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여중생 사망 사건에 대한 이민규 교수의 글입니다. 아버지인 A 씨는 사망한 자기 딸의 시신을 1년간 방치했고, "주님이 살려 줄 거라 믿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편집자 주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기사를 접한 순간 가슴이 두근두근 뛰고 손이 떨렸다. 신문 기사에 나온 정보로 보아 내가 아는 아무개 박사가 틀림없었다. 그 사실은 구글 검색을 통해 곧바로 확인되었다. 그가 일자무식, 분노 장애, 사이코패스가 아닌 정규 교단 목사, 유학파 겸임교수였기에 이 소식을 접한 이들의 충격은 더욱 컸다. 나처럼 그를 개인적으로 아는 이들은 더 그랬을 것이다. 언론에서 그는 괴물, 악마, 거짓 목사, 미친 사람이라는 말로 설명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너무 혼란스러웠다.

필자가 처음 그를 본 것은 10년도 넘은 오래전이었다. 아내를 암으로 잃고, 세 자녀를 키워야 하는 그의 힘든 처지에 연민을 느꼈다. 나중에 좋은 분(?)과 재혼한다는 소식에 하나님의 인도까지 느꼈다. 필자가 느끼기에 그는 미래 전임교수를 꿈꾸던 평범한 신학 박사요 목사였다. 필자가 그의 이중적인 모습에 속은 것일까.

언론에 보니 그는 하나님이 기도하면 죽은 딸을 살려 주실 것을 믿었다고 했다. 기도하면 죽은 자가 살아날 수 있다고? 물론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선지자 엘리사를 통해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을 살리셨다(왕하 4:18-37). 예수님도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리셨다(마 5:22-42). 사도 바울도 죽은 유두고를 살렸다(행 20:7-12). 과거 몇몇 설교자에게 성경에서처럼 기도로 죽은 자가 살아났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증명되지 않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 부부는 아마도 진짜로 시신 앞에서 죽은 자의 소생을 위해 간절하게 매달렸던 것 같다.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향한 그의 믿음이나 그 아내의 믿음이 대단했던 것일까. 이 목사가 거짓말했다기보다 다급한 나머지 광신자의 신앙으로 기도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그 부부에게 필요했던 것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한 회개였다. 우선 경찰에 신고하고 형사처분을 통해 죗값을 치르는 것이었다.

그의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은 두 딸의 어릴 때 모습이었다. 나이로 보건대 친모가 살아 있을 때 모습 같다. 예전의 밝은 아이들 모습을 몹시 그리워했던 것 같다. 그는 분명 아이들을 사랑했고 잘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러면 쇼크사가 올 정도로 아이를 때린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의 처가 악한 계모이고 그녀의 말을 들어서? 아니면 자식의 잘못된 습관을 매로 뿌리 뽑겠다는 울분 때문에? 그는 자신의 광기 어린 집착을 올바른 훈육이라 생각했을 수 있다.

체면 문화에 강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가정 문제가 있을 때 전문 상담을 받는 것을 꺼린다. 특히 목회자는 자신의 성격 장애나 자녀 문제를 말씀으로, 영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그는 자녀 문제를 기도하면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이라고,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은 것일까?

그가 선택한 방법은 약자에 대한 폭력이었다. 자신을 방어할 수 없는 약자에 대한 강자의 폭력은 절대 행해져서는 안 된다. 성범죄와 공금횡령을 한 엄청난 권력을 가진 목사에게 말 한마디 못하면서, 힘 있는 자들 앞에서는 한없이 겸손하고 온유하며 너그럽고, 힘없는 약자들에게는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는 짓이 용납되는 것이 오늘날 교계의 현실이다. 교수 임용에 대한 희망을 둔 그는 교계 문제에는 분노하거나 입도 벙긋 못하면서 자식에게는 폭력을 휘둘렀다. 이 위선은 그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기독교의 민낯이다.

이것저것 그의 어려웠던 상황을 고려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아이의 죽음 이후 그가 보인 행적이다. 그는 도대체 어떤 하나님을 믿고 있었던 것일까? 그의 하나님은 믿기만 하면 자기를 어떤 상황에서도 보호하시고 빠져나갈 길을 열어 주시는 분이었을까? 왜 죄를 자꾸 숨기려고만 할까. 우리나라에서 기독교인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회개의 부재다. 교회는 자기 잘못에 대한 공개적 사과와 책임을 지는 태도의 소중함을 반드시 가르쳐야 한다. 회개하지 않는 이에 대한 적절한 징벌도 필요하다.

이것이 없으면 기독교는 하나님나라 도래를 만들어 가는 공동체라 할 수 없다. 겉으로는 화려해도 속으로는 썩은 위선의 왕국을 만들 뿐이다. 교회 성장을 목표하다 위선자 왕국을 만드는 한국 기독교가 회생할 길은 목회자들부터 회개와 책임지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지난 몇 년간 교권은 교계 지도자들 죄를 숨기거나 축소하기에 바쁜 것 같다. 이 흐름을 바꾸면 한국교회는 분명히 살아날 것이다.

필자도 말을 하면서도 막상 본인에게 큰일이 닥쳤을 때 위와 같이 행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그러나 그 상황을 모면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문제에 대하여 하나님이 주신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이 더 소중하다. 목회자들이여, 자신의 망가진 모습을 드러내고 창피를 당할 때 당신들도 살고 교회도 산다. 회개는 수치를 당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길이다.

이민규 / 한국성서대학교 신약학 교수, <신앙, 그 오해와 진실>(새물결플러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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