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에 얼마 전 아들을 잃은 아버지가 참석했다. 내 설교 제목은 '인간에 대한 환대'였다. 주재훈 씨(58)는 내가 설교하는 동안 시종일관 입을 굳게 다물고 눈을 꼭 감은 채 듣고 있었다. '하루아침에 자녀를 잃었던 욥의 표정이 저랬겠지?' 그러나 낯설지는 않았다. 이 몇 년간 우리는 얼마나 많이 자식 잃은 부모들의 얼굴들을 보아 왔던가. 그들을 대할 때마다 매번 동일하게 곤혹스러움을 느꼈었다. 내가 그 상실에 동참할 수 없다는 사실. 느끼는 척, 공감하는 척, 이해한다는 척, 그 앞에서 욥의 친구들과 같은 판에 박힌 설교를 하고 있는 내 모습. 한편 그의 자세와 표정은 완강했다. 그는 욥처럼 타인의 틈입을 조금도 허락지 않는 완강함으로 버티고 있었다.

주선우 씨(27)는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학원 사업을 하는 부모가 있는 필리핀으로 건너갔다. 그의 형을 비롯한 가족들은 필리핀에서 안정된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는 공부 잘하는 모범생에 엄친아 교회 오빠였다. 학업을 마치기까지 그 흔한 연애 사건 한 번 없었다. 바기오의 코르디예라 대학 경영학과 재학 중 골프 티칭 프로 자격증도 따냈다. 내처 보장된 골프 교사의 길로 갈 수도 있었다. 부모는 아들이 필리핀의 자신들 곁에서 정착하기를 바랐다. 더구나 그는 해외 장기 체류자로 병역의무도 면제였다.

그러나 아들은 귀국을 희망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홀로 귀국했다. 자원입대해 육군에 근무했고 병장으로 만기 전역했다. 제대할 때 병무청장으로부터 '자원 병역 이행 명예 증서'를 수여받기도 했다. "귀하는 영주권 등 취득 사유로 병역의무가 감면 또는 연기되었음에도 스스로 현역으로 자원입대하여 명예롭게 병역의무를 이행하였기에 그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하여 이 증서를 드립니다. 2015년 2월 1일. 병무청장." 전역 후 그는 본격적으로 입사 시험 준비에 들어갔다. 당시, 어릴 적부터 가족이 나가던 교회와 청년부 친구들은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그의 유일한 안식처였다. 시험 준비로 바쁜 와중에도 그는 주일학교 교사로 성실히 봉사했다. 그는 페이스북 메인 화면에 다음과 같은 성구를 써 놓았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고린도후서 6장 10절)

그가 이 성구를 기록한 날이 8월 18일이다. 그리고 마침내 어려운 취업 관문을 통과해 대기업 공채 입사 시험에 합격했다. 10월 12일. 전역일로부터 8개월 만이었다. 그는 부모님께 자신이 이제 한국에 정착하게 됐으니 오히려 필리핀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돌아오시라 권했다. 첫 월급을 타면 아버지를 위해 자동차를 사 드리겠다며 기쁨에 들떠 있었다. 아버지는 그동안 가족을 대신해 공동체의 정을 나누어 준 교회 식구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라고 권했다. 그러겠다고 했다. 청년부와 주일학교 아이들에게 11월 14일 토요일에 한턱 쏘겠다 약속했다. 그리고 11월 12일 목요일. 약속 이틀 전. 그는 입사 한 달 만에 사고로 직장에서 사망했다.

입사 후 그는 ㄱ택배 수하물집하장에서 지게차 운전을 했다. 하루 12~15시간, 때로는 그 이상의 야간 중노동이었지만 사무직 신입들을 실무에 배치하기 전 훈련시키는 회사의 방침이라 했다. 지게차 운전에 필요한 자격은 1종 운전면허 소지자의 경우 서류 제출만으로 허가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기능의 숙달은 서류로 단번에 가능해지는 게 아니다. 사무직 신입 사원들이 지게차 운전에 익숙할 리 없었지만 회사 방침에 따르지 않을 도리 또한 없었을 것이다.

청천벽력 같은 아들의 부음을 듣고 부모가 필리핀에서 급거 귀국했을 때 아들은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었다. 부모는 사고 현장을 확인할 수 없었다. 맨 먼저 소식을 듣고 달려간 백부에게 회사는 주선우 씨가 사이드를 채우지 않고 내렸다가 지게차가 작동하는 바람에 깔려 숨진 사고라 했다. 주 씨의 부주의라는 말이었다. 현장은 이미 정리된 뒤였고, 사고를 정확히 이야기해 줄 사람도 없었다. 회사 측 책임자도 현장 책임자도 없었고 아들의 입사 동기가 사고를 설명해 주었다. 그는 행여 자신에게 불이익이 돌아갈까 노심초사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사이드 운운은 거짓이었다. 처음 경찰에 제출된 사고 영상에는 브레이크 등이 켜졌으나(브레이크를 밟은 상태) 지게차가 움직이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곧이어 주 씨가 차에서 뛰어내리는 장면과 지게차가 뒤따라 그를 덮치는 장면이 이어졌다. 브레이크 고장으로 제어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주 씨가 충돌하는 차에서 급히 탈출했으나 관성 때문에 그의 몸이 5M 아래 차량 대기장으로 떨어졌고 지게차가 뒤따라 그를 덮친 것이다.

▲ 주선우 씨 사고 현장. (사진 제공 천정근)

주선우 씨는 왜 그리 급하게 지게차를 탈출하려 했는가. 그는 왜 옆으로 탈출했음에도 턱 아래로 떨어졌는가? 그것은 사고가 미처 피할 사이도 없는 짧은 순간에 빠른 속력에서 벌어졌음을 말해 준다. 그만큼 급박하게 발생했다는 것. 또한 지게차로 물건을 싣는 곳과 트럭 대기장에 추락 방지용 안전대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도 중요하다. 설치만 되어 있었어도 주 씨는 지게차가 덮치는 곳으로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사고는 분명히 작업 중에 일어났다. 그런데 왜 회사는 마치 (휴식 시간 같은 때에) 사이드를 채우지 않고 내려 일어난 사고라 했을까. (사이드를 채우지 않아 일어난 사고라는 회사의 설명은 SBS 뉴스에도 그대로 나왔다. 유가족은 정정 보도를 요청했지만 방송사는 현재까지 묵묵부답이다.)

회사의 석연찮은 태도는 이것뿐이 아니다. 처음에는 장례가 끝나면 보상을 원만히 마무리하겠다고 고인과 유가족을 정중히 배려하는 듯했었다. 그러나 장례가 끝나자 태도가 바뀌었다. 그간 유가족은 회사 측 대표자인 차장을 겨우 두 번 만났을 뿐이다. 그것도 전화를 거듭하고 항의한 끝에 이루어진 만남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무런 권한이 없었다. 회사는 앞서 사고 다음 날 주선우 씨의 동기 신입 사원들이 수하물계류장에 출근하려는 것을 저지시키고 다음 날 본사로 전원 이동시켰다. 일종의 차단 조치라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자신들이 발행해 준 합격증이 버젓이 있음에도 주선우 씨를 채용한 회사명을 바꿨다. 이후 모든 공문에는 주선우 씨의 근무 회사가 ㄱ택배가 아니라 ㅎ운송이라는 자회사로 바뀌어져 있다. 이 역시 왜 그랬는지 짐작이 가는 일이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회사는 처음 제출했던 사고 영상을 원인을 판독하기 어려운 다른 화면으로 대체했다. 유가족이 다른 동영상을 요구하자 현장 CCTV가 공교롭게도 하나도 작동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또한 사이드를 채우지 않아 일어난 사고라더니 안전벨트 미착용 때문에 일어난 사고로 몰기도 했다. 그러나 영상을 보면 현장에서 작업하는 지게차 운전자 중 안전벨트를 맨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이것은 안전벨트 착용하지 않은 책임을 신입 사원 주선우 씨에게 지울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회사의 안전 관리 소홀의 책임을 신입사원의 부주의로 돌려 버리는 것은 배덕한 일이다. 회사는 여기에 더해 '졸음운전'이라는 말까지 했다. 영상을 보면 누구나 그 말의 거짓됨을 확인할 수 있다. 십여 대가 넘는 지게차가 쉴 새 없이 작업하는 현장에서 졸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경찰의 태도도 석연찮기는 마찬가지다. 유가족은 처음 제출했던 증거 영상과 사진을 확보하고 재수사를 요구했다. 그러나 경찰은 수사를 차일피일 미루었다. 이렇다 할 답변도 없었다. 담당 형사가 바뀌었고 그는 회사로부터 받았던 처음 영상은 아예 받은 바 없다고 했다. 고인의 부친이 거듭 찾아가자 경찰은 무슨 의도인지 "돈 때문에 이러는 거 아니냐?" "원하는 돈을 받아주면 합의를 하겠느냐?"며 비꼬는 듯한 태도로 대했다. 아들을 잃고 가뜩이나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던 부친은 모욕감과 비참함에 경찰서 밖에서 한참을 울었다고 했다.

회사는 현재 대놓고 자기들의 보상을 받아들이든지, 하고 싶으면 재수사를 요구하든지 하라며 적대적인 고자세를 보이고 있다. 수사 중인 기록을 노무사를 앞세운 회사는 볼 수 있겠지만 유가족은 볼 수 없다. 회사와 경찰이 어떤 결론을 낼지 유가족은 접근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다. 아버지는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기 위해 카페를 만들었다. 주선우 씨 사고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 카페에 자세히 올려져 있다.

청년실업 해소와 일자리 창출을 논하기 전에, 금수저와 흙수저를 이야기하며 아픈 청춘과 청년의 절망을 논하기 전에, 우리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근본적인 도덕성을 다시 묻게 된다. 한 청년의 죽음이 그와 결부된 수많은 사람들의 개별적 진실을 묻고 있다. 청년실업 해소와 일자리 창출은 정부, 정당, 기업들뿐 아니라 거의 모든 국민의 관심사 중 하나다. 그러나 그 공허한 플래카드와 카드섹션의 이면에는 이런 현실이 버젓이 놓여 있는 것이다. 진정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주재훈 씨는 내게 말했다.

"제가 돈 때문에 이러겠습니까. 과연 돈 때문에 이러고 있는 게 누구일까요? 지금 저에게 중요한 건 아들의 죽음에 대한 진실과 정당한 명예입니다. 그것뿐입니다. 회사가 처음부터 정직하게 대처했더라면…. 그나마 얼마나 다행이었을까요? 그러나 지금은 억울하게 죽은 아들의 영혼마저 더럽히고 있습니다."

나는 그가 하필 나같이 영향력이 없는 개척 목사를 찾아왔는지 모르겠다. 할 수 있는 한 도움을 드리겠노라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막상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페이스북에 사건을 알리는 글을 써 공유를 요청했다. 신문 연재에 보내려 준비했던 글을 대신해 급히 이에 관한 원고를 새로 써 보내기도 했다. 그도 별 효력을 내지 못한다. 몇몇 유명하다는 이름을 얻은 이들에게 이 사건에 관심을 가져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거국적 주요 쟁점에 관한 광장의 퍼포먼스로 바쁜 그들에게 구체적인 사례에 들이는 관심은 적당치 않다는 건지 묵묵부답들이다. 작은 일에 충성된 자가 큰일에도 충성되고, 구체적인 관심만이 구체적 사례로부터 세상을 실제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닐까. 억하심정. "네가(너희들이)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에스더 4장 14절)라는 성경 구절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교회 청년들이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전화를 걸어 오기도 했다. 딱히 해 줄 말이 없다. 장례식장에서 "선우 같은 사람이 이렇게 죽는 걸 보니 착하게 살지 말아야겠다." 탄식하는 청년들도 있었다고 한다. 자원입대까지 하면서 고국에 정착하기를 바랐던 이 청년. 고인은 야간 지게차 운전에 피곤한 몸으로도 주일학교 아이들을 위해 아침 일찍 교회에 나오던 성실한 신앙인이었다. 우리는 그의 명예와 영혼의 안식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하나님 부재와 침묵의 이 죽음으로부터 누가 그분의 사심과 말씀하심의 희망으로 응답해 줄 것인가. 마지막으로 교회에 호소해 본다.

주선우 형제 페이스북: http://www.facebook.com/sunwoo.chu.5
피해자 카페: http://cafe.daum.net/kdexpress
필자의 한겨레 칼럼: http://www.hani.co.kr/arti/society/religious/well/726964.html
MBN 뉴스: http://mbn.mk.co.kr/pages/news/newsView.php?news_seq_no=2753505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