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차마 전태일을 예수라 부를 수 없다. 그의 예수 됨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예수의 예수 됨이 교회에 의해 너무 훼손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태일의 마음에는 예수의 마음이, 전태일의 삶에는 예수의 삶이 고스란히 녹여져 있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최근 신학계에 '예수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했다지만, 굳이 2000년 전 고고학적 흔적을 찾으러 나사렛 동네 갈릴리 땅 그 시대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을까.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다"(막 14:7)는 예수의 말씀처럼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 밑바닥 삶 한가운데에서 메시아가 출현했다. 착취와 억압이 있는 곳에 해방과 자유의 메시아가 탄생한다. 파라오의 학정에 못 견딘 고대 이집트 왕국의 히브리 노예들 사이에서 출애굽 사건이 일어나고, 로마제국과 유대 종교 권력의 이중 질곡에 시달리던 갈릴리 땅에서 예수 운동이 일어났듯, 전태일은 박정희 정권의 노동 착취를 담보로 한 압축 경제성장의 폐단이 낳았다고 할 수 있다. 가혹한 채찍질이 잠들어 있던 혼에 불을 댕기고 민중을 깨운다. 무기력을 떨쳐 일어나는 저항은 그렇게 시작된다.

▲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중 한 장면.

전태일 '사건'에서 드러난 민중의 메시아성

전태일이 죽음의 순간 껴안고 있었던 '근로기준법 해설서'는 예수께서 껴안고 못 박혀 돌아가신 십자가, 전태일의 십자가였다. 그 십자가에서 부활의 꽃이 피어 노동의 새벽을 열었다. 그의 죽음이 각별한 의미를 지닌 이유다. 그래서 전태일은 개인이기도 하지만 개인을 넘어선다. 그는 모든 가난한 노동자, 자신의 말대로 '너 안의 나'였다.

그런 전태일 사건 현장에서 서남동과 안병무의 '민중신학'이 탄생했다. 그들이 곧장 '고난 받는 민중의 메시아성'을 깨친 것도 그런 것이었다. 예수 '사건'처럼 전태일 '사건'이 민중의 메시아성을 드러냈다는 것은 전태일의 희생이 가져다준 혁명적 변화에서 드러난다. 대한민국의 노동운동은 전태일 이전과 이후로 구분된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는 노동운동사에 큰 획을 그었다.

하지만 전태일 열사가 불꽃으로 산화한 지 45년, 다시 노동 현실은 곤두박질치고 있다. 600만 명이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이 OECD 평균보다 2배가 넘는 최악의 노동 상황을 맞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 개혁'은 사실상 '노동 개악'이다. 고용 유연화와 정규직 보호 완화 등으로 노동자들은 해고라는 칼날에 평생 쫓기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대부분이 서민들인 소자본 자영업자들의 폐업률이 80%를 넘는 현실은 또 어떠한가. 가난한 이들의 삶이 갈수록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작금의 현실이 다시 전태일을 불러내고 있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45주기 대구 시민 문화제 웹 자보. (사진 제공 정중규)

전태일의 고향 대구, 전태일을 다시 찾는 대구

마침 전태일의 고향 대구에서 처음으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대구 시민 문화제를 열었다. 지난 11월 12일의 '우리 시대의 노동' 토론회와 '대구+전태일 기억하고 상상하라' 집담회를 시작으로 2·28기념중앙공원에서 대규모 추모 공연이 있었으며, 21일에는 전태일 문학상 수상 작가들을 초대해 '전태일의 정신, 문학의 길 - 작가와의 대화'도 열었다. 특히 문화제 기간 내내 오오극장 갤러리에서는 전태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시들을 액자에 담은 시전(詩展)이 '울타리 밖의 전태일'이란 타이틀로 열렸으며, 마지막 날에는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태삼 씨와 함께, 어린 전태일이 다녔던 청옥고등공민학교(현 명덕초등학교), 그가 거주했던 집 등을 따라 그가 대구에 남긴 삶의 흔적들을 찾아보고, 계산 오거리 교통섬에 있는 생가 터에서는 전태일 공원 선포식도 거행했다.

박정희 대통령과 삼성 그룹 이건희 회장의 도시 대구에서 노동자의 아이콘 전태일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불러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지금은 서울 강남을 숙주로 삼는 보수의 메카지만, 대구는 원래 1946년 10월 항쟁조차 그 시작이 '기아 데모'였을 정도로 체제 저항적인 도시였다. '동양의 모스크바'로 불릴 만큼 진보적 움직임이 활발했다는 것은 그만큼 억압과 착취가 횡행했었고 그 구조악에 눈뜬 이들이 많았다는 것이리라. 그렇게 깨어 있던 도시 대구에서 전태일은 1948년에 태어났다.

메시아의 메시아다움은 동정과 공감의 마음에서

철학자 김상봉의 "대구는 박정희의 도시가 아니라 실은 전태일의 도시다. 전태일이 누구인가? 그는 슬픔의 예수와 분노의 예수, 눈물의 예수와 빛의 예수를 자기 속에 하나로 구현한 영혼이었다"는 규정이 더욱 가슴에 와 닿는 이유다. 메시아의 메시아다움은 어디에서 비롯하는가. 가난하고 소외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의 아픔과 슬픔을 함께 느낄 수 있는 동정(compassion)과 공감(sympathy)의 마음에서다.

전태일이 그러했다. 그는 열사이기 이전에 지극한 사랑의 마음을 지녔던 젊은이였다. 전태일이 일기장에 남긴 고백, "나는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감정에는 약한 편입니다. 조금만 불쌍한 사람을 보아도 마음이 언짢아 그날 기분은 우울한 편입니다. 내 자신이 너무 그러한 환경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 마음으로 전태일은 차비를 털어서 점심을 굶고 있는 시다들에게 풀빵을 사 주고는 자신은 걸어서 출퇴근하는 일을, 그들을 위해 자신의 몸을 불사를 때까지 수년간 계속했다. 예수의 서른세 살보다 더 짧은 스물두 살로 삶을 마감한 전태일이 임종 직전에 남긴 말 "배고프다!"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외친 "목마르다!"와 같은 존재적 절규였다.

노동운동, 전태일의 마음으로 비정규 노동자들 껴안아야

전태일은 그렇게 머리에 앞서 우선 마음이 먼저 움직였다. 진보란 무엇인가. 그 뿌리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측은지심이다. 빈곤한 노동 대중을 향한 마르크스의 애절한 마음이 없었다면 맑시즘이 태어날 수 있었을까. 현장의 '사건'과 '실천'(praxis)을 통해 태어난 민중신학과 해방신학의 여정도 그러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진보하면 머리가 앞선다. 마음을 잃은 진보, 진보를 되살리는 길이 어디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특히 노동운동이 가장 약한 이들에게 온전히 쏟았던 전태일의 그 마음을 되찾아야 한다. '말로만 비정규직 끌어안기'가 아니라 전태일의 가난한 노동자들에 대한 연민과 동료애 그 연대 의식으로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를 껴안아야 한다. 노동운동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껴안지 못한다면 청계천의 전태일 동상은 철거되는 것이 차라리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한미사 공장 안에서 동료들과 함께(맨 오른쪽이 전태일 열사). (사진 출처 전태일재단)

헬조선 청년들에게 청년 전태일을 돌려주고 싶다

더 나아가 가난하게 살면서도 사람에 대한 사랑을 놓치지 않고, 인간을 물질화한 시대에 돈보다는 사람이 먼저고 노동자도 사람이라는 인간 선언을 온몸으로 드러냈던 스물두 살 전태일. 그 전태일의 마음을 '헬조선' 악몽에서 헤어날 줄 모르는 이 시대 청년들에게 돌려주고 싶다.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이지만, 단군 이래 최저의 대우를 받는다는 그들. 스스로 88세대, 3포 세대, 5포 세대, 열정페이 세대 등으로 부르며 절망에 빠진 젊은이들이 그런 청년 전태일의 삶을 눈여겨봤으면 싶다.

특히 대구의 경우 매년 1만 명의 젊은이들이 빠져나가는데, 그만큼 희망이 없는 도시라는 뜻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대구는 교육열에서 전국 최고다. 곧 각자도생의 길로 해결하려는 것인데, 이미 현실은 각자도생으로는 풀 수 없게 꼬여 있다. 학생 자살률 전국 1위라는 불명예스런 수치가 그걸 드러내고 있다. 대구가 스물두 살 청년 전태일을 다시 불러야 하는 이유다. 그를 롤모델로 삼아 대구가 남을 눌러 이겨야 자신이 산다고 믿는 살벌한 경쟁이 펼쳐지는 비교육적인 도시가 아니라, 도시 공동체의 정신을 회복하고 힘없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비롯한 가난한 이들에게 기운을 북돋아 주는 인간적인 도시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전태일의 예수 됨과 전태일 삶의 예수다움

다시 전태일이다. 전태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산업화 과정에서 잃어버렸던 우리 사회의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길이다. 해고의 칼날에 피 흘린 노동자들이 굴뚝 위로, 크레인 위로, 광고판 위로, 철탑 위로 올라가고, 농성 텐트 속에 2,000일, 3,000일 넘게 갇혀 있는 노동 현실. 빈익빈 부익부 양극화 심화에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린 가난한 이들이 죽음의 유혹에 흔들리고 실제로도 죽어 나가는 민생 도탄 시대. 한번 무너지면 다시는 일어날 수 없게 패자부활전조차 용납하지 않는 승자 독식 사회, 그러기에 그 어느 때보다 공정하고 정의롭고 상식이 통하는 공평한 사회에 대한 갈망이 높은 시대. 겉은 화려하나 속은 아픔으로 가득 찬 우리 사회에 전태일은 공동체적 삶의 연대망 구축으로 사회의 전체성(holistic)을 회복하는 촉매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전태일의 이름을 다시 부르는 것은 훼손된 예수의 예수 됨을 복구하는 것이다. 넋과 기가 꺾인 이들을 향한 측은지심으로, 그 시대의 소외되고 가난하고 병든 이들과 동고동락하면서 사시다 끝내 가장 보잘것없는 그들을 당신과 동일시하며 돌아가신 사람의 아들 예수. 하지만 지난 2000년간 사람 됨을 탈색당한 채 십자가에 못 박혀 계셨던 예수. 예수의 예수 됨을 다시 부활시키는 데, 아니 하느님의 사람 됨과 사람의 하느님 됨을 교회가 다시 절절히 체험하는데 전태일의 삶만큼 예언적인 삶이 또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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