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하냐는 질문에, 공자는 '정명(正名)'이라 답했다. "이름을 바로잡는다"는 뜻이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답게 되는 것(君君, 臣臣, 父父, 子子)"을 말한다. 그 이름에 부합한 실제가 있어야 그 이름이 성립한다는 의미이다. 최근 미국 대선 정국에서 정명 논쟁이 한창이다.

트럼프를 둘러싼 '정명' 논쟁…그는 복음주의자인가

남침례회 윤리와종교자유위원회 위원장 러셀 무어(Russel Moore)는 지난 2월 29일 <워싱턴포스트>에서 '복음주의자'란 말이 선거 국면에서 혼재된 채 쓰이고 있다고 지적하고, 올해는 자신을 '복음주의자'가 아닌 '복음 기독교인'이라 하겠다고 했다. '복음주의자'란 말이 그 의미를 거의 상실했고, 많은 면에서 그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복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소저너스>는 텍사스에서 열렸던 도날드 트럼프 공화당 대통령 후보의 집회 후 이와 같은 발언이 나왔다고 지적했다. 이 집회에서 트럼프는 전 경쟁자이자 뉴저지 주지사인 크리스 크리스티(Chris Christie)의 놀라운 지지를 이끌어 냈으며, 자신이 복음주의 정신으로 무장했다며 거듭 밝혔던 것이다. 무어는 여론 조사가 교회를 다니는 자들과 '회심했다'거나 '복음주의적'이라고 자신을 밝히는 사람들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논쟁은 트럼프와 프란치스코 교황 사이에서도 불거졌다. 교황은 미국-멕시코 국경에서 열린 대중 미사에서 기자로부터 "트럼프에게 선한 카톨릭 표가 갈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이에 교황은 "장벽을 세우는 것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이들, 어디에 있든 다리를 놓지 못하는 사람은 기독교인이 아닙니다"라고 답했다.

트럼프를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누구를 지칭하는지는 명확했다. 멕시코 국경에서 일어나는 불법 이주를 막자는 트럼프의 발언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대답한 말이기 때문이다. 교황은 이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러한 생각은 복음 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중략) 만일 그와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라면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에 트럼프는 "종교 지도자가 한 사람의 신앙을 회의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응수했다고 ABC뉴스가 보도했다. 트럼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기독교인인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대통령이 된다면 나는 지금 우리의 대통령에게서 일어나고 있는 것과 달리, 기독교성이 지속적으로 공격받고 약화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떠한 지도자도, 특별히 종교 지도자라면 다른 사람의 종교나 신앙을 문제시할 권리가 없습니다."

젭 부시 또한 "교황이 정치적 영역에 자신을 쑤셔 넣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경쟁이 치뤄지고 있는 프라이머리 선거 결과에 이런 식으로 끼어드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교황은 국경 미사에서의 발언이 논란이 된 이후 2월 23일 아침 미사 설교에서, 다시 한 번 더 '가짜 기독교인들'이라는 주제를 꺼내 들었다.

"이는 기독교인의 삶이 아닙니다. 대화는 그저 허영에 찬 것이며 기독교인 척하는 것일 뿐입니다. 이런 모습은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바티칸 보고서에 따르면 교황은 '말하는 신앙과 행하는 신앙의 차이'를 강조했다고 <소저너스>는 소개했다.

"주님은 우리에게 행함의 길을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얼마나 '우리는 매우 복음적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자신이 복음적이라고 말하는 부모들도 자녀들에게는 말할 시간이 전혀 없고 놀아 줄 시간이 없고, 그들에게 귀 기울일 시간이 없습니다.

그들은 자녀들을 보육원에 맡겨 두고 항상 바빠 갈 수 없고 방문할 수 없어서 그들을 거기에 남겨 두고 버려두는 것입니다. '나는 지극히 복음주의다. 나는 그 연합에 속해 있다.' 이것이 말함의 종교입니다. '나는 그것이 그렇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세상의 기준을 따라 살아간다'는 것이지요."

<릴리전뉴스서비스>에서 데이비드 깁슨(David Gibbson)은 교황이 이러한 종교의 형태를 '기만'이라고 지적했다고 보도했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행하는 것, 즉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날에, 주님은 우리에게 뭐라고 물을까요? '나에 대해 너는 무엇을 말했나?'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를 물으실 것입니다."

짐 월리스 "트럼프는 복음을 거스르고 있다"

<소저너스>의 짐 월리스는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트럼프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짐 월리스는 그를 '전체주의자', '괴롭히는 자'라고 비난했다. 트럼프를 '백인 민족주의자'라 호칭하며, 그가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밝히는 것과 달리 복음을 거스르고 있다고 단언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개인적이지만 결코 사적이지 않다. 우리가 지지하게 되는 공적 실행과 정책들은 우리가 복음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하나님이 우리로 창조하도록 세상을 도우라 부르시고 계신 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보여 준다.

교황이 옳다. 도널드 트럼프가 채택하고 있는 정책들은 복음에 곧바로 위배된다. 트럼프는 인종 후보가 되었으며, 다리 대신에 장벽을 세울 것을 요청하는 백인 민족주의자 후보가 되었다. 이는 민주적인 다민족국가라는 미국의 새로운 미래를 가로막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호소하는 바로 그러한 벽이다.

트럼프는 '장벽 후보'이다. 그리고 교황은 정확히 우리 모두가 종교적이든 그렇지 않든 다리를 놓을 것을 요청한다."

짐 월리스는 러셀 무어와 더불어, 미국 대선 예비 선거에서 복음주의자란 이름으로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흑인이면서 멕시코 이민자이자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히스패닉들에 반해, 외국인을 혐오하는 백인 후보인 그가 내뱉는 인종적 발언이 왜 검증대에 올려지지 않는지, 왜 그에게 전혀 책임을 묻지 않는지 우려하며 다음과 같이 비판의 강도를 높였다.

"타자에 대한 두려움과 미움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험한 행태를 지녀 왔다. 트럼프는 자신을 '강한 사람', '승리자'라 위치 지으며 그의 모든 반대자들은 약하고 어리석은 패배자들이라 비난한다.

트럼프의 위험한 수사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분명히 할 때이다. 그것은 단지 인종주의일 뿐 아니라 그 이념이 함축하고 있는 모든 위험을 지닌 전체주의다. 우리가 전에 보아 왔던 바로 그것이다. 이제는 진실을 말할 때이다."

짐 월리스는 트럼프가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을 '외국인'이자 '우리 중의 하나가 아닌 자'로 그려 왔다고 지적했다. 사실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데도 이민자들을 사탄화하는 트럼프는 미국에서의 이주 문제에 대한 대화를 전락시켜 더 큰 벽에 막히게 했고, 기독교인들이 예수가 "환영하라"고 명령하신 '낯선 자'들에게서 등을 돌리도록 했다. 이주민들을 체포하고 그들 가족을 찢어지게 하고, 수십 년 동안 미국에서 살며 열심히 일하고 법을 준수하며 살아온 사람들을 추방하고 있다.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무슬림들을 '완전히 차단하라'는 트럼프의 요구는 반헌법적이며 반미국적이다. 자신들의 신앙을 지키는 사람들을 비난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종교의 자유라는 우리의 기본 원칙을 어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슬람 혐오증과 인종주의의 깊은 증오의 확산을 막는 것은 양당 모두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사안이며, 당을 초월한 사안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도덕적인 문제이다.

따라서 트럼프가 정치적으로 성공하는 것은 도덕에 대한 위협이다. 양당의 정치 지도자들은 도널드 트럼프의 발언들을 비판해야 하고, 그의 위험한 이념으로부터 스스로 거리를 두어야만 한다."

이러한 우려와 비판에도 도널드 트럼프는 승승장구하고 있다. 짐 월리스는 복음주의 표가 복음에 정반대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것에 대해 전에 없던 우려를 표했다. 도널드 트럼프는 지난주 네바다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 대회에서 어떤 다른 후보들보다도 더 많은 복음주의 표를 획득했다. 앞서 사우스캐롤라이나와 뉴햄프셔에서도 그러했다.

백인 민족주의가 '복음'을 탈색하고 있다

아이오와에서 그는 비록 2위로 떨어졌지만 1위였던 테드 크루즈 역시 가난한 자와 이주민, 장벽과 관련해 크게 다르지 않은 시각을 가진 후보다. 짐 월리스는 누가복음 4장에서 얘기하는 예수의 전도 사명이 미국 대선에 임하는 백인 복음주의자들의 투표 행태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백인 민족주의가 복음주의자들의 신앙을 강탈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올해 미국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는 인종 정치에 호소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는 백인 후보에 백인 민족주의자 1위이며, 계속 출현하고 있는 인종적으로 더욱 다양한 미국으로 나아가는 길을 차단하거나 부정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지연시키고자 하는 지도자이다. '백인'이라는 단어가 '복음주의자'라는 단어를 탈색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소저너스>는 복음주의 신앙이 그 본질을 구현하기를 바라며, 1971년 시작된 언론이다. 5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음에도 미국의 진보적인 기독 언론인 <소저너스>는 아직도 복음주의가 복음주의답게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도록 하는 싸움에 여념이 없다. 미국 사회가, 정치가 끊임없이 복음에 반한 모습으로 흐르게 되기 때문이다.

복음주의의 본질을 흐리는 무수한 이익과 주관성이 미국이고 한국이고 가릴 것 없이 만연하고 강력하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이름의 본질이다. 그것을 단념했을 때 그 이름의 본의를 잃어버린 세상은 그것을 포기한 사람들을 비켜 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들에게 어떤 고난을 초래할지 모른다. '정명'을 외면할 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이유며, 그것을 기어이 구현하지 않으면 안 될 이유이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