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월 23일, 용산역 광장에서 길찾는교회가 주최한 'KTX 해고 승무원 후원금 마련을 위한 거리 기도회'가 열렸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지난 3월 16일, 35세 여성이 충남 아산 한 아파트에서 몸을 던졌다. 세 살배기 아이를 뒤로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 여성은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을 10년째 이어 온 'KTX 해고 승무원'이었다. 한국에 KTX가 도입될 무렵, 꽃다운 여성들은 한국철도공사가 제시한 장밋빛 미래를 믿고 승무원이 되었다. 그러나 입사 후 이들의 신분은 계약직이 되었고, 사측에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다 해고 수순을 밟았다.

기나긴 시간 동안 사법부는 승무원들에게 환희와 좌절을 번갈아가며 안겼다. 1‧2심에서는 한국철도공사가 승무원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승무원들의 손을 들어 줬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1‧2심을 뒤엎는 파기환송심을 선고한 것이다. 결국 지난 11월 27일, 서울고등법원은 1‧2심의 판결을 최종적으로 기각했다. 기각과 함께 법원은 해고 승무원 34명에게 1‧2심 이후 4년 동안 한국철도공사에게 지급받은 가처분 임금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1인당 8,640만 원이었다.

▲ 참석자들은 민김종훈의 인도에 맞춰 찬송을 부르고 성서를 읽었다. 잠시 침묵으로 기도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이들과 연대하기 위해 길거리로 나선 사람들이 있다. 성공회 길찾는교회(민김종훈 신부)의 교인들이다. 길찾는교회는 지난 12월 9일부터 대림절을 기억하며 매주 수요일에 'KTX 해고 노동자 후원 기금 마련을 위한 거리 기도회'를 개최했다.

12월 23일, 성탄 이틀 전에도 길찾는교회 교인들은 길거리로 나섰다. 이들이 모인 서울 용산역 광장은 끊임없이 종을 흔드는 구세군 봉사자들과 발걸음을 재촉하는 직장인들, 여행 가방을 끌고 어디론가 향하는 여행객들로 가득 찼다.

광장 한쪽 계단에서는 서른 명 남짓 되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길찾는교회 교인, KTX 해고 승무원들, 철도 노조 조합원들이었다. 민김종훈 신부가 계단 앞에 임시 예배단을 만들었다. 십자가와 작은 트리를 세우고, 성찬 예식에 쓸 포도주와 빵도 준비했다.

▲ 민김종훈 신부의 설교 대신 KTX 해고 승무원인 승무지부 김승하 지부장의 발언을 들었다. 그는 자신들을 기억하고 함께해 줘서 고맙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30여 명은 성가를 부르며 기도회를 시작했다. 성공회 예배 순서에 맞춰 함께 찬양을 부르고 성서를 읽었다. 민김종훈 신부의 설교 대신 KTX 해고 승무원 김승하 승무지부 지부장의 현장 증언을 들었다.

"KTX 해고 승무원이 소송에서 진 후에도 힘든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계신 분들이 많다. 박근혜 정부 이후 상황이 더 어려워지고 많이 잊혀지고 있다. 그런 와중에도 조금씩 다른 문을 열어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한다. 그런 하나님이시기에 이 기도회를 열어 주셨다고 생각한다. 싸움이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계속해서 함께 싸우고 기억해 주시면 좋겠다."

그는 교회가 이렇게 자신들을 위해 기도회를 열어 준 적은 처음이라고 했다. 승무원들은 1억 원에 가까운 돈을 배상하라는 선고를 받고, 고지서가 언제 올지 몰라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길찾는교회 민김종훈 신부는 성서에서 발견한 하나님은 무시당하고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을 편드시는 분이라고 했다. 그는 편드시는 하나님이 계신 곳, 즉 거리에서 힘겹게 싸움을 이어 가는 사람들과 함께하기 위해 거리 기도회를 기획했다.

그는 "길찾는교회는 성 소수자를 비롯해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소수자들이 모이는 교회에서 목회하면서 또 다른 사회적 약자들을 기억할 수 있게 됐다. 앞으로는 연대하는 교회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약자가 약자를 물어뜯는 현실에서,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현실을 재구성하고 재배치하는 일인 것 같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이런 연대의 자리에 많이 가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연결되다 보면 또 다른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무엇보다 사회적 약자들이 잊히지 않고 사람들이 계속 이들을 기억하게 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했다.

▲ 거리 기도회는 성찬식으로 마무리됐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길찾는교회 교인은 아니지만 기도회에 참석한 사람도 있었다. 연세대학교 신학과에 재학 중인 김준철 씨는, 교회 건물 안에서 영혼을 구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재 한국교회는 거기서 끝나 버린다고 했다. 그는 "KTX 해고 승무원이 싸우는 대상은 공룡 같은 존재인데 혼자 싸울 수는 없다. 이렇게 함께 싸워 주는 공동체가 꼭 필요한 것 같다. 또 이런 공동체가 많아지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거리로 나가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예수님도 번듯한 건물이 아닌 마구간에서 태어났고, 길거리에서 설교하지 않으셨나"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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