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자의 간구> / 정창균 지음 / 설교자하우스 펴냄 / 214쪽 / 1만 원

종종 예배 진행자가 "사도신경을 외우므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겠습니다"라거나, "주기도문을 외우므로 예배를 마치겠습니다"라고 인도하는 경우가 있다. 과히 틀린 말은 아니라 할지라도, 자칫 미숙한 표현이 오늘날 교인들에게 잘못된 신앙 습관을 불러일으킨다. '주기도문'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따르는 모든 제자들에게 기도의 모본을 가르치신 내용이다. '사도신경'은 기독교 신자들이 믿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의 핵심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은 바른 기도문과 신앙고백만큼이나 정당하고 피땀 어린 실제적이고 실천적인 삶을 요구한다. 그저 암기하고 읊조리거나 예배 의식의 한 순서로 그치지 않고 그것을 삶에 내면화하고, 그 뜻과 원리를 좇아 자신의 삶으로 드러내고 꾸려 나가야 한다.

그럼에도 오늘 우리 교회 현실은 이 귀한 신앙의 내용이 희미해져 있고, 왜곡되어 있다. 이교도들의 주문이나, 자기 최면의 도구로 여겨지고, 그저 예배나 행사를 마치는 수단 정도로 오해되고 있는 경향이 늘고 있다.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약해지고 교회 공동체가 무너져 가는 안타까운 상황의 한 단면이다. '외운다'는 말을 쓰지 말고, 그냥 "주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를 하겠습니다", "사도신경으로 우리의 신앙을 하나님께 고백하겠습니다"라고 해야 한다.

나는 내가 속한 교회는 예배 시 '주기도문'이나 '사도신경'을 할 때, 모든 회중이 성경 맨 앞에 있는 이들 문구를 펼쳐 보면서 음미하며 함께 읽도록 이끌고 있다. 눈을 감고 단순히 암송하므로 그냥 의식 순서 중 하나로 지나가는 것이기 보다, 한 구절 한 구절 전 인격과 삶을 담아 천천히 함께 읽는다. 바른 신자로서의 정당하고 열심 있는 생활과 인생을 기대하기 위해서다.

"주님이 기도를 가르쳐 주신 것은 그 문장들을 외워서 염불처럼 암송하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 기도를 통하여 그 내용을 고백하고, 소원하고, 결단하여 살라고 주셨습니다. 암송용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 된 신자의 생활용으로 주신 것입니다."

이 시대의 탁월한 설교학자요 설교운동가인 정창균은 그의 주기도문 강해서, '신자의 간구' 서문에 이런 상황과 주의를 특별히 당부하고 있다. 주기도문이 신자의 단순한 암송으로 끝나 버린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과, 신자의 삶의 현장에서는 거의 기대하기 어려운 작금의 답답한 상황을 염려하며 그는 자신의 두 번째 설교집을 특별히 주기도문 강해서에 담았다. 그가 이 책을 세상에 내어 놓는 것은 기도하는 대로 그렇게 살아야 하는 신자와 교회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주기도문의 간구들을 하나씩 살펴보며 그 의미가 무엇이고, 함축된 의도가 무엇이며, 보장된 복이 무엇인가를 확인해 본다. 그것을 신자 된 우리의 삶으로 연결하고자 하는 것이 이 강해의 목적이다.

예수님은 주기도문을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맨 먼저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셨다. 그것은 당대 행해지던 여러 잘못된 기도들에 대한 불만과 동시에, 제대로 된 하나님께 대한 기도와 생활로 가르치고자 함이리라. 특별히 기독교의 핵심 사상이 담긴 '산상수훈'의 한 가운데 이 기도문이 위치하고 있다. 이렇게 '기도하라'는 것은 또한 그렇게 '살라'는 의미였다.

'언행일치', '신행일치'는 실제로 그렇게 하지 못하는 현실의 역설이련가. 표리부동한 엉터리 신자와 교회 지도자가 이젠 걱정을 넘어 세상도 포기한 지경(?)의 우리 교회 현실이다. 그러면 예수님이 다시 우리에게 이번에 굳이 "너희는 이렇게 살라"고 또 외쳐야 할지 모르겠다. 일그러져 가는 한국교회와 세속화한 한국 신자를 향한 그 주님의 안타까운 심정과 답답함을 대신하여 저자 정창균은 주기도문 강해서를 내었다.

기존의 주기도문 강해서가 넘쳐 나나, '신자의 간구'가 의미 있는 것은 바른 신자의 간구만큼이나 바른 행함과 신자가 누리는 하나님과의 동행에 따른 복을 새삼 강조하기 때문이다.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빌 4:9)."

일치된 신앙과 삶을 강조하는 만큼 또한 그의 설교나 책의 문장들은 참으로 착한 것이 큰 장점이다. 그의 설교(강해)는 섣부른 원어나 현학적인 용어 따윈 아예 찾아보기 어렵다. 쉬운 말과 어투로 마치 어린아이에게 하듯 차근차근 설명하며 당부한다. 장황한 설명이나 어쭙잖은 예화 들먹이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말씀 그 자체를 말씀으로 담담하면서도 간결하게 풀어낸다. 회중(독자)을 대하는 설교자의 착한 심성이다. 하늘 사명을 맡은 설교자의 책임과 본질에 충성하는 선한 열심이 고스란히 말과 문장 가운데 배어 있다.

저자 정창균은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설교학 교수로서 그는 설교 이론가에 머물지 않고, '설교자하우스'를 통해 꾸준히 후학들과 목회자들을 독려하며 한국교회 강단을 푸르게 하는 실천가이다. 그는 서둘지 않는다. 명망으로부터 늘 비켜서려 한다. 지난 17여 년 동안 소수의 후학들과 설교자들만을 대상으로 오래도록 그러면서도 지속적으로 '설교'의 회복과 부흥을 꿈꾸며 씨름하고 있다.

한국교회 현장에 각종 교회 성장과 상담 세미나들이 참 많다. 정신과 실속 갖추려 애를 쓰기도 하지만, 본질에서 삐끗하며 외형과 덧칠로 포장된 안타까운 실상과 부작용도 많다. 그러기에 상대적으로 교회의 정체성을 염려하며 보다 바르고 진실한 공동체 회복을 위한 작은 운동들도 귀하고 아름답게 비치는 흐름이다. 교회 회복의 한 중요한 요소로 특히 건강한 설교 운동을 펼치는 일은 그래서 더욱 의미 있다. 저자가 펼치는 '설교자하우스' 운동을 통해 보다 선한 설교자들이 이어지며, 또한 그 열매로서 좋은 설교집들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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