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게 안팎에서 꾸준히 세습 반대 목소리가 나오고 있고 이를 방지할 제도적 장치도 마련되고 있지만, 세습은 끊이지 않고 있다. 2015년 말 변칙 세습까지 막는 '징검다리세습 방지법'을 제정한 감리회 내에서도, '막차'를 탄 교회가 있었다. (사진 출처 플리커)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회·전용재 감독회장)는 2012년 한국교회 주요 교단 중 최초로 '세습방지법'을 제정했다. "부모가 담임자로 있는 교회에 자녀나 자녀의 배우자를 연속해서 동일 교회의 담임자로 파송할 수 없다"는 내용을 교단 헌법에 명시한 것이다.

'연속해서'라는 규정의 허술함을 이용해 이른바 '징검다리세습'이 등장했다. 임마누엘교회는 김국도 목사의 아들 김정국 목사를 담임자로 세우기 위해 '위장 담임목사'를 동원했다. 인근 교회 목회자를 잠깐 담임자로 세웠다가 곧바로 바꿔 버린 것이다.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세반연·공동대표 김동호·백종국·오세택)가 조사한 2013~2015년도 세습 제보 현황에 따르면, 징검다리세습과 같은 '변칙 세습' 37건 중 감리회가 10건을 차지했다.

감리회는 이러한 맹점을 개선하고자 지난해 10월 이른바 '징검다리세습 방지법'을 결의했다. 부모가 담임자로 있는 교회에 직계존속이 10년 간 부임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징검다리세습 방지법 제정 역시 한국교회 주요 교단 중 최초였다. 전용재 감독회장은 개정한 교리와 장정을 2015년 12월 31일 공포했다. 이에 따라 2016년 1월 1일부터 감리회 내에서의 직계 세습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아버지 친구 목사, 1년만 담임 목회하고 은퇴…부목사 아들이 취임

새 법이 효력을 발휘하기 전 '막차'를 탄 교회가 있다. 서울연회 서대문지방 연희교회는 지난해 12월 30일 김영동 목사의 아들 김국현 목사를 담임목사로 등록했다. 헌법이 바뀌기 하루 전이다. 감리회 2월 자 교역자 임면 공고란에는 김국현 목사가 연희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했다고 나왔다. 연희교회는 교인 300여 명 규모로 알려져 있다.

김국현 목사 부임 절차를 보면 몇 년 전부터 연희교회가 '징검다리세습'을 준비한 흔적이 보인다. 김국현 목사는 2014년 6월, 서울 은평구 평안교회에서 연희교회 부목사로 부임했다. 같은 시기 60세가 넘은 김윤모 목사도 부목사로 연희교회에 왔다. 인천 주안의 대성교회에서 15년간 목회하고 은퇴를 얼마 남기지 않은 시점이었다. 김윤모 목사는 김국현 목사의 아버지 김영동 목사와 오랜 기간 알고 지낸 사이다.

2015년 4월, 담임 김영동 목사는 자원 은퇴했다. 연희교회는 후임으로 60대 부목사 김윤모 목사를 내정했다. 그가 잠시 담임목사를 맡은 사이 연희교회는 인사구역회를 열고 김영동 목사의 아들 김국현 목사를 담임자로 세우겠다고 결의했다. 이미 2012년 만들어진 세습방지법 때문에 부모와 자식 간 직접 승계는 불가능한 상황이니, 김윤모 목사를 '위장 담임목사'로 세운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았다.

"세습이 맞긴 한데…" 고심하던 서울연회 감독, 개정안 공포 하루 전날 승인

이 문제는 감리사를 거쳐 최종 결재권자인 서울연회 여우훈 감독에게까지 올라갔다. 여우훈 감독은 당초 이를 반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습으로 볼 만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서울연회는 2015년 이미 징검다리세습도 하지 말자고 연회 내에서 자체 결의한 상태였다.

그러나 여 감독은 당초 판단을 뒤집고 12월 30일 이를 승인했다. 연희교회 장로들과 교인들이 김국현 목사의 취임을 수개월간 끈질기게 요청한 것이다. 여 감독은 결국 "현행법이 징검다리세습을 금하지 않기 때문에 막을 이유가 없다"는 연희교회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뉴스앤조이>는 여우훈 감독의 입장을 들어 보려 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대신 서울연회 관계자에게 당시 상황을 들을 수 있었다. 서울연회 관계자는 "감독님도 변호사 자문을 구하고 교단에 유권해석을 의뢰했다"고 말했다.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덥석 도장을 찍어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타이밍이 문제가 됐다. 여우훈 감독이 결재한 날짜가 2015년 12월 30일, 전용재 감독회장이 개정된 교리와 장정을 공포한 게 12월 31일이었다. 때문에 '법이 바뀌기 전에 처리했다'는 의심을 피할 수 없었다.

서울연회 관계자는 "연희교회가 교인이 많이 줄어 김영동 목사를 지지하는 교인 200여 명 정도만 남았다. 그 교회는 김영동 목사의 영향력이 강해 다른 사람이 갈 수 없는 곳이 됐다. 그래서 아들을 데려갔을 것이다. 세습한 건 맞다"고 했다.

감리회 목사들로 구성된 장정수호위원회(장수위·김교석 위원장)는 올해 1월부터 '세습을 눈감아 준 감독'이라며 여우훈 감독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장수위 관계자는 "몇 차례 물러나기를 권면했으나 듣지 않아 조만간 감리회 본부에 여 감독 사퇴를 요구하는 고발 청원을 낼 계획"이라고 했다.

김국현 목사 "나도 세습 원하지 않았다"

연희교회 김국현 목사는 교회를 의도적으로 물려받은 게 아니라고 항변했다. 그는 "아버지가 김윤모 목사님을 잘 알고 지내셨다. 김 목사님이 전에 계시던 교회에서 은퇴하시기 어려운 사정이 생겼다. 아버지가 김 목사님을 도와주는 차원에서 연희교회로 모셔 온 것이고, 여기서 편안히 은퇴하시기 바랐다. 그런데 김윤모 목사님이 몸이 안 좋다며 정년보다 몇 년 일찍 은퇴하셨다. 그 바람에 내가 갑자기 담임목사직을 맡게 됐다"고 말했다.

2014년 부목사로 부임할 때부터 담임목사직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어려서부터 연희교회에서 나고 자랐다. 모교회라는 감정은 있지만 담임목사직을 생각하고 온 건 아니다"고 했다. 그는 여우훈 감독 사퇴를 주장하는 이들에 대해 "교회에 법적으로 문제 삼을 게 없으니 다른 소리는 못하고 감독 사퇴하라는 말만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세습 문제를 제기한 이들은 이번 기회에 확실히 본보기를 세워야 한다는 입장이다. 장수위 소속으로 세반연에서 활동하고 있는 황광민 목사(석교교회)는 "금란교회나 광림교회가 세습할 때는 못 막았지만 이제라도 이런 일이 생기는 걸 막아야 한다. 결국 떼쓰면 세습을 눈감아 주는 거 아닌가. 사회 법 소송을 해서라도 이 문제를 끝까지 제기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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