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일을 하는 자에게 하늘의 진노가 임할 것입니다. 우리 정부는 정녕 이것이 경제적으로 이익이 될지라도 절대 이런 악한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섭니다. 그래서 우리가 천만 명 서명운동을 합니다. 천만 명은 우리 국민의 5분의 1입니다. 다섯 명 가운데 한 명이 서명하는 겁니다. 왜 이런 서명이 중요합니까. 서명은 우리의 마음과 중심을 표현하는 행위입니다. 우리 오천만 동포의 혼을 깨우는 일입니다. 그리고 지도자의 마음을 주장하고 있는 이슬람 영을 예수 그의 이름으로 대적하는 행위입니다. 우리의 중심을 묶어서 하나님께 올리고 대통령과 관계 장관에게 호소하는 것이 우리의 서명입니다."

▲ 1월 28일 열린 기독교 단체들의 할랄 식품 단지 조성 반대 기도회 모습. ⓒ뉴스앤조이 구권효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지난 1월 28일, 정부세종청사 국무조정실 앞에서 열린 '할랄 식품 단지 조성 반대 기도회'에서 나온 말이다. 이날 모인 기독교인들은 정부의 할랄 단지 계획을 무마하기 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천만 서명운동을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피켓과 태극기를 들고 굳은 표정으로 서 있는 참석자들은 한사코 진지했다.

'천만 서명'이란 말에 가슴이 아렸다. 무엇이 생각나는가. 2014년, 유난히 길게 느껴졌던 그해 여름에는 자식 잃은 어미 아비들이 천만 서명을 받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참사의 진실을 규명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랐던 부모들이 치러야 할 대가는 컸다. 특별법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요구하며 정부와 맞서자 '자식 죽은 게 무슨 벼슬인 줄 아나 보다'는 비하가 쏟아졌다.

그 여름 안산에서 만났던 한 목사를 잊을 수 없다. 그는 세월호 참사에 슬퍼하면서도 유족들의 천만 서명운동을 '떼법'이라 했다. 나라법으로 안 되는 일에 떼를 쓴다는 것이다. 한국의 보수적인 교회들은 그렇게 세월호 가족을 외면했다. 특별법 서명운동은 500만에 그쳤고 수사권·기소권은 주어지지 않았다.

어디 특별법뿐인가. 아직도 세월호 속에 아홉 명이 있다. 이들을 하루라도 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리기 위해, 세월호의 온전한 인양을 촉구하는 서명운동도 있었다. 침몰하는 배 안에서 아이들을 구하다 목숨을 잃은 선생님들은 '기간제 교사'라는 이유로 순직 처리되지 못했다. 이들의 순직을 인정해 달라는 서명운동도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망각에는 시간이 지날수록 가속도가 붙는 듯했다.

▲ 2014년 7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직접 전국을 순회하며 특별법 제정 촉구 서명을 받았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할랄을 반대할 수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서명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하는 건 바람직하다고 본다. 다만 세월호 가족이 특별법 천만 서명운동을 벌일 때, 교회는 그것을 '정치적'이라고 했다. 목사는 '떼법'이라고 했다. 교인들은 정치적인 일에 교회가 개입하면 은혜가 안 된다고 하면서도 정부·여당의 논리를 그대로 실은 메시지를 SNS로 퍼 날랐다.

그랬던 한국교회가 이번에 천만 서명운동을 벌이겠다고 한다. 이젠 정말 교회 안에서 나오는 '정치적'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길이 없다.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인가. 세월호는 사회적인 이슈이고 할랄은 종교적인 이슈라고 할 것인가. 그런 논리라면 종교적인 문제는 기도로 해결해야 하는 것 아닌가.

게다가 이슬람을 악이라 규정하고 모든 무슬림을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치부해 버리는, 차별과 배척이 곳곳에 묻어 있는 성명서에 천만 명의 서명을 받겠다고 한다.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도 없고 실현 가능하지도 않은, 이거야말로 정치적인 떼법이 아닌가. 이런 한국교회 모습이 비기독교인들의 눈에 어떻게 비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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