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보 농사꾼 김태철 씨를 만나러 밀양에 찾았다. 밀양 송전탑 투쟁을 하다 아예 이곳에 정착해, 올해부터 농사를 시작했다. 서툴지만, 흙과 함께 살려는 의지는 누구보다 강해 보였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우당탕!' 소리와 함께 가냘픈 브로콜리 모종들이 나뒹굴었다. 손수레가 바람에 넘어지며 위에 놓인 브로콜리 모판이 엎어진 거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모판을 들고나오던 김태철 씨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옆 비닐하우스에 심은 당근들 모습은 흡사 야구장 잔디를 연상시켰다. 어느 게 당근이고 어느 게 잡초인지 분간이 안 갔다. '이거 언제 다 솎나' 하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본인 스스로도 '초보 농사꾼'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농사 시작한 지 이제 겨우 몇 달째기 때문이다. 30대 초반 김태철 씨는 서울에서 나고 자란 '서울 토박이'다. 그런 그가 4,000평 농사를 짓는다. 비닐하우스만 4동에 노지도 1,000평이다. 동네 어르신이 김 씨에게 농사를 맡긴 것이다. 이리저리 흩어진 브로콜리 모종을 주워 담으며 김태철 씨 사연을 들어 봤다.

송전탑 투쟁에서 만난 밀양 어르신들, 김태철 씨를 밀양에 앉히다

김태철 씨 등 뒤로 765킬로볼트 푸른색 송전탑이 보인다. 신학생 출신 김 씨가 밀양에 내려온 건 송전탑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 영향으로 교회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런 김 씨에게 신학교 진학은 이상할 것 없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주일에는 슈퍼도 못 갈 정도로 보수적이고 율법적으로 신앙생활을 했다. 4학년 때는 선교 단체 동아리 대표도 맡았다.

그랬던 그가 목회를 포기하고 밀양에 내려와 살고 있다. 사연은 복잡하면서도 단순했다. 군대에서 <녹색평론>을 보다, 밀양에 살던 활동가 이계삼 씨 글을 읽고 밀양에 내려왔다. 여기에서 송전탑 문제로 싸우고 있는 마을 주민들을 만났다.

군 전역 후 밀양에서 몇 달씩 살다가, 아예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 상근활동가로 2014년 여름부터 정착하게 됐다. 지난해에는 결혼도 하고 신혼집을 밀양에 차렸다. 그의 직업은 '활동가'에서 '농부'로 바뀌었다.

▲ 김태철 씨는 앞으로도 밀양에서 흙을 만지며 살 계획이다. "행복한가"라는 질문에, "안정감을 느끼며 살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치킨 사 주면…

밀양은 힘겨웠다. 대자본과 용역을 앞세워 공사를 밀어붙였다. 노인들 힘으로 10년 버틴 게 대단할 정도였다. 용역들은 길목을 막아선 할머니 앞에서 "할매, 치킨 사 주면 안 올게"라고 말했다. 할머니들은 그 말을 믿고 치킨을 사 줬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내일 또 올게"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농치는 용역들을 보며 어르신들은 하루 이틀 싸움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견디다 못한 이치우 어르신이 결국 분신했다. 그의 분신은 밀양 이야기가 세간에 알려지는 계기가 됐지만, 정부는 아랑곳없이 '행정대집행'을 강행했다. 송전탑은 밀양 곳곳에 세워졌다.

김태철 씨는 이 고난을 겪으면서도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밀양 사람들을 곁에서 보면서 이들의 진면목을 발견했다. 돈 몇 푼 때문에 송전탑을 반대한 게 아니었다. 평생 함께한 땅을 지키려는 그들의 모습에서 자연과 환경,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몸으로 직접 배웠다.

서울 사람들에게 땅은 그저 부동산이지만, 밀양 사람들에게는 본인이 평생 일궈온 삶의 터전이자 인생 그 자체였다. 늘 방황했던 도시 사람 김태철 씨에게 땅이 주는 안정감은 특별하게 다가왔다.

"뿌리 없는 삶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어요. 서울 살 때는 '공허함'을 많이 느꼈죠. 뭔가 방황하고 부유하는 삶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끊임없이 불안하고 소비해야 편안한 삶이었죠. 제가 살던 동네에도 아파트가 많이 들어섰어요. 모래사장에 만든 조각처럼 내 삶의 흔적이 계속해서 지워졌죠."

'위기'도 있었다. 장교로 군 복무를 마칠 때쯤, 대기업들이 원서를 보내온 것이다. 예비 신부에게 입을 열어야 했다. "여자친구에게 소위 생태적 감수성에 대해 약을 판 후였는데, 막상 기회가 닥치니 솔깃하더라고요." 밀양에서의 활동을 꾸준히 지켜본 여자친구 앞에서 갑자기 '우향우'하기란 쉽지 않았다.

고민이 많이 됐다. '내 인생에 앞으로 또 이런 기회가 있을까? 원서라도 넣어 보는 건 괜찮지 않을까'. 조심스레 여자친구에게 운을 뗐다. "CJ 같은 데서 원서 접수를 한다는데…" 그랬더니 단박에 "그거는 당신이 하고 싶었던 일이 아니지 않느냐"는 답이 돌아왔다. 정신이 퍼뜩 돌아온 김태철 씨는 밀양으로 아예 내려왔다.

▲ 땅을 생각해 유기농으로 농사짓다 보니, 잡초가 무성하다. 뭐가 당근이고 뭐가 잡초인지 구분이 안 가는 하우스를 보며, 김태철 씨가 헛웃음을 켠다. 농부의 길은 멀고 험하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기자가 물었다, 밀양 생활이 행복하냐고. 우문에 현답이 돌아왔다.

"행복은 추구해야 할 가치가 아니에요. 인간 삶에 가장 필요한 건 안정감이죠.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이 안전하다, 오늘처럼 내일도 내년에도 살 수 있다, 이 생각을 하게 되면 사람이 순해지는 거죠. 남을 대하거나 바라볼 때도 여유가 있고요. 다들 행복에 과도하게 집착해요. '난 지금 행복한가', '난 지금 불행한가?' 이런 고민을 끊임없이 하면서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어요."

신학교에서 보낸 4년을 후회하진 않는다. 거기서 신앙의 가치를 깨달았고, 교회의 민낯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살 수 있다고 말했다.

"밀양에 내려온 게 대단한 건 아니에요. 희생, 손해라기보다 오히려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거든요. 저처럼 시골에 내려와 사는 사람이 특별하다고 여겨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도시에서 계속 사는 사람이 특별한 세상이 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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