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강동석 기자] 올해 7월 22일 개봉한 영화 '암살'은 1,200만의 관객을 불러 모으며 흥행 끝에 막을 내렸다. 일제강점기와 독립운동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던 만큼, '암살'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이야기들은 SNS에 공유되면서 화젯거리가 됐다. 네티즌들은 그중 전지현이 연기했던 여성 저격수 안옥윤의 실제 모델이 누구인지에 큰 관심을 보였다. 실제로 일본군 고위 간부 암살을 시도하기도 했던 여성 독립운동가 남자현 선생이 가장 유력한 모델로 꼽혔다. 이런 사실에 사람들이 관심을 보인 까닭은 무엇일까. '여성' 독립운동가가 낯설게 다가왔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이러한 '낯섦'은 이름도 없이 역사 속에, 자그마한 발자취를 남기며 사라졌던 무수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 <여교역자 입을 열다> / 임희국 엮음 / 새물결플러스 펴냄 / 286쪽 / 1만 5,000원

지난 8월 새물결플러스에서 마음을 다해 한국교회를 섬겼던 여교역자 11명의 이야기를 담은 <여교역자 입을 열다>(임희국 엮음)가 출간됐다. 이 책은 우리에게 여성 교역자들이 과거 한국교회에서 어떤 노고를 했는지 잘 드러내고 있다. 이 책이 '알려 주고' 있는, 과거 한국교회를 지탱했던 여교역자들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 보자.

<여교역자 입을 열다>는 임희국 교수가 머리말에서 밝히는 것처럼 "일평생 교회를 섬기다 은퇴한 여성 교역자 11명의 삶과 사역 이야기를 인터뷰 형식으로 엮어낸 회고담"(11쪽)이다. 임희국 교수와 11명의 교회사 전공 신학생들은 2014년 여교역자안식관에 방문해 구술 녹취 작업을 통해 은퇴 여교역자들과 일대일 인터뷰를 진행했다. 임 교수가 지적하는 것처럼 향상된 여성들의 지위에 비해 "교회사는 아직 남성 위주의 교회사 연구 및 서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12쪽)

인터뷰한 여교역자의 연령대는 60대에서 80대로, 40여 년간 사역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책에는 86세부터 69세까지 나이순으로 11명의 인터뷰가 차례로 기술돼 있다. 인터뷰는 다음 10가지 질문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가족 사항 △학교·신학교 생활 △자라난 환경 △사회 경험과 경력 △소명 △교회 경력 △힘이 된 성경 말씀과 찬송 △한국교회의 비화 △신앙의 유산 △당부의 말 등이다.

11명이 똑같은 양식과 흐름에 답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보니 다소 단조롭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다. 어떻게 보면 동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인 만큼 반복되는 내용도 많이 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굴곡의 시기와 보릿고개를 넘어온 시대적 환경들이 그렇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오늘날 한국 사회의 현실과, 결과적으로 어떻게 됐든 성실하게 사역을 감당했고 우리에게 신앙의 유산을 물려준 여교역자들의 순수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당시 장면을 옮기면 이렇다.

"일제강점기 때 학교를 다녀서 일본인에 대해서는 좋지 않은 기억이 많습니다. 그때는 저희는 짚신에, 변변한 옷 한 벌이 없을 정도로 궁핍한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72쪽)

"하루는 교회에서 새벽 기도를 하고 있을 때였어요. 한창 기도에 열중해 있는데 밖에서 아주 요란한 소리가 났습니다. (중략) 황급히 바깥에 나가봤더니 사람들이 등에 봇짐을 지고 피난을 가고 있는 겁니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아 물으니 간밤에 인민군과 중공군이 연합해 장연군에 쳐들어와서는 집집마다 사람들을 죽이고 난리가 났다고 하더군요." (21쪽)

전도사로 사역하게 되면서 독신을 서원하거나, 남편을 일찍 여의고 홀몸으로 자녀들을 기르며 살아갔던 여교역자도 있었다.

"저는 결혼을 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중2 때 교통사고를 당한 후 얼굴에 흉터가 생겨서 어린 마음에 막연하게 결혼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었죠. 하지만 장성한 후에는 주의 종으로 살아가기를 결단하면서 결혼하지 않고 예수님을 전하는 데 일생을 바치기로 서원했습니다." (48쪽)

"남편이 죽자 먹고살 길이 정말 막막했습니다. (중략) 밀가루를 사면 건더기는 아이들 먹이고 저는 국물만 먹으며 아이들을 키웠죠. 기도를 못할 만큼 배가 고플 때면 강대상 밑에서 '하나님, 저 배고파서 기도가 안 됩니다. 살려 주세요' 하고 하나님께 애원했습니다." (75~76쪽)

몇몇 여교역자는 '사역하면서 힘들거나 어려웠던 점'에 대한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하기도 했다.

"사역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교인들이 어려운 일에 빠졌을 때였습니다. 그럴 때면 성도의 일이 마치 내 일인 것처럼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146~147쪽)

일부는 여교역자로서 부당한 처우를 받았던 것에 대해 큰 불만을 보이지 않기도 했고, 남자 교역자와의 차별에 대해 못내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처음 사역을 시작했던 1981년에 받았던 사례비는 16만 원이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부목사 한 명 대신 전도사 셋을 뽑아서 그렇게 적었던 거였습니다. 그나마 목사님이 당회에 강하게 말씀하셔서 6개월 후에는 19만 원으로 올랐어요. 성미나 사택 관리비도 없는 적은 액수였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거기에 맞춰 살려고 애썼죠." (127쪽)

"여자지만 제가 전임 전도사인데도 저보다 한참 나이 어린 남자 전도사가 저를 아랫사람 취급할 때면 너무 속상했습니다. 한 교회에 오래 있던 여전도사보다 갓 들어온 남자 부목사가 사례비를 훨씬 더 많이 받는 일도 있었습니다." (149쪽)

이들은 한 교회에서 많게는 25년을 사역하기도 했고, 한 교회에서 보통 10년 단위로 머무르는 것이 보통이었다. 주로 맡은 일은 기도와 심방, 교우 관리였다. 이 책을 통해 성도들의 가장 현실적인 자리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관계하고 사역했던 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인용문을 봐도 그렇지만, 현재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성경에 기록된 여성들이 있다. 예수의 머리에 향유를 부어 예수의 장례를 준비했던 것도 여성이었으며, 예수가 부활했다는 것을 먼저 알린 이들도 여성이었다. 성경에서 중심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 행적을 볼 때 여성들이 했던 역할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나 이들은 사도들의 행적 뒤로 감춰져서 어쩌다가 설교 시간에 다뤄지는 것이 전부다.

오늘날의 현실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교회에 다니는 성도들의 숫자를 꼽아 봤을 때 여성의 비중이 더 많지만, 교회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성들이다. 신학적 해석의 차이가 있겠지만, 아직까지 대다수 보수 교단들은 여성 목사 안수를 금하고 있다. 여성 안수를 인정하는 교단도 막상 총회 현장에 가 보면 남녀평등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장면과 마주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이 책에 실린 여성 교역자들의 수고가 두드러져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터뷰 후기에 있는 말로 마무리를 대신할까 한다.

"한국교회가 이만큼의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유명한 남자 목회자들뿐만 아니라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섬기며 헌신한 여교역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략) 이러한 여교역자들이 부여 주신 충성과 헌신을 믿음의 후배들이 잘 보고 배워 삶 속에서 실천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285쪽)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