분명히 우리가 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래도 남 탓은 하지 말자. 아주 한참 나중에야 깨달은 게 있다. 사랑이 없으니 재미가 없는 것이다. 다른 교인들의 잘못도 더러 있겠지만, 사실 진짜 문제는 나 자신이었다. 내게 사랑이 있으면, 예배당 복도에서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어린아이만 보아도 미소가 나고 재미있다. 환한 얼굴의 교우들을 보면 저절로 기쁘고, 같은 구역 가난한 교우가 궁금해지고, 그리고 시시콜콜한 대화도 모두 즐겁다.

그 흔한 마을 계 모임도 10명만 모이면 왁자지껄 요란을 떨며 재미가 있다. 그런데 어떤 교회에 가 보면 30명이나 모였는데도 별로 재미가 없을 때가 많다. 조폭들도 모이면 의리가 있고 신나게 사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인 곳에 사랑이 없고 재미가 없다면 말이 되는가. 재미가 사라진 가정은 문제가 있는 가정이고, 재미가 없는 교회는 병든 교회이다.

성도들도 좀 놀자

며칠 전 가나안공동체 운영위원들이 모였을 때 위와 비슷한 이야기를 서로 나누었다. 우리는 꼭 재미있게 가자고 다짐했다. 너무 까칠하게 굴지 말자고 했다. 필요하면 가끔 춤도 추고, 연극도 하고, 그리고 팝이나 가요도 좀 부르자고 했다. 그러나 이게 그냥 막가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세상에서는 잘 놀다가도 왜 교회만 오면 달라지나. 너무 고상한 척 애쓸 필요는 없다고 본다. 교회는 쉼을 얻고, 힘을 얻는 곳이 되어야 옳다. 공적 예배 시간만 아니라면 긴장을 풀고 실수도 좀 하고, 수다도 좀 떨고, 그리고 때로는 화평을 위해 내가 다소 망가지면 또 어떤가.

교회는 아버지 집이다. 교회는 자녀들의 쉼터이지, 무슨 수도원이 아니다. 교회는 세상의 죄인들이 모인 곳이지, 무슨 거룩한 천사들이 모여 무게 잡는 곳이 아니다.

청년부 시절 매주 조 모임을 했는데 어떤 조는 매주 도를 닦고 있는가 하면, 어떤 조는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아예 깨가 쏟아진다. 그것도 모자라서 토요일이면 자기들끼리 따로 모여 산을 가고, 딸기 밭을 갔다. 기도원도 가고 아주 신바람이 났다.

물론 재미있는 교회가 무조건 바른 교회라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재미없는 교회는 그건 분명히 잘못된 교회이다.

작은 교회가 큰 교회보다 불리하면서도 동시에 유리한 점이 한가지 있는데 그게 바로 교인 수다. 오래 전 내가 호주에 서 유학했을 때 출석했던 교회가 그랬다. 불과 30명 정도의 작은 공동체인데도 모이면 너무 재미있었다. 목회자와 교인들이 모두 헌신적이고 자발적이었다.

아이들도 몇 명 없었는데 우리 딸아이는 교회만 가면 언니들 손잡고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하루 종일 몸 바쳐 놀았다. 그러니 주일 아침이면 아이들이 먼저 부모를 재촉해서 교회에 일찍 온다. 우리 어른들도 그 아이들에게 좀 배워야 한다. 결국 그 교회는 잘 성장해서 불과 몇 년만에 자립 교회가 되었다.

물론 작은 교회는 매우 불리하고 성장하기가 힘든 게 사실이다. 그래도 아직 희망은 있다. 작으면 더 뭉치기 쉽다. 서로를 더 잘 알 수 있다. 더 사랑할 수 있다. 더 재미있을 수 있다. 그리고 진짜로 재미가 있으면 일단 반은 성공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특히 작은 교회의 목회자와 교우들에게 더욱 힘찬 격려를 보내고 싶다.

"의인은 기뻐하여 하나님 앞에서 뛰놀며 기뻐하고 즐거워할지어다." (시68:3)

신성남/ 집사·<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 오클랜드 가나안공동체(CCM) 운영위원

* 이 글은 <뉴스M>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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