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웅 지음 / 사이언스북스 펴냄 / 2만 2,000원

강추, 강추하는 책입니다. 2013년 4월에 나온 책이니까 아직은 새 책입니다. 노파심이어서 그런지 이 중요한 책을 기독교인들은 잘 읽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어서 기독교적 인문학을 추구하는 학자로서 추천하는 책입니다. 기독교 교회가 오늘 디디고 서 있는 사회, 그리고 그 사회가 보유한 지성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가장 탁월한 책 중 하나라 봅니다. 이 책은 보통의 기독인들에게 알려 주는 것이 참 많습니다. 첫째는 '과학으로 인해 세상이 이만큼 변했구나' 하는 것을 알려 줍니다. 둘째는 '기초과학을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해박할 수도 있구나' 하는 것인데, 그들은 실로 오늘의 세계를 꿰뚫어 보고 있습니다. 셋째는 그들의 한계도 알려 줍니다. 그들은 도무지 도덕적 사고를 중심에 놓지 않으며, 영적 사고는 더욱 할 줄 모릅니다. 이 세 가지를 두루뭉술하게 엮어서 함께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우선 첫째 이야기로 시작해 보겠습니다. 세상이 크게 변했습니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첫 번째가 정하웅 교수의 구글 검색 엔진 이야기입니다. 저는 정말 이 부분을 들추어 보고는 크게 충격을 받았습니다. 원래는 책 이름이 재미있었기 때문에, '대체 무슨 재미난 이야기가 있을까' 해서 이 책을 본 것입니다. "구글 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참 신성모독적이요. 아마 불신자들은 이런 말을 하면서 통쾌함도 느낄 겁니다. 그런데 하여간 재미난 것이 아니라 쇼킹했습니다. 제 방식대로 이야기하자면 정하웅 교수의 이야기는 인터넷 네트워크는 귀납의 종결자라는 말입니다. 과학적으로 말해서 귀납이란 모든 과학 자료들을 소홀히 하지 않고, 그것이 일반적 이론에 미칠 영향력을 고려하는 것입니다. 귀납법이라는 사고 체계가 나온 뒤로 사람들은 사물을 진정으로 관찰하는 자세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인류 역사에 프란시스 베이컨이 끼친 말로 다할 수 없는 영향입니다. 베이컨 이후로 모든 학자들은 자기 학문은 어떤 귀납을 하고 있는지 밝혀야 했고, 그것을 통해서 세계는 가장 기본적인 발전을 해 왔습니다. 정하웅 교수 같은 사람이 나올 수 있는 것도 귀납의 덕택입니다. 모든 컴퓨터 및 웹 전문가들은 베이컨에게 경의를 표할지니….

정하웅 교수의 모든 이야기 가운데 제게 가장 눈에 띈 것은 검색 엔진 야후와 구글의 차이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야후는 말하자면 포스트모던한 도구를 모던한 방식으로 통제한 것입니다. 장차 인터넷에는 헤아릴 수 없는 자료가 들어올텐데, 그것을 어떻게든 논리 구조에 따라 검색할 수 있도록 한 것이죠. 이것은 포스트모더니티와 모더니티가 어정쩡하게 함께 있을 때에는 상당히 유효한 방법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에 대하여 야후에게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수없는 자료가 네트워크에 모여들고 그것은 점차 논리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수준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통제하지 않아도 들어와 버리고야 마는 수많은 감각 인상과도 같습니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정보는 그냥 감각도 아닌 것이 우리의 이성으로 통제는 할 수 없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이 정보들을 모아 두는 방식은 무엇일까요? 구글은 말하자면 이런 정보를 모아 두는 방식에 있어서 창안자입니다. 구글은 검색하는 사람 숫자의 크기에 따라 자료를 순서적으로 배열하였습니다. 일정한 조치만 해 두면 정보들은 검색하는 사람의 숫자에 따라서 자동적으로 배열됩니다. 그것들을 논리적으로 배열하기 위해 골치를 썩을 일도 없을 뿐 아니라, 어떤 개념을 둘러싼 우리 시대의 추세도 한 눈에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당연히 구글은 우위를 점하게 된 것입니다. 참 얄밉죠! 요즘 구글이 결국 애플보다 더 가치가 큰 회사가 되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바로 이런 상황에서 또 하나 중요한 개념이 바로 허브라는 것입니다. 허브는 논리적 중심어가 아니라, 수많은 자료들이 교차하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대로 우리 시대 중요 사건들의 발생지이자 교차점입니다. 우리는 이제 논리적 중심어나 중심 지점을 찾는 것이 아니라, 세태에 영향을 미치는 교차 지점을 찾게 됩니다. 이유야 있게 마련이지만, 한 가지 사실을 두고 여러 사람과 여러 정보가 모여 드는 곳에 가게 되면, 우리 시대가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당연히 미래도 보일 것입니다. 바로 우리 시대를 보여주는 교차점 그것이 허브입니다. 인천공항을 허브 공항으로 만든다고 했을 때, 그것은 인천을 정치적 중심지로 만든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여러 가지를 고려하여 이 공항을 잘 건설하면, 그냥 사람들이 인천을 거쳐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그러면 아무런 다른 이유가 없이 그냥 인천공항은 허브 공항이 되는 것입니다. 존재와 존재, 사건과 사건을 많이 연결시키는 지점이 되면 그것은 허브가 됩니다. 그래서 각각의 존재와 사건은 일단 작은 중요성을 획득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을 귀납의 종결자라고 부르는 것이죠. 그리고 이 허브는 미래 세대의 리더십 담지자일지도 모릅니다. 허브가 세계를 끌고 가리라는 것이죠. 아직도 정치의 지배는 대단하지만, 웹 공간은 확실히 정치의 대체재임이 분명합니다.

귀납법만 하더라도 많은 자료들을 섭렵한 후에 거기에서 오는 논리적 이유를 가지고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이었는데, 구글은 다 필요 없고 다른 존재 및 사건들과 많이 결부되면 중요성을 획득하는 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좀 더 통속적으로 말하자면 인기가 있어야 됩니다. 쯔위와 설현 그리고 김수현의 인기는 연역적인 것은 물론 아니고, 귀납적으로도 설명하기가 복잡하지만, 허브라는 개념으로 생각하면 똑 떨어집니다. 생각건대 그게 원래 세상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허브라는 말은 귀납을 대체하는 말로서의 위력을 획득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면 귀납조차 흘러간 이야기가 될지 모릅니다. 아니면 인터넷 네트워크 상의 허브를 설명하는 철학적 용어가 되겠죠. 세상은 지금 그만큼 변했습니다.

기초과학을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자기들 나름의 세계관 이야기를 해내고 있으니, 그들이 나름의 방식대로 해박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국은 과학과 철학이 통한다는 얘기가 되겠습니다. 한편 이 책을 읽으면서 제가 느끼는 강한 거부감은 그래도 그들은 인간의 따뜻함에 대해서 말할 길을 갖고 있지 못하고, 사람의 모든 일을 과학으로 환원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은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세상을 안다고는 해도, 그리고 생래적으로 세상을 아낀다고 해도, 그들에게는 기도할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구글 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는데, 특히 행복에 대해서 모른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행복이 중요하다면 허브 개념으로 떠오를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비난할 것도 없습니다. 어차피 그런 세상을 형성시킨 것이 구글 검색 엔진입니다.

그러고 보니 "구글 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라는 터널을 통과하는 동안 세상의 변화에 크게 놀랐는데, 그 놀라움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길과 그리스도인의 길은 또 다른 과제로 주어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간신히 우리의 영역을 찾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도 이만한 진보를 이룩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책을 닫을 때 우리는 오히려 삶과 믿음에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다짐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이처럼 귀납조차 무색해지고 오직 허브가 중요해지는 시대에도 조금 다른 방식으로 아주 중요한 것이 하나 있는데, 창의성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물론 구글이 오늘 자신들의 전유물처럼 사용하고 있기는 합니다. 창의성이야말로 허브가 될 가능성을 높이는 힘입니다. 그러나 창의성은 그 이상이라 생각됩니다. 네트워크 세계가 되어버린 우리 시대에 네트워크 이상의 세계를 그려 내는 기독교적 창의성은 무얼까 우리는 여기에 대답해야 합니다.

안영혁 /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전 대표), 총신대신학대학원 실천신학 교수

* 이 글은 <크리스찬북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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