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를 많이 하고, 성경을 많이 읽고, 예배를 많이 하면 사람이 양심적이 되고 인격적으로 변할까요?"

이론적으로 관계가 어느 정도는 있을 것 같고, 또 그렇다고 믿고 싶습니다. 하지만 기독교가 보편화한 사회에서는 "별로 관계가 없다"가 사실입니다.

기독교가 기득권 종교인 사회에서 보면 양심과 인성은 거의 다 개인차의 문제입니다. 신앙이 큰 역할을 못 합니다. 대부분 양심적인 사람은 믿거나 안 믿거나 본래 양심적입니다. 믿는다고 더 양심적으로 변하고, 안 믿는다고 비양심적이 되지는 않습니다.

기독교는 양심과 인성 바꾸는 데 무용지물?

예전에 미국에서 나온 통계자료를 보았는데요. 기독교 신앙 행위는 사람의 심적인 고통을 완화하는 데는 매우 효과적입니다. 그러나 사람을 윤리적으로 바꾸거나 그의 인격을 바꾸는 데는 거의 무용지물이라 하더군요.

통계가 주관적일 수 있지만, 오히려 미국에서 상당히 공신력 있는 기독교 기관에서 진행한 것들이라 부인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양심과 윤리에서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의 차이는 없었습니다(George Barna, The Second Coming Of The Church, Word Publishing, 1998, p. 6).

한국의 기독 대학에서도 기독교 대학생과 비기독교 대학생의 윤리 의식을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학생들의 윤리관이나 양심 수준은 고등 종교를 믿느냐 유무와 무관했고,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는 그들의 기도 생활, 성경 지식, 예배하는 횟수와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이 내용은 주로 대학이 자체로 평가한 내부 자료들입니다.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기독교인 비율을 자랑하는 한국의 윤리적 수준이 참담하다는 사실도 이를 입증하지요.)

사실 대학생 기독교인이라도 물질주의, 소비주의, 성공, 성 문제에서 동년배 비기독교인과 같은 세속적 가치관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을 주변에서 많이 관찰할 수 있지요. 우울증과 스트레스 지수는 확실히 적었습니다. 기독교 대학생들이 훨씬 삶에 긍정적이었죠. 감사 지수도 높았고요.

예전에 대중적인 기독교 변증가들은 무신론자가 되면 윤리의 기준이 없어진다고 떠들었습니다. 현실에서는 무신론자들도 평균적으로 상당히 윤리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살면서 보면, 기독교인이라고 딱히 더 윤리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핍박받는 소수의 종교일 때, 이런 결과들은 전혀 다르게 나타납니다. 한국에서도 과거 교회가 소수집단이었을 때, 보편적인 기독교인들이 지금보다 정직한 삶을 살았던 것 같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도 "경찰서 10개보다 교회 1개를 신설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고 하실 정도였지요. 

중국을 예로 들면, 그곳 기독교인들은 확실히 우리보다 윤리적이고 정직합니다. 중국 목회자들이 우리나라에 유학 와서 경악하는 점은 기독교인들의 비리입니다. 중국에는 부정부패가 많아도 기독교인들이 연루된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하더군요. 과거 자료를 보면 중국 정부가 수여한 모범 노동자, 우수 생산자 상을 받은 이들 중에는 기독교인 수가 높습니다(김종구, 21세기로 향하는 중국기독교협회의 선교 과제와 전망).

중국 교회도 요즘 급성장하다 보니 형식적이고 입술로만 신앙을 고백하는 교인 수가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중국 교회 기독교인들은 아직 소수이기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다수가 될 때는 어떻게 변할지 모르죠.

진실하게 성경 가르침 실천하는 사람은 소수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기독교는 소수의 종교입니다.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누가복음 12장 32절)

예수님의 가르침은 결코 다수가 좋아할 수도, 따를 수도 없는 내용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마태복음 7장 13-14절)

도대체 왜 이런 결과가 나올까요? 기독교가 다수 종교가 되거나 사회에서 기득권을 누리는 이들의 종교가 되면, 그 가르침을 실천하지 않는 형식적인 신앙인이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믿음도 일종의 요식행위가 되죠.

반면 기독교가 사회적으로 핍박받거나, 그 사회의 거대한 문제를 파악하고 대안을 찾는 소수가 선택하는 가르침이 되면 어떨까요? 기독교인들의 믿음은 진실해집니다. 한국도 오래 전에는 "야소교인들은 거짓말 안 하고 허랑방탕하지 않다"고 신뢰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역설적인 말이지만 기독교에 대한 핍박이 기독교를 순수하게 만들고 위대한 신앙인들을 탄생시킵니다. 오늘날 기득권을 지닌 한국 기독교의 상황을 보면, 예전보다 너무 편해서 진실한 신앙을 꽃피우기 어려운 게 아닌가 싶네요.

한국교회를 살리기 위해 핍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만 사회가 혼란하고 비윤리적일 때, 엄청난 교인 수를 자랑하는 (기득권에 속하게 된) 기독교가 타락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는 말입니다. 한국의 경우, 사회가 깨끗해져야 교회도 깨끗해집니다. 반대도 마찬가지겠지만, 한쪽만 깨끗해지지는 않습니다.

교회를 크게 만들어 사회에 영향을 끼치겠다는 생각도 현실성이 없습니다. 양심적인 사람이 소수이고,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성공과 경쟁에서의 승리, 복을 좋아하는 이가 절대다수인 사회입니다. 이런 사회에서 양심적이고 순수한 성경적인 가르침으로는 다수를 모을 수가 없습니다. 한국 같이 타락하고 비리가 많은 사회에서 목회자가 맑은 물을 추구하면 물고기들이 더러운 물을 찾아 떠나가죠.

예외는 어디나 있기 마련입니다만, 기독교의 가르침은 결코 다수가 따를 수 있는 내용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개인적으로 깨어 있는 목회자와 교인들은 이 시대를 저항하는 윤리적인 공동체를 만들어 나갑니다. 결국 성경의 가르침은 틀림없는 진리지만 어느 문화에서나 소수만 진실하게 실천한다는 뜻입니다. 소수가 진실하게 따른다는 사실이 오히려 성경이 진리라는 것을 반증하네요.

이민규 / 한국성서대학교 신약학 교수, <신앙, 그 오해와 진실>(새물결플러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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