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7일, 대한기독교서회 100주년 기념 성서 주석 '로마서' 표절 의혹을 받고 있는 차정식 교수가 <뉴스앤조이>에 '최근 대한기독교서회 100주년 기념 주석 논란에 답함'이라는 글을 보냈습니다. 이에, 차 교수의 표절 의혹을 제기한 페이스북 그룹 '신학 서적 표절 반대'의 이성하 목사(원주가현침례교회)가 반박하는 내용을 보내왔습니다. 아래에 전문을 싣습니다. - 편집자 주 

1. 나는 정말 "엄격한 학술적 기준을 들이대며 숨통을 조"였는가

▲ 지난해 8월 이성하 목사는 차정식 교수와 함께 포럼 '표절과 한국교회'의 발제를 맡았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차정식 교수가 쓴 로마서 주석에는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표절이 있다. 그것도 많이 있다. 그 실체를 페이스북 그룹 '신학 서적 표절 반대'에서 공개했다. 이에 대해 차 교수가 여러 가지 말을 했다. 차 교수의 모든 말은 이미 본인이 했던 말을 통해서 충분히 반박할 수 있으므로, 반론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것도 괜찮겠으나, 혹여 그의 말을 듣고 오해할 분들이 있을까봐 굳이 몇 가지 설명을 덧붙이고자 한다. 

차정식 교수는 "교과서와 각종 교양 도서류, 기독교 신앙 도서와 평이한 개론적 내용을 담은 신학 도서 등에 저런 엄격한 학술적 기준을 들이대며 숨통을 조이는 것은 교각살우라고 본 것이다"고 말하면서 지금 표절 반대 운동에서 적용하는 기준이 아주 엄격한 기준인 것처럼 말한다. 

어처구니가 없는 말이다. 작년부터 지금까지 근 일 년 동안 표절로 지적받은 교수들 중에 엄격한 학술적 기준을 적용받은 사람은 단언컨대 단 한 사람도 없다. 학회나 대학교에서는 표절 여부를 판단할 때, 연속적으로 여섯 단어나 일곱 단어, 혹은 여덟 단어가 일치하는지의 여부를 기준으로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내가 지적한 표절은 단어 수준도 아니고 문장 수준도 아니었다. 한 문단 혹은 두 문단, 심지어 한 페이지, 두 페이지, 세 페이지를 베끼다시피 한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수준의 표절이 포함된 책만 문제 삼았다.

그 모든 명백한 근거가 여전히 페이스북 그룹 '신학 서적 표절 반대'에 고스란히 남아 있고, 초창기의 것은 '번역이네 집'에 그대로 남아 있는데도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오죽했으면 차정식 교수도 2015년 8월 2일 오후 11시 15분에 본인의 페이스북에서 "교수들 표절은 강아지 새끼 도둑질 수준!"이라고 했겠는가.

2. 차정식 교수의 표절 수준은 남보다 나은가

차 교수가 "강아지 새끼 도둑질 수준"이라고 비난했던 다른 교수들에 비해서, 차 교수의 표절 수준은 차이가 있는가? 없다. 차 교수도 다른 교수들처럼 몇 문단을 베끼듯이 표절했다. 원자료의 문단을 바꾸기도 하고, 원저자가 인용하는 다른 저자의 글을 자신의 글처럼 가져다 쓰기도 한다. 로마서 주석 서론만 두고 따지자면, 지금까지의 그 어떤 교수들의 사례보다 심각하다. 

차 교수의 로마서 주석은 작년 11월 26일에 침례신학대학교 도서관에서 처음을 살펴보았고, 본 지 10분 만에 표절을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쉽게 찾아냈다. 그만큼 표절의 정도가 심각했다. 곧바로 차 교수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다음날 차 교수의 응답을 기다리면서, 본문 주석을 살필 때에도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표절을 찾아냈다. 찾아내는 즉시 차 교수에게 메신저로 이를 전달했다. 

한편 차 교수는 본인이 저술한 로마서 주석에 독창적인 부분이 더 많으므로 그 가치를 인정해 달라는 식으로 말한다. 난 도대체 학자로서 어떻게 이런 말을 서슴없이 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독창적인 노력과 성과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겠으나, 그걸로 표절을 덮을 수는 없다. 공을 인정해 달라고 하기 전, 과에 대해 책임 있는 사과와 조치를 취하는 게 우선이다. 

3. 우리가 그동안 "일단 까발려 '의혹'으로 망신주고 내 기준대로 내 말대로 회개하라고 강요"했는가

차 교수는 신학 서적 표절 반대 운동에 대해 "일단 까발려 '의혹'으로 망신 주기, 내 기준대로 내 말대로 회개하라고 강요하기 수준에서 겉돌 우려도 없지 않아 보인다"는 말까지 했다. 

기가 막힌다. 차 교수에게 묻고 싶다. 정말 우리가 "일단 까발려 '의혹'으로 망신을 주었는가?" 그랬다면 근거를 대라. 차정식 교수의 표절 문제는 그 누구보다 시간을 많이 주었고, 기회를 주었다. 그런데 왜 이런 거짓말을 하는가? 그래 놓고 왜 뒤에서는 "이로 인해 황망해할 겨를도 없이 미국으로 급하게 출국해야 하는 일정으로 이성하 목사님과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 이 또한 사과드린다"는 말을 하는가?

그리고 정말 내가 "내 기준대로 내 말대로 회개하라고 강요"했단 말인가? 이 운동은 소비자 운동이다. 학자들이 표절로 명예와 돈과 직위를 얻을 때, 소비자들은 금전적인 대가를 치르며 그 책을 사서 본다. 그래서 소비자들에게 공개적인 사과를 할 것과 표절한 책을 절판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지극히 당연한 요구를 '회개 강요'라고 본단 말인가?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절판하지 않은 경우에 표절 사실을 공지하겠다는 것이 강요인가? 이건 소비자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주권 행사이다. 오히려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절판하는 분에게는 어떤 자료도 공개하지 않고, 모든 것을 덮고 넘어가고 있다. 

강사문 교수님 같은 경우, 공개적으로 사과하셨을 뿐만 아니라, 대한기독교서회에 남은 재고까지 본인이 책임지시겠다고 하셨다. 기존에 판매된 책을 본인에게 보내오면, 그에 상응하는 금액을 지불하시겠다고 까지 하셨다. 우리가 요구한 범위를 넘어서는 철저한 책임을 본인 스스로 지시겠다고 하셨다. 이게 강요와 협박에 의한 것으로 보이는가? 아니면 신앙 양심의 소리에 반응하신 것으로 보이는가? 

차정식 교수는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본인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차 교수는 이렇게 말했었다.

“학자들의 부실함으로 말미암아 한참 학문에 정진해야 할 이 목사님 같은 분이 고생하고 희생하시게 된 것에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제 로마서 주석서가 그때 당시 최선을 다했다고 여겼는데 오늘날의 기준으로 이렇게 엉성한 모습으로 몰골을 드러낸 점 역시 깊은 자괴감을 느끼며 당분간 sns는 물론 제 글쓰기, 책 쓰기 활동을 절제하고 절필하고자 합니다. 아울러, 이 목사님과 인격적으로 소통하면서 더 나은 길이 무엇인지 고뇌해 보겠습니다."

차 교수는 이 약속을 지켰는가? 

4. 중복과 표절은 다르다

차 교수는 본인이 저술한 주석의 성격상 꼼꼼한 인용 표기가 없을 수도 있다는 말을 이런 식으로 표현한다. 

"이러한 책들 역시 출발점은 학자들이 밝혀낸 전문적인 '지식'을 기초로 하지만 저자가 나름의 소화와 재구성을 통해 참조나 인용 표기 없이도 충분히 그 몫을 다할 수 있는 출판상의 효용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차 교수에게 묻고 싶다. 차 교수는 본인의 말대로 "나름의 소화와 재구성을" 했는가? 아니면 뭉텅이로 남의 글을 베꼈는가? 다른 학자가 인용한 글까지 본인의 글처럼 막무가내로 사용하지 않았는가? 

주석이라는 책은 그 성격상 다른 학자의 책과 많은 내용이 중복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내용이 중복되는 것과 표절은 전혀 다른 것이다. 해외 학자들의 주석을 보면 다른 학자들의 주석과 많은 내용이 중복되지만, 그들에게는 그런 걸로 표절 시비가 없다. 차 교수 말대로 저자가 "나름의 소화와 재구성을" 했고, 인용 표기를 했기 때문이다. 

5. 사과한다 그러나 책임은 못 진다?

차 교수는 교육부에서 각 학교에 내려보낸 훈령과 학회와 대학의 위원회 규정을 언급하면서 비밀 준수의 원칙을 언급한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덧붙인다. 

"그렇다고 그 당사자의 오류를 바깥으로 떠들면서 그 한 가지 건으로 그 사람의 인격을 싸잡아 매도하는 분위기를 조장하지는 않았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 교육부의 훈령이나 각 학교의 위원회 규정은 소비자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 거의 학자들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가득 차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저술한 논문에 표절이 있어도 5년만 지나면 문제 삼지 않는다. 심지어 저술한 책의 경우에는 표절 심사 대상이 아닌 경우도 있다. 

따라서 현재의 훈령이나 규정은 학술 논문이 아니라 저술한 책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을 표절로부터 보호하고, 그 피해를 구제할 방법이 전무한 것이다. 아무리 20년에 저술한 책이라 하더라도 현재까지 판매되고 있다면, 그 책은 20년 전의 책이 아니라, 현재의 책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표절로 인한 피해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시작한 운동이 신학 서적 표절 반대 운동이다. 이 운동의 취지를 모르지 않으면서 저런 말로 호도하는 차 교수의 저의가 의심스럽다. 

차정식 교수는 작년 8월에 있었던 '표절과 한국교회'라는 포럼에서 본인과 나란히 발제한 일이 있다. 그때 주 발제자로 오셨던 연세대의 남형두 교수님은 <국민일보>에 실린 기사(2015. 2. 27.)에서 이렇게 말했다.

"표절을 해서라도 내용이 좋으면 평가를 받는 게 그동안의 학계 풍토였다. 그러다 보니 학문 기성세대 중에서는 누가 표절에서 자유롭냐고 역공을 하거나, 당시엔 표절 기준이 그렇게 엄격하지 않았다고 항변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건 천부당만부당한 얘기다. 조선 시대에도 학자들은 표절을 비판했다. 우리나라가 그렇게 미개한 나라가 아니다."

표절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끄러운 행위였다. 그런데도 차 교수는 성서주석편집위원회의 집필 규정을 거론하면서 본인의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었고, 그것이 2007년의 교육부 연구 윤리 규정에 어긋나는 점이 있었다고 인정하는 모양새를 취한다. 

이 말이 교묘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로, 편집위원회의 집필 규정에 각주를 줄이라는 조항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과연 표절을 하라는 지시였는지도 의문이거니와, 그렇게 받아들였다 하더라도, 그건 차정식 교수 본인과 출판사가 표절의 공범이라는 말에 불과한 것이다. 둘째로, 2007년의 교육부 훈령 이전에는 표절이라는 문제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단 말인가? 남형두 교수님 말씀대로 "우리나라가 그렇게 미개한 나라가 아니다."

심지어 차 교수는 본인이 본문 주를 달아 놓았기 때문에 "그나마 그 본문 주를 창구로 하여 이 책의 참조·인용 표기가 얼마나 꼼꼼한지를 이 목사님이 사냥하며 탐색할 수 있었"다는 말까지 한다. 헛웃음이 나는 대목이다. 자신이 허술하게 달아 놓은 본문 주 덕분에 내가 표절을 잡아낼 수 있었다는 말이다. 그럼 이걸 고맙다고 해야 하나? 

장자(莊子)의 거협(胠篋) 편에 보면 당대의 유명한 도적인 도척이 도둑의 다섯 가지 덕목에 대해 설파하는 장면이 나온다. 도척은 "도둑이 훔치러 들어갈 때 재물이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 아는 것을 도둑의 성(聖)이라 하고, 훔치러 들어갈 때 남보다 먼저 들어가는 것을 도둑의 용(勇)이라 하고, 훔치고 나서 나올 때 뒤에 나오는 것을 도둑의 의(義)라 하고, 도둑질을 할지 말지 잘 판단하는 것을 도둑의 지(知)라 하고, 훔친 재물을 공평하게 나누는 것을 도둑의 인(仁)"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더해서 차정식 교수는 표절하면서 나중에 추적할 수 있도록 흔적을 남겨 주었으니, 그 덕목은 어디에 속할까? 

차정식 교수는 페이스북에서 작년에 자신의 로마서 주석이 5쇄를 찍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많은 사람에게 축하를 받았다. 이제는 사과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 사과는 이상한 해명과 변명 구석구석에 처량하게 박혀 있을 뿐이고,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겠다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 개정판을 내겠다는 말이 전부다. 그리고 그 한질을 나에게 주겠다고 한다. 고맙지도 않고 반갑지도 않다. 나는 처음부터 차 교수에게 강사문 교수님의 본을 따르라고 부탁했다. 그게 제일 좋다고 말했다. 

다시 한 번 당부를 드린다. 당신이 인정한 그 문제 많은 책을 절판하시라. 5쇄를 찍은 것은 자랑이 아니라,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축하받을 게 아니라 용서를 빌어야 한다. 차 교수의 회개가 영화 밀양에 나오는 살인범의 회개 같지 않기를 바란다. 굳이 성경 구절을 들이밀지 않겠다. 신약성서를 전공한 학자로서 본인이 배우고 익힌 바대로 회개하시길 당부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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