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지난 12월 11일, 한국에서 세 번째로 큰 교단의 총회장에게 징역 3년이 선고됐다. 대한예수교장로회 대신(구 백석)을 이끄는 장종현 목사 이야기다. 교단의 현직 총회장이 수감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장종현의 죄목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즉 횡령이다. 그는 백석대학교 총장 재직 시절, 총 600억 원이 들어간 학교 체육관 공사비 중 약 60억 원을 현금‧수표 등으로 되돌려 받았다.

장종현은 증거인멸의 우려로 구속된 상태에서 1심 판결을 받았다. 2012년 12월,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교계 언론뿐만 아니라 일반 언론에서도 그의 무죄판결을 보도했다. 검사가 1심에 불복해 항소했고, 2013년 항소심에서 그는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법정 구속은 되지 않은 채 대법원에 상고했다. 2년이 지난 2015년 12월, 대법원은 그의 상고를 기각하면서 항소심에서 선고한 대로 징역 3년을 확정했다.

<뉴스앤조이>는 항소심 판결문을 입수해 장종현의 사건을 분석했다. 그가 어떻게 60억을 횡령했는지와 최종 판결과 달리 1심에서는 왜 무죄판결을 받게 됐는지 판결문을 바탕으로 재구성했다.

▲ 대한예수교장로회 대신(구 백석) 장종현 총회장은 실형 3년을 선고받고 현재 구속 수감 중에 있다. 그는 백석대학교에 새로운 건물을 지으면서 공사 대금을 부풀려 계약한 후 일부인 약 60억 원을 현금과 수표로 돌려받았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장종현에게 60억 건넨 L은 누구?

사건의 공모는 장종현이 백석대학교 총장으로 재직하던 2006년 말경에 시작됐다. 재판부는 그가 "학교법인 백석대학교의 설립자이자, 2006년 3월부터 2009년 2월까지 천안 백석대학교 총장으로 재직하면서 등록금 등 교비 회계를 비롯해 백석대학교의 모든 자금 및 회계 관리 업무, 학사 행정 업무 등을 총괄·지휘하고 결정하는 업무에 종사하였다"고 했다.

장종현은 2006년부터 ㅅ건설회사 대표이사인 L과 조형관 및 체육관 공사에 대해 의논한 것으로 보인다. 판결문에 따르면 L은 사실상 장종현의 개인 비서라고 할 정도로 옆에서 밀접하게 '모시는 관계'였고, 수시로 만나 식사·골프·헬스 등을 같이 했다. 평소 장종현의 집무실에 수시로 찾아갈 정도로 가까운 관계였다고 했다.

2007년, 장종현과 L은 조형관 및 체육관 공사를 ㅅ건설에 주는 대신 공사비 일부를 장종현에게 되돌려 주기로 약속했다. 다만 L과 장종현이 수시로 만나는 과정에서 약정이 이루어졌고, 진술 시점이 그때로부터 5년이 지났기 때문에 누가 먼저 리베이트를 제안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L이 ㅅ건설을 인수한 때가 2006년 10월이었으니 인수를 확정한 이후 리베이트를 논의한 것으로 보인다. 장종현도 체육관 공사 같이 예산이 큰 경우는 보통 1년 전부터 계획하고 설계한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자금 추적 피하기 위해 현금 선호

조형관 및 체육관 공사 금액은 약 600억 원으로 백석대학교 건물들 중 가장 큰 규모의 공사였다. 장종현과 L 사이에 리베이트 약정이 체결된 후, 그는 받기로 한 금액을 전부 현금으로 받으면 좋겠다고 했다. L이 난색을 표하자 2007년 3월부터 다섯 번에 걸쳐 L의 통장으로 3억 원을 송금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장종현은 미리 L에게 돈을 빌려주고 대여금 채권이 존재하는 것처럼 외관을 만들었다. 혹시 나중에 수표로 리베이트를 받는다 하더라도 자금 추적에서 자유로울 수 있도록 준비한 것이다. 이 돈은 B대학원 명의의 계좌에서 빠져나갔는데, 당시 B대학원의 원장은 장종현의 매형이었다.

장종현은 L의 주장을 전면 부인했다. 3억 원은 실제로 L에게 대여한 것이고 현금·수표와 골프 회원권 구입비 대납 등으로 변제받았다고 했다. 검찰이 비자금 조성을 목적으로 사용하는 ㅅ건설의 계좌에서 약 6억 원의 수표가 장종현에게 흘러 들어갔고, 그 금액을 장종현의 친인척과 가족들이 사용했다고 추궁하자 장종현은 진술을 번복하기까지 했다. L과 함께 골프·고스톱을 치는 과정에서 L의 수표가 수시로 흘러 들어왔고, L의 부탁으로 수표를 현금으로 교환해 줬기 때문에 3억 원의 수표가 더 생긴 것이라고 주장했다.

▲ 판결문에 따르면, 장종현은 리베이트의 대부분을 현금으로 받기 원했다. 수표를 받아야 할 경우에 대비해 미리 L의 계좌로 3억 원을 송금해 놓기도 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하지만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장종현이 L과의 거래에서 자신의 이름을 남기면서 금전 거래를 한 경우는 송금 내역이 유일한 점 △평소 돈의 흐름이 드러나는 수표보다 현금을 선호한다고 진술한 점 △L에게 돌려받은 3억 원을 매형에게 돌려주지 않고 자신의 재산을 관리하던 백석대학교 총무처 차장에게 쓰라고 한 점 △받은 수표 대부분이 장종현의 가족, 친인척, 백석대학교 임직원과 그 가족이 사용한 점 등의 이유를 들어 장종현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현금을 선호하던 장종현은 총 36회에 걸쳐 L에게 돈을 받았다. 판결문에 따르면 L은 장종현의 방배동 집무실이나 함께 골프를 치던 골프장에서 현금이 담긴 박스를 건넸다. 장종현의 재산을 관리하는 백석대학교 총무처 차장은 3억 원이 담긴 쇼핑백을 장종현의 집무실에서 건네받았다고 진술했다.

눈가림용이었던 건축추진실무위원회

장종현이 유죄판결을 받는 데는 L의 진술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심 재판부는 크게 세 가지 이유를 들어 L의 진술 대부분을 인정하지 않았다. 첫째, 백석대학교에 건축추진실무위원회(건축위)가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재판부는 건축위가 주도해서 공사 예산을 책정했고, 적법한 절차에 따라 ㅅ건설을 우선 협상 대상자로 정했다고 봤다.

하지만 항소심의 판단은 달랐다. 항소심 재판부는 건축위가 존재하지만 이는 눈속임에 불과하다고 했다. 재판부는 ㅅ건설과 함께 입찰에 참여했던 경쟁 업체들의 진술을 그 이유로 들었다. 입찰에 참가한 업체는 총 다섯 곳이었는데 ㅅ건설은 L이, ㅈ건설은 L의 형 R이 운영하던 건설사다. 나머지 ㅋ, ㅌ, ㅍ사의 실무자들은 모두 L 또는 ㅅ건설 관계자가 미리 작성해 온 견적서에 도장만 찍었다고 증언했다. 입찰에 참여할 의사가 없었던 것이다.

건축위가 실제 공사 업체를 선정함에 있어 제 역할을 하지 못 했다고 보는 이유는 또 있다. 건축위는 지명 경쟁 입찰 방식을 채택했다. 공사에 참여할 건설사를 미리 지정해 그 회사들만 입찰에 참여하게 하는 방법이다. 건축위는 2007년 11월 8일, 입찰에 참여할 5개 업체 ㅅ, ㅈ, ㅋ, ㅌ, ㅍ를 선정했다. 4일 후, 건축 예산을 약 560억 원으로 정하고 가장 적은 금액을 적어 낸 ㅅ건설을 우선 협상 대상자로 결정했다.

장종현의 변호인은 L이 백석대학교의 의중과는 무관하게 다른 건설사들과 담합한 후 최저 견적을 제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백석대학교가 입찰에 참여하라고 선정한 업체들이 실제로는 학교 공사를 수주할 의향이 없었던 점과 업체들 모두가 L과 잘 아는 관계에 있었기에 백석대학교와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했다.

이는 L의 주장과도 일맥상통한다. L은 1심 재판에서 "장종현으로부터 공사 금액으로 얼마를 써내라는 말을 듣고 그 금액으로 써냈다. 2~3개 업체를 정한 후 가짜로 견적을 내 입찰에 참여하게 하는 경쟁 입찰 형식을 빌려서 수주했다. 2~3개 중 하나는 후배 회사이기 때문에 도움을 받았고, 나머지 회사들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품앗이를 했다"고 진술했다.

▲ 항소심 재판부는 그가 이미 한 차례 횡령 혐의로 집행 유예 기간이었음에도 같은 종류의 범행을 저지른 것과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해 실형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판결문 갈무리)

뺨 맞은 것에 앙심 품고 60억 횡령 거짓 진술?

1심 재판부가 L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본 두 번째 이유는 그가 재판 과정에서 말을 번복했기 때문이다. L은 검찰 조사에서 처음에는 리베이트로 26억 원을 약정했다고 진술했다. 검찰이 수사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ㅅ건설이 비자금 조성 용도로 사용한 다른 사람 명의의 계좌가 드러나자 장종현과 약속한 리베이트는 원래 66억 원이라고 번복했다.

1심 재판부는 L이 검찰 조사 과정에서 말을 바꾸고 있다며 그의 진술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장종현의 변호인도 L이 말을 바꾸고 있는 것은 장종현에게 해를 가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L이 처음에 리베이트 금액을 26억 원이라고 한 것은 검찰이 차명 계좌를 추적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고, 검찰이 비자금 계좌를 제시하자 솔직하게 66억 원이라고 정정 진술한 것이라고 했다. 정정 진술한 부분은 L의 주변 사람이 백석대학교 공사와 관련해 진술한 내용과도 일치하기 때문에 그의 주장에 신빙성이 있다고 봤다.

세 번째로 1심 재판부는 L이 장종현에게 서운한 감정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진술에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다. 장종현은 "두 사람 사이에 발생한 금전 문제 때문에 관계자들이 보는 앞에서 L의 뺨을 때린 일이 있고, 또 다른 공사를 맡기기 위해 가격 협상을 하던 중 뺨을 때린 문제로 인해 (일이) 틀어졌다. 이 공사를 L에게 주지 않아 나를 무고한 것"이라는 취지로 진술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판결문에 따르면 "15년 동안 장종현을 비서처럼 모시는 관계에 있던 L이, 뺨을 맞는 사건 하나로 장종현을 60억 원의 횡령 혐의로 거짓 무고하는 동기가 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중략) 또 L이 다른 공사를 따지 못 해서 서운한 감정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장종현이 이 공사를 누구에게 줄지 임의로 결정할 지위에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기에 설령 L이 공사를 따내지 못해 장종현에게 서운한 감정이 있다고 해도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할 수는 없다"고 했다.

항소심은 1심에서 거짓 진술로 여겨졌던 L의 진술을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해 장종현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이 같은 재판부의 결정에 구 백석 교단 관계자들은 억울한 면이 있다고 했다. 교단 임원인 한 목사는 <뉴스앤조이> 기자와 통화에서 "진술만 있고 증거는 없다. 이런 재판이 어디 있나. L의 진술에만 의존해서 현직 교단 총회장에게 실형을 선고한 것이다. L과 그의 형 R을 고소하라는 주변의 권유가 있었지만 총회장님은 어차피 자신이 다 품어야 할 사람들이라며 억울하지만 현실을 받아들이신 것"이라고 했다.

장종현의 사건은 개인 대 개인의 횡령이 아니기 때문에 공사 대금을 지불한 백석대학교에서 횡령금 반환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현행법에 따르면 이를 제기하지 않을 경우 현직 이사장에게 배임 혐의를 물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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