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옥한흠 목사의 편지 진위 여부에 대해, 최근 국과수는 "옥 목사의 노트북에 있는 편지는 조작되거나 변조된 흔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 편지는 메일에 첨부돼 비서 박 아무개 씨에게 제대로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고 옥한흠 목사가 "우리가 정말 한배를 타고 있는가"라며 오정현 목사에게 경고를 담아 쓴 편지, 일부에서 조작을 주장해 논란이 일었던 이 편지에 대해 최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은 조작 흔적이 없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이 편지는 2008년, 오정현 목사의 '4대강' 발언과 '광우병' 칼럼이 논란이 되며 사랑의교회가 교계 안팎으로 거센 비난을 받자, 옥한흠 목사가 직접 작성해 오정현 목사에게 보냈다고 알려졌다. 옥한흠 목사 작고 후인 2011년 초, 아들 옥성호 대표(도서출판 은보)가 옥 목사의 노트북을 정리하다가 이 편지를 발견했고, 이를 사랑의교회 당회와 오정현 목사에게 보내면서 일반에도 공개됐다.

옥성호 대표는 옥한흠 목사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편지를 공개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아버지가 죽고 없다는 사실을 악용해 오정현 목사는 자신의 모든 행동이 다 옥한흠 목사가 허락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그 주장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 그 편지를 공개했다"고 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옥성호 대표가 오정현 목사를 흔들기 위해 아버지를 이용한다고 했다. 한발 더 나아가 사랑의교회 집사인 채 아무개 씨는 옥 대표가 편지를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2013년 7월, 옥성호 대표가 채 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지난해 11월 재판부는 이를 인정해 채 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채 씨는 재판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항고했다. 채 씨가 계속 편지가 조작됐을 가능성을 주장한 탓에, 결국 국과수에 옥한흠 목사가 생전 사용했던 노트북 분석을 의뢰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포렌식 감정한 국과수, "옥 목사 노트북에서는 조작이나 변조의 흔적 없다"

국과수가 검증한 비교 분석 방법은 복잡하면서도 간단했다. 국과수는 사이버 범죄 수사에 쓰이는 디지털 포렌식 감정 기법을 통해 파일의 위·변조 여부를 분석했다.

이 방법을 이해하려면 약간의 사전 지식이 필요하다. 통상 어떤 사람이 A라는 문서 파일을 작성해, 컴퓨터에 내장된 메일 프로그램을 이용해 이메일을 보낸다고 가정해 보자.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A라는 파일만 있을 것 같지만, 사실 A'라는 사본이 생긴다. 메일을 보내기 위해 파일 A가 하드디스크 어딘가에 임시 파일 형태로 복사되는 것이다.

옥한흠 목사는 2008년 5월 31일, '080531_오목사대담.doc'라는 편지를 작성했다. 이 파일을 편의상 A라고 해 보자. A는 '내 문서' 폴더에 저장됐다. 옥 목사는 이 A를 비서 박 아무개 씨에게 보냈다. 하드디스크에는 A'라는 임시 파일이 생성됐다.

옥 목사는 하루 뒤인 6월 1일 초고를 수정했다. 파일 A를 다시 켜서, 문구와 표현을 고쳤다. 그리고 그대로 저장했다. 파일 이름은 같지만 내용은 A에서 B로 바뀌게 됐다. 옥 목사는 '다시 수정해서 보낸다'며 B를 첨부해 박 씨에게 메일을 보냈다. 하드디스크에는 임시 파일 B'가 저장됐다. 옥 목사의 노트북 '내 문서' 폴더에는 B만 남았고, 하드디스크 어딘가에는 A'와 B'가 남았다.

국과수는 '내 문서' 폴더의 B와 하드디스크 임시 파일 B'를 비교했다. 비교 결과, 두 파일의 해시값(암호화된 고유 속성값)이 서로 같게 나왔다. 이 해시값은 문서를 한 글자만 수정해도 달라진다. 해시값이 같다는 건 두 개가 같은 파일이라는 얘기다. 옥한흠 목사가 쓴 편지는 두 번째 메일 발송 이후 조작이나 변조, 수정이 없었다는 것이다.

만약 옥성호 대표가 이후 옥한흠 목사의 편지를 조작했다면, '내 문서' 폴더에 있는 파일과 임시 파일 B'의 해시값이 서로 달라야 한다. 국과수가 두 파일의 값이 같아 변조 흔적을 찾을 수 없다고 결론지음으로써, 사실상 편지에는 조작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판명됐다.

다만 비서 박 씨의 하드디스크는 한 번 포맷한 이력이 있어, 박 씨가 옥 목사가 보낸 파일을 언제 받았는지 추적이 어려웠다. 오타나 맞춤법을 고치기 위해 약간의 수정을 가했다면, 해시값이 달라지기 때문에 이 또한 옥 목사 노트북 파일과 비교하기가 어려웠다. 국과수는 박 씨가 메일을 언제 수신했는지 등을 알려면 사랑의교회 메일 서버를 봐야 한다고 했다. 다만 사랑의교회 메일 서버 기록을 받지 못해 이번 분석에서는 다루지 못했다고 했다.

옥한흠 목사, "밀봉해라"고 했는데…비서는 "모르는 일", 오정현 목사는 "받은 적 없다"

국과수 감정 결과는 재판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옥 목사의 편지가 조작되지 않았다는 결론 외에도, 수사기관에서 옥 목사가 비서 박 씨에게 메일을 보낸 기록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옥 목사는 당시 "읽기 좋게 정리해서 밀봉해라. 나에게도 하나 주어야 한다"고 했다. 메일에는 오정현 목사에게 편지를 전하라는 직접적인 표현은 없지만, 정황상 전달을 지시한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 오정현 목사는 이 편지와 관련해 옥 목사를 만난 적이 없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박 씨는 수사 시작 당시, 경찰 조사에서 오 목사의 비서실장에게 편지를 전달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편지가 전달된 후 옥한흠 목사와 오정현 목사는 이와 관련해 만난 것으로 보인다. 옥성호 대표는 옥한흠 목사의 수첩 메모에 이를 시사하는 기록이 있고, 박 씨도 옥 대표에게 두 사람이 만났다고 말했다. 이에 옥성호 대표는 박 씨를 재판의 증인으로 세웠다.

그러나 1심 재판 당시, 증인으로 출석한 박 씨는 이 편지에 관해 "모르는 일"이라고 증언하면서 당초 진술을 뒤집은 것으로 전해졌다. 옥 대표는 박 씨가 2심 재판에서도 "지금 옥한흠 목사가 살아서 자기 곁에 서 있다는 마음으로 증언한다"고 말했다며, 그럼 어떻게 당신의 컴퓨터에 옥 목사의 편지가 있냐는 검사의 질문에 박 씨가 "자신도 왜 자기 컴퓨터에 그 파일이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고 말했다.

오정현 목사도 1심 당시 재판부에 옥한흠 목사의 메일이나 편지를 받은 사실이 없다고 서면으로 진술했다.

"저는 2008년 6월에 고 옥한흠 목사로부터 (옥성호 집사가 주장하는) 이메일이나 서신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목사님께서 소천하기까지 고 옥한흠 목사님과 저와의 신뢰 관계는 변함이 없었으며, 고 옥한흠 목사님께서는 부족한 저를 계속 사랑해 주셨고 아껴 주셨습니다."

반면 이번 재판에 사랑의교회 부목사 출신 20명은 "평소의 행동으로 볼 때, 이 편지의 내용은 옥한흠 목사가 직접 쓴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재판부에 제출할 예정이다.

▲ 지난해 1심 재판 당시 오정현 목사가 재판부에 낸 진술서에서 오정현 목사는 "우리의 신뢰 관계는 변함 없다"고 했다. 편지 관련 내용 외에도, 옥 목사의 건축 독려 동영상 제작에도 오정현 목사와 교회는 아무런 간섭과 개입이 없었다고 진술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사랑의교회 메일 서버에 추가 정보 있지만…교회는 제출 안 하는 중

국과수의 수사 결과가 나왔지만, 오정현 목사를 지지하는 교인들은 결과를 속단할 수 없다고 했다. 한 교인은 이참에 교회 메일 서버도 조사해 옥 목사의 편지가 조작된 것임을 밝혀내야 한다고 했다. 다른 교인은 조작하는 건 식은 죽 먹기라는 전문가들도 있다며, 편지의 문체가 옥한흠 목사의 평소 문체와 다르니 철저하게 검증해야 한다고 했다.

사랑의교회 메일 서버를 조사해야 한다는 입장은 사랑의교회갱신위원회(갱신위) 교인들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재판부의 메일 서버 제출명령을 받아들이지 않은 건 사랑의교회이기 때문에, 교회에서 빨리 협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갱신위 교인들은 메일 서버를 통해 현재 확인되지 않은 비서 박 씨의 수신 및 확인 기록 등을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수사에서 밝혀지지 않은 추가 증거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갱신위 교인들은 사랑의교회가 메일 서버 제출에 협조할 것을 요구했다. 채 아무개 씨에 대한 재판은 아직 추후 일정이 잡히지 않았다.

편지 논란과 관련한 소송은 또 있다. 도 아무개 장로가 지난해 7월 옥성호 대표를 횡령 혐의로 고소한 것이다. 도 장로는 옥한흠 목사가 쓰던 노트북은 교회 비품이니 반납해야 하고, 옥한흠 목사 기념관에 이 노트북을 전시하려고 하는데, 이를 옥 집사가 가지려 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갱신위 교인들은 사랑의교회가 소송에 개입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소송은 채 아무개 집사가 옥 대표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시작한 개인 간 소송인데, 교회가 옥 대표에게서 핵심 단서인 노트북을 빼앗아 옥 목사의 편지가 조작되었다고 몰아가려 한다는 것이다. 도 장로가 건 횡령 문제에 대한 재판은 오는 11월 20일 추가 공판이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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