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교회가 약진했던 시기가 있었다. 4~5년 전으로 기억한다. 그전까지는 '카페가 교회 안에' 있었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교회가 카페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목회멘토링사역원이 주최했던 3년 전 '마을 섬김 사역' 워크숍에서 단연 화제는 '카페 목회'였다. 다른 분반에 비해서 2~3배 많은 참석자들이 몰렸다.

돌풍은 오래가지 않았다. 2년 전 같은 워크숍에서는 다른 사례들과 별반 차이가 없더니, 작년 워크숍에서는 사례로 채택되지도 않았다. 유행이 지나 김이 빠진 것일까. '카페 목회'로도 안 된다는 이야기가 어느새 대세가 됐다.

3년 전 마을 섬김 사역 워크숍에서 두각을 보였던 사례 교회를 지난 1월 7일 다시 찾았다. 광주 숨쉼교회. 5년 전 광주시 광산구 수완 지구에 복합문화공간 '숨'을 열어 카페 목회를 시작했다. 안석 목사는 3년 전 워크숍 때 와서 했던 예언(?)을 다시 언급했다. "카페 목회로는 안 된다."

▲ '교회 카페'가 '카페 교회'로 전환되는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카페 목회의 부흥기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오랜만에 광주 숨쉼교회를 다시 찾았다. ⓒ목회멘토링사역원 김재광

선교 수단은 어떻게 진화해 왔는가

10여 년 전에 다녔던 교회 이야기다. 그 교회에서는 수요일마다 지역 노숙인들에게 500원을 나눠 주는 '사역'을 했다. 수요일 아침이 되면 교회 앞마당은 500원짜리 동전 하나를 받기 위해 모인 노숙인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500원은 사회 선교의 재료이자 수단이었다. 교회는 500원을 매개로 이웃을 만났다. 한 끼 밥값도 안 되는 500원 때문에 감동하는 노숙인들은 한 명도 없었다. 지역 주민들은 말할 것도 없다.

수단은 진화했다. 좀 더 고급스럽고 유용하고 감동도 불러일으킬 만한 재료들을 찾았다. 500원이 식권으로, 여행용 휴지가 물티슈로, 믹스 커피가 드립 커피로. '교회 카페'가 '카페 교회'로 변모한 과정도 이 맥락과 흐름이 같다.

그런데 진화의 끝이라고 생각했던 카페 교회가 벽에 부딪혔다. 식권으로도, 물티슈로도, 드립 커피로도 안 통하는 시대가 왔다. 얼마나 더 진화해야 할까. 사회 선교·마을 사역의 수단은 언제까지 갈아타기만 반복할 것인가.

▲ 이의선 학생은 중학생 때 지구 반대편에서 고통받는 어린이 노동자들을 돕고 싶어 숨쉼교회를 찾았다. ⓒ목회멘토링사역원 김재광

이야기 하나

1997년생. 전남 광주 출생. 2015년 대학에 입학해 문화인류학을 공부하고 있다. 종교를 묻는 질문에는 무교라고 답한다.

이의선 학생은 중학교 다닐 때 처음 숨쉼교회를 알게 됐다. 매개는 커피였다. 하지만 '카페 목회'의 결실로 맺어진 관계는 아니었다.

책 한 권을 읽은 게 계기가 됐다. <지구촌 곳곳에 너의 손길이 필요해>. 제3세계 아동 노동자들의 인권 실태를 고발하는 책이었다. 공정 무역을 통한 윤리적 소비에 눈을 뜨게 된 시기도 그 즈음이다.

친구들과 '상상마당'이라는 이름의 동아리를 꾸렸다. 착취당하는 빈곤 지역 아동 노동자들을 돕자는 데 뜻을 모았다. 우선 학교 친구들을 대상으로 활동했고, 다음은 지역 주민들을 만나기로 했다.

피켓을 만들었다. 국제무역의 그늘에서 신음하는 지구 반대편 어린이들의 노동 현실을 알리고, 공정 무역 상품을 홍보하기 시작했다. 동네 마트를 돌면서 공정 무역 상품을 취급해 달라는 편지도 건넸다. 자주 가던 마트에 언젠가부터 공정 무역 초콜릿이 진열됐다.

동네에 있는 카페들도 조사했다. 공정 무역 커피를 파는 곳이 있는지 수소문했다. 딱 한 군데를 찾았다. '숨' 카페. 처음에는 그곳이 교회에서 운영하는 카페라는 사실을 몰랐다. 지금도 카페에 있는 교회인지, 교회에 있는 카페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숨 카페는 '상상마당' 동아리 친구들의 베이스캠프가 되었다. 공정 무역 상품을 가져다가 파는 장터 구실도 했고, 마을 주민들과 '공정 무역'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 이야기 마당 역할도 했다. 2년 동안 카페와 학교를 오가며 친구들을 만났고, 관심 있는 지역 주민과 활동가들도 만날 수 있었다.

이런 활동들을 근거로 중학교 3학년 때 유니세프 공모전에도 나갔다. 광주에서 올라온 지원자는 자기 한 명뿐이었다. 대부분 수도권 학생들이 모였고, 영어 발표는 물론이고 각종 시청각 자료들이 동원됐다. 전지에 매직으로 쓴 발표 자료를 내놓기가 민망할 지경이었다. 유일한 무기는 자신감.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활동 사례를 발표했다. 3위를 했다. 믿기 힘든 결과였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광주 지역 정신대 할머니들을 위한 활동에 참여했다. 공정 무역 장터를 열어 수익금을 할머니들을 위한 일에 썼다. 중학교 때부터 이어져 온 이런 활동들이 대학 진학에도 영향을 미쳤다. 특기 전형으로 원하던 과에 진학할 수 있었다.

대학 생활 1년을 마치고 오랜만에 '숨' 카페에 다시 들른 이의선 학생. 안석 목사의 아내 이진숙 씨가 어깨를 툭 건드리며 인사를 건넨다. "오랜만이네, 학교생활은 어때?" 서로의 안부를 묻는 대화가 이어졌다.

▲ 숨쉼교회는 공정 무역을 주제로 마을 주민들이 만나서 이야기 나누고 활동하는 장이었다. 사진은 2011년 공정 무역 캠페인 사진. (사진 제공 숨쉼교회)

커피 안에 담긴 메시지

안석 목사는 "커피든 책이든 그걸 가지고 이웃들과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교회라는 틀 안에 가두기 시작하면 교회도 이웃도 상상력을 발휘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숨쉼교회는 작년 12월 오랜 지역 사역의 결실로 동네 책방 '숨'을 열었다. 한 달 매출이 1,000만 원을 넘었다. 판매도 판매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화의 물꼬를 트는 노력이다. 공정 무역, 세월호, 생태 문제, 지역 운동 등 다양한 주제의 책을 각 코너별로 따로 모아 배치했다. 책을 매개로 지역 주민들과 각각의 주제를 놓고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숨쉼교회가 커피 한 잔에 담으려 했던 것은 '지구 반대편에 있는 학대받는 어린이 노동자들에게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메시지였다. 그 메시지에 공감한 중학생들, 지역 주민들이 교회로 찾아와 '공정 무역'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카페 목회가 추락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카페'가 있던 자리에 '도서관', '지역 아동 센터', '복지관' 등 다른 말이 들어가도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커피라는 화두로 교회는 지역사회와 어떤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메시지를 담금질하고 강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목회멘토링사역원과 아름다운커피, 페어라이프센터가 힘을 모아 도움을 드리고자 한다. 첫 번째 키워드는 '공정 무역'이다. 1월 18일(월)부터 진행되는 3주간의 기획 강좌를 통해, 한발 더 나간 마을 사역의 모델을 함께 고민해 볼 수 있길 바란다.

■ 공정 무역 기획 강좌 안내 및 신청 - 교회에서 빈곤 이웃 위한 '공정 무역' 캠페인 벌이자

▲ 동네 책방 '숨'은 책을 매개로 교회와 이웃이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다. 공정 무역, 세월호, 지역 운동 등 다양한 책들을 만나 볼 수 있었다. ⓒ목회멘토링사역원 김재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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