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를 생각하세요?"

지난 봄, 분립개척준비위원회에 계신 장로님께서 물으셨다. 이제 분립 개척교회를 세우려면 모교회인 일산은혜교회가 재정 지원을 해야 할 텐데, 개척할 목사인 내가 어느 정도 기대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질문이었다. 잠깐 생각하고 이렇게 말씀드렸다.

"0원 주십시오."

장로님은 당황하신 듯 헛웃음을 지으셨다. 나는 장난친 게 아니다. 진심으로 말했다. 분립 교회에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분립 교회에 돈을 많이 주면 죽는다. 왜 나라고 돈을 싫어하겠는가. 하지만 분립 교회를 돈으로 개척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분립 개척교회를 세울 것인가.

첫째, 분립 개척교회는 교인들의 참여로 세워진다. 분립 교회는 개척하는 목사와 교인들이 세우는 교회가 아니다. 일산은혜교회 모든 교인들이 힘을 합쳐 개척하는 교회다. 그 증거는 지난 준비 과정을 살펴보면 잘 드러난다. 분립 교회 설립 준비는 지난 1~2월 당회 결의로 시작되었다. 이어 3~6월에 활동한 분립개척준비위원회는 개척에 참여하기로 작정한 교인이 아니라, 전체 교인을 대표하여 의견을 제시하고 합리적으로 토론할 7인으로 구성되었다. 이후 분립을 위한 교육, 설교, 기도회 등 모든 과정에 모든 교인들이 함께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일산은혜교회 전체 교인들이 분립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분립에 참여할지를 고민하고, 분립 교회를 위해 헌금할 것이다.

분립 교회는 일산은혜교회가 '하나 되어' 세우는 교회다. 전 교인이 하나 되어 분립 교회를 세우는 노력은 단지 분립 교회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교인들을 떠나보내는 모교회를 위해서 더 필요하다. 교회가 가는 사람과 교회에 남는 사람으로 나뉘게 되면 분열의 영이 작동한다. 한 교회가 '네 교회'와 '내 교회'로 갈리면 위험하다. 만일 교회가 하나 된다면 성령의 능력으로 분립 교인들이 떠난 빈자리가 구원받은 새 영혼들로 차고 넘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허전한 예배당과 허탈감만 남게 된다.

둘째, 분립 개척교회는 창의적인 상상력으로 세워진다. 무슨 과학 경시대회도 아니고, 교회를 세우는 데 창의력이 웬 말인가. 지금 우리는 창의적이지 않으면 개척교회가 생존하기 힘든 시대를 살고 있다. 지금은 한국교회의 환란기이다. 편의성과 익명성으로 무장한 중대형 교회에도 새 신자가 흔치 않다. 기존 교인들도 빠져나간다고 아우성인데, 개척교회는 오죽하겠는가. 지금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흔한 방식으로 개척에 성공하기 힘들다. 다른 길을 모색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하나님나라의 영적 상상력이 요구된다. 교회의 패망을 염원하는 악한 영의 권세가 우리 상상력을 가로막고 있다. 교회에 대한 통상적인 고정관념에 가두는 것이다. 이에 저항하는 파격적인 혁신이 요구된다. 영적 전쟁이란 결국 상상력 전쟁이다.

교회의 지속 가능성을 만들기 위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발상과 시도가 필요하다. 지속 가능성은 현실적으로는 돈의 문제로 나타난다. 교회의 주요 지출은 예배당 관리비와 목회자 사례비다. 예배당에 대한 기존 관념을 뒤틀 필요가 있다. 주일예배만을 위해, 분에 넘치는 너무 크고 비싼 공간을 찾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래서 공간을 이원화하는 교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주일날 예배 공간으로 학교 강당이나 복지관 강의실 등을 필요한 시간만 빌려 쓰는 방식이다. 장소 사용료가 소외된 이웃을 위한 선교비가 될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주중에 교제, 교육, 기도를 위한 공간은 작게 상시 임대하되, 불신자의 방문이 용이한 1층 카페 또는 공방의 모양새라면 전도하기 좋겠다.

목회자 사례비와 관련해서도 창의적 접근이 필요하다. 교회가 목회자 생활비 전체를 책임지기로 결의하고 그것을 진행할 능력이 있다면 문제가 안 된다. 그리고 목회자는 이중직을 할 수 있다. 이중직은 단지 먹고사는 문제 이상이다. 이중직은 목사의 '또 다른 밥벌이'가 아니라 '또 하나의 소명'이다. 그래서 북미에서는 이중직을 Bi-Vocational Ministry, 이중 소명 목회라고 부른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두 가지 또는 그 이상의 소명도 주실 수 있다.

"개척하면 월급 안 나오는 거 아니야?"

그동안 이 질문이 나를 두렵게 했다. 생각할 때마다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결단했다. 나는 개척교회 담임목사가 되면 현재 받고 있는 부목사 급여를 교회 사정에 맞춰 자진 삭감할 의지가 있다. 이 문제에 대해 우리 부부는 낙엽이 떨어지는 일산호수공원 벤치에 앉아 긴 시간 얘기했고, 대단히 비현실적이지만 기도 가운데 결심했다.

셋째, 분립 개척교회는 탈자본적 개척으로 가능하다. 돈의 신 맘몬 우상숭배와 한판 승부를 벌여야 할 교회가, 시작하면서부터 그 세력에 굴복해서 되겠는가? 돈이 없어야 상상력이 시작된다. 결핍이 에너지다. 없는 게 메리트다. 음식이 풍족한 곳에서는 오병이어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

돈에 의존하면 영적 상상력이 마비된다. 모교회로부터 풍족한 재정이 입금되면 교회 개척은 쇼핑이 되고 만다. 예배당은 보증금 얼마에 월세 얼마짜리를 얻을까. 의자는 어떤 디자인으로 살까. 음향 영상 시스템은 요즘 어떤 게 가성비가 높은가. 수많은 중대형 교회의 분립 교회들이 이 길을 갔고, 그렇게 망했다. 맘몬 우상숭배의 세상을 이기려면 돈이 아닌 공동체의 기도와 헌신으로 개척해야 한다. 그러려면 모교회의 재정 지원을 최소화해야 한다.

모교회로부터 재정 지원이 적으면 분립 교회는 살림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교회의 재정적 지속 가능성을 처음부터 만들어 놓고 시작해야 한다. 어느 부모가 이제 갓 비정규직 직장을 얻고 결혼한 아들에게 은행 빚을 얻어 30평 아파트 구해 주고, 할부로 중형차를 뽑아 준 뒤 "3년 동안은 내가 이자와 할부금을 내줄 테지만, 그 다음부터는 스스로 내거라"고 한다면 3년 후 그게 가능하겠는가. 궁핍하더라도 처음부터 독립적으로 자기 살림을 시작해야 한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일산은혜교회는 분립 교회에게 돌아오는 성탄절 헌금을 주기로 했다. 작정 헌금이 아니라 단 한 번의 헌금이다. 그리고 더 이상의 재정 지원은 없다. 이후 목회자 사례비 지원도 전혀 없다. 대신 교인들에게 분립 교회로 가라고 독려했다. 돈이 아니라 사람이 개척하기 위해서다.

"기대하지마. 교인들이 많이 안 갈 테니. 너무 상처 받지 말고."

분립의 경험이 있는 선배 목회자들이 하나같이 이렇게 얘기했다. 그래서 많이 겁먹었다. 그러나 일산은혜교회는 달랐다. 지난 11월 둘째 주부터 신청을 받기 시작했는데, 12월 4일 현재 19개 가정, 장년 29명이 신청했다. 그중 부부 10가정, 개인 7가정, 청년 2명이다. 장로 2명, 권사 6명, 안수집사 4명이다. 대박이다.

교회 절망의 시대에 개척교회가 부흥하는 길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개척교회가 망하는 길은 알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결코 그 길로 가지 않겠다. 그 길은 맘몬이 제한한 상상력에 머무는 길이다. 참여하는 교인들과 함께 창의적인 상상력으로 돈의 권세를 의지하지 않고, 평범한 교회를 '특별하게' 개척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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