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는 꼭 힘들어야 되는 거예요?"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빡빡 밀어 버린 머리, 180센티는 족히 돼 보이는 건장한 체격의 사내가 되물었다. 툭툭 내뱉는 말투에,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자기 생각을 말할 때는 종이에 적어 가며 확신 있게 이야기했다. '선교사는 그래야 하는 거냐'고 되물을 때 순간 위압감을 느꼈지만, 이내 특유의 친근한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박상현 선교사(GMP) 이야기다.

▲ 아프리카 탄자니아 박상현 선교사를 만났다. 그는 현지에서 태권도를 가르치며 사역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그는 31세 젊은 나이에 선교사가 됐다. 2010년 아내와 갓 낳은 딸을 데리고 탄자니아로 갔다. 6년을 사역한 후 처음으로 안식년을 맞았다. 한국에 들어온 그는 현재 NGO 대학원을 다니고 있다. 사역을 더 잘하기 위해 여러 교육 프로그램을 찾아 듣고, 가끔 초청이 들어오면 교회나 신학교에 강의를 나가기도 한다.

박상현 선교사는 조금 젊다는 것 빼고 여느 선교사와 다른 점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선교를 준비한 과정과 선교하는 방법, 선교에 대한 생각은 남들과 조금 달랐다. 2월 4일, 서울 천호동에서 박 선교사를 만났다. 선교지에서 겪었던 어렵고 힘든 이야기를 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뭔가 좀 삐딱한 것 같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박상현 선교사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현지인을 위해 매정해야 했다

박상현 선교사는 중학생 때 예수님을 만나고 그때부터 오직 선교사가 되기 위한 인생을 살았다. 무엇이든 많이 배워 놓으면 언젠가 하나님이 사용하실 거란 생각에 하나씩 취득한 자격증이 29개다. 10여 년간 경호원, 체육관 운영, 보험 영업을 한 것도 선교사가 되기 전 일반 직업을 경험해 봐야 한다는 소신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도 할렐루야태권도단 활동을 하며, 낮에는 일하고 밤 11시에 모여 태권도를 연습했다. 언젠가 태권도 선교를 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20대를 선교사 되기 위한 준비의 기간으로 불태우고 그는 정말 '태권도 선교사'가 되었다. 2010년 선교지에 도착해 첫 3년간은 탄자니아대학교(UAUT) 태권도 교수로 일했고, 그 후 학교를 떠나 자택에서 현지인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쳐 왔다. 2013년 탄자니아 청년들과 함께 '탄자니아할렐루야태권도단'을 결성했다. 박 선교사는 현재 탄자니아 태권도 국가 대표 코치이며, 그에게 배운 청년들이 국제 대회에 나가 수상하기도 했다.

"학교에서 일할 때는 힘든 점이 많았어요. 퇴직하고 좀 쉬려는데, 현지 청소년·청년들이 태권도를 가르쳐 달라고 저희 집까지 찾아오는 거예요. 처음에는 되돌려 보냈죠. 그런데 4개월 동안 거의 매일 찾아오더라고요. 계속 거절하기도 뭐해서 기초 체력부터 가르치기 시작했어요. 태권도가 뭔가 멋있을 줄 알고 찾아왔는데 체력 단련만 하니까 하나둘 떠나더라고요. 끝까지 버틴 열댓 명을 데리고 본격적으로 태권도를 훈련하기 시작했어요."

▲ 박상현 선교사는 현지 제자들과 함께 2013년 탄자니아할렐루야태권도단을 결성했다. (사진 제공 박상현) 

박상현 선교사가 선교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현지인의 '자립'이다. 여러 일을 겪으며, 퍼 주기 식의 구호와 선교가 현지인들에게 끼치는 부작용을 알게 되었다. 너무 가난한 그들의 처지도 이해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자립심을 키워 줄 필요가 있었다.

"태권도 배우는 아이들이 체육관을 만들어 달라고 하더라고요. 맨날 땅바닥, 흙바닥에서 연습하니까 다친다고. 저는 그들에게 '너희들이 필요하면 너희들이 지어'라고 좀 매정하게 얘기했어요. 물론 저도 체육관 짓고 싶죠. 솔직히 아프리카에 태권도 선교한다고 그런 건물 짓겠다고 하면 한국에서 후원받기도 수월하고요. 그런 마음 꾹꾹 참았어요. 체육관 지어 달라고 할 때마다 저는 번번이 거절했어요.

태권도 승급 시험 볼 때도 비용을 다 받았어요. 도복, 띠 어느 하나 공짜로 주지 않았어요. 물론 학생들은 할인해 주었지만 성인들은 그런 거 전혀 없어요. 탄자니아 친구들이 정말 찢어지게 가난한 거 저도 잘 알아요. 돈 없는데 한 번만 봐 주면 안 되겠냐고 할 때마다 마음이 흔들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죠. 그래도 이렇게 기준을 정해 놓으면 그들은 막노동을 해서라도 돈을 만들어 와요. 그렇게 자립심을 키우는 거죠."

▲ 박상현 선교사는 태권도 훈련할 때 만큼은 엄하다. 또 현지인들에게 자립심을 키워 주기 위해 매정할 때도 있다. (사진 제공 박상현)

박상현 선교사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박 선교사에게 태권도를 배운 한 청년이 스스로 근처 학교에서 방과 후 교실을 열어 태권도를 가르치며 돈을 벌기 시작했다. 그는 다른 학교에서도 방과 후 교실을 열고, 박 선교사에게 태권도를 배운 친구들에게 한 자리씩 소개해 주었다. 그렇게 청년들은 스스로 살 길을 찾았다. 박 선교사의 제자는 14명이지만, 그 14명이 가르치는 학생은 현재 1,800명이 넘는다.

어느 날 한 청년이 박상현 선교사에게 휴대폰으로 사진 한 장을 보여 주었다. 아무것도 없는 벌판이었다. 그는 말했다. "선교사님, 제가 여기에 체육관을 지으려고 이 땅을 샀어요." 가난한 나라에 태어나 지지리도 가난한 사람들, 자기에게 태권도를 배우겠다고 4개월을 매달린 사랑하는 제자들을 위해 체육관 하나 마련해 주고 싶은 마음은 누구보다 컸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 그들을 위한 길이 아니기에 꾹꾹 눌러 담았었다. 그날 박상현 선교사는 많이 울었다.

▲ 박상현 선교사는 제자들에게 멋진 사진 한 장씩 선물하고 싶어, 한국에서 전문 사진가들을 초청했다. 사진가들은 3주간 박 선교사의 집에 머물면서 감동을 받아 다큐를 제작해 주었다.

무슬림은 나쁜 사람이 아닌데

탄자니아는 무슬림이 많은 나라다. 종교의 자유가 있지만, 이슬람을 국교로 정하자는 움직임이 끊이지 않는다. 박상현 선교사가 가르치는 아이들도 모두 무슬림이다. 무슬림들이 왼쪽 팔뚝에 빨간색 십자가가 새겨진 도복을 입고 할렐루야태권도단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한다. '죄', '사망', '심판'이라고 쓰인 송판을 '주여!'라고 외치고 격파하며 기독교 복음을 담은 태권도를 선보인다.

"처음에 아이들이 태권도 가르쳐 달라고 저를 찾아왔을 때 물었어요. 종교가 뭐냐고. 다들 무슬림인 거예요. 이런 아이들에게 어떻게 십자가가 새겨진 도복을 입히겠어요. 그래서 얘기했죠. '내가 태권도를 가르치는 이유는 기독교 복음을 전하려는 것이다. 십자가 도복을 입어야 하고 태권도로 복음을 전해야 한다. 네가 이걸 입는다면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따돌림 당할 수도 있다. 그래도 배우겠느냐.' 그렇게 스스로 결단을 시켰어요."

무슬림 청소년·청년들이 박상현 선교사에게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했다. 태권도 교육을 시작했지만 박 선교사는 이들에게 섣불리 성경을 들이 밀거나 예수님을 영접하라고 '결신'시키지 않았다.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내용의 태권도를 가르치는 것뿐이었다. 박 선교사는 이들과 함께 땀 흘려 훈련하고, 훈련이 끝나면 먹고 놀았다. 복음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냥 같이 살았다.

▲ 박상현 선교사가 가르치는 사람들은 모두 무슬림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이 많지만 박 선교사는 믿음을 강요하지 않는다. (사진 제공 박상현)

박상현 선교사는 복음을 들려주는 것까지가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후는 하나님께 맡겼다. 눈에 보이는 성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예수님을 억지로 믿게 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참고 기다렸다. 지금까지 박 선교사의 제자 중 세 명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중 두 명은 선교 훈련까지 받았다. 안식년이 끝나고 돌아가면, 박 선교사는 이 중 한 명에게 현재 사역지를 맡기고 또 다른 한 명과 함께 다른 곳으로 갈 예정이다.

"기본적으로 선교지는 하나님이 정하시는 거지만 제 나름대로 원칙이 있어요. 현지인이 저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으면 그곳에서의 사역은 다 했다고 봐요. 그렇게 됐을 때 그 사람에게 리더십을 온전히 이양하고 미련 없이 다른 곳으로 떠나는 게 진짜 선교라고 생각해요."

최근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는 테러 때문에 이슬람에 대한 공포심이 커지고 있다. 무슬림과 부대끼며 사는 박상현 선교사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무슬림과 생활하는 것이나 이슬람 사회에서 지내는 게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다.

"탄자니아가 그렇게 극단주의 이슬람은 아니어서 그런지 몰라도, 저와 함께하는 친구들은 다들 굉장히 착하고 열정적이에요. 이슬람의 좋은 문화 한 가지가 사람을 환대하는 거더라고요. 또 탄자니아는 한국과 같이 웃어른을 공경하는 문화가 있어요. 제가 태권도 훈련할 때 예절을 가르치기도 하는데, 아이들이 거리낌 없이 잘 따라오고 선생님이나 어른들에게 공손해요.

탄자니아 안에서도 이슬람이 많이 퍼지고 있어요. 이걸 막아야 한다고 얘기하는데… 저는 이슬람이 팽창하고 있는 이유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다고 봐요.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답게 살지 못하니까. 그리스도인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상식, 윤리, 이런 게 없어요. 한국에서도, 선교 현장에서도 그래요. 저는 분명히 그게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해요."

선교사는 이래야 한다?

박상현 선교사는 안식년이라는 말을 선호하지 않는다. 대신 '본국 사역'이라는 말을 쓴다. 선교사들이 안식년을 맞아 한국에 들어온다고 놀고먹는 게 아니다. 다음 사역을 위해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고, 후원자들과 사역을 나누고, 좀 더 잘하기 위해 배우는 시간이다. 그는 본국 사역 동안 하고 싶은 일이 한 가지 있다고 했다.

"흔히 '선교사는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어요. 선교사는 힘들어야 한다, 선교사가 좋은 차 타거나 좋은 집에 살면 덕이 안 된다, 선교사는 가족보다 사명이 우선이어야 한다 등등…. 정말 그럴까요? 어떤 형태로든 외국에 나가면, 한국과 맞지 않아 힘든 면이 있는 반면 그곳에서만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 있잖아요. 선교지도 마찬가지예요. 저와 가족들 모두 아프리카에 와서 힘든 일이 있었지만, 반대로 여기에서만 누릴 수 있는 기쁨도 있어요. 저는 선교가 기쁘고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어요."

▲ 박상현 선교사는 본국 사역 동안 선교사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 1월에는 토크 콘서트도 열었다. (사진 제공 박상현)

그의 목표는 선교사에게 씌워진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다. 선교사가 되기 위해 준비하고 선교 현장에서 사역하는 동안 수없이 많은 고정관념에 부딪혔다. 가령, 목사 선교사가 평신도 선교사보다 사역을 더 잘한다는 인식이다. 한국에서 선교사가 되려면 목사가 되는 게 유리한 건 사실이다. 일단 목사가 되면 교단 파송 선교사가 되기 쉽고, 교회에서도 지원받기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안정된' 선교사가 위해서는 목사가 되는 것이 좋다.

그러나 박상현 선교사는 '전략적으로' 목사가 되지 않았다. 그는 처음 선교사가 되려고 다짐했을 때, 기독교를 적대시하고 복음 전하는 일을 막고 있는 중동 지역으로 가려고 했다. 신학교를 다녔던 박 선교사는 이력서에 신학교 이름을 남기지 않기 위해 4학년 2학기 때 일부러 일반 대학으로 편입했다. 자기 삶에 유리한 길이 아니라 선교에 유리한 길을 갔다.

"모든 목사 선교사가 안정된 삶을 우선했다는 말이 아니에요. 나에게 있어 그랬다는 거죠. 제가 목사 안수를 받으려는 근본적인 이유가, 나중에 선교사가 되었을 때 안정된 후원을 받기 위한 것이더라고요. 만약 그렇게 한다면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우는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목사가 아니다 보니 보통 교회에서는 아예 파송 선교사로 삼아 주지도 않더라고요. 물질적·영적 후원도 목사 선교사와 평신도 선교사는 천지차이에요."

그가 경험한 바, 꼭 목사여서 사역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평신도여서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직책의 차이라기보다 사람의 차이였다. 하지만 아직도 한국교회는 목사 선교사를 선호한다. 성경에 나오는 것도 아니고 실제 선교 현장에서 적용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런 인식이 박혀 있는 걸까. 박상현 선교사는 자신의 삶과 글을 통해 이런 잘못된 관념들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박상현 선교사와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면서 몇 시간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의 삶과 말에 한국교회가 귀를 기울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뉴스앤조이>는 2월 13일부터 2주에 한 편씩 박상현 선교사의 글을 연재할 계획이다. 아마 그의 글을 읽으며 '사이다'를 마시는 듯한 시원함을 느낄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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