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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홀 같은 노량진에서 벗어나고 싶다
취직 위해 명절 반납한 공시생들…1박 2일, 그들의 삶을 엿보다
  • 이용필 기자 (feel2@newsnjoy.or.kr)
  • 승인 2016.02.08 17:13

흩어졌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함께 밥을 먹고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눈다. 오랜만에 고향 친구들을 만나 추억도 되새긴다. 누군가에게는 즐거운 명절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하루다. 취직을 위해 설날을 자진 반납한 노량진 공시생(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1박 2일간 노량진에 머물며 그들의 삶을 지켜봤다. - 편집자 주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서울시 동작구 노량진은 기회의 땅으로 불린다. 7·9급 공무원학원을 포함해 경찰·소방관학원, 대입 재수학원 100여 개가 밀집해 있다. 학원 주변으로 고시원과 독서실이 자리하고 있다. 공시생들은 고시원과 학원, 독서실을 오가며 시험을 준비한다.

공무원 인기는 해마다 높아진다. 해고될 위험이 적고 어느 정도 노후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경쟁도 치열하다. 지난해 국가직 9급 공무원 시험 경쟁률은 51.6:1을 기록했다. 총 3,700명을 선발하는데 190,987명이 지원했다. 올해는 54:1로 더 높아졌다. 4,120명을 뽑는데 222,650명이 지원했다.

행정자치부는 지난 2월 3일 청년 실업 해소를 위해 지방직 7·8·9급 공무원 2만 186명을 뽑기로 했다고 밝혔다. 2015년 선발 인원 1만 7,561명보다 15%(2,625명) 증가한 것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기회의 땅 혹은 광야

   
▲ 노량진에는 80개가 넘는 입시‧고시‧자격증 전문 학원이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설 연휴를 맞은 노량진은 한산했다. 하루 유동 인구만 수십만 명에 달하지만 이번 연휴만큼은 달랐다. 노량진에서 가장 유명한 곳으로 소문난 '컵밥거리'도 썰렁했다. 가게 28곳 중 9곳만 문을 열었다. 한 컵밥집에 들어가 3,000원짜리 음식을 주문했다. 쌀밥에 볶은 김치와 햄, 계란, 날치알 등을 얹어서 음식이 나오는 데 1분도 안 걸렸다. 컵밥가게 사장은 "설날 연휴라 그런지 손님이 뜸하다. 보통 같으면 줄 서고 있을 시간인데…. 우리도 8일에만 쉬고 다시 장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명절 연휴 기간에는 웬만한 학원들도 문을 닫는다. 공시생들은 이 기간에 독서실에서 공부하거나 스터디 모임을 갖는다. 관세직 공무원을 준비 중인 강 아무개 씨(32)는 "학원이 쉬는 날에는 보통 새벽 6시에 독서실을 찾는다.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 밤 12시까지 공부한다. 그래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노량진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안다는 강 씨는 노량진을 '블랙홀'에 비유했다. 강 씨는 "노량진에 입성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합격'에 대한 꿈을 안고 들어온다. 길어야 2년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쉽게 빠져나가기 힘든 곳이 노량진이다"고 말했다.

노량진의 한 골목에서 만난 김 아무개 씨(29)도 노량진을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곳이라고 말했다. 검은색 계통의 두꺼운 패딩과 회색빛 추리닝을 입고,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그는 "올해 공무원을 많이 뽑는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좋아했다. 그런데 지원 분야 경쟁률이 더 높아졌다. 물론 허수(지원을 해 놓고 시험을 치르지 않는 사람)가 있지만, 경쟁률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는 것 같다. 올해도 안 될까 불안하다"고 말했다. 설 연휴에 집에 안 가냐는 질문에 김 씨는 "취업 준비하는 사람한테 명절이 어디 있나. 가면 스트레스만 더 받아서 안 간다"고 말했다.

신앙으로 버티는 공시생들

교회 청년 중에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들이 있다. 7일 강남교회(고문산 목사)에서 김성원 씨(가명·34)를 만났다.

대구 출신인 김 씨는 법원직 공무원을 준비 중이다. 4년째 도전하고 있다. 시험이 3월 첫째 주여서 평소보다 긴장이 많이 된다고 했다. 법조계에서 일하는 게 꿈이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다. 올해 경쟁률은 23:1로, 19:1인 작년보다 높다. 김 씨는 노량진을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처음 낙방했을 때는 '처음'이어서 괜찮았다. 하지만 두 번째, 세 번째는 달랐다. 실력 때문인 것 같아 포기하고 싶었지만, 신앙으로 버텼다.

"합격에 대한 압박이 장난 아니다. 하루 빨리 취직해서 연애‧결혼도 하고, 평범하게 살고 싶은데 쉽지 않다. 오늘 목사님이 설교에서 '고통 가운데 있어도 하나님을 믿고 버텨라. 평화의 날을 주실 것이다. 언제 그날이 올지 모른다'고 하셨다. 때로는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들지만, 나를 연단하는 과정으로 믿고 버틸 것이다."

세무직 공무원을 준비 중인 최성준 씨(가명·28)는 노량진을 유혹의 도시로 표현했다. 놀게 되면 한도 끝도 없이 놀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가끔 공부하기 귀찮을 때가 있는데 그 유혹을 벗어나는 게 관건이라고 했다. 최 씨는 "아주 가끔 정신을 다잡기 어려울 때, 신앙의 힘으로 견뎌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취직도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다. 기자가 만난 공시생들은 월평균 100만 원 정도 지출했다. 1년에 1,200만 원 정도 쓰는 셈이다. 학원비‧식사비‧고시원비‧독서실비‧통신비가 고정으로 나간다. 돈은 부모님이 지원한다. 고시원 총무나 편의점 아르바이트 등을 하며 직접 자금을 마련하는 공시생도 있지만, 많지는 않다.

노량진에 어둠이 밀려왔다. 기자는 이날 한 고시원에 묵었다. 1, 3층은 남자 전용, 2층은 여자 전용으로 된 곳이었다. 각 층에는 8개의 방이 있다. 방문 앞에는 목욕 바구니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2평 남짓한 공간에 침대와 책상, 옷장, 냉장고 등이 구비돼 있었다. 창문도 있었다. 옆방에서 들리는 코 고는 소리 외에는 불편함은 없었다.

새벽밥 주는 강남교회

   
▲ 강남교회 청년들은 설날 아침 공시생들을 위해 떡국을 제공했다. 강남교회는 14년 동안 지역 청년들에게 '새벽밥'을 제공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설날인 2월 8일 오전 6시, 강남교회로 향했다. 사실 강남교회는 노량진 공시생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14년간 공시생을 위해 밥을 제공하고 있다. 6시 30분부터 7시 30분까지 지하에 있는 식당에서 밥을 제공한다. 평소에는 권사들이 밥을 준비한다. 설 연휴는 교회 청년들이 맡았다. 새벽 예배를 마친 청년 9명은 곧바로 식사 준비를 했다. 이날 메뉴는 떡국.

시간이 되자 지역 청년들이 하나둘 식당을 찾았다. 강남교회에서 밥을 처음 먹어 본 한 아무개 씨는 청년들에게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한 씨는 설날 아침 떡국을 먹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고 했다. 교회에 나오라는 이야기도 하지 않아 놀랐다고 했다.

교회 한 청년은 "명절에는 권사님들을 대신해 청년부가 봉사한다. 춥고 배고픈 수험생들에게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떡국을 먹은 사람들이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날 100그릇 넘는 떡국이 제공됐다.

설날에 특강 듣는 청춘들

   
▲ 노량진 공시생들에게 명절은 없었다.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시험에 대비해, 설날 당일 특강을 들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강남교회 취재를 마치고, 한 공무원학원으로 향했다. 오전 7시, 2층에 위치한 학원은 조용했다. 500석이 넘는 강의실에는 30여 명이 앉아 있었다. 대부분 교탁 바로 앞에 자리를 잡았다. 검찰직 공무원을 준비 중인 박 아무개 씨(26)는 "아무래도 앞자리가 집중이 잘될 수밖에 없다. 선생님 눈 마주치는 게 부담스러워 약간 측면에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설날 특강 과목은 국어다. 오전 9시에 시작해 18시에 끝나는 일정이다. 설날을 학원에서 보내는 공시생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박 씨는 "새벽에 떡국을 해 먹었다. 서울에서 혼자 명절을 보내니 기분이 묘하다"고 말했다. 9급 공무원을 준비 중인 이 아무개 씨(27)는 설날에 대한 감흥이 없다고 말했다. 마치 돈을 내고 일하는 것 같다면서 하루빨리 노량진을 벗어나는 게 꿈이라고 했다.

시간이 되자 강의실은 학생들로 가득 찼다. 자리를 못 구한 공시생은 영상으로 강의를 시청할 수 있는 옆 강의실로 이동했다. 200석이 넘는 옆 강의실도 금세 들어찼다. 강사는 강의에 앞서 공시생들을 다독였다.

"여러분이 설 당일에 (학원에) 나오셨지만, 열의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국가직 시험에 대비해 8시간 연속 강의 진행합니다. 힘들더라도 끝까지 따라오세요."

   
▲ 설날 연휴를 맞은 노량진의 거리는 한산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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