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 이어령 지음 / 열림원 펴냄 / 152쪽 / 1만 1,000원

딱정벌레 한 마리가 숲을 헤집고 다닙니다. 이 나뭇가지로 기어오르다가, 저 나뭇잎으로 타고 오릅니다. 신선한 바람이 불어 날개를 간지럽혀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어이 발들만 날래게 젓습니다. 나무와 풀들이 여름 볕에 애를 태우며 삶을 바르작거리는 것과 달리 딱정벌레는 숲의 바다에서 혼자만 유유자적입니다.

딱정벌레의 딱딱한 갑옷 밑에 숨은 날개는 언젠간 활짝 펴질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민낯을 드러낸다는 것에 대한 경계가 이만저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람이 일렁일 때 단번에 날개를 활짝 펴면 그만입니다. 그리하면 쉽게 바람과 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딱정벌레가 날개를 그리 쉬 펴지 못한 것은 바람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만이 의미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승리도 좋지만 승리 뒤에 올 부끄럼이 더 두렵기 때문입니다. 싸움에 이겼다고 진정 삶에 승리한 건 아니거든요. 결정적인 찬스에 날개를 펼치기 위해선 작은 바람들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딱정벌레, 껍질을 벗다

딱정벌레는 날개를 딱딱한 껍질에 숨긴 채 숲을 즐기는 게 특기입니다. 50년을 그렇게 살며 아무런 불편함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아마도 감내할 수 없는 큰 바람이 일었나 봅니다. '딱정벌레의 껍질 뒤에 숨어 있는 말랑말랑한 알몸을 드러내는 짓'을 감행했으니 말입니다.

그게 바로 '시를 쓰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어령 교수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문단 생활 50년 만에 산문집이 아닌 시집을 냈습니다. 그의 첫 시집입니다.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는 2008년도에 내놓은 그의 첫 시집이며 지금까지의 유일한 시집입니다. 개정을 거듭하며 올 초 3판이 나왔습니다.

나는 그의 시를 읽으며 그의 변신을 보았습니다. "나는 아직도 산문의 갑옷으로 무장하여 내 생명의 속살을 지켜 갈 수밖에 없는 한 마리 딱정벌레입니다"(머리말 중)라는 그의 말이 무엇인지 알아냈습니다. 결국의 이런 말까지 합니다.

"아무도 나를 시인이라고 불러서는 안 됩니다" -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머리말 중

왜 그럴까요? 아직 알몸을 드러낸 부끄럼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이라면 이어령 교수의 변신을 압니다. 그토록 완강했던 거절들의 세월은 결국 딸 민아 씨의 간절함에 무너집니다. 딱정벌레가 결국 딱딱한 껍질 속에 숨겼던 날개를 펴고 만 것입니다.

딸 민아씨는 암으로 죽지만 이어령 교수는 비로소 날개를 펴고 교회의 문턱을 넘습니다. 2007년 76세의 나이에 세례를 받고 기독교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그의 심정은 '나에게 이야기하기'(<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미수록 작품)라는 시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너무 고집부리지 말라 하네
사람의 마음과 생각은 늘
변하는 것이므로…

그의 고집이 꺾인 건 곧 그의 딱딱한 껍질 속 날개를 펼치는 일이었습니다. 그의 기독교인으로의 변신은 한마디로 '쇼킹 스토리'였습니다. 그의 자서전적 간증은 <지성에서 영성으로>(열림원)라는 책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이 교수는 "이 책이 자신의 내면을 그대로 털어놓는 거짓 없는 기록이라 내고 싶지 않았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의 민낯은 드러났고, 더 이상 딱정벌레의 딱딱한 껍질은 그를 보호해 주지 않았습니다. 내친김에 이번엔 민낯을 유감없이 드러내는 시집을 냈습니다. 제목인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가 의미하는 바는 큽니다. 이제 더 이상 껍질은 없지만 그래도 자신의 부끄럼을 '무신론자'란 단어 속에 살며시 포갭니다.

딱딱한 껍질을 벗었을 때

산문을 쓰던 이가 시를 쓴다는 것은 자신의 알몸을 드러내는 일이고, 딱정벌레가 딱딱한 껍데기 속에 들었던 날개를 펼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인으로 불리기 싫다는 건 아직도 껍데기 속의 날개가 그립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하나님의 손은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닙니다.

달빛처럼 내민 당신의 손은
왜 그렇게 야위었습니까.-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2' (149쪽)

그럼에도 딱딱한 껍질을 벗기 전에는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립니다. 보이지 않던 게 보입니다. 비록 어렴풋이지만.

당신을 부르기 전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부르기 전에는
아무 모습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아닙니다.
아렴풋이 들리고 멀리서 들려옵니다.-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2' (149쪽)

어린아이가 두 발로 서는 것과 두꺼운 껍질을 벗는 건 이리 닮았습니다.

큰다는 것은
네 발에서 두 발로 선다는 것
안전에서 위험으로 나간다는 것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옮겨간다는 것- '두 발로 일어설 때' (17쪽)

그뿐이 아닙니다. 캄캄한 집에 창문 하나 내는 것입니다.

집에 창이 있다는 것은
몸에 영혼이 있는 것처럼 아름다운 일이다.
창이 없었더라면 나는 밖에서
당신은 안에서
영원히 떨어져 있는 섬- '바람의 눈' (28쪽)

"목숨은 태어날 때부터/ 기저귀를 차고 나온다"('메맨토 모리' 중)던 그에게, "장미를 찍어도 까맣게 나오고/ 갠 하늘도 늘 흐린 흑백사진"('흑백사진' 중)이라는 그에게, "주인공은 죽지 않는다"고 외치며 "걱정 마/ 주인공이니까/ 안 죽어."('엑스트라' 중) 할 수 있는 건, 힘들었지만, 민낯을 드러내는 것이지만, 알몸을 드러내는 것이지만, 그 딱딱한 껍데기를 벗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좀처럼 날개를 펼치지 않아도 온 숲을 만끽할 수 있었던 딱정벌레는 이제 딱딱한 껍질 속 날개를 펼치고 더 많은 것을 듣고, 더 많은 것을 보는 딱정벌레가 되었습니다. 한 어른 딱정벌레의 민낯 공개에 박수를 보냅니다. 당신도 그의 민낯을 보고 싶다고요. 이 책을 추천합니다.

※뒤안길은 뒤쪽으로 나 있는 오롯한 오솔길입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의 오솔길을 걷고 싶습니다. 함께 걸어 보지 않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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