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는 지난 2월 10일 개성공단 중단 결정을 내렸다. 북한을 겨냥한 조치였지만, 피해는 남측 기업이 떠안았다. 지난 2009년 개성공단에 진출한 여성 의류 전문 (주)오오엔육육(강창범 대표)은 200억이 넘는 재산상의 손실을 입게 됐다. 2월 19일 고양시 장항동에 있는 오오엔육육 물류 창고는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여성 의류 전문 업체 (주)오오엔육육 강창범 대표(51)는 설날 연휴를 유럽에서 보냈다. 제품을 홍보하기 위해 명절에도 일했다. 프랑스, 독일 바이어는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적게는 3만 벌, 많게는 15만 벌을 구입하고 싶다는 이야기가 오갔다. 높은 품질과 저렴한 가격이 먹혀들었다. 의류는 개성공단에서 만들었다.

2월 10일 아침 7시 프랑스의 한 숙소에서 자고 있던 강 대표는 문자 알림 소리에 잠이 깼다. 개성공단 업체 C 사장에게 온 문자였다. 

"통일부장관이 업체 사장들 불러 놓고 개성공단 문 닫겠다고 통보했네."

문자가 온 시간은 한국 기준으로 2월 10일 오후 3시 22분. 정세가 어수선한 것은 알았지만, 이런 식으로 마무리될 줄 몰랐다. 2시간 뒤 정부는 개성공단 중단을 결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바이어들을 다시 만난 강 대표는 사정을 설명하고 사과의 뜻을 전했다. 나머지 일정을 모두 취소한 채 급히 귀국했다.

정부가 개성공단 중단 결정을 내리자 북한은 폐쇄 조치로 대응했다. 개성공단에 입주한 남측 기업들은 쫓겨나다시피 나왔다. 2009년 개성공단에 들어간 오오엔육육도 마찬가지였다. 50억 상당의 제품을 놓고 왔다. 오오엔육육 공장 규모는 6,000평으로, 북측 근로자 930여 명이 이곳에서 일했다.

▲ 강창범 대표의 얼굴은 어두웠다. 목소리에도 힘이 없었다. 그는 만약 개성공단에 삼성이 있었다면 정부가 지금과 같은 조처를 취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개성공단 입주 후 계속된 위기

2월 19일 강창범 대표를 만나기 위해 고양시 장항동 오오엔육육 사무실을 찾았다. 2차선 도로 바로 옆에 위치한 회사는 한적했다. 물류 창고는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직원 안내를 받아 사무실로 들어갔다. 40평 남짓한 사무실에 3~4명의 직원이 강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2003년 강창범 대표는 아내와 함께 여성 전문 의류 '빌리윌리'를 시작했다. 옷 만드는 것뿐 아니라 유통까지 직접 챙겼다. 유통 단가를 줄이니 소비자 가격도 내려갔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빌리윌리는 국내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여성 의류 전문점이 됐다. 사업 확장을 고민하던 강 대표는 2009년 개성공단 문을 두드렸다. 북한의 임금은 중국, 동남아시아보다 쌌다. 앞서 입주한 기업들 사례를 보니 성공 가능성이 높았다.

기대했던 것과 달리 시작부터 가시밭길이었다. 남북 관계가 경색되며 적잖은 타격을 받았다. 이명박 정부가 북한 근로자 기숙사 신축 약속을 이행하지 않아, 북한은 추가 근로자를 파견하지 못했다. 오오엔육육은 계약 당시 1,000명을 지원받기로 했지만, 실제 배당받은 인원은 200명뿐이었다. 일손이 부족하니 생산력도 바닥을 쳤다. 적자가 이어졌다.

근로자가 조금씩 보충되면서 오오엔육육도 살아나는 듯했다. 하지만 2013년, 약 6개월 동안 개성공단이 중단되며 위기를 겪었다. 당시 강 대표는 개성공단 비상대책위원회 피해대책 분과 간사를 맡으며 사태 해결을 위해 앞장섰다. 강 대표는 "지금 상황은 2년 전보다 더욱 나쁘다"고 말했다.

▲ 오오엔육육은 구조조정에 들어간다. 강 대표는 18명의 직원이 있는데, 함께 일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정부마다 대북 정책이 다른 점은 이해한다. 그렇지만 적어도 이해 당사자들 입장과 처지를 고려해 결정해야 할 것 아닌가. 정부는 개성공단 중단 공개 발표 2시간 전에 업체 대표들을 불러 통보했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거래처 뚫고 있었는데, 단칼에 목 베듯 이렇게 해도 되는 건가. 만약 삼성이 개성공단에 있었다면 이렇게 막무가내로 일 처리했을까.

우리와 협력을 맺고 있는 회사만 20~30개다. 거래를 유지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데 효과가 없다. 오히려 영업 손실에 대한 보상을 요구해 온다. 적어도 2013년은 '잠정' 중단이었고, 거래처와 바이어들을 설득할 수 있었다. 지금은 완전 중단됐다. 개성공단 124개 기업이 사형선고받은 거나 다름없다. 수천 개의 협력 업체도 적잖은 타격을 받게 됐다."

강창범 대표는 기독인이다. 일산에 있는 한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주말을 개성공단에서 보낼 때는 공단 안에 있는 교회에 나간다. 강 대표는 기독인으로서 이번 개성공단 사태에 대해 서운한 점이 많다고 했다. 특히 북한을 규탄하고 핵무장을 주장하는 기독인들을 보며 회의가 든다고 말했다.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해야 하는 거 아닌가"

"성경에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규율이 있는데, 목사님들이 왜 안 지키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북한을 압박하는데 찬성하고 갈등을 증폭시킨다. 북한 붕괴론을 언급하고, 핵무장을 주장한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 하나님이 역사하는지 자문하게 된다. 기독인이라면 정치 성향과 상관없이 북한을 보듬어야 할 것 아닌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뜻이 무엇인지, 그 마음만 생각해도 충분히 답이 나올 것 같은데. 다들 입으로 믿는다면서 행동을 보면 그렇지 않다. 기독교 지도자와 정치인들에게 '가만히 있지 말고, 지금이라도 나서 달라'고 호소하고 싶다. 개성공단이 평범한 '공단'은 아니지 않는가. 평화를 지켜야 할 것 아닌가."

강 대표는 북한 주민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먹기 좋아하고, 멋 부리려 하고, 뜨거운 물에 샤워하는 것을 즐긴다. 때로 일하며 다투기도 하지만, 그만큼 정도 깊어졌다. 무엇보다 대화가 통하니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현재 강 대표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북한 근로자와 회사 직원들이다. 930여 명의 북한 근로자들이 어디서 일할지, 제대로 된 처우를 받을지 걱정이다. 회사 직원들의 불투명한 앞날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지난해 직원들과 송년회를 하면서 열심히 해 보자고 다짐했는데, 불과 두 달 만에 존폐의 기로에 섰다.

"직원들 월급 올려 줄 생각으로 일해 왔는데, 졸지에 회사 정리하게 생겼다. 북한 근로자들과 우리 회사 직원들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면 몸이라도 던지고 싶다."

오오엔육육은 지난 7년간 개성공단에 200억 원 넘게 투자했다.

▲ 개성공단 폐쇄와 함께 오오엔육육 물류 창고도 굳게 닫혔다. 물건을 실어 나르던 운송 차량도 멈췄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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