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강혜원 인턴기자] 이른 오전부터 감리회 본부 앞 희망광장에 가면을 손에 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밝게 웃으며 담소를 나누던 이들은 11시가 되자 얼굴에 가면을 쓰고 '감리회 성 소수자 차별 입법 및 서명운동 반대를 위한 기자회견'이 적힌 현수막을 들었다.

'성소수자배제와혐오확산을염려하는감리교목회자및평신도모임', '성소수자탄압장정을반대하는감리교신학생및전도사모임' 주최로 감리회의 성 소수자 차별법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가면 쓴 이들의 얼굴에는 좀 전의 웃음기 대신 비장함이 느껴졌다.

▲ 2월 18일 오전 11시 감리회 본부 앞에서 감리회 성 소수자 차별법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에 참여한 이들은 모두 가면을 썼다. ⓒ뉴스앤조이 강혜원

세상과 교회에서 추방당한 그들과 함께하기 위해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회·전용재 감독회장)는 지난 12월, "동성애에 찬성하거나 지지하는 교단 목회자는 정직·면직 또는 출교에 처한다"는 장정 개정안을 공표한 바 있다. 개정 전의 '교리와 장정' 제8항은 교인이나 목회자가 범하면 안 되는 죄의 종류를 '음주, 흡연, 마약법 위반 및 도박'으로 한정했으나 개정안에는 '동성애를 찬성하거나 동조하는 행위'가 추가됐다.

▲ 감리회 성 소수자 차별법 반대를 위한 기자회견 첫 발언을 맡은 라떼 씨. ⓒ뉴스앤조이 강혜원

기자회견이 시작되고 라떼(닉네임) 씨가 첫 발언을 했다. 그녀는 현재 성 소수자 입장에 서는 것 자체가 많은 불이익을 감수한다고 말했다. 감리회에서 헌법처럼 적용되는 '교리와 장정'에 동성애가 처벌의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라떼 씨는 그들이 가면을 쓰고 이 자리에 서야 하는 이유에 대해 말을 이어갔다.

"성 소수자는 평생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세상과 교회가 성 소수자에게 본래 얼굴을 가린 채 살아가길 요구하기 때문이다. 가면은 그들이 세상을 향해 가지고 있는 두려움의 상징이자 이들을 향한 사회의 무자비한 폭력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세상과 교회가 성 소수자를 협박하고 반대해도 그들은 우리와 똑같이 사랑하고 노동하고 교육받으며,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쓴 이 가면은 사회에서 추방당한 성 소수자와 함께 하는 연대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녀는 창조주 하나님이 지으신 모습 그대로, 모두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강조하며 "주님의 빛과 양심에 따라 그들과 함께 행동하겠다"고 말했다.

제천에서 올라왔다는 변영권 목사도 대표 기도에서 성 소수자와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약하고 소외받는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것이 너무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면서 감리회가 이와 같은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길 촉구했다.

기독교인의 비난으로 죽음 택한 성 소수자 신앙인 고 육우당

이어 종화(닉네임) 씨가 성명서를 낭독하며 신앙인이었던 성 소수자, 고 육우당의 죽음을 기억했다. 2003년 4월 한기총이 "동성애자를 소돔과 고모라의 유황불로 심판해야 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로부터 20일 후 육우당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육우당은 동성애를 비난하는 기독교계의 반응에 크게 절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소돔과 고모라'를 운운하는 가식적인 기독교인들에게 깨달음을 준다면, 몰지각한 편견으로 한 사람을, 아니 수많은 성 소수자를 낭떠러지로 내모는 것이 얼마나 잔인하고 반성경적인가"라는 내용이 담긴 유서를 남겼다.

종화 씨는 2003년 당시와 성 소수자를 거부하는 교회법을 개정한 감리회의 현 상황을 비교했다. 그는 "감리회가 삶 자체를 숨기며 살아야만 하는 성 소수자와의 연대를 끝내 거부했다. 2003년과 달라진 게 없는 현재, 우리는 다시금 육우당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는 예수님의 인류애에 동조한다.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감리회의 인권 탄압 행태를 단호하게 거부한다"며 제2, 제3의 육우당이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 성 소수자 편에 설 것이라고 했다.

현재 감리회는 교단 차원에서 개교회를 대상으로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 3항 중 성적 지향 문구를 삭제하는 서명운동도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전용재 감독회장께 드리는 편지'에서 이와 같은 감리회 교단 상황을 비판했다.

국가인권위원회법 제 2조 3항은 "출신 국가, 민족, 신체 조건, 혼인 여부, 성적 지향 등의 이유로 고용, 교통수단, 교육 훈련, 성희롱 행위 등에 있어서 불이익을 주는 것은 차별이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해당 조항에서 성적 지향 문구를 삭제하려는 감리회는 예수와 교회의 이름으로 소수자를 억압한다는 것이다.

숨 막히는 가면을 벗고

기자회견이 진행될수록 바람이 거세게 불고 기온이 떨어졌다. 시민들은 가면을 쓴 감리회 신자들을 구경하기도 했다. 준비한 성명서와 발언 낭독이 끝나자, 이들은 가면을 벗고 '희년을 향한 우리의 행진'을 함께 불렀다.

기자회견은 감리회 감독회장에게 준비한 서한을 전달하고 마무리됐다. 감독회장은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감리회 총회 본부에 서한을 접수했다. "일단 접수는 하겠다"라는 총회 직원의 말에, 이들은 전용재 감독회장께 서한을 직접 전달할 것을 거듭 당부했다.

감독회장을 만나지 못했지만 30여 명의 감리회 신자들은 서로를 격려했다. 이들 중 한 사람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싸움이지만 감리회의 변화를 기대하며 성 소수자와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 성 소수자 탄압을 반대하는 감리교신학생및전도사모임, 감리교목회자및평신도모임은 감리회 총회에 전용재 감독회장에게 서한 전달을 당부했다. ⓒ뉴스앤조이 강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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