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지난해부터 소셜 미디어에 '할랄 괴담'이 퍼지고 있다. 괴담 내용은 매우 구체적이다. 5,500억 원을 들여 익산에 할랄 식품 단지를 조성 중인데, 이것이 완공되면 3년 안에 이슬람교 종교 지도자 이맘 100만 명 들어온다는 내용이다. 이대로 놔두면 우리나라가 이슬람교에 '먹힌다'고 하면서 할랄 식품 공장 건립에 반대하는 서명 운동 링크로 안내한다.

그러나 이 내용은 대부분 거짓이거나 사실 확인이 어려운 주장들로 밝혀졌다. 이슬람 전문가인 김동문 선교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를 조목조목 반박하는 글을 올렸다.

#할랄단지_반대서명_다시보기아래와 같은 이야기가 카카오톡 등을 통해 공유되고 있습니다. 온라인 상에는 지난 22일부터 공유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온라인보다 카카오톡 같은 SNS를 통한 공유가 더 많은...

Posted by 김동문 on Wednesday, December 23, 2015

그럼에도 할랄 식품 단지 조성을 반대하는 목소리는 끊이지 않고 있다. 기독당국가와교회수호위원회는 '이슬람 할랄 식품 공장 설립 반대 서명'을 받고 있다. 1월 14일 현재 10만 명 넘게 서명했다고 밝혔다. 다음 아고라 등 곳곳에서 서명이 진행되고 있다. 기독당과 전북지역장로회·익산시기독교연합회 등 교계 단체가 주축이 된 전북 지역 30여 개 시민단체들은 지난해 12월 중순 반대 시위를 열기도 했다. 익산시 홈페이지에서도 반대하는 글들을 다수 찾을 수 있다.

▲ 인터넷에 떠도는 '할랄 괴담'(왼쪽)은 2019년까지 이맘 100만 명이 들어온다며 반대 서명을 촉구한다. 익산시 홈페이지(오른쪽)는 할랄 단지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글이 다수 올라와 있다. (익산시 홈페이지 갈무리)

할랄 도축 방식은 동물권 침해?

이슬람교는 먹어도 되는 음식인 '할랄'과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인 '하람'을 구분한다. 돼지고기 같은 음식은 하람에 속한다. 반면 소처럼 먹을 수 있는 동물은 할랄에 속한다. 먹을 수 있는 동물이라고 해서 무조건 할랄은 아니다. 이슬람교 도축 방식을 지킨 고기에만 '할랄' 마크가 붙는다. 세계 각지에서 이슬람교 사람들을 위해 할랄 마크를 부착한 음식을 별도로 판매한다. 한국에서도 최근 풀무원이 할랄 인증 식품을 내놓았다.

▲ 이슬람교 교리에 따라 처리한 음식에는 할랄 마크가 붙는다. 마크는 국제적으로 공신력을 인정받는 말레이시아 정부 인증 할랄 마크(JAKIM).

할랄을 인정받으려면 몇 가지 절차가 필요하다. 도축할 동물의 머리를 메카 방향으로 향하게 한다. 이후 '알라는 위대하다'를 외치고 단칼에 동물의 목을 끊는다. 이후에는 모든 피를 쏟을 때까지 둔다. 이슬람교 교리에서는 음식을 피째 먹지 말라고 하기 때문이다. 피를 다 빼면 육질이 연해지는 효과도 있다.

그런데 이를 두고 동물권(動物權)에 대한 논란이 있다. 동물 보호 단체 '케어'는 지난해 말 "할랄은 비인도적인 도축 방식이다. 이를 비난하는 전 세계 여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케어는 '모든 동물은 혐오감을 주거나 잔인한 방법으로 도살되어서는 아니 되며, 도살 과정에 불필요한 고통이나 공포, 스트레스를 주어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한 동물보호법 10조를 들며 현행법 위반의 소지가 있으니 한국에 도입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케어 관계자는 13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동물은 도축장에 가는 과정을 다 인지한다. 공포에 휩싸여 있는 동물에게 칼을 휘두르는 것을 인도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전기 충격기 등으로 기절시킨 뒤 작업하는 현대식 도축 방법을 택하는 게 윤리적인 것이라고 했다.

이슬람 전문가인 손영광 목사(한국외대)는 이슬람식 도축 방법에 대해 "동물의 생명을 가장 빨리 끊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슬람교 전통에서 고통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방법을 택해 온 것"이라고 했다. 이슬람식 도축이 동물권을 침해한다는 주장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아랍문화 전공인 김효정 교수(명지대)는 "물론 도축을 꼭 전문가가 하는 건 아니고 실수할 수도 있어서, 동물이 고통스러워할 때도 있는 건 맞다. 그러나 무슬림들은 자신들의 도축 방식이 동물에게 고통을 가장 적게 끼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덜 가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이러한 도축 방법을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튜브 영상 갈무리)

이슬람이 뭔지 우선 공부해야…"한국교회, 공포심에 사로잡혀 있다"

한국에서 논의되는 할랄 단지 논쟁의 본질은 '이슬람교가 들어오느냐 마느냐'다. 동물을 좀 더 인도적으로 도축할 수 있는 방법이 개발된다 하더라도, 이슬람교식 도축 방법은 종교 의례이기 때문에 바뀌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도축 방식의 윤리성 논쟁과는 상관없이 '한국의 이슬람화만은 막아야 한다'는 차원에서만 접근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독교계가 과도한 이슬람포비아(이슬람교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손영광 목사는 "한국 기독교인들은 할랄이 뭔지도 모르고 일단 문제만 제기한다. 교양서적 한 권만 읽어 봐도 알 수 있는 내용들이다. 사람들이 소위 이슬람포비아라고 부르는 공포적 경각심에 사로잡혀 있다. 라마단이라고 하면 무조건 금식만 하는 줄 아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비단 할랄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여름에는 '여자아이는 강간해도 된다'는 내용이 포함된 이른바 '이슬람 13교리'라는 괴담이 퍼졌고, 수쿠크법 도입 논란 당시에도 이슬람교 자본이 한국을 잠식할 것이라는 괴담이 돌았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손영광 목사는 "무슬림이 들어온 지역은 종교 지도자가 통치하는 일종의 치외법권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 소리가 아예 근거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이들이 한국 땅에 오는 이상 엄연히 한국 법에 따라야 한다. 그들이 민형사상 문제를 일으킨다면 당연히 거기에 맞는 국내법을 적용하면 된다"고 했다. 김효정 교수도 "할랄 식품 공장에 무조건 무슬림만 일해야 하는 건 아니다. 공장이 들어선다고 해서 무슬림 인구가 대거 유입된다거나 이슬람 사원이 들어선다는 식의 주장은 과장된 것이다"고 지적했다.

김동문 선교사는 한국교회와 사회가 이슬람교를 이용하려는 태도를 경계했다. 그는 "할랄 반대를 외치는 사람들의 주장은 대부분 왜곡된 것이다. 의도적이고 악의적인 가공을 통해 이슬람교 이슈를 정치적으로 다루려는 것은 아닌가 싶다"고 했다.

이슬람 역사 전문가인 김정위 교수(한국외대)는 "조선 시대에도 무슬림들이 같이 살았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 시절 한국에 들어온 위구르족 후손들이다. 유교 전통이 강했던 그 시절에도 마찰 없이 잘 살아왔다. 기독교 쪽에서 너무 두려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이슬람교 인구는 2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을 무시하고 배척하며 살 수는 없다. 우선 이슬람교와 이슬람 문화를 정확히 안 뒤 어떻게 문제를 풀어야 할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 한국보다 이슬람 문화가 들어온 지 오래된 유럽도 쉽게 풀지 못하는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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