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딥플로우(Deepflow). 최근 가장 핫한 래퍼 중 하나다. 올해로 데뷔 14년 차니 힙합 신에선 중견(?)에 속한다. 그에게 지난 1년은 특별한 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2016년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악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레이블 비스메이저컴퍼니의 수장, 빡빡 민 머리, 큰 덩치의 그가 홍대를 거닐 때 그를 알아보고 눈짓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3년 만에 낸 정규 앨범 '양화'가 일을 냈다. 그 덕에 팬도 늘었다. 양화 수록곡 '작두'는 딥플로우에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랩 앤 힙합 노래상을 안겨 줬다. <뉴스앤조이>가 세 번째로 만난 래퍼 심바자와디는, 딥플로우의 '양화'로 한국 힙합에 대한 정의가 내려졌다고 말했다. 더 이상 흑인 따라 하는 음악이 아닌, 한국인의 정서를 담은 힙합이 생겨났다는 말이다.

14년째 꾸준히 음반 작업을 하고 후배를 양성하며, 올해의 음악인상까지 받은 그. 그러나 쇼미더머니로만 힙합을 접한 대중에게 딥플로우는 여전히 낯선 이름이다. <뉴스앤조이>는 딥플로우와 만나 이야기를 들어 봤다. 인터뷰는 빅퍼즐아카데미 남오성 대표가 진행했다.

▲ 비스메이저컴퍼니의 수장인 딥플로우. TV에 잘 나오지 않지만 빡빡 민 머리가 돋보이는 그는 올해로 14년째 힙합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스톤쉽)

친구 앞에서 랩 자랑하던 소년

멋도 모르던 중학교 시절, 그는 처음 힙합 문화를 접했다. 당시 유재석, 강호동 같은 개그맨들이 방송에 힙합 바지를 입고 나왔다. 하나의 문화로 힙합이 자리 잡고 있을 때였다. 그도 연예인을 따라 힙합 바지를 입었고, 친구들끼리 음악 테이프를 돌려 들었다. 김수용 작가의 만화 '힙합'도 탐독했다.

친구들은 쉬는 시간마다 복도에서 비보잉 댄스를 췄다. 하지만 그는 노래방에서 조PD 랩을 했다. 순전히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욕설이 담긴 랩으로 사회적 이슈가 된 조PD 음악이 어린 딥플로우를 사로잡았다. 그렇게 랩을 시작했다. 할수록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자연스럽게 고등학교 때는 가사를 썼고, 2003년 스무 살 무렵, 다른 뮤지션의 곡에 피처링하며 신에 데뷔했다.

지금의 믹스테이프와 유사한 개념의 '번개송' 활동을 많이 했다. 번개 모임처럼 마음 맞는 사람끼리 인터넷 메신저로 비트를 주고받고 가사를 붙여 작업물을 만드는 거다. 이름도 이때 지었다. 고등학교 시절, 인터넷에 만든 노래를 올려야 하는데 이름이 없었다. 본명 '류상구'로 올릴 순 없었다. 좋아하던 힙합 듀오 맙딥에서 '딥'을 땄다. 당시 래퍼 이름 뒤에 '플로우'를 붙이는 게 유행이라 딥에 '플로우'를 붙였다. 그렇게 생긴 이름이 '딥플로우'다.

"1년에 하나씩 앨범 내기 어렵더라"

화제의 곡 '작두'. 무속음악 분위기의 사운드가 인상적이다. 비트에 접신하는 MC의 모습을 내림굿에 비유한 노래다. 무대를 굿판으로 표현했다. 그는 이번 앨범을 포함해 14년간 4장의 앨범을 냈다. 3장의 정규 앨범과 1장의 믹스테이프를 모은 앨범이다. 꾸준히 음악 작업을 해 왔지만 앨범 수가 많지는 않다. 그래도 앨범마다 리스너들 반응은 좋다. 3집은 한정판으로 판매하다가 인기가 좋아 재발매했다. 3집 '양화'는 딥플로우 스스로 가장 애착 가는 앨범이기도 하다.

그는 음악을 만들 때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까. "작업할 때 가장 중점을 두는 요소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천천히 자기 생각을 전했다.

"일단 저는 래퍼니까 좋은 랩을 하는 건 기본이고, 비트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어릴 때부터 외국 힙합을 들었는데, 제가 영어를 아예 못하다 보니 사운드를 많이 듣게 되더라고요. 제가 좋아하는 성향의 사운드가 정해져 있어요. 한국 힙합에는 잘 없는. 그래서 리스너들에게 한국 힙합을 들을 때, 제가 외국 힙합에서 느낀 감흥을 느끼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제가 느꼈던 그 감흥을 리스너들도 느끼게끔 옮겨 오는 게 주요 포인트에요. '양화'부터는 주제 선정에 초점을 둬요.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이야기에 신경을 쓰게 됐죠. 그러다 보니 금방 금방 앨범이 나오지는 않아요. 1년에 하나씩 내고 이런 건 저에게는 좀 어려워요. 저한테 맞지도 않고요."

▲ 그가 최근 발매한 앨범 '양화'에는 인간 류상구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리스너들은 리스펙트한다고 극찬했다. 3집은 딥플로우가 가장 애착을 갖는 앨범이기도 하다. (사진 제공 스톤쉽)

비트를 중시한다 말했지만, 그렇다고 가사를 가볍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정신 똑바로 박힌 랩'을 쓰고 싶다. 무분별한 스웨그, 차, 여자, 돈 자랑, 같은 이야기는 좋아하지 않는다. 서사가 담기고,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싶다. 이번 앨범 곳곳에 그의 자전적 이야기가 깊게 스며 있다.

앨범 주제로 삼은 건 '가족'이다. 가족들이 살고 있는 영등포와 힙합 신, 특히 수장으로 있는 비스메이저가 있는 홍대를 물리적으로 연결하는 '양화대교'를 제목으로 삼았다.

힙합 신이 있는 홍대를 떠나 인간 류상구가 사는 영등포로 향하는 길에서 힙합에 대한 생각, 자신의 꿈을 다짐하는 마음을 표현한 '양화', 어려운 살림으로 계속 이사해야 했던 이야기를 담은 '역마', 아픈 아버지를 생각하며 만든 '버킷리스트', 막내였던 자신이 이제 힙합 신에서 큰 형이 되었다는 의미를 담은 '당산대형',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같은 방향성을 가지고 활동하는 크루를 가족으로 표현한 '가족의 탄생' 등이 앨범에 담겨 있다.

난 아버지께 노래를 들려준 적 없지
안방에 켜진 티비 속에도 난 없지
당신은 대체 내가 뭘 하는지
대체 뭘 원하는지 안 물어

절 봐요 이름처럼 그 속도 깊어져서
이제는 당신을 헤아릴 것만 같은데
근데 이제는 왜 그리 힘이 없는 거죠
수저를 쥔 손을 왜 그렇게 떠는 거죠

어눌해진 말투 초점 잃은 눈으로
내가 아기일 때보다도 천천히 걷는 거죠 ('버킷리스트' 중)

리스너들은 자기 자랑이 넘쳐나는 힙합 신에서, 인간적인 면모를 담백하고 진솔하게 그려 낸 앨범 '양화'를 극찬했다. 유튜브에는 그를 '리스펙트'한다는 댓글이 넘쳐 난다. 올해의 음악인상 선정위원은 "2015년 한 해, 차트를 점령한 발라드 랩과 쇼미더머니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아래에서 힙합이란 키워드를 그 어느 때보다도 뜨겁게 달궜지만, 정말 의미 있고 중요한 움직임은 거기에서 조금 벗어나 있었다. 아니, 그 대척점에 있었다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리겠다"고 말했다.

▲ 그는 한국대중음악상 중 올해의 음악인상을 수상했다. 최다 노미네이트될 뿐 아니라, 그의 노래 '작두'는 최우수상 랩 앤 힙합 노래상도 거머쥐게 했다. (사진 제공 스톤쉽)

"힙합 신도 변하고 있다"

선정위원 말처럼 딥플로우는 각종 힙합 프로그램에서 승부를 보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 음악으로, 또 레이블 소속 후배를 키우는 것으로 자신의 입지를 다져 왔고 지금도 다지고 있다. 그에게 힙합의 예능화에 대해 물었다.

"방송에 나가고 미디어에서 조명해 주는 것을 거부하지는 않아요. 다만 적정선이 필요한 거 같아요. 마치 래퍼가 자기에게 맞는 비트를 고를 때처럼 맞는 포맷의 프로그램이면 자기를 노출할 수 있으니까 좋죠. 근데 우리나라는 그 접점이 없는 거 같아 아쉬워요.

쇼미더머니가 가장 대표 프로그램인데, 초반에는 대부분의 래퍼들이 부정적으로 봤어요. 근데 시간이 지나서 래퍼들도 프로그램에 대해 알아 가니까 이용하는 사람도 생기고 아예 반대하는 사람도 생겨나요. 저는 당연히 반대편에 속하지만 나가는 사람이 이해는 가요.

사실 힙합이 생긴 지 30년 남짓, 한국에 들어온 지는 20년도 안 됐고, 계속 변하고 있는데 이 변화를 수긍해야 한다고 봐요. '내가 좋아하는 힙합이 있었는데, 요새 힙합에 졌구나'란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내가 좋아하는 힙합이 이기고 더 널리 알려지기 원한다면, 그런 움직임을 내가 보여 주면 되겠구나 생각도 해요."

방송에 나온 사람들만 기억되고 무대에 오르는 점은 여전히 아쉽다. 대학 축제나, 힙합에 관심 가질 법한 관중이 있는 곳에는 방송에 나온 사람 위주로 섭외하기 때문이다. 실력이나 콘텐츠가 좋아도 텔레비전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무대에 설 기회가 줄어드는 것이다.

힙합은 젊을 때 하는 음악인데, '지금 시기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불안감도 있다. 그래서 딥플로우는 TV 프로그램 출연에 많은 래퍼가 눈이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적극적으로 참여할 마음은 없다. TV에서 얼굴 보기 힘든 딥플로우지만 앨범 '양화'의 성공으로 최근 미국 공연에 초대되어 다녀오기도 했다.

"우리는 참여하지 않고 '멋있게 하는 거 보여 주겠어'로 방향을 잡았어요. 아직 뭔가 많이 보여 주지는 않았죠. 쇼미더머니에 우린 안 나가는 걸로 하고 싸우자 그런 거죠."

▲ 딥플로우는 '정신 똑바로 박힌 랩'을 하고 싶어 한다. 여자, 돈 자랑하는 스웨그 넘치는 가사 대신, 자신의 이야기도 담으면서 서사적인 이야기를 진행한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이 시대 청년에게 해 주고 싶은 말

딥플로우 가사에는 힙합 신 동생들에게 하는 말,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이야기가 많다. 수록곡 '개로'에는 "내 문을 열고 길을 열고"처럼 희망적인 가사도 수록돼 있다. 힙합 하는 사람 외에 이 시대를 함께 사는 청년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 주고 싶은지 물었다.

"힘내라는 말밖에 없죠. 애들이 절망하고 있잖아요. 최근에 든 생각인데 몇 년 전만 해도 저도 20대를 고통 속에서 보냈으니 저 같은 친구들에게 힘을 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제 음악으로 힘을 받을 거 같지 않더라고요.

헬조선에서 '좀 더 힘내, 노력해'라고 말하는 게 더 열 받는 일이라는 걸 알았죠. 그 접점을 찾고 싶어요. 무책임한 말로 힘내라는 메시지를 하는 건 싫어요. 음악을 듣고 과연 치유가 될까, 그런 생각이 들어 낙담하고 있긴 해요."

이런 생각이 들자 가사에 무책임한 위로나 "너도 힘내" 같은 이야기는 쓰지 않는다. 오히려 본인이 견디고, 이겨 내는 것을 보여 주고 리스너들에게 "너는 어떡할래?" 질문하지, 내가 이렇게 했으니 "너 이제 힘낼 수 있지?"라고 묻지는 않으려고 한다.

14년 차, 힙합을 말하고 힙합을 꿈꾸다

마지막으로, 딥플로우의 꿈은 뭘까. 신에 들어오기 전에는 래퍼가 되는 거였다. 래퍼가 된 후 수없이 공연하고 앨범도 낸 지금은 아름다운 선례를 남기는 뮤지션이 되고 싶다. 한 레이블의 수장으로, 롱런하는 힙합 레이블을 세우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음악하고 싶은 친구들이 음악하면서 살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보려고 한다. 영상에도 흥미가 있다. 비스메이저에서 뮤직비디오를 담당하고 있다. 힙합 다큐멘터리에 대한 관심도 있다.

"그런 꿈이 있죠. 언제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다들 힙합을 해석하는 게 다르잖아요. 그래서 카메라 하나 들고 다니면서 래퍼들에게 힙합이 뭐냐고 묻고 싶어요. 래퍼들이 생각하는 힙합에 대한 정의를 대중이 먼저 알아야 하는데, 그 과정 없이 TV 프로그램만 나오잖아요. 디스하는 것만 나오고. 근데 일단 대중이 힙합이 뭔지 알고 진행하는 게 필요한 거 같아요. 그런 다큐를 만들고 싶어요."

▲ 딥플로우와 비스메이저컴퍼니 소속 뮤지션들은 끈끈한 관계다. 그는 본인을 '가장'이라 표현한다. 노래 '가족의 탄생'에서 멤버 중 한 사람을 8살 차이 나는 배다른 동생이라고 지칭한다. (사진 제공 스톤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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