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이덕주 소장, 기독교역사연구소)는 '분단 70년, 한국 기독교의 성찰과 반성'이라는 주제로 정기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1년에 두 차례 열리는 학술 심포지엄은 상반기에는 인물을, 하반기에는 사회 이슈와 연관한 주제를 선정해 발표하고 의견을 나눈다.

올해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해방 이후 한국 기독교의 공과 과를 살펴보기 위해 마련됐다. 이만열 초대 소장(숙명여대 명예교수)이 기조 강연을 하고, 윤경로 2대 소장(전 한성대 총장), 김흥수 3대 소장(목원대 교수), 이덕주 현 소장(감신대 교수)이 발표를 맡았다.

▲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초대 소장 이만열 교수(숙명여대 명예)는 한국교회가 자기 신학을 발굴하는 데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이만열 교수는 "광복 70년 한국교회는 자기 신학 없이 양적 성장만 추구해 왔다"고 했다. 그는 광복 이후부터 현재까지 기독교계가 한국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 왔는지, 분단된 우리나라의 현실 앞에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 살펴보며 한국교회의 과오를 짚었다. (발제문 바로 가기)

"지난 70년을 돌아볼 때, 한국교회가 양적 성장을 이룬 것에 비해 사회에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 신학을 발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민중신학을 제외하고 한국을 대표하는 신학이 없었다는 것은 교계에서 신학에 대한 고민조차 없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신학교 대부분이 교단 직영인 현실 속에서 교단 색깔에 반하는 의견을 내는, 용기 있는 신학자가 별로 없었다.

한국 교계가 창의적이거나 자기 색깔과 다른 신학을 용납할 만큼 관용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신학화를 창의적으로 해 나가려면 소속 교단으로부터 퇴출당하는 것도 각오할 용기가 필요하다. (중략) 신학적으로 제대로 비판받지 못하고 검증도 되지 않는, 어쩌면 신학적 고민 없는 교회들의 '신학 없는' 신앙이 역으로 신학교 교육을 폐쇄적인 상태로 몰아가고 '신학화'의 가능성마저 잘라 버렸다."

이덕주 교수도 한국 신학교 대부분이 교단 소속이기 때문에 자유로운 연구가 불가능하다는 동일한 지적을 했다. 그는 '신학이 정치를 만날 때 - 해방 후 신학 갈등과 교회 분열'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해방 후 장로교가 여러 곳으로 갈리기까지 배경과 과정을 설명했다.

"한국의 장로교단은 신학적인 문제로 분열을 시작했지만, 어느 시점부터는 교권 즉 교회 재산권을 누가 차지하느냐의 싸움이 되고 말았다. 앞으로 한국의 신학교들이 조금 더 유연해졌으면 좋겠다. 보수적인 신학교에서 자유주의 신학을 가르치고, 진보적인 신학교에서 개혁주의 등을 가르친다면 한국 교단이 서로 화해하고 일치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한국 신학교들이 교단 정치에 휘말리지 않고 보수·진보 구분 없이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의 학술 심포지엄에서 역대 소장들이 주제별 발표를 맡았다. 맨 오른쪽부터 이덕주 현 소장, 김흥수 3대 소장, 윤경로 2대 소장이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윤경로 교수는 해방 이후 한국 기독교가 권력과 유착한 사례들을 발표했다. 그는 먼저 이승만 대통령 재임 시절 종교법인과 전문 종교인에 대한 각종 면세 혜택이 시작됐다고 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고 난 후, 이를 미화하는 한국 신학자의 낮 뜨거운 글을 소개하기도 했다.

"현재 박정희 장군이 잡고 있는 권세는 본래 이 땅에 이루어질 공민적 정치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준비하여 주신 권세요, 따라서 이 권세는 그가 장악하든 다른 사람이 장악하든 간에 이미 하나님께서 준비하여 두신 것이다. 그리고 이 권세를 그에게 맡기신 것도 주님의 특별한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 것이다."

이어 김흥수 교수는 북한 기독교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지 소개했다. 그는 현재 한국교회는 북한의 조선그리스도교도련맹(조그련)을 가짜 조직이라고 몰아붙이고 있는데 반드시 그렇게 볼 수는 없다고 했다. 그는 조그련이 결성되기까지 정치적 동기를 발견할 수 있지만, 결성자들에게서 기독교의 발전과 기독교적 박애에 대한 신앙적 관심도 찾아볼 수 있다고 했다.

이날 심포지엄에는 연구소 회원과 일반인 등 약 70여 명이 참석했다. 객석 대부분을 차지한 나이 지긋한 사람들 사이사이 40대도 간혹 눈에 띄었다. 심포지엄이 네 시간가량 이어졌지만 참석자들은 자리를 뜨지 않고 발표와 토론을 경청했다.

▲ 심포지엄에는 대부분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회원들이 참석했다. 교계 원로들이 많이 참석했고 사이사이 젊은 사람도 눈에 띄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