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많은 사람들이 기피하는 민감한 주제지만 재정에 대한 하나님의 관점을 배우는 것은 기독교의 기초입니다. (중략) 그러므로 하나님의 재정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는 것은 월 스트리트를 이해하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 <재정의 청지기 직분> / 앤드류 워맥 지음 / 반재경 엮음 / 믿음의말씀사 펴냄 / 215쪽 / 8,500원

예수님이 가르치신 주제 중에서 기도, 믿음, 돈을 예로 들어 그것들을 가장 많이 언급된 순서대로 나열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짐작컨대 기도와 믿음이 수위를 다툴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반면 돈은 부동의 최하위를 기록할 공산이 크다. 경우에 따라 비교 대상이 아니라는 반론에 밀려 아예 배제될 가능성조차 없지 않을 것이다. 돈의 입장에서 보면 그만한 홀대도 없다. 그렇다고 돈의 영향력이 전보다 못할까?

과거와 달리 돈이 생활 구석구석 촉수를 대지 않은 곳이 없다. 돈으로 사랑마저 살 수 있다고 믿는 풍조가 만연한 것도 특징적이다. 그럼에도 돈은 신앙생활에서 경원시되거나 부차적인 문제로 취급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저자인 앤드류 워맥은 교회가 생활의 실제적인 부분에 성공적으로 복음을 적용하지 못한 데서 이유를 찾는다. 그 결과로 교회가 현대 사회에서 영향력을 잃어 갔다고 워맥은 지적한다.

문제의 원인이 재정에 대한 하나님의 관점이 부재한 데서 기인한다고 본 워맥은 맘몬의 득세에 힘입어 구시대 유물처럼 안치된 신자의 직분, 곧 재정의 청지기 직분을 소환해 청지기로 사는 것의 성경적 의미를 되짚는 한편 청지기 직분의 연원과 의미, 양태 등을 촘촘히 살펴가며 재정의 원리에 숨겨진 하나님의 관점을 비밀스럽게 드러낸다.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 있다. 워맥이 서두에서 언급한 한 줄 문장이다.

"만일 당신이 재정에 대해 신실하지 못한다면 당신에게는 아무것도 맡길 수 없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누가복음 16:11)."

워맥이 재정에 관한 하나님의 관점을 드러내려는 주된 이유를 이 문장에 담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믿지 않고 누군가에게 돈을 맡길 강심장은 없다. 무엇이든 믿고 맡기려면 그에 앞서 신뢰를 쌓는 것이 순서다. 물론 최고 수준의 신뢰에 도달하는 데는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할 것이다.

더불어 다음 단계로 올라서려면 누구든 예외 없이 각각의 단계에서 요구하는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착실히 계단을 밟아 올라서지 않고 몇 계단을 훌쩍 뛰어넘을 방법이란 없다. 제공되는 인센티브가 높을수록 사람들이 몰려들 가능성도 높다. 이 경우 주관자 입장에서는 몰려든 사람들의 싹수를 알아보는 게 중요해진다. 한마디로 싹수가 노란 사람을 일찌감치 탈락시켜야 행사장의 혼잡을 피할 수 있고 관리에 따르는 부담 역시 줄일 수 있다.

워맥은 하나님 또한 마찬가지 판정 기준을 갖고 계신다고 말한다. 특히 첫 단계에 대한 관심을 남다르게 드러내는데, 첫 단계가 신실함의 여부를 가르는 척도라는 이유에서다. 이와 같은 관점은 앞서 언급한 싹수를 가늠하는 수준을 뛰어넘는다. 한마디로 첫 관문인 재정을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면서 그 관문이 지향하는 영적 진보에 이르기를 바라는 것은 기대 난망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더 분명한 어조로 "재정에 신실하지 못한 신자에게는 그 어떤 것도 맡기지 않겠다"고 선언하셨다. 같은 맥락에서 워맥 역시 본문을 하나님의 확고부동한 선언에 대한 부연 설명이자 주석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시종일관 단호하게 주제 의식을 끌어간다.

우리는 종종 천국의 법칙과 세상의 법칙이 다르다고 단정한다. 천국은 세상과는 다른 법칙이 작동할 거라는 막연한 생각이 밑바탕에 깔린 탓이다.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상기하면 이내 근거 잃은 단정으로 판명 날 텐데 말이다. 물론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이 땅과 달리 차별이 없다. 그렇다고 차별이 없다는 사정만으로 그 사정을 천국의 법칙으로 표현하지는 않는다.

심은 대로 거두는 법칙을 예로 들어 보자. 그 법칙은 농사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재정 부문에도 동일하게 영향을 미친다. 다만 땅에 씨앗을 뿌리고 하나님께 재정을 맡기는 등 형식이 다소 다를 뿐이다. 뿌리고 맡기는 차이가 있을 뿐 심는 행위는 농사와 재정이 다르지 않다.

한 발 더 나아가 워맥은 신자라면 누구든 재정을 하나님께 믿고 맡기는 문제를 비켜 갈 수 없다고 말한다. 워맥은 그 근거를 마가복음 10장 25-27절의 부자 청년의 예에서 찾았다. 앞서 누가복음 16장 11절을 인용하면서 재정을 믿음이 가장 적게 들어가는 영역으로 기술한 워맥은 그와 같이 가장 작은 영역에 충성하지 않으면 더 큰 것에는 당연히 충성하지 못할 것이라는 진단을 발판으로 삼는다.

워맥은 믿음이 재정과 무슨 연관을 맺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들어가는 데 재정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본론의 대부분을 할애했다. 더불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재정을 하나님께 맡기는 결단을 기본으로 일을 해 나가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규모의 일을 하지 못했을 거라고 고백하고 있다.

재정이 하나님께서 신자 각자에게 위임한 보물이라는 청지기 의식은 신자라면 마땅히 갖춰야 할 품성이다.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는 성경 말씀처럼,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는 일 또한 신자의 책무 중 하나라는 데 이론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돈의 노예가 된 부자 청년의 예는 신자에게 반면교사가 되기에 충분하다. 부자 청년은 고대하던 영적 진보를 돈 때문에 놓쳤다.

반대로 재정의 원천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는 이들에게는 재정 영역에서 놀라운 은혜가 임할 것임을 시사하는 장면으로 읽는 데 전혀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인용한 누가복음의 말씀이 재정에 신실한 신자에게 무엇이든 맡기겠다는 약속의 또 다른 버전이기에 그렇다. 첫 단추를 잘 꿰어야 입은 옷이 형태를 바로 잡듯이 재정을 하나님께 맡기는 훈련에서 영적 진보의 서막이 열린다는 점을 <재정의 청지기 직분>(믿음의말씀사)에서 반드시 기억하자.

김정완 /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네이버 파워블로거, 평신도 사역자

* 이 글은 <크리스찬북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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