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신 10:19)." 성경 말씀도 이들을 막을 수는 없다. 미국의 정치인들, 특히 기독교 신앙을 공개적으로 고백하던 공화당 정치인들이 시리아 난민을 종교에 따라 골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뿐만 아니라 텍사스·루이지애나·인디애나 등 공화당 소속 주지사 15명은 앞으로 난민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들의 발언은 11월 13일 프랑스 파리에서 일어난 무차별 테러 때문이다. 이슬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는 자신들이 이번 테러를 저질렀다고 밝혔다. IS가 이슬람교를 내세우기 때문만은 아니다. 다수의 해외 언론은 스타드드프랑스 경기장 인근에서 일어난 자살 테러 현장에서 여권을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그리스·터키 등을 거친 시리아 출신 난민의 여권이라며 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테러리스트가 난민 행렬에 끼어 프랑스에 왔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 같은 언론 보도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미국의 프랭클린 그레이엄(Franklin Graham)이다. 빌리 그레이엄의 아들이자 국제 구호단체 사마리아인의지갑 대표이기도 한 그는 "역시 이슬람교인들은 위험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레이엄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이전에도 이것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우리는 미국의 이민정책을 바꿔야만 한다. 지금처럼 테러와 싸우고 있는 중에는 이슬람교인들을 이민자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중략) 부시·오바마 대통령에게도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가 아니라고 수차례 이야기했는데 귀담아듣지 않았다."

▲ 오바마 대통령은 기독교로 개종한 시리아 난민만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부 공화당 정치인들의 주장을 비판했다. 그는 "긍휼히 여기는 마음에는 종교의 구분이 없어야 한다"고 했다.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2016년 대선 예비 주자로 나선 후보들 중 독실한 기독교인을 자처하는 정치인들도 즉각 반응했다. 남침례교 목사이기도 한 마이크 허커비(Mike Huckabee) 전 아칸소 주지사는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중동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난민들을 거절하는 법안을 만들지 못한다면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의장직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글을 올렸다.

장로교 교인인 도널드 트럼프나 자신을 '복음주의자'라고 부르는 테드 크루즈도 다르지 않다. 성공회 교인이었다가 가톨릭으로 개종한 젭 부시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심지어 미국에 오려는 난민들의 종교를 파악해서 이슬람교인은 거부하고 기독교인만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공화당 소속 주지사 몇몇도 예비 후보들을 거들고 나섰다. 공화당의 대선 후보이자 현 루이지애나 주지사인 바비 진달(Bobby Jindal)은 과거 <크리스채너티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복음의 씨앗을 세상에 심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11월 17일 그가 트위터를 통해 발표한 내용은 이방인을 대접하라는 성경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그는 "시리아 난민들이 LA에 내리지 못하도록 하는 특별 명령에 방금 서명했다"고 했다.

'종교 자유'가 '차별 금지'에 우선한다는 법안을 발의했다가 철회했던 인디애나의 마이크 펜스(Mike Pence) 주지사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 "파리 테러 후, 인디애나 주에서 시리아 난민들이 정착하게 하는 방안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G20 정상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을 떠나 있는 오바마 대통령은 본토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종교에 따라 난민을 골라 받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것은 미국이 아니"라고 했다. 오바마는, 쿠바에서 정치적인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이민 온 아버지를 둔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을 우회적으로 겨냥한 발언을 했다.

"자신의 가족이 미국으로부터 조건 없는 혜택을 받았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전쟁으로 갈갈이 찢긴 나라에서 도망쳐 나온 사람들을 종교에 따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그것은 미국이 아니다. 우리의 방식이 아니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에는 종교의 구분이 없다."

한편, 11월 16일 프랑스 일간지 <르피가로>는 난민 문제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독일 법무장관 하이코 마스(Heiko Maas)는 "IS가 유럽에서 난민 논쟁을 더 극대화하기 위해 테러 현장에 일부러 난민 여권을 흘렸을 가능성도 있다. 난민 행렬에 섞인 IS 대원이 테러를 했다는 것은 아직 확인된 정보가 아니다"고 했지만 미국의 일부 기독교인과 정치인에게는 전달되지 않는 듯하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