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년간 총신대를 취재했지만, 학교 운영진은 학생들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우리 학교 일을 <뉴스앤조이> 기사를 통해 알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지난 3월 17일 총신대학교 신학과 학생회 정기총회에서 나온 말입니다. 이번 학기 수강 신청 기간 동안 강의 목록이 총 8번 변경됐는데, 학교는 학생들에게 구체적인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한 학생이 이에 대한 해명을 들어야 한다는 안건에 찬성하는 이유를 저렇게 짧게 이야기했습니다.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러나 곧바로 반대 의견이 나왔습니다. 한 학생은 발언대로 나와 "<뉴스앤조이>를 통해 알 수 있기 때문에 반대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학생의 말은 말 그대로 '반대'라기보다 '체념'에 가까웠습니다.

"학생회에서 매번 학교 측에 무엇을 요구하는데 실제로 이행된 사례는 별로 없습니다. 만약 이번에도 학교가 거절한다면 어떻게 할 겁니까. 대책이 있습니까."

그 학생의 심정이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몇 년간 총신대를 취재해 본 결과, 학교 운영진들은 학생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학생들보다는 교단 목사들 눈치를 더 봅니다. 지금부터 학생들의 요구를 묵살해 온 총신대 운영진 목사들의 모습을 정리해 보려 합니다.

경기도 양지 신학대학원 가까이 설치되어 있는 고압 송전탑 문제는 유명합니다. 학생들은 송전탑이 강의실과 너무 가까워 전자파의 피해를 입을 우려가 있으니 송전탑을 이설할 부지를 구입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자료 조사도 하고 성명서도 발표하고 토론회도 했습니다. 그래도 학교 운영진들은 "기다려 보라"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학생들이 시위를 하고 수업 거부까지 했더니 신대원 원우회 회장을 징계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습니다.

▲ 경기도 양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근처에 있는 고압 송전탑. ⓒ뉴스앤조이 구권효

학교의 미래를 좌우지하는 중요한 결정을 할 때도 학생들은 뒷전입니다. 2012년 6월 총신대 재단이사회는 옛 제주 탐라대를 매입하겠다고 결의했습니다. 결정하기 전 탐라대 매입 소식을 들은 학생들은 반대 성명서를 발표하고 대자보를 붙이고 현수막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이사회는 학생들의 의사를 묻는 과정은 생략한 채 결의를 강행했습니다. 그해 7월, 학생들은 운영이사회가 열리는 강의실 앞에 피켓을 들고 서 있었습니다. 탐라대 매입은 9월 총회에서 가까스로 무산됐습니다.

2013년 12월, 총신대 총장 선거에는 길자연 목사(왕성교회 원로)가 후보로 출마했습니다. 한기총 대표회장 때 금권 선거 논란에 휘말렸던 목사, 대형 교회를 아들에게 세습한 목사가 학교의 총장이 되는 데에 찬성하는 학생은 별로 없었습니다. 신학과 학생과 신대원 학생들이 다시 강의실을 박차고 나와 사퇴하라는 메시지를 던졌지만, 결국 길자연 목사는 총신대 총장이 됐습니다.

2014년 9월에는 교단 총회의 결의와 관련해 소동이 있었습니다. 총신대 운영진은 정관을 변경하라는 교단 총회의 결의를 지키지 않았고, 학생들은 이를 지키라고 시위를 하며 서명운동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운영진 목사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교단을 상대로 소송을 거는 등 '마이 웨이'를 걸었습니다. 이 결의로 파생된 문제들은 지금까지 총신대를 정치 싸움의 소굴로 만들고 있습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한 가지만 더 얘기해 볼까요. 2014년 총신대 운영이사회는 사실상 여성이 신대원 목회학 석사 과정에 입학하지 못하도록 결의했습니다. 당시 현장 취재를 해 보았을 때, 이런 내용인 줄 모르고 찬성표를 던진 목사가 많았습니다. 이는 곧 취소되어 해프닝처럼 끝났지만, 학생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문제마저 목사들이 너무 나이브하게 결정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초, 여강사 강의 폐지 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학생들은 이 사건뿐 아니라 운영진 목사들이 학생들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일련의 과정을 너무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한 학생은 정기총회에서 이런 일들을 죽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신학과 480명 중 100여 명만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이러니까 운영진들이 학생들을 무시하는 겁니다.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라며 발언을 마쳤습니다.

수년 전 운영이사회 회의장 앞에 학생들이 피켓을 들고 진쳤을 때, 저는 당시 이사장이었던 김영우 총장과 잠깐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김 총장은 "내가 학생 때는 총장실도 점거해 봤다"며 학생들의 피켓 시위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학생들이 학업을 뒤로하고 총장실 정도는 점거해야 이야기를 들어 주겠다는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신학과 학생회 정기총회에서 참석 인원의 90%에 가까운 학생들이 학교의 해명과 공개 사과에 찬성했습니다. 하지만 이를 학교 운영진 목사들이 그대로 받아들일지는 미지수입니다. 이런 말해서 학생들에게 죄송하지만 지금까지의 모습을 보면 솔직히 콧방귀나 뀔까 싶습니다. 학생들의 정당한 요구를 무시하는 목사들. 학생들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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