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 박무용 총회장이 12월 2일, <기독신문>에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찬성하는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뉴스앤조이>는 한국사를 전공한 인문학도이자, 같은 예장합동 교단에서 목회하는 박원홍 목사에게 의견을 물었습니다. 이에 박원홍 목사는 박무용 총회장에게 쓰는 공개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아래는 공개편지 전문입니다. - 편집자 주

편하게 선배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선배님께서 목회하시는 대구에 제 친구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선배님 이야기를 가끔 듣습니다. 선배님께서는 품성이 선하고 후배들을 아끼는, 덕이 많은 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해서 이번 회기는 행복한 총회가 될 것 같다는 기대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호사다마인지 의외의 사건이 자꾸 일어나기에 후배가 선배님께 넋두리를 하고 싶어 편지를 씁니다. 지난 10월 중순, C채널이 주관한 교단장 좌담회에서 선배님이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찬성한다고 말씀하셨을 때 저는 혼란스러웠습니다. 이번 주 <기독신문>에는 국정화 교과서 찬성 성명서를 발표하셨더군요. 이제는 허탈감마저 듭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우선 시점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교육부가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한 날이 10월 12일이고 교단장 좌담회가 14일이었습니다. 단 3일밖에 차이가 안 납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선배님 성향을 볼 때 앞장서서 그런 자리를 만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누군가 고도의 정치적 계산을 하고 꾸민 일이라는 오해를 받기 딱 좋습니다. 저는 이것이 한국교회를 욕보인 사건이 아닌가 합니다. 역사학 분야 전문가들은 발표 이전부터 국정화에 대한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혔습니다. 종교계가 발 빠르게 나서서 찬성 운운할 사안이 아니었습니다. 교단장 좌담회라는 이름으로 순수한 교회의 순박한 총회장들이 전격적으로 소집됐습니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전국 교회에 재갈을 물렸습니다. 선배님은 속은 것이고, 우리 교단은 크게 망신을 당한 것입니다. 이후 상황을 볼 때 더 그렇습니다.

그리고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 총회장과 우리 예장합동 총회장이 왜 이렇게 달라야 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예장통합 채영남 총회장은 교단장 좌담회에서도 국정화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습니다. 한국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무시당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많은 성도들의 공감을 얻었습니다. 채영남 총회장은 11월 말에 총회 임원회를 거쳐 국정화에 반대한다는 목회 서신을 발표했습니다. 거꾸로 선배님은 12월 2일 <기독신문>에 '역사를 바로잡는 일은 나라를 바로 세우는 일입니다'는 성명서를 발표하셨습니다. 뜬금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명서에서 주장하는 내용은 이미 수차례 문제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사항들입니다. 제목은 좋으나 내용을 통해 교과서를 검토하지 않았다는 것을 고백하는 꼴이 됐습니다. 그 문제에 대한 비판은 심용환 선생이 조목조목 잘 지적했습니다. 심용환 선생의 글을 꼭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이제는 집필진이 밀실에서 책을 만들고 있다는 비상식적인 문제를 질책해야 합니다. 세계 어느 나라가 교과서를 비밀리에 작업한다는 말입니까. 이미 그 발상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제 교과서가 나오면 우리 사회는 더 큰 혼란의 수렁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전문가들이 집단으로 항명한 사안입니다. 현장에서 한국사를 가르치는 교사 거의 대부분이 국정화에 대해 거부 의사를 밝혔습니다. 교회 문제를 비기독교인이 간섭하면 결례가 되듯 교과서 문제에 대한 선배님의 일탈은 과유불급이었습니다. 이번 성명서 역시 선배님의 독자적인 의지의 발로라고 믿고 싶지는 않습니다. 누군가의 권고를 받은 것 같은 의심을 떨칠 수 없습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책임은 선배님께 있습니다.

이런 일이 아니라도 한국 사회는 교회를 향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상스러운 욕설을 거침없이 퍼붓고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위기인 시대입니다. 12월 5일이면 대구 한일극장 앞에서 어린 학생들이 역사 교과서 반대를 위한 총궐기 대회를 합니다. 이런 마당에 왜 우리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찬성하면서까지 돌팔매를 자초해야 할까요. 시대의 흐름을 읽을 줄 모르는 우매한 집단, 힘 있는 정치권에 빌붙어 떡고물을 탐내는 어용 단체, 우는 자들과 함께 울어야 하는 주님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먼 배부른 무리들. 이런 평가를 앞장서서 수습해야 할 책무가 선배님께 있다고 봅니다. 차라리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세월호 사건의 정당한 수습을 위해 성명서를 내십시오. 그것이 우리가 총신에서 배운 칼뱅주의이며 개혁교회의 사명이라고 믿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선배님, 저는 요즘 한국교회의 어용 행위를 보면서 히틀러와 독일 교회가 자꾸 생각나 마음이 불안불안합니다. 히틀러에게 협조하면 유익이 있을 것이라는 오판 때문에 독일 교회는 세계사에 씻을 수 없는 오명을 남겼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11월 19일 사설에서, 박근혜 정부가 교과서 국정화 시도를 통해 "강압적으로 역사를 다시 쓰고 반대 여론을 잠재우려 하고 있다"고 냉정하게 비판했습니다. 친일 행각을 벌인 박정희의 독재적 유산을 희석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했습니다. 프랑스 신문 <르몽드>도 "박 대통령은 아버지의 이미지를 복원하려는 야망을 숨긴 적이 없다"고 꼬집었습니다. 차라리 아버지 문제에 대해 침묵했다면 착한 국민들에게 동정을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오히려 평지풍파를 일으키며 비방을 자초했습니다.

선배님, 고대 중국 병법서 <삼십육계비본병법>에 '성동격서'라는 말이 있습니다. "동쪽에서 소리를 내고 서쪽에서 적을 친다"는 뜻입니다. 지금 박근혜 정부의 정치 해법입니다. 현 정부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일 수 있습니다. 청년들이 우리나라를 '헬조선'이라고 표현하고, '수저 계급론'을 통해 금수저·흙수저를 이야기합니다. 경제 위기의 심각성을 숨길 수 없게 됐습니다. 현 정부가 경제정책 실패에 대한 비판을 잠재우기 위해 교과서 국정화를 들고 나왔습니다. 의도적으로 보수와 진보를 싸움 붙였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이런 반사회적인 정치 술수에 왜 선배님께서 이용당해야 하는지요. 선배님께서는 약점을 잡혀서 누군가에게 비굴하게 굴어야 하는 어떤 교계 인사와도 다른 분이시잖아요. 교단의 명예 회복을 위해 결자해지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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