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에서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부활절 연합 예배가 열렸다. 사진은 예배를 마치고 광화문광장까지 행진하는 모습. ⓒ뉴스앤조이 구권효

[뉴스앤조이-구권효]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에 떼제(Taizé) 찬양이 울려 퍼졌다. 올해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부활절 연합 예배는 떼제 기도회 방식으로 진행됐다. 사회자 없이 순서지에 따라 찬양과 성경 읽기, 기도가 이어졌다. 목회자의 말을 듣기보다 찬송을 부르며 가사를 묵상하고 침묵 속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한국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예전이었다. 하지만 떼제 찬송은 8마디나 16마디를 반복해서 노래하기 때문에, 참석자들은 어렵지 않게 따라 부를 수 있었다. 잔잔한 멜로디에 화음이 어우러졌다.

▲ 예배는 떼제 기도회 방식으로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순서지에 나와 있는 찬양을 따라 불렀다. ⓒ뉴스앤조이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예배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세월호 참사에 초점을 맞췄다. 이번에는 특별히 세월호 유가족 6명이 기도와 성찬위원으로 함께했다. 모든 예배 순서에는 남자와 여자, 청소년·청년과 장년, 목사와 일반 신도들이 섞여 있었다. 찬송은 떼제 청년 기도팀 '언덕 위 마을'이 리드했다.

예배의 주제 말씀은 이사야 49장이었다. "주님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고 또한 고난을 받은 그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셨다. 그런데 시온이 말하기를 '주님께서 나를 버리셨고 주님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는구나. 어머니가 어찌 제 젖먹이를 잊겠으며, 제 태에서 낳은 아들을 어찌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비록 어머니가 자식을 잊는다 하여도 나는 절대로 너를 잊지 않겠다." 낭독되는 성경 말씀을 들으며 유가족들은 또 눈물을 흘렸다.

▲ 유가족들이 예배에 함께했다. 그들의 눈물은 마를 날이 없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찬송을 부르고 성경을 읽은 뒤 10분 정도 설교가 있었다. 조헌정 목사(향린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해석하며, 그리스도인들이 적극적으로 역사에 개입해야 한다고 설교했다.

"역사 변혁은 기도한다고 해서 저절로 굴러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를 따라 투쟁의 현장에 참여할 때 이뤄지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단순한 죽음의 상징이 아닙니다. 진실과 죽음과 평화를 위해 고난을 감수하자는 것, 그것이 십자가가 말하는 바입니다. 부활이란 우리가 싸우다 쓰러진다고 해서 그것으로 끝이 아닌, 그 희생은 하나님의 선한 역사를 믿는 모든 이들로 하여금 일어서도록 하여, 끝내 승리의 역사를 이룩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신학자 크로산(John Dominic Crossan)은 말합니다. 과거에는 신자들이 하나님의 역사 개입을 기도하며 기다렸지만, 지금은 하나님이 신자들의 적극적인 역사 개입을 기다리신다고. 이제 불의한 인간 역사를 깨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세월호의 희생자 그리고 아직도 차가운 바다 속에 잠겨 있는 아홉 분을 생각하면서 4분 16초 동안 침묵하겠습니다."

▲ 조헌정 목사가 짧은 설교를 전했다(사진 위). 예은 엄마 박은희 전도사와 홍보연 목사가 성찬을 집례했다(사진 아래). ⓒ뉴스앤조이 구권효

참가자들은 눈을 감고 4분 16초 동안 침묵했다. 따사로운 햇빛이 비치는 완연한 봄 날씨, 부활의 기쁨을 노래해야 할 날이었지만 유가족들과 참석자들의 마음은 아직 얼어 있었다. 2년이 다 되어 가는데 진실 규명 작업은 진전되지 않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진실을 감추려는 자들의 연대는 강고해 보였다. 참석자들은 무거운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유가족들은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훔쳤다. 아무도 섣불리 기쁨이나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엄숙한 찬송과 기도, 침묵만이 있었다.

▲ 떼제 기도회는 찬송과 침묵 속에 하나님을 만난다. 참가자들은 4분 16초 동안 침묵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예배의 마지막은 십자가를 앞세우고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까지 행진하는 시간이었다. 500여 명의 참석자가 떼제 찬송을 부르며 걸었다. 행렬은 광화문 세월호 분향소에서 멈춰 섰다. 이번 예배 공동준비위원장인 진광수 목사와 박연미 장로가 대표로 헌화했다. 참가자들은 분향소 밖에서 떼제 찬송을 반복하며 마음으로 함께했다. 이후 모두 세월호 유족들을 향해 한 손을 뻗어 기도하고 예배를 파했다.

▲ 십자가를 선두로 광화문 세월호 분향소까지 행진했다. 분향소에 헌화한 후, 유가족들을 위해 기도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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