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강혜원 인턴기자] 설 연휴를 앞둔 금요일 저녁, 광화문 세월호 광장 기억저장소에서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저녁 기도'가 진행됐다. 하나, 둘 사람이 모여들더니 금세 40~50명이 자리를 차지했다. 많은 인원은 아니었지만 기억저장소 부스가 꽉 찼다.

한기가 부스 안으로 들어왔다. 비좁은 장소가 가득 차 함께 껴서 앉느라 발도 저렸다. 하지만 찬송가를 부르는 이들의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다. "우는 자, 눌린 자, 상한 자 위해 오소서", 지나가는 시민들이 찬양 소리를 듣고 부스 안을 구경하기도 했다.

이날 기도회 진행을 맡은 성공회 정의평화사제단 자캐오 신부는 "오늘 기도회에서 수많은 사회의 순교자들을 기억하길 바란다. 거짓에 꺾이지 않고 깊은 아픔을 가지고 있는 유가족분들이 있다"고 말했다. 사회 여러 소수자, 위안부 할머니들과 하늘의 별이 된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억하길 당부했다.

▲성공회 정의평화사제단 자캐오 신부가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저녁기도'를 진행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강혜원

어버이연합이 피켓을 빼앗고 죽으라고 말해도…

성공회 예식으로 진행된 예배였지만, 설교 대신 세월호 유족의 발언이 이어졌다. 단원고 희생자 고 오준영 군의 엄마, 임영애 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준영 엄마는 "안녕하지 못한 상황이지만, 주 안에서 여러분 모두 안녕하길 바란다"며 말문을 열었다. 세월호 참사로 자신의 목숨 같은 준영이를 잃고 소외된 채 살아왔지만 이곳에 모인 분들이 위로와 힘이 된다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이어 준영 엄마는 떨리는 목소리로 오늘 오전에 있었던 어버이연합과의 마찰을 언급했다.

"오늘 서울역에서 피켓을 들다가 어버이연합과 트러블이 있었습니다. 피켓을 발로 차고 죽으라고 욕을 하더군요. 저는 매우 분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이곳에 모인 여러분들을 비롯하여 우리 250여 명의 아이들을 기억하며 연대해 주시는 분들이 있기에 그런 일도 견딜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고 오준영 학생 어머니 임영애 씨가 발언하고 있는 모습이다. ⓒ뉴스앤조이 강혜원

준영 엄마는 아직 세월호에서 나오지 못한 아홉 명의 미수습자들이 돌아올 때까지 끊임없이 기도하고 연대할 것을 부탁했다. 그곳에 모인 50여 명의 사람들은 박수로 준영 엄마를 응원했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저녁 기도'는 함께 떡과 포도주를 나눠 먹는 성찬 예식과 서로를 축복하는 기도로 마무리됐다. 자캐오 신부는 기도회를 마치며 "매번 이곳에 오지 못 해도 각자의 자리에서 내 곁에 있는 사람의 손을 잡아 온기를 나누는 일부터 시작하면 된다. 그렇게 지금보다 조금 더 따뜻해진 세상에서 세월호 가족분들이 조금이나마 온기를 느낄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저녁 기도회에 참여한 이들이 서로를 축복하는 시간을 가졌다. ⓒ뉴스앤조이 강혜원

한 시간 동안 진행된 기도회가 마무리되고 '세월호를 인양하라' 제목으로 세월호 토크 콘서트가 열렸다. 시인 권말선 씨가 직접 지어 온 시를 낭송하고 세월호 대학생 동아리 소속 학생이 노래를 하며 세월호 유족과 미수습자 가족을 위로했다.

"우리는 빨갱이도 되고 수사관도 됐다"

토크 콘서트 패널로 단원고 고 장준형 학생의 아버지인 장훈 씨와 양한웅(4.16 연대 수습인양위원회위원장) 씨가 나왔다. 미수습자 권혁규 군의 큰아버지도 자리에 함께했다. 준형 아버지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우리 유가족들은 직접 수사관 역할도 하고 때로는 빨갱이도 됐다"며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털어놨다. 작년 말 세월호 특조위 청문회에서도 드러난 것처럼 정부는 매번 거짓말로 일관해 왔다며 불신을 표현했다.

현재 세월호 인양 작업은 사설 인양 업체가 아닌 정부 소속 기술TF팀이 담당한다. 이들은 인양 결정이 날 때까지 세월호 가족들의 참관을 불허했다. 유가족들은 인양 작업에서 배제되어 세월호 근처 섬, '동거차도' 정상에 천막을 짓고 망원렌즈로 작업을 감시하고 있다.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은 팽목항 근처에서 직접 배를 몰기 위해 주소지를 옮기고 배 운전 자격증까지 딸 계획이다. 동거차도에서 인양 과정을 감시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명절에도 세월호 가족은 쉴 틈이 없다. 세월호 인양 현장에 머물며 앞으로 배를 몰기 위한 준비 작업을 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662일이 지난 만큼, 세월호는 사람들 머릿속에서 잊히고 있다. 하지만 준영 엄마 말처럼 세월호 유족들이 다시 일어서는 것은 아직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 처음으로 기도회에 참여했다는 지윤정(26세) 씨는 충혈된 눈으로 기자의 물음에 답하다가 결국 눈물을 보였다. 그녀는 "2년 전과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다. 나도 이렇게 슬픈데 세월호 유족, 미수습자 가족분들의 마음은 오죽할까 싶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전했다.

세월호를 위한 기도회는 매주 금요일 저녁 6시에 개신교 단체가 번갈아서 진행해 오고 있다. 세월호를 잊지 않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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