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교회 단체 대화방에서 돌았던 할랄 식품 단지 반대 메시지. 내용 대부분이 거짓으로 드러났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정보의 홍수 시대라는 말은 이제 고리타분하다. 출퇴근길 지하철에 타면 열에 아홉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항상 온라인에 접속된 상태이며 각종 SNS를 이용한다. SNS는 정보의 휘발성이 강하다. 잘못된 정보가 사실인 양 확 퍼질 우려가 있지만 그게 잘못된 정보인 것도 금방 드러난다. 수많은 사람이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를 '집단 지성'의 힘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어째 교회 단체 채팅방에서는 이런 집단 지성이 작동하지 않는 듯하다. 교회 공동체 카카오톡이나 밴드에서 온갖 괴담이 퍼져 나간다. 그냥 교회 사람끼리 이야기하는 것에 웬 호들갑이냐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최근 1~2년 사이 이는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다. <민중의소리>나 <직썰> 등의 매체에서 개신교인들의 '단톡방'(단체 대화방) 문제를 다루기도 했다.

아마 단체 대화방에 가입되어 있는 교인들 중에는 이런 일을 경험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그 메시지를 '복사+붙여 넣기' 하는 그 손을 잠깐 멈추자. 이번 기사에서는 도를 넘어선 기독교발 거짓 소문을 검증하기 위한 사이버 공간을 소개한다. 페이스북 '기독교 루머와 팩트' 그룹과 리브레위키 '개신교/개신교발 루머' 문서이다.

진리를 따른다면서 사실 확인은 안 해

▲ 기독교인 사이에 도는 소문을 검증하는 곳이 있다. (페이스북 갈무리) 

"무지를 두려워하지 말고 거짓 지식을 두려워하라." - 파스칼

페이스북 그룹 '기독교 루머와 팩트' 공지 사항을 시작하는 말이다. 이 그룹은 말 그대로 개신교인 사이에서 도는 루머를 집단 지성의 힘으로 팩트 체크하는 곳이다. 교회 단톡방에 돌고 있지만 사실 여부가 아리송한 메시지를 누군가 이 그룹에 올리면,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댓글로 논의가 이어진다. 전문가가 참여하는 경우도 있어 대부분 금방 메시지의 진위가 드러난다.

특히 최근 할랄 식품 단지 조성과 관련한 이슬람 루머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다. 중동 전문 저널리스트 김동문 목사도 이 그룹에 참여하고 있어 자료에 근거한 여러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동성애와 관련한 루머도 많이 이야기된다. 공교롭게도 '동성애'와 '이슬람' 저지는 요새 보수 개신교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힘쓰는 과제다.

'기독교 루머와 팩트' 그룹은 수원 학원복음화협의회 간사 박종찬 씨(30)가 2014년 10월 만들었다. 박종찬 씨는 보수 개신교인들이 모여 있는 대화방에 괴담이 떠도는 현실이 안타까워 그룹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진리를 따른다는 그리스도인들이 오히려 거짓 정보에 현혹되고 있었다. 대화방에 도는 이야기들이 기정사실처럼 SNS로 퍼졌다. 거짓이 아닌 진실을 확산하고 교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룹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박 씨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 도움을 받았다며 고마움을 표하는 메시지를 종종 받는다고 했다. 그는 "대부분 괴담을 보면 공포와 위기의식을 조장한다. 어떻게 사랑할 것인지가 아니라, 어떻게 막을 것인지 어떻게 배척할 것인지가 주제다. 동성애나 이슬람에 대해 찬반을 논하자는 게 아니다. 성경에 나오는 베뢰아 교인들처럼, 루머가 돌 때 '과연 그러한가'라는 질문을 한 번이라도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 리브레위키에 있는 '개신교/개신교발 루머' 문서. 주제별 내용별로 정리되어 있다. (리브레위키 갈무리) 

'기독교 루머와 팩트' 그룹이 실시간으로 많은 사람이 논쟁하는 곳이라면, '개신교/개신교발 루머' 문서는 이런 정보들을 차곡차곡 쌓아 정리하는 곳이다. 문서에 들어가 보면, 그 체계성에 아마 감탄사가 나올 것이다. 쌓인 자료가 책으로 낼 수 있을 만큼의 분량이 되었다.

'개신교/개신교발 루머' 문서에는 그동안 교회 단체 대화방에 돌았던 동성애· 이슬람·가톨릭·역사·과학 등을 왜곡하는 메시지 및 설교 내용 등이 총망라되어 있다. 각 주제 및 내용별로 정리가 잘 되어 있기 때문에, 목차에서 그 부분만 찾아보거나 비교하기 유용하다. 며칠 전 돌았던 '아프가니스탄에서 22명의 선교사님이 사형 판결을 받고 내일 오후 처형되려 합니다'는 루머도 몇 년 전 돌았던 메시지와 똑같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었다.

▲ 같은 내용을 조금씩 바꾼 메시지가 주기적으로 돌고 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이 문서는 서울의 한 대학에서 일하는 정 아무개 씨(35)가 2015년 5월 만들었다. 그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예전에는 한두 번 정도 그런 메시지를 받았고, 교인들도 그냥 음모론 정도로 치부했다. 그런데 최근 1~2년 사이 유독 이런 루머가 많이 돌아 한번 모아 보자는 생각이 들어 문서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 조금씩 정리하던 것들이 몇 개월 만에 방대한 분량이 되었다. 그는 영어로 된 자료를 번역도 해 가면서 사실 확인을 위해 시간을 쏟기도 했다.

정 씨도 날조된 메시지를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이는 교인들을 봤다. 그는 "예전에 다니던 교회 대화방에서 혐오 섞인 루머, 도대체 말도 안 되는 말들이 도는데 교인들은 합리적 의심이나 생각을 하지 않고 그냥 받아들였다. 그 사람들도 다 대학 나온 사람들이고 학력을 따지자면 꽤 높은 축에 속했다. 그런데 어느 유명 목사님이 그랬다더라, 어디 선교사님 부탁이다 이러면 신기하게 의심 자체를 하지 않는다. 목회자의 권위가 너무 세다 보니 개인의 이성이 마비되고 무시되어 버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의심하라,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마라

삼일교회치유와공의TFT에서 활동하는 권대원 집사는 기독교인들이 루머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언론사에 기고하기도 했다. 현실 정치 문제나 타 종교 및 동성애 혐오와 관련한 '긴급 기도 요청!' 따위의 글은 읽지도, 퍼 나르지도 말자고 했다. 알고 싶다면 관련 기사 3~4개 정도는 읽어 보고, 그래도 잘 모르겠다면 일주일 정도 기다려 보자고 했다. 이것저것 다 귀찮으면 스스로 확인하지 않은 메시지는 옮기지 말자고 제안했다.

기독교발 루머의 시대다. 메시지 하나 복사해서 나른 게 큰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수백 수천이 되면 이건 사회적 문제다. 그리고 개신교발 거짓 소문은 이미 그 수준을 넘어섰다. 이제 누군가 교회 단체 채팅방에 아리송한 글을 퍼 나른다면 '기독교 루머와 팩트'에 올리거나 '개신교/개신교발 루머' 문서에서 검색이라도 해 보자.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