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는 가면일 뿐이야. 내가 찾는 악마는 그 가면 뒤에 숨어있다고!"

2010년(우리나라는 2013년 개봉)에 나온 트레이 스톡스 감독의 영화 '퍼시픽 모비딕'에 등장하는 대사라오. '모비딕'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고래와 싸우는 이야긴데, 뭐 결국 모두 고래에게 먹혀 버리지요. 인간의 경험과 기술과 지식이 별로 쓸데없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기가 막힌 영화라오.

그렇소. 여보! 우리는 어느샌가 거대 고래를 찾느라 분주한 시대를 살고 있소. 그러면서 문명의 혜택이나 화성 탐사와 같은 신기술의 신을 숭배하게 되고. 쩝! 종교보다 더 종교적인 재화와 권력과 기술과 진보의 신 숭배! 결국 무너지고 만다오. 이 영화는 허먼 멜빌이 쓴 <모비딕>을 원작으로 한 거요.

▲ <퍼시픽 모비딕> 스틸 컷. (사진 출처 (주)케이알씨지)

'허슬링'의 미국…그들만의 이야기인가

'침몰하는 배'로 은유되는 미국 사회의 모습을 실패로 규정하고, 그 신물 나는 이기적 문명과 경쟁적 죄악을 떠나 멕시코로 이민 간 문화 비평가 모리스 버먼. 그는 "미국은 실패했다"고 말하고 그 실패의 원인이 '허슬링'(Hustling)에 있다고 힘주어 강조하오.

그의 책 <미국은 왜 실패했는가>는 '허슬링'을 '경제 이익을 위해 사기나 강탈 등의 수단을 주저 없이 사용하는 행태'를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하오. 미국 사회가 그렇다는 거요. 마치 거대 고래를 없애려다 자신들을 죽음의 나락으로 들이미는 <모비딕>의 주인공들처럼, 이 위대한 싸움에서 결국 승리하리라는 망상에 젖어 경쟁하고 짓밟으며, "전진! Go! Go!"를 외친다는 거요.

맥두걸은 미국의 성장은 '창조적 부패'에 근거한다고 보고 있소. '도처에 존재하는 저속함'을 기반으로 한 미국 사회의 물질문명은 겉으로는 그럴싸해 보이오. '세상에서 이득을 얻는 것이 이들의 주된 목표이고 종착점이며 의도'여서 돈이 안 되면 가치가 없는 것이 되는 거지요.

공공심과 도덕은 결핍되나 부에 대한 끝없는 갈증은 폭증하는 사회, 이것이 신자유주의의 미국 사회요.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고. "삶이 어떤 것이든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존엄성과 인간적 규모가 필수적"인데 이를 무시한 사회는 이미 망한 사회나 다름없는 것이죠. 여보! 지금의 미국이 바로 이 시점에 있고, 언젠가는 자신이 만든 가면을 쓴 악마 고래에게 먹힐 수밖에 없을 것이오.

"허슬링 또는 기회주의에도 물론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야심, 혁신, 근면, 조직 그리고 미국인들의 '할 수 있다' 정신은, 이 나라가 건립되고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아 전 세계 공산품의 3분의 1을 생산해 내는 결과로 이어졌다." (10쪽)

이런 긍정적인 측면에도 저자는 "(허슬링이) 오히려 미국인들에게 해를 끼치기 시작했다"고 분석하고 있소. 그렇게 생산한 생산품을 팔기 위해 다시 허슬링을 사용하는 악순환을 거듭하는 것이지요. 이런 악순환의 고리는 인간성은 피폐하고 부와 상품은 쌓이는, 물건이 사람 위에 군림하는 형태의 미국 사회(미국을 모델로 하는 현대사회 모두)를 만드는 것이오.

교회를 파고든 '허슬링'

▲ <미국은 왜 실패했는가> / 모리스 버먼 지음 / 김태언·김형수 옮김 / 녹색평론사 펴냄 / 272쪽 / 1만 5,000원

여보! 내가 목사이니 교회 얘기를 해 볼까요. 우리나라에서 강남의 한 교회 목사가 노만 빈센트 필의 <긍정적 사고방식>이란 책을 소개하고, 교회에서 그의 사상을 접목하여 괄목할 만한 성공을 거두었소. 그러면서 1970~1980년대에 이 책이 성경보다 더 성경적인 책으로 부상했었소.

박정희 때 새마을운동과 유사한, 그때 교회에 분 폭풍과도 같은 '하면 된다' 열풍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었소. 그렇게 교회들은 개척만 하면 부흥하여 대형 교회로 성장하고…. 당시에 성장한 교회를 모두 싸잡아 호도하고 싶은 생각은 없소.

어느 사회건 윤리와 도덕이란 게 있지 않겠소. '하면 된다'의 윤리, 다른 말로 하면 신자유주의라 할 수 있을 거요. 이 열풍의 덕을 톡톡히 본 이들은 수단과 방법은 어떠해도 좋소. 다만 목표만 이루면 되오. 쉽게 말하면 "교회가 부흥했는데 무슨 딴지냐?"하는 논리라오.

그렇게 성장했던 교회들은 한결같이 아들에게 교회를 물려주는 '교회 세습'을 단행했소. 그들에게 세상의 비난쯤은 그리 신경 쓸 일이 아니오. 성적 타락은 물론 입에 담지 못할 상스러움이 교회 강단을 타고 내려오는 것은 비일비재한 일이오.

혹시나 교회가 그러면 안 되는 거라고, 목사가 그러면 안 되는 거라고 말하면 "교회도 키우지 못한 주제에 무슨 비판이냐"는 식이요. 이게 바로 미국에서 배운 허슬링의 대표적 행태라고 말해도 될 거요. 그러면 불 보듯 빤한 건 '망한다'는 거요. 그렇게 가면 망하오. 그게 '하나님의 성전'이라 해도.

목사가 '먹사'가 되고, 기독교가 '개독교'라고 일컬어져도 눈 하나 깜짝 않는 이들이 교회에 수두룩하오. 그때에 성장의 재미를 본 이들은 남을 신경 쓰지 않죠. 지금의 부와 권력을 그 누구에게도 나눠 줄 생각이 없으니.

교회 밖의 사람들은 이렇게 '교회 아닌 교회'를 보며 모든 교회를 욕하고, 의식 있는 교회 안의 사람들은 '가나안 교인(교회 안 나가는 교인)'으로 전락하게 되오. 지금 한국교회의 이 손쓸 수 없는 사태는 다 미국에서 배운 것이라 생각하오. 신자유주의 허슬링 현상, 바로 이거지요.

나라도 교회도 본래성 회복이 필요하다

미국은 '독립선언서'에서 영국의 독재와 부패를 비판하고 공민도덕의 이상을 세우겠다고 천명했소. 소위 청교도 정신이죠. 하지만 이미 미국은 '청교도에서 양키로' 전락한 지 오래라오. 저자는 로마제국 말기에 벌어졌던 일이 똑같이 21세기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말하오.

공화주의 탈을 쓴 허슬러 국가, 민주주의의 탈을 쓴 세계를 상대로 한 경찰국가. 세계의 선을 지향한다며 벌이는 제국주의적 확장, 비즈니스가 우상이 된 나라, 소비가 천국이라 가르치는 나라…. 이것이 꼭 미국만의 이야기일까요. 우리나라는 미국의 판박이, 이하도 이상도 아니라오.

"재화와 돈, 권력, 기술 그리고 '진보'의 열광적 추구가 결국 배를 들이받아 산산조각 내고 있는 고래를 만들어 냈다. 바로 미국의 외교정책이 9·11을 유발했다. 바로 미국의 경제정책이 2008년 붕괴를 초래했다. 미국의 생활 방식 전체가 변증법적으로 바로 그 생활 방식을 무너뜨리고 있다." (187쪽)

그렇소. 이대로 가면 결국 거대 고래라는 악마가 나라든 교회든 치받아 침몰시킬 거요. "알 카에다보다 골드만삭스 같은 기업들이 미국에 더 위험한 존재다"고 한 크리스 헤지스의 말을 곱씹을 때라고 생각하오. 목표 지향적 국가가 GDP를, 수단을 무시한 교회가 사이즈를 자랑할 때 그들이 서서히 키운 거대 고래는 그들을 삼킬 이빨을 날카롭게 세우고 큰 아가리를 벌릴 것이오.

※뒤안길은 뒤쪽으로 나 있는 오롯한 오솔길입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의 오솔길을 걷고 싶습니다. 함께 걸어 보지 않으시겠어요. 이 글에서 말하는 '여보'는 제 아내만이 아닙니다. '너'와 '나', '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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